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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북간도 한인촌에서 찾을 수 있다. 김약연·김하규·문병규·남도전 등 네 집안의 가족 142명은 고향 함경도를 떠나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1년 뒤에 윤하현도 식구를 데리고 합류했다. 이들은 ‘동방을 밝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명동촌’(明東村)이라 이름 짓고 독립 정신과 기독교 사상이 넘쳐나는 공동체로 가꿔나갔다.
명동촌의 중심인물은 ‘북간도 대통령’이라고 불린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이었다. 주민들은 땅을 공동으로 사서 나누며 1%를 차세대 교육 자금에 충당했다. 처음에는 서당을 열었다가 1908년 신학문을 가르치는 ‘명동서숙’(明東書塾)을 설립해 이듬해 명동학교로 개칭했다.
다섯 가문은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가 됐다. 김약연의 누이동생은 윤하현 아들 윤영석과 결혼해 1917년 윤동주를 낳았다. 한 살 아래인 문익환의 부모는 문병규 손자 문재린과 김하규 딸 김신묵이다. 윤영석의 여동생 윤신영과 명동학교 교사 송창희 사이에서 난 윤동주의 동갑내기 사촌이 송몽규다.
일제의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해 숭실중이 문을 닫자 용정으로 돌아와 친일계 광명학원을 졸업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서울의 연희전문을 다니다가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윤동주는 도쿄의 릿쿄대를 거쳐 교토의 도시샤대를 다녔고 송몽규는 교토제대에 적을 두었다. 둘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5년 2월 16일과 3월 7일 차례로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광복 후 만주에 남은 동포들은 1952년 중국 국적을 얻고 나서도 우리말과 전통 풍속을 꿋꿋이 지키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이들이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반세기가 지난 1992년 한중수교 이후다.
2018년 개봉한 조선족 3세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는 조선족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편견과 이중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주인공 윤영(박해일)의 아버지(동방우)는 조선족 가사도우미(김희정)를 빨갱이라고 비난한다. 윤영은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윤동주 친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손을 부여잡고 반색하며 호감을 표시한다.
윤동주 80주기를 맞아 그가 중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을 기억하고 조선족이 그의 이웃이자 친척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조선족을 향한 시선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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