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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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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아니다. 믿어달라"던 뻔뻔한 엽기살인마 '박춘풍'[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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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전과' 남성, 만원 지하철서 허벅지 접촉…추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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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일 용서해달라"던 남편과 내연녀…속았습니다[사랑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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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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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던 두 아이의 아빠…13년 전 연쇄살인마였다[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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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아니다. 믿어달라"던 뻔뻔한 엽기살인마 '박춘풍'[그해 오늘]
    "살인 아니다. 믿어달라"던 뻔뻔한 엽기살인마 '박춘풍'
    한광범 기자 2022.12.04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12월 4일 오후 1시 무렵.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됐다.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겨있던 시신은 한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신체 일부만 발견된 시신은 잔혹하게 토막 난 상태였다. 경찰은 시신을 국립수사과학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추가 시신을 찾기 위해 인근을 수색했다.추가 시신 발견과 피해자 신원 특정에 애를 먹던 경찰은 시민들의 제보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한 중국 동포 여성이 같은 달 8일 “지난달 26일부터 여동생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같은 달 8일 늦은 밤 가출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신고한 여성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보냈다. 국과수는 해당 여성 A씨의 DNA를 통해 시신의 신원을 특정했다.동거녀 살인범 ‘박춘풍’. (사진=연합뉴스)같은 달 11일 오전 경찰은 수원천에서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들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리고 당일 한 시민이 “월세방을 계약한 중국 동포 남성이 입주시기가 지났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월세방의 위치는 시신들이 발견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경찰은 해당 남성에게 미리 집 열쇠를 건넸다는 주인의 말에 따라 해당 월세방에 대한 감식을 진행했다. 월세방 화장실에선 피해자의 혈흔이 가득 나왔다.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자 즉각 검거에 나섰고 당일 오후 11시30분께 월세방에서 멀지 않은 한 모텔에서 검거했다.불법체류자였던 당서 55세 중국 동포 박춘풍이었다. 위조여권을 사용하다 적발돼 2003년 중국으로 추방됐던 박춘풍은 2008년 12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한국으로 입국한 상태였다. 박춘풍을 검거 직후 경찰조사에서 실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위조여권 속 신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범행에 대해선 묵비권을 행사했다.이어진 조사에서도 박춘풍은 혐의를 부인했다. 박춘풍은 “A씨와 동거를 했던 것은 맞지만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며 계속 추궁하자 13일 새벽 결국 범행을 시인하고 추가 시신 유기 장소를 진술했다.경찰 조사 결과, 그해 4월부터 A씨와 동거한 박춘풍은 피해자에게 수시로 폭력을 가했다. 계속된 폭력에 피해자는 결국 11 월초 자신의 언니 집으로 피신했다. 피해자가 재결합을 거부하자 박춘풍은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후 곧바로 살해했다. 그리고 수일에 걸쳐 집과 새로 계약한 월세방에서 피해자 시신을 훼손한 후 이를 여러 장소에 유기했다. 또 피해자 휴대전화를 이용해 생존해 있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박춘풍은 잔혹한 범행 후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보냈다. 체포 후에도 박춘풍은 “죽인 건 맞지만 우발적 범행이었다. 왜 믿지 않느냐”며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죄”라는 식의 황당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1심은 “범행이 매우 잔인하고 피해자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반성하는 기색을 안 보이며 죄의식이 결여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춘풍이 상소했지만 형은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 국가부도의 날..고통의 IMF 시작[그해 오늘]
    국가부도의 날..고통의 IMF 시작
