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북한군이 품은 가족 사진에 한국 ‘개죽이’가 있다?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사망한 북한군 시신에서 한국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 ‘개죽이’가 합성된 가족사진이 나왔다. 당국의 검열에도 북한 내에 한국 문화가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가 공개한 전사한 북한 병사에서 나온 가족 사진. 오른쪽 아래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개죽이’ 밈이 포함돼 있다. (사진=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NK뉴스는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제공한 북한군 유류품 사진에는 가족사진이 등장한다며 “사진에는 2000년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던 밈인 ‘개죽이’를 닮은 강아지 한 마리와 꽃밭 전경이 디지털로 합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군복을 입은 청년을 포함한 가족 5명의 사진의 배경은 잔디 꽃밭과 바다 배경을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하단에는 붉은색으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는 문구가 담겼다. 문구가 있는 곳에 입을 가리고 웃는 표정의 강아지가 합성돼 있는데, 개죽이와 매우 흡사하다.

개죽이 밈은 2002년 디시인사이드에서 시작됐다. 대나무를 껴안고 매달린 강아지 합성사진이어서 개죽(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가장 유명한 밈은 설원을 배경으로 개죽이가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다.

2019년 탈북하기 전 결혼사진 편집자로 일했던 탈북민 ‘로즈’ 씨는 이번에 발견된 사진이 진짜 북한 병사의 것으로 보인다고 NK뉴스에 말했다.

로즈 씨는 사진에 보호 코팅이 되어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의 사진관에서는 사진을 코팅해 색이 바래지 않도록 하고, 물에 젖어도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에 회의적이었지만, 사진을 보니 확신이 생겼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북한의 사진 편집자가 개죽이가 한국의 밈이라는 걸 알고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북한 스튜디오에서는 중국에서 유입된 밈을 사용한다고 한다.

2023년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은 한국 스타일의 언어나 글꼴을 사용해 그림이나 사진 자료를 제작하면 최소 6년의 노동 교화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중국을 통해 유입되는 관련 콘텐츠를 완전히 걸러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 탈북민 박철훈 씨는 사진을 지나치게 편집한 것을 볼 때 사진에 등장하는 가족이 중산층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는 사진을 찍고 디지털로 편집하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은 단순히 장식이 있는 배경 앞에서 사진만 찍지, 디지털로 편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병사가 하층민으로 제한돼 있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