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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순실은 “29살 때부터 나와서 꽃제비하면서 10년 동안 8번 북송당하고 9번 째만에 왔다”라며 “북한에 보내면 감옥에 간다. 매일 두들겨 맞고 맞는 게 일이었다. 손바닥도 감옥에서 다 찢어졌다. 보이는 게 무기다”고 당시를 털어놨다.
이순실은 “꽃제비 생활을 하니까 경찰서에서 오빠를 연결해서 데리고 가게 했다. 오빠네 집이 얼마나 못사는지 맹물 하나 놓고 먹었다. 뗄 것도 없고 끓일 것도 없고 이불도 다 팔아먹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떠나겠다고 했다”라며 “그러니 오빠가 친구에게 시집가라고 했다. 여자는 세간살이를 해가야 했는데 친구니까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고 결혼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못살겠다고 생각을 해서 나왔다”라며 “집을 나와서 임신인 줄 알았다. 임신도 달갑지도 않고 이 아이를 낳으면 뭘 먹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순실은 아이를 출산하고 시장에서 구걸을 하면서 살았다고. 그는 내가 구걸한다는 걸 아이가 안다. 얘가 제 등에서 구걸해 먹는다. 사람들이 먹을 걸 먹으면 내 머리를 치고 저기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발버둥 치면서 그걸 달라고 한다. 사람들이 입에 있던 것이라도 빼서 주면 안 먹고 가지고 있다가 내 입에 넣어준다. 그런 걸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중국 강변에서 인신매매단을 만났다. 아기랑 나를 분리하는 거다. 아이가 안간다고 소리쳤다. 안 뺏기려고 배낭을 잡았는데도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를 토끼, 강아지 팔듯이 흥정을 하는 거다. 중국 돈 5천원(한화 50만원), 아기는 중국 돈 3천원(한화 18만원)에 팔렸다. 그 이후로는 못 만났다. 그때부터 정신병자처럼 살았다. 눈물도 말랐다. 살아만 있었으면 바라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