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입맛 사로잡은 황남빵의 '비밀' [미식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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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황남동 작은 빵집에서 시작
방부제 인공 조미료 없이 85년 외길
얇고 단단한 껍질에 촉촉 묵직한 속
깊은 팥향과 시간의 결이 만든 단맛
  • 등록 2025-10-10 오전 5:00:00

    수정 2025-10-10 오전 5:10:08

[경주(경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경주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태종로 끝자락. 유리벽 건물 안에서 묵직한 향이 흘러나온다. 오븐의 열기와 밀가루의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문을 열면 따뜻한 구운 냄새가 몸을 감싼다. 황남빵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된다.

장인의 손길로 황남빵을 제조하고 있는 모습
황남빵의 역사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최영화(1917~1990)는 일본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 돌아와 고향 황남동에 작은 빵집을 열었다. 전쟁과 가난의 시대, 그는 귀한 밀가루를 아껴가며 직접 삶은 팥으로 속을 채운 단팥빵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빵을 ‘황남동 빵’이라 불렀고 시간이 흘러 ‘황남빵’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경주 태종로에 자리한 황남빵. 유리벽 건물 안에서 묵직하면서 고소한 향이 흘러나온다
지금의 황남빵 본점은 경주시 태종로 783번지에 있다. 겉모습은 현대식이지만 내부는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움직인다. 작업대 위에는 하얀 밀가루가 소복이 쌓여 있고 커다란 그릇엔 팥앙금이 산처럼 담겨 있다. 반죽을 나누는 손, 팥을 감싸는 손, 껍질을 다듬는 손이 쉼 없이 움직인다. 손끝의 온기가 빵에 그대로 전해진다.

한 알의 빵이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팥을 삶아 으깨고 걸러서 식히는 과정만 하루가 걸린다. 그 팥앙금이 전체 무게의 70%를 차지한다. 팥은 모두 국내산으로, 경북 봉화와 강원도 정선에서 재배된 아라리와 홍단 품종이다. 단맛은 약하지만 향이 깊고, 입안에 남는 여운이 길다. 방부제나 인공조미료는 넣지 않는다. 하루치만 굽는 이유다.

갓 구운 빵을 꺼내면 열기가 손바닥에 닿는다. 껍질은 얇고 단단하며 속은 촉촉하고 묵직하다. 한입 베어 물면 팥의 단맛보다 구운 밀의 고소함이 먼저 느껴진다. 씹을수록 단맛이 은근히 퍼지고, 혀끝에는 미세한 고소함이 남는다. 달지 않지만 오래 남는 맛. 그것이 황남빵의 맛이다.

황남빵의 특징은 겉은 얇고 단단하면서 속은 촉촉하고 묵직하다는 점이다.
주방 안의 제빵사들의 손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수십 년간 몸에 밴 동작이다. 손의 기억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전통이 된다. 이 단순한 반복이야말로 황남빵의 본질이다. 경주의 천년이 돌로 남았다면, 황남빵의 시간은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장은 하루종일 손님으로 붐빈다. 여행객 대부분은 선물용 상자를 들고 나서지만 갓 구운 빵을 한입 베어 무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따뜻한 빵 한 조각이 사람들을 작은 행복으로 이끈다. 가격은 20개입 2만4000원, 30개입 3만6000원으로 수년째 변하지 않았다. 황남빵의 시간은 효율보다 정직을 택한다.

경주는 돌의 도시라 불린다. 그러나 그 돌 위에서도 사람의 손이 남긴 온기는 오래간다. 황남빵은 그 증거다. 구운 냄새, 팥의 향, 빵을 나누는 손. 그 모든 순간이 경주의 또 다른 역사다.

장인의 손길로 황남빵을 제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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