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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 엘리트의 강남 사랑과 숙제[이근면의 사람이야기]
    공직 엘리트의 강남 사랑과 숙제
    김영수 기자 2026.10.01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강남에 산다는 것은 묘한 의미를 갖는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국민들의 시선은 애증이 교차한다. 부러움과 시샘, 그리고 비난도 난무한다. 누구에게는 성공의 상징이고 누구에게는 부동산 불평등의 상징이며 정치권에서는 때때로 한 사람의 가치관과 계층적 정체성까지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특히 장관 후보자나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강남 아파트다. 왜 엘리트는 강남에 많이 모이는가. 그리고 강남에 사는 것이 공직자의 자격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강남 집중을 단순히 투기꾼이나 부자들의 탐욕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대한민국의 지난 수십 년간 도시 발전 과정에서 교육, 교통, 의료, 문화, 직장 접근성, 인적 네트워크와 자산가치가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좋은 학교를 원하는 가정이 모이고 전문직과 기업인이 모이면서 좋은 서비스와 인프라가 따라왔다. 물론 사교육도 한몫했다. 사람이 몰리니 집값이 올랐고 집값이 오르니 자산 격차가 커졌다. 다시 그것이 진입장벽이 됐다.결국 강남은 단순한 주거지역이 아니라 교육·자산·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됐다. 판검사, 교수, 의사, 기업인, 고위 공무원 등 사회적 엘리트가 그곳에 상대적으로 많이 모이는 현상의 이면이다. 문제는 강남에 사는 것 자체가 아니다. (하긴 나도 살고 싶지만) 진짜 문제는 왜 강남과 경쟁할 만한 선택지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판교와 분당, 과천과 세종, 송도와 지방 주요 도시들이 성장했지만 교육·문화·의료·교통·일자리와 자산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지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왜 강남에 사느냐”가 아니라 “왜 모두가 강남을 바라보게 만들었느냐”는 숙제가 남는다.한편 공직자 검증 때만 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택과 부동산에 대한 논란이 시중 여론을 달군다.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있다. 어느 지역에 살고 어떤 집을 가지고 있는지가 개인의 정치적 가치관을 판정하는 기준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참 위험한 접근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직자라고 해서 예외일 이유는 없다. (하긴 아직도 청백리의 환상이 있긴 하다.)공직 검증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주소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집을 합법적으로 취득했는가. 세금을 제대로 냈는가. 내부정보나 특혜를 이용했는가. 편법 증여나 부정청약은 없었는가. 공직을 이용해 자신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만들었는가. 이것을 물어야 한다. 최근에도 고위공직 후보자의 강남 고가주택을 둘러싸고 청약 과정이나 가족 간 거래가 논란이 된 사례들이 있었다. 이때 문제의 핵심은 ‘강남에 산다’는 사실이 아니다. 청약이나 거래 과정이 적법했는지, 세금과 이해충돌의 문제가 있었는지가 검증의 대상이어야 한다.서울 송파 강남 서초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정책은 강남을 비판하면서 사람은 강남을 선택하는 모순정치권에서는 오랫동안 강남의 집값과 교육환경, 자산 집중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과 고위공직사회, 전문직 엘리트 가운데 상당수가 강남권 주택을 선택한다. 그들 역시 교육과 교통, 문화와 의료, 직장 접근성, 주거환경과 자산 안정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강남을 선택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강남을 선택하지 않아도 손해 보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학교가 강남에만 있을 이유가 없다. 좋은 일자리와 교통, 교육을 전국의 여러 거점에 만들어 강남과 경쟁하게 해야 한다.강남 집값을 규제로 눌러 해결하려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강남을 원하는 근본적 이유를 그대로 둔 채 가격만 통제하면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남을 끌어내리는 정책보다 제2, 제3의 강남을 만드는 정책이 더 생산적이다. 지방 균형 발전 공공기관 지방이전보다 가장 확실한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이다. 엘리트의 다양성은 또 다른 문제다그러나 엘리트의 특정 지역 집중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소가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편중이 문제일 수 있다. 비슷한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직업을 거쳐 비슷한 지역에 살며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지방 소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주거 문제는 다르다. 