    전재욱 기자 2022.12.0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시작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환율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외환위기 여파는 도미노처럼 한국으로 밀려왔다. 한국의 외화 보유액은 바닥을 보이기 직전이었다.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려 잡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본 외국자본은 빚을 갚으라고 더 채근했다. 그런데 갚을 수가 없었다. 달러가 부족했다.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주요 기업은 차입 경영으로 회사를 일궈왔다. 외국 자본이 이탈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고,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재계 14위의 한보그룹 부도(1997년 1월)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로 삼미그룹(3월), 진로그룹(4월), 삼립식품·한신공영그룹(5월), 쌍방울그룹(10월), 해태그룹·뉴코아그룹(11월)이 차례로 부도를 맞았다. 10대 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계 순위 8위의 기아그룹도 그해 7월 부도를 맞았다. 대우그룹은 쌍용차를 인수(12월)했으나 이 여파로 1999년 11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하반기 들어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지수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화폐가치와 신용도 하락에 따른 여파였다. 앞서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과 인니가 겪은 현상이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아시아를 떠나라’는 보고서(10월)를 냈다. 정부는 미국 등 주변국에 차관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제 신평사는 한국 신용등급을 또다시 하향 조정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11월21일 IMF 구제금융을 공식 확인했고, 이튿날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모두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1997년 12월3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부터)와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정부청사에서 구제금융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1997년 12월3일, 임창열 경제 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만나 차관 제공 업무협약에 서명했다. IMF가 한국에 55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앞서 금융사에 대한 자본시장 개방,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기업 회계 투명성 확보 등을 골자로 양측이 합의한 데 따라 이러한 서명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날을 IMF 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우선 부실 금융사에 대한 대대적으로 정리가 이뤄졌다. 동서증권과 5개 종금사는 영업정지를 당했다. 상업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은 한일은행을, 하나은행은 보람은행을, 국민은행은 장기신용은행을, 조흥은행(신한은행의 전신)이 강원은행을 차례로 합병했다. 제일은행은 외국자본에 팔렸다.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쉬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환율은 최고치를, 주가는 최저치를 각각 연일 경신했다. 그해 12월 고려증권과 한라그룹, 영진약품, 경남모직, 동양어패럴, 삼성제약, 청구그룹이 연쇄 부도를 맞았다. 실직이 늘어나 실업률이 산업화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임금 체불이 늘어 직장인이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1998년 초 일어난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금.(사진=연합뉴스)그러자 전국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다. 1998년 1~4월 모인 금의 양은 225t 가량이었다. 현재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이 100여t인 점과 비교하면 놀라운 규모였다. 투자로 사뒀던 금괴부터 장롱에 있던 돌 반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를 수출해 확보한 외화로 급한 불을 껐다. 훗날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금을 담보로 외화를 확보하지 않고 수출한 점과 물량이 대거 쏟아져 금값이 하락해 제값을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한국은 2001년 8월23일 IMF에 빌린 돈을 전부 갚았다. 애초 예정한 기한을 3년이나 앞당겼다. 국민의 고통분담과 기업의 체질 개선, 정부의 외화 관리 노력이 뒤따른 결과로 평가된다. IMF 이전 300억 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은 현재(10월 기준) 4140억 달러로 늘었다. 다만 이후 굳어진 양극화와 고용불안 등 후유증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그해 오늘]
    "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
    한광범 기자 2022.12.02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12월 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일당 3명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여성 이모씨(당시 41세)의 의뢰를 받아 이씨 전 남편 채모씨(사망 당시 40세)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당시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이씨는 도대체 왜 공연예술가였던 전 남편에 대한 납치를 사주했던 걸까?공연예술가 남편에 대한 납치·강도 등을 사주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이 확정된 피아니스트 이모씨.사건의 시작은 잘못된 결혼이었다. 과거 외국에서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까지 뒀던 이씨는 이를 숨긴 채 한 살 어린 채씨에게 접근해 2010년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채씨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끈질긴 구애를 보낸 결과였다. 채씨는 결혼 선물로 서울 서초동에 자신의 명의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차려줄 만큼 이씨를 진심으로 다했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자녀 양육비로 매달 수백만원을 송금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이씨는 결혼 직후부터 이 카페 자금에 몰래 손을 대기 시작했다.결혼생활은 결국 불과 4개월 만에 파탄났다. 이씨는 결혼 초기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그 기간 동안 이씨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 외도를 하며 임신·낙태까지 했다. 낙태 후에는 채씨의 아이를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채씨가 다른 남성이 함께 있는 이씨 모습을 발견하며 감춰졌던 이씨의 이중생활 실체가 드러났다. 