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17세 발레리노의 우승 메시지

한국인 발레리노 첫 로잔 콩쿠르 우승
"무대 즐기자" 성과 집착 버린 소년
  • 등록 2025-02-20 오전 6:22:09

    수정 2025-02-21 오후 2:45:15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힘들었던 순간은 생각보다 없었어요.”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발레리노 박윤재 군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예술센터 도암홀에서 열린 로잔 발레 콩쿠르 우승자 박윤재(17)의 기자회견.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 우승의 기쁨을 안고 돌아온 박윤재의 표정은 해맑았다. 다소 곤란한 질문도 나왔지만 박윤재는 진솔한 대답으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어른들의 예상을 빗겨나간 10대 소년의 소감에선 작은 울림도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윤재는 콩쿠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무대에서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관객에 보여줄지만 고민했다”고 답했다. 그는 “꿈의 무대였던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벅찬 마음에 눈물이 올라왔다”며 “힘들어서 나온 눈물이 아니라 감격에 찬 눈물이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경쟁의 무대가 힘들었을 법 한데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박윤재가 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설적으로 ‘우승 압박’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박윤재는 “중학교 3학년 때 나간 콩쿠르에서 큰 실수를 해 절망하고 좌절한 적이 있었다”며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실수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무대를 즐기고 오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 시대에 작은 울림을 전하는 소감이었다.

예술계 콩쿠르에서 순위는 물론 중요하다. 1등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결과’보다 ‘경험’에 방점을 두고 콩쿠르에 출전한다. 이러한 태도가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또한 “나는 달라진 게 없다. 우승했다고 실력이 더 좋아진 건 아니니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수상 소감을 남겨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콩쿠르 입상에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예술영재 교육은 어린 나이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발굴해 그 재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자리매김했다.

박윤재에게도 이러한 교육 시스템이 콩쿠르 우승으로 이어졌다. 박윤재를 가르친 이는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으로 서울예고 강사로 있는 리앙 시후아이다. 리앙 시후아이는 “윤재는 발레 기본기가 이미 튼튼한 학생이었다”며 “기술적인 부분을 더 가르치기 보다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윤재가 가진 재능을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박윤재 또한 “리앙 시후아이 선생님 덕분에 무대에서 ‘잘 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답했다.

박윤재는 자신의 신체적인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전했다. 두꺼운 다리, 평발 등 발레 무용수로서는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나만의 강점과 매력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발레를 배우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는 “그동안 연습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조언도 남겼다. 박윤재의 수상소감은 한 순간의 실패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오직 성과만을 좇는 한국 사회가 잊고 있는 가치를 잠시나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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