대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느끼는 노동시장은 다르고 수도권 명문대 출신과 지방 청년이 경험하는 취업시장은 다르다. 그래서 공직 인사에서 필요한 것은 ‘강남 배제’가 아니라 경험과 배경의 다양성이다. 지역, 학교, 직업, 세대, 기업 규모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훨씬 건강한 엘리트 구조다.주소의 정치화를 끝내자공직자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검증의 칼날은 정확해야 한다. 불법을 검증해야지 주소를 심판해서는 안 된다. 특혜를 따져야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이해충돌을 찾아야지 정상적으로 형성한 재산 자체를 죄악시해서도 안 된다.특히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지역이나 특정 자산 보유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공직자의 품격은 우편번호가 아니고 사는 방식이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으며 공직에 들어간 뒤 자신의 이해관계와 공익을 얼마나 엄격하게 분리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강남에 사는 사람이 공직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고 지방에 사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나라가 돼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굳이 강남에 들어가기 위해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강남을 미워해서 강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강남의 장점을 대한민국 곳곳으로 확산시킬 때 비로소 강남 문제도 해결된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기회의 지역 격차를 줄이는 것. 공직자의 주소가 아니라 능력·윤리·준법·이해충돌을 검증하는 것.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대신 국가 지도층의 경험과 시각을 다양화하는 것. 그것이 부동산 정치의 감정을 넘어 한 단계 성숙한 국가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 한국의 일론 머스크는 누구인가[이근면의 사람이야기]
    한국의 일론 머스크는 누구인가
    논설위원 기자 2026.09.03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개인, 기업, 사회 누구든 꿈을 갖는다. 그 꿈의 크기가 성공의 크기라 한다. 물론 꿈을 가졌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린 누구나 꿈의 위력은 무한하다는 것은 안다. 꿈을 찾아가는 몽상가를 우리는 볼 수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다. 부럽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 스페이스X는 단순한 로켓 회사가 아니다. 화성으로 가기 위한 회사다. 스타링크는 인류의 우주 문명을 연결하고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문명을 구축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꿈으로 연결돼 있다. 일론 머스크는 대학 시절부터 ‘인류를 다행성 문명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허황된 공상처럼 들렸지만 그는 모든 사업을 그 꿈 아래 연결해 왔다. 기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꿈을 실현하는 도구였다.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 기업인 네이버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네이버는 검색과 쇼핑, 웹툰을 넘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로봇과 디지털트윈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기술력도 세계적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이것은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그렇다. 좋은 제품은 만들지만 새로운 문명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장은 이야기하지만 미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쟁은 말하지만 인류의 다음 시대는 말하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규제와 단기 실적 중심의 자본시장, 실패에 관대한 문화의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토양’의 차이에 있다. 미국은 실패한 창업가를 다시 투자 대상으로 보지만 한국은 실패가 사회적 낙인과 추락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니 누가 인생 전체를 걸고 우주산업 같은 불확실한 도전을 하겠는가. 미국의 자본은 ‘가능성’에 투자하지만 한국은 ‘안정성’을 먼저 본다. 결국 한국 기업은 꿈보다 실적표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조차 ‘두 번째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한 번 성공한 기업가가 다시 완전히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업자)의 행보에서 주목할 점은 현재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이 확보한 자본과 기술, 영향력을 새로운 산업과 미래의 가능성에 지속적으로 투입하며 다음 기회를 만들어 왔다.