이씨와 함께 있던 내연 남성은 따지는 채씨에게 오히려 “내가 남편인데 당신이야말로 누구냐”고 화를 냈다. 실제 해당 남성은 집안에 이씨를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까지 한 상태였다. 그렇게 채씨는 뒤늦게 이씨가 수많은 남자를 만나며 복잡한 사생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은밀한 사생활 발각되자…위해 가하기로 결심이씨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한 채씨는 결혼 전력 등을 속였던 것 등을 포함해 이씨에게 거짓말, 외도, 자금유용 등에 대한 피해 보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이씨는 2012년 12월 채씨에게‘사실혼 부당파기 위자료 지급 확인서’를 써줬다. 매달 70만원씩 총 7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이씨는 위자료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편, 자신의 사생활이 채씨에 의해 음악계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채씨가 2013년 9월 이씨 가족들에게 “왜 결혼할 때 이씨 과거에 대해 알리지 않았냐”고 따진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의 사생활이 가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이씨에게 위해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니스트 이모씨가 난잡한 사생활이 들통나 남편 채모씨에게 써준 위자료 지급합의서. (사진=JTBC 갈무리)그는 같은 해 11월 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심부름센터 직원 A씨를 만났다. 이씨는 A씨에게 “사실혼 배우자였던 채씨에게 겁을 주고 내가 손해 본 만큼 재산을 빼앗아 그걸 심부름 보수로 충당하라”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퍽치기를 하거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게 한 후 강간으로 고소하는 등으로 채씨를 혼내줄 방법이 있느냐”며 “사람을 때리려면 사람을 가둬야 되지 않는냐”며 구체적 방법까지 제안했다.A씨는 며칠 후 이씨에게 전화해 “단순 퍽치기는 1000만원, 납치까지 하면 1500만원”이라고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후, 승낙을 받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이씨는 이 비용마저도 채씨에게서 빼앗도록 했다. 이를 위해 A씨에게 채씨 재산내역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A씨가 “착수금을 스스로 충당한 후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앗아 갖겠다”고 제의하자 이씨는 “빼앗은 돈은 다 가져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실명 만들어달라”·“죽어도 어쩔 수 없다”이씨는 이후 A씨를 만난 자리에서 “채씨를 실명하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A씨는 여기에 “그 정도로 다치게 하려면 죽이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A씨가 수차례 “채씨를 죽일 수도 있다”고 밝혔고, 이씨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사실상 이를 용인했다.이를 계기로 범행은 더 구체화됐다. 이씨는 범행 준비 비용에 쓰라며 A씨에게 200만원가량을 지급했고 A씨는 범행에 동참할 공범들과 범행 도구들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구체적 살인계획까지 마련하자, 겁에 질린 A씨 일당 중 일부는 범행 가담을 회피하려 잠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오히려 A씨 일당이 채씨를 쉽게 유인·납치할 수 있도록 구체적 범행 시나리오까지 제공했다. A씨 일당은 시나리오에 따라 2014년 1월 4일 채씨를 유인해 자신들의 차량에 태우는 데 성공했다. 채씨가 차량에 탑승한 직후 A씨 등은 흉기를 꺼내 보이며 “여자한테 잘못한 것 있지요?”라고 말한 후 결박했다. 이들은 미리 물색해 놓은 경북 안동의 한 빈집으로 가기 위해 채씨를 태운채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그리고 용인휴게소에서 정차한 사이, 채씨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 밖으로 탈출했다. A씨 일당은 곧바로 채씨를 차량에 다시 강제로 태우려 했고, 이 과정에서 채씨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채씨가 차량에 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차량 안에 있던 A씨는 흉기를 꺼내 채씨 하체를 수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채씨는 차량에 강제로 태워졌고 A씨 일당은 차량을 다시 출발시켰다. 다량의 피를 흘리는 채씨가 차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A씨 일당은 이를 무시했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곧바로 A씨 일당이 탄 차량 추적에 나섰고 이들은 30여분 만에 강원도 원주 고속도로에서 검거됐다.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했을 당시 채씨는 이미 과다출혈로 사망한 상태였다. 공연감독 채모씨를 살해한 A씨 일당이 2014년 1월 9일 용인휴게소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뉴스1)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 일당으로부터 “이씨 사주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곧바로 이씨를 강도살인 공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이씨는 “A씨에게 제가 의뢰한 것을 숨기고 그저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겁만 주라고 했다”며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도 않았고 사망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 일당을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이씨에 대해선 살인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 혐의만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아내 “죽일줄 몰랐다”→공범 “모두 알렸다”이씨는 법정에서도 수사기관에서와 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심부름센터에 의뢰를 했겠나. 200만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겁을 주는 게 최대한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범인 A씨가 법정에서 “이씨에게 세세한 얘기까지 다 했다. 이씨가 납치를 주장했고 구체적 납치 계획까지 알려줬다. 