주식 물납 외 상속 불가능…기형적 상속세에 '장수 中企' 휘청

[상속세 폭탄에 멍 드는 기업들]
비상장 주식 물납 외에 가업 승계 불가능
기형적 상속제도에 속타는 중소·중견기업
휴지조각 비상장 주식에 정부 세수 악영향
삼성 등 대기업들 대다수도 상속세 영향권
"세계 최고 상속 부담, 공격 투자 걸림돌"
  • 등록 2024-12-02 오전 5:30:01

    수정 2024-12-02 오전 5:30:01

[이데일리 김정남 김인경 기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 22일 굴지의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사인 NXC(비상장사)의 지분 매각 주간사 선정 용역을 공고했다.

넥슨은 지난 2022년 2월 김정주 회장이 돌연 별세한 이후 상속세 이슈의 중심에 섰다. 김 회장의 사후 상속인들은 비상장사 주식이 연부연납을 위한 납세담보로 인정되지 않는 탓에 NXC의 지분 29.30%를 정부에 물납했다. 정부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NXC 주식 공개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번에 다시 ‘큰 손’ 투자자를 찾으러 나선 것이다.

이번 역시 시장의 시각은 어둡다. 그 규모만 4조원이 넘는 데다 오너일가 우호지분이 나머지 70.70%여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다. 금융시장 한 인사는 “경영권이 없는 조 단위 주식을 누가 매수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중소·중견기업들의 사정은 더 나쁘다. 중소 건설업체 B사는 2013년 10월 상속세 납부차 비상장 주식 19억여원어치를 물납했다. 지분율은 30% 남짓이었다. B사 상속인들의 지분율이 하락한 와중에 건설 경기 악화까지 겹치며 회사는 휘청거렸고, 결국 올해 1월 폐업신고를 했다. 정부는 2014년부터 10년간 지분 매각 공개입찰을 추진했으나 끝내 현금화하지 못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기형적 상속제도에 속 타는 기업들

징벌적 상속세 탓에 산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50%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에 더해 비상장 주식은 납세담보로 인정하지 않는 기형적 제도로 인해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폐업하면 정부가 받은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만큼 세수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크다는 분석이다다.

1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과 정부 관가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19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주식 물납을 통해 상속세를 납부받은 기업 311개사 가운데 휴·폐업한 곳은 126개사로 나타났다. 그 비중이 40.5%에 달했다. 물납 주식의 거의 대부분은 비상장 주식이다. 당국이 상속·증여세 연부연납을 위한 납세담보로 비상장 주식은 인정하지 않고 있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비상장 주식 물납 외에는 가업을 이어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박수영 의원실 관계자는 “경영자인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해 물납 이후 폐업하는 사례가 다수”라고 말했다. 정부가 회사 주주로 들어오면 현실적으로 가업 승계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게 산업계의 토로다.

휴짓조각 전락하는 비장상 주식들

이는 정부 입장에서도 부정적이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물납 받은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는 탓이다. 올해 9월 현재 지분율별 물납 주식 비중을 보면, 총 311개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2개사(58.5%)는 지분율이 10% 미만이었고, 10% 이상~20% 미만의 경우 62개사(20.0%)였다. 경영 참여가 쉽지 않은 지분율 20% 미만 주식이 다수인 만큼 투자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넥슨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다른 중소기업들의 경우 매각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상속제도 현실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회계사는 “정부가 물납 과정에서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평가’는 한다”며 “그런데 담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50%가 넘는 높은 상속세율을 20~30%대로 내리고 비상장 주식을 연부연납 담보로 인정하면 산업계의 고민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독일처럼 ‘100년 장수기업’이 쏟아지게 하려면 구호만 거창한 산업정책보다 이같은 핀셋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공격 투자 걸림돌 작용하는 상속세

대형 상장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최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주식담보대출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2조200억원)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2500억원),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2488억원)은 한국증권금융,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상속세 납부를 위한 대출을 각각 받았는데, 담보 주식의 가격이 떨어질 경우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대출 일부를 갚아야 한다. 삼성 외에 다수의 대기업들이 시간문제일 뿐 상속세 영향권에 들어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공격 투자를 통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을 지우는 것은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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