반면 한국의 성공한 기업가 상당수는 첫 성공 이후 방어적 경영으로 이동한다. 기업을 지키고 규제와 여론 리스크를 관리하며 기존 사업의 안정에 집중한다. 왜 그럴까.(사실 그냥 돈을 버는 것은 아닐까? 큰 별장도 갖고 싶으니)첫째, 부는 나쁘다. 기업이 커질수록 각종 규제와 감사,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는다. 미국에서는 부자가 되면 더 큰 도전을 기대하지만 한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조심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둘째, 자잘하다. 상속과 지배구조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경영권 방어와 승계 문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면서 미래 산업을 바라봐야 할 에너지가 내부 문제로 흡수된다. 셋째, 아직도 사농공상. 미국은 ‘세상을 바꾼 사람’을 존경하지만 한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부에 대해서는 경계와 의심의 시선이 강하다. 넷째, 중용(?) 실패 비용이 너무 크다. 첫 번째 성공은 박수받지만 두 번째 도전의 실패에는 더 큰 사회적 비난이 따른다. 결국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위험한 도전을 피하게 된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교육의 차이도 크다. 미국은 질문하는 교육을 한다. 한국은 정답을 맞히는 교육을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관리자형 인재는 많이 나오지만 문명 전환형 기업가는 나오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좋은 대학,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여전히 최고의 성공 모델로 인식된다. 부모와 학교, 사회도 안정적 생존을 우선 가르친다. 그러나 혁신은 안전지대 밖에서 나온다.또 하나의 문제는 국가의 시선이다. 미국 정부는 우주·AI·국방·에너지 같은 전략 산업에서 민간 기업과 함께 위험을 감수한다. 스페이스X 역시 미국 정부의 프로젝트와 계약 속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은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규제와 허가부터 검토한다. 도전보다 관리가 먼저 작동한다. 한국의 기업 문화 역시 도전형보다 관리형에 가깝다. 실패하면 책임을 묻고 성공하면 조직이 나누어 가진다. ‘튀지 말라’는 문화 속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발상이 나오기 힘들다.그러나 더 본질적인 차이는 ‘꿈의 크기’다. 일론 머스크는 돈을 벌기 위해 우주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바꾸겠다는 서사를 만들었고 미국 사회는 그 꿈에 투자했다. 반면 우리는 큰 꿈을 이야기하면 허황됐다고 말한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도전은 무모하다고 평가한다. 결국 사람들은 작은 꿈만 꾸게 된다.하지만 대한민국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와 우주 시대에는 과거의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상력의 국가 경쟁력’이 중요하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한국도 관리형 국가에서 도전형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우선 성공한 기업가들이 두 번째 꿈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가를 단순한 부의 소유자가 아니라 미래 산업 개척자로 바라보고 다시 도전할 때 응원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꿈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실패를 조롱하지 않고 도전을 존중해야 청년들이 안정된 자리만 찾지 않고 새로운 길에 도전할 수 있다.1960년대의 상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미래는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상상이 기술과 도전을 만나 현실로 구현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더 높은 하늘과 더 깊은 바다, 더 넓은 대륙과 아직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확장해 나갈 다음 시대의 프런티어는 과연 누구일까.산업화 이후는 문명 경쟁의 시대다. 미래의 생각이 강국의 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 만드는 나라’였다. 이제는 ‘새로운 세상을 먼저 꿈꾸는 나라’가 돼야 한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단순한 기업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얼마나 큰 꿈을 허용하느냐의 결과다. 결국 국가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꿈을 허락하는 사회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AI 빅뱅 전환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새로운 문명’의 창조에 달려 있다.