연장을 챙기는 얘기까지 이씨에게 전했다”고 증언하며 이씨 주장을 직접 반박했다.1심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고 심부름센터에 연락해 강하게 폭행·협박하고 금품을 강취해 달라는 의뢰를 한 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결국 피해자는 A씨 일당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며 이씨의 강도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겐 징역 25년, 범행에 동참한 일당 2명에겐 각각 징역 13년과 10년을 선고했다.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고 채씨 사망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객관적으로 범행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극구 부인하며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피해자 사망에 가장 근원적 책임을 져야 할 이씨에 대한 1심 형이 너무 가볍다“며 징역 13년으로 형을 올렸다. A씨 등의 항소는 모두 기각했다.특히 2심은 이씨에 대해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를 적용해 기소한 검찰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심은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죽음을 용인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범들과 달리 강도치사죄로 기소됐다“고 지적한 것. 이씨와 A씨가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돼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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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일 용서해달라"던 남편과 내연녀…속았습니다[사랑과전쟁]
    "지난일 용서해달라"던 남편과 내연녀…속았습니다
    한광범 기자 2022.12.02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결혼 10년차 40대 여성 A씨는 2019년 무렵부터 남편 B씨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평소 숨기는 것이 전혀 없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휴대전화에 잠금을 설정했고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 및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함께 놀러 간 날에는 전화를 받는다며 수십분 간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A씨가 ‘누구에게 온 전화냐’ 묻자 ‘회사 이사’라고 답했다. 그 ‘회사 이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점점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던 중에 또다시 ‘회사 이사’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A씨는 뒤늦게 그 이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찜찜했던 A씨는 남편의 직장동료인 지인에게 ‘회사 이사’에 대해 물었고, 해당 여성은 실제 회사 사장의 여동생인 C씨라는 답을 들었다. 지인이 “이사가 직원들에게 수시로 전화해 귀찮게 한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알려줬고 A씨도 찜찜함을 거뒀다.◇연락 안하겠다며 다른 번호로 몰래 연락언젠가부터 남편 회사엔 C씨 주도의 회식이 잦아졌다. 남편도 잦은 회식을 A씨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얼마 후 C씨가 회사를 그만두며 남편은 다시 일찍 귀가했다. 그런데 퇴사한 C씨가 남편에게 사적 연락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오는 것이 목격됐다.A씨는 C씨에게 전화해 따져 물었다. C씨는 이내 “죄송하다. 제가 남편분을 일방적으로 좋아했다.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C씨의 연락을 없었고 A씨 역시 C씨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그리고 몇 개월 후 우연히 본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남편이 누군가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A씨는 충격을 받았다. ‘자기야’로 저장된 누군가와 남편이 수개월 간 애정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을 확인한 것이다. A씨는 곧바로 해당번호를 전화를 걸었다. 번호의 주인은 C씨였다.A씨는 남편을 추궁했다. C씨가 얼마 전 회사에 재입사했고 그때부터 내연관계를 맺었다는 남편의 자백을 받아냈다. A씨는 변호사를 찾아가 곧바로 C씨를 상대로 상간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2000만원의 배상판결이 나왔지만 남편과 C씨의 불륜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배상액이 부족하다며 항소를 제기했다.얼마 후 A씨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A씨가 집을 비우자 남편과 C씨는 집을 데이트 장소 삼으며 더 과감한 불륜행각을 이어갔다. A씨는 C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고, C씨는 혐의가 인정돼 재판에 넘겨졌다.◇집에서 불륜행각…주거침입 기소이때부터 C씨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A씨가 “다신 B씨를 만나지 않겠다”며 “믿지 않을 수 있으니 합의서도 써주겠다”고 읍소하기 시작했다. A씨가 의구심을 거두지 않자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실제 얼마 후 남편 B씨도 A씨를 찾아와 “지난 일은 용서해달라”고 사과했다.가정을 되찾고 싶었던 A씨는 결국 C씨로부터 합의금과 함께 ‘다시 B씨를 만나면 5000만원을 지급한다’는 각서를 작성하고 민·형사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이내 A씨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합의 후 남편과 C씨가 돌변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과감하게 부정행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A씨가 따지자 남편은 결국 집을 나갔다. C씨가 보낸 사진도 가짜였다.남편에게 이혼소송 및 상간소송 계획을 밝히자 남편은 오히려 A씨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B씨는 “어차피 이전부터 C씨랑 동거했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쭉 살기로 했다”며 “C씨가 돈이 많아 그깟 몇천만원 물어줘도 상관없다더라. 마음대로 해봐라”고 말했다.남편과 이혼한 A씨는 C씨를 상대로 각서상 약정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도 “각서상 합의를 위반했다”며 청구금액을 모두 인용했다.
