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상은 단순하지 않다. 주주가 다 같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의 주주는 대주주와 일반주주로 구분되는데 양자의 권리와 혜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배주주는 혈연과 상속에 의해 결정되지만 피지배주주는 시장거래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지배주주만큼 대물림하며 부를 누리는 찬란한 금수저가 없다.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에서 기업주의 세계는 아직도 민주화가 안 된 봉건적 지주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상법 개정안의 핵심이며 논란의 중심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해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이사는 직무 수행에서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해 주주의 권한을 평등하게 만드는 지배구조의 민주화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밖에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총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 규제라고 반대하는 성명을 공표한 것은 어색하게 보인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에서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자사주로 회사 주식을 조금 갖고 있겠지만 엄연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리인 처지다. 그런 대리인들이 나서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요구하는 상법 개정을 집단으로 반대하는 장면은 생뚱맞기만 하다.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지배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장단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회사의 본래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대기업 사장들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상법 개정안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고 반대할지 궁금하다. 대기업 임원 중에는 지배주주의 부당한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려다 불법행위에 공범으로 연루돼 형사처벌을 받고 옥고를 치른 사람도 많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배주주가 변칙이나 편법을 요구해도 이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지 않을까 싶다.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대주주들이 나서 직접 호소했다면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한경협은 과거의 전경련으로 대기업의 총수들이 중심으로 모인 단체다. 대기업 그룹의 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업하는데 상법 개정안이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했으면 호소력이 컸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고 일반 주주와 같이 협력하며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대기업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이 없다. 친환경(E)과 사회공헌(S)이 중요하지만 건전하고 건강한 지배구조(G)가 전제돼야 한다. 지배구조가 전근대적인 ESG 경영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법으로 강제하기 전에 기업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 자체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