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성주원 기자] “어릴 때 아빠가 우리를 버렸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턴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같이 멋진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엄마 정수진 씨의 성을 따른 정윤아(13)양은 얼굴도 모르는 아빠에 대해 묻자 이같이 덤덤하게 말했다. 정 씨는 윤아가 태어나자마자 입양기관에 보냈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데려왔다. 정 씨는 현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경기지부 상담팀장으로 일하며 그녀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미혼모들을 돕고 있다. 정 씨는 인터뷰 내내 윤아와 있는 매시간이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 영화배우 정우성씨의 아이를 홀로 낳은 모델 문가비씨가 주목받으며 혼외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혼외자) 수는 1만 9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4.7%나 된다. 지난 10년간 9만여명이 결혼 관계없이 태어난 것이다. 비혼 출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주로 법적 결혼(혼인신고)은 하지 않으면서 이성 커플간 혹은 여성 혼자 출산·양육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 (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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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복지 측면에서 아동수당 등 비혼 출산(한부모가족)에 대한 지원 차별은 거의 없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 씨도 ‘미혼모’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 때론 ‘이혼녀’라고 소개하는 게 편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아빠가 등재되지 않은 가족관계증명서에선 ‘미혼모’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학교 등에서 차별받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국내에선 혼외자를 출생신고할 때부터 구분하는데 이를 구분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법망 안으로 넣는 방안은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를 통해 시도됐지만 종교단체 등의 반발로 모두 무산됐다. 최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법적 혼인을 하지 않은 동거 관계를 보호하는 프랑스의 등록동거혼 제도인 ‘팍스(PACS·연대의무협약)’ 제도를 근간으로 한 법률안을 준비할 예정이지만 향후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출산 후 남편이 양육 책임을 거부하면 당장 경제적 문제가 생기는 만큼 정부가 이를 보완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현행법이나 행정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긴급 상황에서 국가가 양육비를 일차적으로 지급한 뒤 부모에게 추후 청구하는 대지급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며 “육아휴직의 경우 한부모의 사용이 적은 점을 고려해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