  • 바람난 부인 이혼 요구에 차 브레이크 자른 남편[사랑과전쟁]
    바람난 부인 이혼 요구에 차 브레이크 자른 남편
    전재욱 기자 2022.11.29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A씨는 2020년 어느 날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자동차에서 브레이크 오일이 새고 있었다. 자동차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유압으로 작동하는데, 이때 기능을 하는 게 브레이크 오일이다. 브레이크 오일이 새면 차가 제대로 서질 못하니, 운행 중에 사고가 날 여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자동차가 말썽이었다. 앞바퀴가 못이 박혀 펑크가 나 있었다. 그대로 운행했더라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보험사를 불러서 브레이크와 타이어를 수리한 끝에야 운행할 수 있었다. 주차장 CCTV를 돌려보니 누군가 일부러 차 브레이크를 부수고 타이어를 펑크내고 있었다. 범인은 아는 사람이었다. 남편이었다.남편이 부인이 다치길 바란 이유는 부인의 바람 때문이었다. A씨는 직장에서 만난 상대와 외도를 하다가 남자에게 걸렸다. 이후 A씨가 요구해서 부부는 협의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남자의 범행은 협의 이혼을 밟는 도중에 발생했다.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A씨에게 불만을 품은 끝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사진=이미지투데이)남자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협의로 이혼한 이후에 A씨의 나체 영상을 당사자에게 보냈다. 외도 사실을 알고 난 이후 A씨 몰래 찍어둔 것을 이혼 후에 공개한 것이다. 영상을 사진으로 인쇄해 주차된 A씨의 차에 부착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봤을지 모를 일이었다. A씨의 직장으로 찾아가 밀린 합의금을 달라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결국 남자는 재물손괴와 협박,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그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A씨는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심리를 마친 법원은 남자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법원은 “피고인은 A씨 몰래 나체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다고 협박했으며, 자동차를 고장 내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이로써 가족이 받은 정신적 충격도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부인의 부정행위(외도)로 혼인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고 부인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선고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 "재수없게 생긴X"…이별통보 받자 아내 겁박한 불륜녀[사랑과전쟁]
    "재수없게 생긴X"…이별통보 받자 아내 겁박한 불륜녀
    한광범 기자 2022.11.24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결혼 4년차인 주부 A씨는 올해 5월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여성인 B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B씨는 느닷없이 A씨의 남편 C씨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남편과 결혼하기 전부터 교제를 해왔다. C씨가 당신 때문에 헤어지자고 한다. 당신을 만나 이 관계의 결론을 내고 싶다.”평소 가정적이었던 남편이었기에 A씨는 여성의 얘기를 전혀 믿지 않았다. A씨는 웃으며 “보이스 피싱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말했다.하지만 B씨는 실제 남편의 내연녀였다. B씨 역시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A씨가 결혼하기 전부터 C씨와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온 관계였다.B씨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A씨에게 남편과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캡처해 보내줬다. 캡처 이미지 속에 있는 남편의 프로필 사진을 본 후에야 A씨는 B씨 얘기가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A씨가 뒤늦게 자신의 말을 믿기 시작하자 B씨는 더욱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당신 남편이 당신 때문에 병에 걸렸다며 당신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혼해달라”고 했다.이에 A씨는 어이없어하며 “거짓말하지 마라.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해도 믿지 않을 테니 알아서 지껄여보라”며 전화를 끊었다.B씨는 A씨의 차분한 대응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며칠 후부터 열흘 넘게 A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욕설과 협박을 계속했다. B씨는 “네 남편이 나한테 줘야 하는 돈이 수 천만원이다. 너랑 네 남편을 경찰에 신고해 콩밥을 먹이겠다”고 협박했다.A씨가 “마음대로 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B씨는 “재수 없게 생긴 X”, “네가 이 모양이니 네 남편이 바람을 피는 거다”, “돈을 안 주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B씨는 A씨가 아무런 답장이 없자 더 거칠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그렇게 해봐라. 