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마켓in 센터장] 20세 ‘약관’. 사회에서 성인으로 공식 인정받는 나이다. 한국에 사모펀드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1호 사모펀드가 등록된 게 2004년이었으니 한국 사모펀드 산업도 이미 성인이 됐다. 꾸준히 성장해 어엿한 청년이 됐지만, 지금 20여년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 롯데카드 등에서 잇달아 문제가 발생하자 사모펀드 업계 전반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사모펀드가 대규모 차입을 해서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후 배당과 자산매각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결국 껍데기만 남겨 매각한다는 ‘먹튀’ ‘약탈’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다. 2025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상임위는 사모펀드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 | 조좌진(왼쪽) 롯데카드 대표이사와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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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각종 규제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모펀드의 차입매수(LBO)를 제한하는 안이나 상장사 지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될 경우 전량 공개매수해야 하는 의무공개매수제 추진, 운용보고 의무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처럼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일정 기간 회수하지 못하는 제도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인수 후 일정 기간 고배당, 자사주 매입, 유상감자 등을 금지하는 식이다. 사모펀드가 조성하는 블라인드 펀드의 큰손이었던 국민연금은 PEF 출자 사업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문제는 규제가 과하면 그 부작용도 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사모펀드가 받을 역차별이 우려된다.
사실 국내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데에는 외환위기 시기 국내 구조조정 시장을 독식한 해외 PEF에 대한 견제가 컸다. 당시 뉴브릿지, 칼라일, 론스타 등 외국 PEF들이 위기에 처한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인 후 수천억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사례가 잇달아 나오자 ‘국부유출’ 논란과 함께 국내 금융자본으로 만든 대항마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영국에서 열리지만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처럼 외국 자본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윔블던 효과’에 대한 우려가 컸던 시기였다.
제도 도입 후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1137개, 약정액은 153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여 년 간 사모펀드는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돕거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을 인수해 체질개선을 통해 정상화하는 등 어느 정도 구세주 역할을 해왔다.
외국 사모펀드에 맞설 대항마를 만들겠다고 도입한 사모펀드 제도인데 규제 강화로 그 토종 펀드의 손발은 묶어놓고 다시 외국 사모펀드에 자리 깔아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당장 차입매수 제한이 생기면 자금력에서 앞서는 외국 PEF가 기회를 가져갈 게 뻔하다.
홈플러스 사태가 안타깝긴 하지만 사모펀드 업계 전반에 걸친 문제라기보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수많은 사례 중 특정 실패 사례일 뿐이다.
이를 이유로 무차별 규제에 나선다면 자본시장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운동장을 넓게 쓰면서 외국 PEF와도 경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되, 반칙하면 바로 퇴장조치를 취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