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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일본)=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철이 스카이브리지를 따라 오사카만(灣)을 가로지르는 순간, 창밖으로 한 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부터 ‘꿈의 섬’을 뜻하는 유메시마(夢洲). 그 꿈의 시작은 불편한 진실에서 출발했다. 준설토와 산업 폐기물이 퇴적된 매립지, 도시가 밀어낸 잔해들을 쌓아 만든 이 인공섬은 오랫동안 ‘도시의 뒷면’으로만 존재해 왔다. 그 유메시마가 이제는 세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엑스포)의 무대가 됐다.
전시장 입구를 지나 마주하게 되는 첫 장면은 바로 오야네 링(大屋根リング), 영어로는 ‘그랜드 링’이라 불리는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다. 직경 615m, 둘레 2㎞, 높이 20m.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구조물은 숫자보다 더 큰 ‘체감’이 찾아온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든 “우와…” 하는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엑스포는 ‘우리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관람객은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고, 체험하고, 느낀다. 가족 단위 관람객,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대학생까지.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이 공간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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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시마는 한때 산업화의 그림자를 품은 땅이었다. 오사카시는 이곳을 또 다른 실험의 장으로 전환했다. 스마트 마이스(MICE) 복합지구, 탄소중립 인프라, MGM 오사카가 참여하는 국제 복합리조트(IR) 개발까지. 엑스포 이후를 내다본 도시 전략이 이미 실행 중이다.
그 출발점이자 상징이 엑스포다. 주제는 ‘우리 삶을 위한 미래 사회의 설계’(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도시의 방향성과 구조,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하는 공간이다.
중심에 선 건축물이 오야네 링이다. 거대한 원형 목조 건축물. 공간 중심에 어떤 구조물도 없다. 모든 국가관, 기업관, 도시관은 링 둘레에 배치돼 있다. 중심을 없앴더니 오히려 흐름이 생겼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멈추고, 바라본다. 공간은 동선을 만들고, 동선은 사유를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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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공간 너머로 확장된다. 오야네 링을 따라 배치된 각국 전시관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래 사회를 해석한다. 기술, 도시, 환경, 인간을 연결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같은 질문으로 향한다. 그중 한국관은 K-디지털 기술과 전통 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외벽의 미디어 파사드는 관람객의 발길을 붙든다. 내부는 직관적 동선과 감각적 연출로 구성돼 있다. 외국인 방문객 사이에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전시”라는 평가도 나온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도시 철학과 지속가능성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렇게 전시관 사이를 걷다 보면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고 지속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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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네 링에서 마주한 질문
그 질문은 오야네 링을 중심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금속 없이 나무만으로 지은 구조. 일본 전통 목조건축 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나이테처럼 퍼지는 곡선은 생명, 시간, 공동체를 상징한다. 오야네 링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머무는 장소이자 사유하는 공간인 것이다.
기자는 오랜 시간 링 중앙 벤치에 머물렀다. 흐르는 사람들, 머무는 사람들. 각자의 리듬 속에서 이 공간이 품은 메시지를 곱씹는다. 기술과 인간, 도시와 자연이 두서없이 교차한다. 그것이 오야네 링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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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소개하던 엑스포 사무국 요시무라 사치코 씨는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모든 전시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오야네 링에서 ‘정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질문을 품은 채 걷는 경험이다.
그의 설명처럼 이번 엑스포를 단순히 ‘전시’ 행사로 보기는 어렵다. 엑스포는 버려진 땅의 재해석에서 시작해 도시 구조의 탈중심화를 거쳐 기술의 인간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유메시마라는 섬 안에 오롯이 녹여냈다. 그렇게 이 작은 섬은 산업폐기물 매립지에서 오사카의 미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떠올랐다.
엑스포는 말한다. “국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도구여야 한다.” 오야네 링은 그 철학을 시각적 구조로 구현해 냈다. 관람객은 이 구조 안에서 전시를 ‘보는’ 것을 넘어, 함께 ‘사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스스에게 묻는다. “기술은 나의 삶에 어떤 가치를 더해줄 수 있을까” 또는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사람들이 오늘도 오야네 링 위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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