너랑 네 남편 주변 사람들한테 네 남편이 나랑 바람피운 걸 다 소문내겠다. 네 XX들 고개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할 거다”고 쏘아붙였다.A씨가 “신고할 수 있다. 그만 좀 하라”고 점잖게 답장을 했지만, B씨는 “이제 네가 네 남편과 이혼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당장 이혼하라”고 협박했다.A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차단하자 B씨는 이번엔 A씨 남편 C씨에게 “이제 당신 부인도 알게 됐으니 더 편하게 만나자”며 수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여기에 답장을 하지 않고 차단했다.결국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장에서 “남편과의 부정행위도 모자라 가정을 파탄 내기 위해 저에게 연락해 협박을 했다”고 적시했다.B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B씨는 “내연관계였지만 이는 A씨 남편이 먼저 요구했던 만큼, 부정행위에 따른 위자료는 제가 아닌 C씨가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법원은 B씨 주장을 일축하고 A씨 청구를 모두 받아들여 “B씨가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부정행위로 A씨에게 피해를 준 것도 모자라, 관계를 유지하려 피해자인 A씨에게 연락해 혼인관계를 파탄 내려 했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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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작가 꿈을 이룬 재벌총수 박용만[오너의 취향]
    사진작가 꿈을 이룬 재벌총수 박용만
    한광범 기자 2022.11.3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사진기자를 꿈꾼 재벌가 자제고등학교 시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이런 꿈을 꿨던 이가 있다.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박용만(67)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회장의 이야기다.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사진=라이카코리아)박 회장은 재계에서 유명한 사진 마니아다. 고교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을 보인 박 회장은 부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반대로 사진기자의 꿈은 포기했지만 기업인이 된 후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만은 잊지 않았다. 두산 입사 후에도 사진작가로의 전직을 고심했을 정도다. 박 회장은 여전히 서가에 사진집이 가득 차있고, 즐겨 보는 책도 사진집일 정도로 사진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기업인으로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도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거리 풍경, 주변 사람 등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작가 박용만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인스타그램 계정은 사진작가 박용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전시장에 가깝다.박 회장이 찍은 사진은 유명 가수의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가수 양희은은 1998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앨범을 발매할 당시 박 회장에게 허락을 받고, 미리 본 적 있던 박 회장의 작품 사진을 앨범 재킷에 사용했다. 박용만 회장의 촬영 사진을 앨범 표지로 사용한 양희은 ‘1991’ 앨범.박 회장이 지난해 초 발간한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의 표지에도 독일 고급 카메라인 라이카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작가 소개란 중에도 “소통하는 대기업 CEO로 잘 알려져있지만 쉬는 날엔 혼자 골목골목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3년 7월 박 회장이 회장으로 추대된 이후부터 사진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상공인들의 삶을 사진을 통해 담아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박 회장에게 사진은 이처럼 단순히 취미활동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다. 박 회장은 오래전부터 ‘소통하는 재벌’로 주목받았다. 소통보다는 ‘은둔’이 더 잘 어울리는 보통의 재벌가와 달리 박 회장은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적극적인 소통을 해왔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개하거나,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그룹 직원은 물론 일반 시민과 직접 소통하기도 했다. 2010년엔 한 방송에 직접 출연해 자신의 집을 공개하며 재벌 회장의 생생한 일상을 보여주는 파격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두산그룹 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박 회장은 올해 초 자신과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던 두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두산과 완전히 결별했다. 결별을 결정한 후 박 회장은 지난 3월 배우 류준열,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 20세기 초현실주의 사진 거장 랄프 깁슨, 미국계 한국인인 ‘앰부쉬’ 패션 디자이너 윤 안, 버추얼 아티스트 웨이드와 함께 ‘오! 라이카(O! Leica) 2022’에 작품을 전시했다. 오랜 꿈이었던 ‘사진작가’ 박용만이 현실화 된 것이다.‘오! 라이카2022’에 전시된 박용만 회장 작품. (사진=라이카코리아)
