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 1년간 환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노동자는 비상근무라는 핑계로 희생이 강요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료대란 사태 해결과 붕괴 위기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공중심 강화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시민건강연구소는 18일 서울대병원 암병원 서성환 홀에서 2024년 2월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병원노동자 900여 명을 대상으로 병원현장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시민건강연구소는 18일 서울대병원 암병원 서성환홀에서 ‘의료대란 1년, 병원 현장 어떻게 변했나’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안치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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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환자 진료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환자 안전사고는 증가했다. 전공의 집단이탈 결과 △외래진료 △입원 △수술이 축소·지연되면서 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했다. 또 설문조사 응답자의 32.4%는 근접 오류를 포함한 환자 안전사고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환자 안전사고가 증가한 주요 원인은 충분한 교육 없이 병원 노동자가 전공의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권지은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선전부장은 “처음엔 의사 업무였던 소변줄 삽입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동의서 받기, 중심정맥관 제거 업무 등 하나씩 늘어가더니 어느새 병실엔 간호사들끼리 의사 대신 오더를 내고 처리한다”고 지적했다.
병원 노동자 노동 조건도 악화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79.2%가 ‘근무조별 근무 인원 감소로 업무가 가중됐다’고 답했으며 무급휴가 권장 등으로 현장의 노동 강도는 더 높아졌다고 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초과 근무할 때 식사를 거른 날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3.4%에 달했다. 안지홍 의료연대본부 울산대병원분회 총무부장은 “근무시간 중 수없이 터지는 응급상황에 수시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근무한다”면서 “언젠간 번아웃이 올 것이며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에게 간다”고 우려했다.
의료대란으로 응급실이 멈추고 환자 사망이 증가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이가현 의료연대본부 충북대병원분회 교육선전부장은 “충북대병원 응급실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지난해 10월 2일부터 매주 수요일 야간에는 성인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4개월 동안 주 1회 셧다운됐고 궁여지책으로 시간제 전문의 4명을 고용해 올해 2월부터 공백없이 진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충북대병원 응급실의 파행 운영으로 인해 2024년 2월부터 7월 사이 평균적인 사망자 수를 넘어서는 사망인 ‘초과 사망’이 3136명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고 공공중심 의료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상윤 건강과 대안 책임 연구위원은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서 대형 병원들이 중증 응급환자 진료를 외면해 초과 사망이 증가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한국 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단순히 의사 수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 악화 △병원의 운영 방식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시장화된 의료 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면서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닌 공공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