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왜 강원으로 갔을까[최종수의 기후이야기]

  • 등록 2025-02-10 오전 7:21:46

    수정 2025-02-10 오전 9:13:21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배와 덕담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이어졌다. 이러한 명절 선물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한 설문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목은 과일 혼합세트, 사과, 소고기, 귤, 배 순으로 나타나 과일의 인기를 보여줬다. 과일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인 것은 사과로, 연중 유통량의 4분의 1이 설과 추석에 집중돼 사과는 명절 대표 선물로 자리 잡았다.

양구 사과(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우리에게 각광받는 사과는 경북 지역이 국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통적인 주산지이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면 사과 생산량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10년 63%에 달했던 경북의 사과 점유율은 2023년 59%로 4%p 하락했다. 전국의 사과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경북의 이러한 감소세는 새로운 대체 재배지가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인 지역은 강원도다.

강원의 사과 재배면적은 최근 10년간 약 3배 증가했으며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1.4%에서 2022년 4.7%로 크게 상승했다. 주목할 점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의 사과 부문에서 강원 북단 양구군에서 생산한 사과가 최근 5년간 한 번도 수상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원도 사과가 단순히 재배면적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과거 대구와 경산 등 경북을 중심으로 했던 사과 재배지가 충북을 거쳐 강원도 산간 지역까지 확장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평균 기온 상승으로 인해 사과 재배 적지가 점점 북쪽과 고지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사과꽃 개화 시기가 20년 전보다 2주 정도 앞당겨지면서 봄철 냉해 위험이 커졌고 겨울철 이상고온과 여름철 잦은 강우로 병충해 발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농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으며 과일 재배지의 변화는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증거 중 하나다. 단순히 재배 지역이 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농업 방식과 유통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은 현재의 추세가 지속할 경우 2070년에는 강원도 산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일 재배지의 변화는 사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제주도 특산물로 여겨지던 감귤이 이제는 전남 해남과 경남 남해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따뜻한 기후에서만 가능하던 감귤 재배가 북쪽으로 확장된 것이다. 전남 지역의 감귤 재배면적은 2017년 140ha에서 2023년 311ha로 증가했다. 중국 고사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과일이 본래의 재배지를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하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귤이 회수를 건너도 더 이상 탱자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과일 재배지의 북상은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의 지형이 바뀌고 있으며 사과를 비롯해 복숭아, 포도, 감귤 등의 재배지가 점차 북상하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농가를 대상으로 작물 전환에 대한 지도·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업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이러한 선제적 노력은 다른 산업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과일 재배지의 변화는 농업 분야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재배지의 변화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체계적으로 대응하느냐다. 기후변화에 맞춰 품종을 개량하고 지역별 특성에 적합한 작물로 전환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적응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들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인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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