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명동촌, 그리고 조선족[이희용의 세계시민]

  • 등록 2025-02-10 오전 7:21:54

    수정 2025-03-05 오후 3:30:30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오는 16일은 윤동주가 순국한 지 80주년 되는 날이다. 그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으로 첫손에 꼽히고 그의 대표작 ‘서시’(序詩)도 ‘한국인 애송시’ 1, 2위를 다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맑은 감수성과 뜨거운 애국심으로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다가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로 옥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사진=카이스트 미술관)
그는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지만 나고 자란 배경과 학교를 다닌 이력은 매우 복잡하다. 이주민인 중국 동포(조선족) 3세이고 일본 유학파다. 27년 남짓한 짧은 생애 가운데 조국에 머문 기간은 5년에 지나지 않는다.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그가 어떻게 남다른 민족의식을 키우고 빼어난 한국어 글솜씨를 갖출 수 있었을까.

비밀은 북간도 한인촌에서 찾을 수 있다. 김약연·김하규·문병규·남도전 등 네 집안의 가족 142명은 고향 함경도를 떠나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1년 뒤에 윤하현도 식구를 데리고 합류했다. 이들은 ‘동방을 밝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명동촌’(明東村)이라 이름 짓고 독립 정신과 기독교 사상이 넘쳐나는 공동체로 가꿔나갔다.

명동촌의 중심인물은 ‘북간도 대통령’이라고 불린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이었다. 주민들은 땅을 공동으로 사서 나누며 1%를 차세대 교육 자금에 충당했다. 처음에는 서당을 열었다가 1908년 신학문을 가르치는 ‘명동서숙’(明東書塾)을 설립해 이듬해 명동학교로 개칭했다.

다섯 가문은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가 됐다. 김약연의 누이동생은 윤하현 아들 윤영석과 결혼해 1917년 윤동주를 낳았다. 한 살 아래인 문익환의 부모는 문병규 손자 문재린과 김하규 딸 김신묵이다. 윤영석의 여동생 윤신영과 명동학교 교사 송창희 사이에서 난 윤동주의 동갑내기 사촌이 송몽규다.

윤동주는 송몽규·문익환과 함께 명동학교에 다녔다. 민족의식에 눈뜨고 문학에 심취한 이들은 5학년 때 ‘새 명동’이란 잡지를 펴내기도 했다. 캐나다장로회가 세운 용정(龍井)의 은진중에 진학했다가 송몽규는 뤄양(洛陽)군관학교로 떠나고 윤동주는 문익환을 따라 평양 숭실중으로 편입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해 숭실중이 문을 닫자 용정으로 돌아와 친일계 광명학원을 졸업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서울의 연희전문을 다니다가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윤동주는 도쿄의 릿쿄대를 거쳐 교토의 도시샤대를 다녔고 송몽규는 교토제대에 적을 두었다. 둘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5년 2월 16일과 3월 7일 차례로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광복 후 만주에 남은 동포들은 1952년 중국 국적을 얻고 나서도 우리말과 전통 풍속을 꿋꿋이 지키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이들이 한국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반세기가 지난 1992년 한중수교 이후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계기로 두 나라 사이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반중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귀환 조선족을 보는 우리의 눈길도 차가워졌다. 이런 추세는 현 정부 들어 심해지다가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혐중 감정을 자극하는 온갖 괴담이 떠돌고 정치권도 이를 부추긴다. 한중관계는 물론이고 중국에 사는 동포와 재외국민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2018년 개봉한 조선족 3세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는 조선족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편견과 이중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주인공 윤영(박해일)의 아버지(동방우)는 조선족 가사도우미(김희정)를 빨갱이라고 비난한다. 윤영은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윤동주 친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손을 부여잡고 반색하며 호감을 표시한다.

윤동주 80주기를 맞아 그가 중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을 기억하고 조선족이 그의 이웃이자 친척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조선족을 향한 시선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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