  • 부동산 임대소득은 악이고 주식투자는 선인가[이근면의 사람이야기]
    부동산 임대소득은 악이고 주식투자는 선인가
    논설위원 기자 2026.08.06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카지노’라는 별칭을 듣는 주식시장이 뉴 노멀이다. 가히 오르내림 또한 세계 초일류다. 삼전닉스의 초호황에 전국민의 쌈짓돈까지 몰려드는 투자(?)시장이다. 기업 성장을 북돋우는 건전한(?) 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주식 투자와 금융자산 투자는 자산 형성과 투자로 장려하면서 부동산 임대사업은 규제와 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주식시장은 선(善)이고 부동산 임대사업은 악(惡)인 것처럼 비치는 순간도 있다.그러나 과연 이러한 접근은 합리적인가.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평생 모은 자산을 배당주에 투자해 연 4~5%의 수익을 얻는 것과 소형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투자해 임대소득을 얻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둘 다 노동소득이 아닌 자산소득을 창출하는 행위이며 노후를 대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주식 투자자는 투자자고 임대사업자는 투기꾼이라는 식의 단순한 구분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일 수 있다.대한민국의 모든 주택을 정부가 직접 공급할 수는 없다. 청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지방에서 상경한 직장인, 1인 가구 등 수많은 국민은 일정 기간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주택 확대도 필요하지만 (질 좋은 주택 거주에 대한 욕구를 예외로 하더라도) 재정과 공급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결국 민간 임대시장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주거 공급 체계다. 어느 나라나 임대 시장의 건전한 육성과 성장이 주택 정책에 중요한 측면이다. 자영업자가 국민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것처럼 민간 임대사업자는 국민의 주거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그런데 최근의 정책 흐름을 보면 임대사업자 전체를 마치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나 사회적 문제의 주범처럼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물론 투기는 존재한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와 구분도 경계가 애매하긴 하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자, 시장 왜곡을 초래하는 투기적 다주택 보유, 초고가 주택을 이용한 자산 증식조차 큰 시장 질서와 규범에 반하지 않는다면 규제대상으로 보는 것 또한 신중해야 한다. 인플레이션과 수요공급에 의한 시장 기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희토류 광물조차 국제적으로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정책 당국의 의무다. 그러나 투기와 임대 공급은 구분돼야 한다. 정부 정책은 투기를 억제해야지 임대 공급 기능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일부에서는 정책 당국이 투기와 서민형 임대를 구분하지 못한 채 부동산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투기와 공급을 구분하지 못하면 결국 시장의 순기능까지 훼손될 수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한 부동산 정책 차원이 아니라 노인정책과 복지정책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현재 우리 사회는 은퇴자들에게 사실상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연금에 의존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영업에 뛰어드는 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평생 회사에 다니다 은퇴한 사람이 갑자기 식당을 차리고 카페를 운영하고 편의점을 시작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 부족과 과당 경쟁으로 인해 퇴직금과 노후 자금까지 잃어버리는 사례가 반복된다. 결국 개인은 빈곤에 빠지고 국가는 더 많은 복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반면 일정한 자산을 활용한 임대소득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 수단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월세 50만원 수준의 소형 주택 다섯 채를 운영한다면 월 250만원의 임대소득이 발생한다. 여기에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이 더해진다면 상당수 은퇴자는 국가의 추가 지원 없이도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수익이 아니다. 노인은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고 국가는 복지 부담을 줄이며 청년과 신혼부부는 필요한 임대주택을 공급받는다. 개인과 가계, 사회와 국가 모두가 이익을 얻는 구조다. 그런 점에서 소규모 서민형 임대사업은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일종의 민간 노후보장 시스템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장 기능이 위축된다면 결과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은 감소하고 임차인의 선택권은 줄어들며 노인의 자산소득 창출 기회 역시 축소될 수 있다.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주식이 선이고 부동산이 악인 것도 아니며 부동산이 선이고 주식이 악인 것도 아니다. 건전한 주식 투자는 기업 성장에 기여한다. 건전한 임대사업은 국민의 주거 안정에 기여한다. 둘 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자산 운용 방식이다.따라서 정책은 자산의 종류를 차별하는 방향이 아니라 투기와 생산적 투자, 단기 차익 추구와 장기 공급 기능을 구분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초고가 투기성 보유와 단기 시세차익 추구는 엄격히 규제하되 청년과 신혼부부, 서민을 위한 중소형 장기임대주택 공급과 내집 마련 지원, 은퇴자의 안정적 자산소득 창출은 제도권 안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령화 사회가 심화하는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노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이 아니다. 스스로 자산을 활용해 소득을 만들고 동시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거를 공급하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노령층에게 주식 투자의 위험성 또한 쉽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정책적으로 제공하는 노후 안정 소득의 수단으로 제공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전월세를 이용해야 하는 것은 국민에게 안정적인 주거 공급 기능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모두 내 집을 갖는 것 또한 선택이고 또 다른 선택지도 사회는 수용해야 한다. 임대사업자는 모두 투기꾼이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주거를 책임지는 공급자이기도 하다. 이제는 “부동산은 악, 금융은 선”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어떤 투기는 막고 어떤 공급은 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조세제도로 부동산 소유를 좌우한다는 오해 또한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그것이 시장도 살리고 청년도 돕고 노인도 살리는 균형 잡힌 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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