  • 느리게 구르는 구자열의 자전거[오너의 취향]
    느리게 구르는 구자열의 자전거
    전재욱 기자 2022.11.2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기업인 구자열(한국무역협회장·LS의장)의 자전거 페달은 빠르게 굴러 왔다. 쉬지 않고, 곧게 갔고, 그래서 앞에 있었다. 자전거께나 탄다는 ‘말벅지’도 그의 등을 보고 달리기가 일쑤다. ‘몬주익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의 이른바 ‘항복 선언’은 유명한 일화다. 신체 능력이라면 세계 으뜸가는 황 씨였지만 2010년께 구 회장을 따라 라이딩을 나섰다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겸 LS의장(앞줄 오른쪽 헬멧을 든 이)이 지난 9월 지인과 라이딩을 떠나기 앞서 환히 웃고 있다. 맨 왼쪽 가수 김창완씨를 비롯한 일행도 싱글벙글이다. 앞줄 가운데 뒷모습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대한자전거연맹)“자전거 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기부터 수십 년을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경기 안양시 LS타워까지 어림잡아 하루 왕복 50km 이상이다. 날이 궂지 않으면 이걸 매일 했다. 맘잡고 달리면 서울에서 부산을 하루 만에 가는데, 평균 속력이 시간당 30km 안팎이다. 아마추어(20km대) 수준을 초월한 경지다. 2002년 독일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해 7박8일 동안 650km를 완주한 것은 의지만으로 된 게 아니다.대한자전거연맹 회장 자리는 2009년부터 의지만으로 맡고 있다. 저변이 척박한 자전거 종목에서 구자열은 키다리 아저씨다. 경륜법의 흠을 고쳐 자전거 인재 육성에 물꼬를 틀도록 역할을 한 것이 컸다. BMX와 MTB 불모지 한국이었지만, 이제 국제대회에서 메달 소식이 들려온다.이런 그에게 자전거는 기업이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잡고 전진해야 한다.” 경영 철학이었다. 구자열이 달리면 회사가 따라왔다. 그래서 빨리 갔고, 앞서 갔다. 지난 1월 LS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올해 칠순의 라이더는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겸 LS의장이 지난 9월 일행과 유니폼을 입고 떠난 라이딩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 네 번째 흰 팔토시를 한 구 회장이 브이(V)자를 그리고 있다. 뒷줄 왼쪽 여섯 번째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대한자전거연맹)자유인이 되고서 주법(走法)이 바뀌었다. 차종 로드바이크의 재질을 크롬에서 크로몰리로 바꾼 것이 시작이다. 쉽게 말하면 속도를 줄이고, 승차감을 끌어올린 것이다. 스포츠카에서 클래식 세단으로의 환승이랄까. 자연히 호흡도 달라졌다. 어지간하면 브레이크를 잡고, 풍경을 눈에 담고자 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승선을 향해 전력으로 페달을 밟던 이전의 그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오늘은 유니폼 입으셨네요?”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가장 큰 변화는 복장이다. 라이딩은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같이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무리는 유니폼을 입고서 한몸이 된다. 유니폼은 룰이다. 한창때 구자열이 유니폼 입기를 피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촌음을 다투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자기가 계획해서 운동하는 것이 편했다.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언제든지 그만 가는 경우도 불가피했다. 유니폼을 입고 이렇게 행동하면 룰을 깨야 하고, 이로써 나머지 일행의 호흡이 뒤틀린다. 이걸 경계하려고 유니폼을 꺼렸다. 몸이 가벼워지고서 이런 부담을 덜었다.자전거인 구자열의 종아리.(사진=대한자전거연맹)지난 9월 라이딩은 자유인 구자열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여정이었다. 지인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2008~2011년)가 방한하자 오랜 친구 가수 김창완씨 등과 함께 만든 자리였다. 그날 일행은 같은 옷을 맞춰 입었다. 정처는 정해뒀지만, 무엇하랴.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도착지였다. 강변 카페에 들러 수 시간 수다를 떨었고, 오가며 마주하는 생면부지와 구김 없이 인사했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여유롭게 피는 들풀의 향이 난다”고 했다.페달을 천천히 밟으니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늘고,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는 빨리 가는 데 필요한 수단이 아니었다. 자전거 그 자체였다. 느리게 가도 뭐라고 할 이 하나 없는데, 우리는 빨리 가려고 무던히 애가 단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는 잘 몰랐던 것들이다. 어떤 스님의 말마따나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었다. 구자열의 페달은 느릿하게 굴러간다.
  • ‘音의 경영학’…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 김승연[오너의 취향]
    ‘音의 경영학’…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 김승연
    김영환 기자 2022.11.16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1988년 2월 예술의전당 시설 가운데 음악당과 서예관이 1차 개관했다. 음악당은 변변한 공연장이 없던 당시 한국에서 유일하게 콘서트 전문 공연장으로 설계돼 기대를 모았다. 개관과 동시에 국내외 연주자들과 합창단, 실내악단, 관현악단들이 참가한 개관 기념 음악제가 열렸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2011년 교향악축제 첫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 협력업체 대표이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이듬해 이 같은 음악제를 살려나가자는 의견이 모였다. 역시 한 달여간 국내 관현악단들의 공연이 음악당에서 연달아 개최됐고 공식적으로 이 음악회를 ‘제1회 교향악축제’로 작명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됐고(最古), 가장 큰 규모인(最大)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음악회는 지방의 악단들을 한 무대로 모아 서로 실력을 겨루거나 골고루 중앙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개최 취지였다. 재능있는 독주자들을 발굴해 관현악단과 협연 기회를 마련하거나,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관현악 작품들을 초연하는 무대도 제공했다.지난 2022년 4월2일부터 24일까지 34회째를 맞아 공연을 성료했지만 위기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2000년에는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들이 후원을 꺼리면서 아시아 최고·최대 교향악축제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교향악축제라는 이름 앞에 ‘한화와 함께하는’이라는 인연이 시작된 계기다. 클래식 공연에 대한 후원이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단기 후원인 경우가 많은데 한화가 23년째 이어오고 있는 교향악과의 인연은 이례적이다. 그 배경에는 김승연 한화 회장이 있다.‘2021 교향악축제’ 공연 장면(사진=예술의전당)김 회장은 ‘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로 추대됐다. 예술의전당이 지난 2009년 처음으로 도입한 종신회원제도에 후원활동 10년을 기록한 김 회장을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후원 20년째인 지난 2019년에는 후원기념 명패를 제작해 음악당 로비 벽면에 설치하는 제막식도 치렀다.김 회장은 클래식 음악 전문가로 알려졌다. 지난 8월 별세한 배우자 서영민씨가 특히 클래식 애호가였다. 김 회장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심취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음악이 갖는 하모니의 가치는 김 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공존과 상생의 키워드 ‘함께 멀리’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2011년 김 회장은 교향악축제에 협력사 임직원을 초대해 동반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김 회장이 직접 제안했던 행사다. 때로는 과격한 언행으로 세간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김 회장이 평생을 지켜온 ‘의리’와도 결이 유사하다.김 회장의 클래식에 대한 조예는 지난 2013년 ‘한화클래식’으로도 발전했다. 한화클래식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장이다. 합창계의 거장이자 바흐 해석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헬무트 릴링이 첫 주자로 한국을 찾아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였다.‘한화클래식’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문호를 넓히는 한편,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레퍼토리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세한 해설도 곁들인 것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연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직접 관객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지난 10월 한화그룹 창립 70주년을 맞은 김 회장의 기념사 이후 한화 측은 성료했던 ‘세계불꽃축제’와 함께 ‘한화클래식’을 사회공헌 철학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회장은 기념사에서 “‘신용과 의리’의 한화정신이 있었기에 그룹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했다.지난 2019년 폐관한 금호아트홀 내부 전경(사진=금호아트홀)지난 2019년 폐관의 역사를 밟았지만 클래식 공연장 금호아트홀을 만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역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거쳐 갔을 만큼 클래식 영재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우 아내가 플루트 연주자일 만큼 평소 음악계 인사와 교류가 있어 왔다. 정 부회장 역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고 피아노 실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2011년부터는 연간 2차례에 걸쳐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도 개최 중이다.이건산업 창업주인 박영주 회장도 ‘음악사랑’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올해로 33회를 맞는 ‘이건 음악회’는 기업이 주축이 돼 무료로 여는 클래식 공연 중 가장 오래된 음악회다. 지난 11일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인천 아트센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료됐고 △부산 금정문화회관(16일) △통영 통영국제음악당(17일) 일정이 남았다.이건음악회가 2022년 첫 일정으로 스타트를 끊은 롯데콘서트홀은 롯데그룹이 2016년 롯데월드몰에 설치한 정통 클래식 공연장으로 예술의전당에 버금가는 클래식 공연 명소다.피아니스트 이혁.(사진=금호문화재단)재벌들의 후원 속에 클래식 인재들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2 롱티보(Long-Thibaud)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이혁은 두산연강재단 출신 장학생이다. 두산연강재단은 만 12세이던 2012년부터 이혁을 꾸준히 후원해왔다.두산연강재단은 두산그룹 초대회장인 ‘연강’ 박두병 회장의 호에서 따왔다. 박 회장의 이념 실천을 목표로 세워진 교육 및 문화재단으로 지난 1978년 10월 발족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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