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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단짝' 美日, 석유 방출도 올림픽 보이콧도 한몸처럼[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1.29
    일본이 최근 베이징올림픽 보이콧과 전략적 비축유 방출 등에 있어 미국을 적극 추종하고 있다(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맹방보다 더 맹방 같은 관계가 있다.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지만 미국과 일본 얘기다. 정치와 외교, 경제 문제 등에 있어 미국의 뜻이 곧 일본의 뜻인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더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여부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 정부의 대응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다. 적절한 시기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이지만, 이들이 말하는 적절한 시기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입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겠다”는 결단이 나오는 순간을 의미할 것이다. 고공행진하는 유가를 잡겠다며 미국이 국제사회에 잉여 석유를 방출하자고 독려하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도 일본이다. 1970년대부터 지켜오던 원칙까지 깨부수며 국가 비축분을 풀겠다고 나서면서다. 정작 영미법으로 묶인 혈맹이자 결정적인 순간엔 항상 미국 편에 서 온 영국조차 국가 비축분에는 손대지 않고 민간 비축분만 자율적으로 풀게 하겠다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일본은 맹방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미국을 추종하고 있다.일본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시부시 국가석유 비축기지(사진=교도통신)◇1970년대 세운 석유비축 원칙, 바이든 지지율 올리기에 무너졌다일본에서는 미국을 향한 지독한 짝사랑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국가 비축유 방출이 대미 협조의 의미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미국과의 협조를 위해서라면 일본 정부가 원칙까지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비판이다. 일본 정부가 깬 원칙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만으로는 잉여 석유를 함부로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1차 오일쇼크로 제정된 석유비축법이 그 근거다. 이 법에 따르면 분쟁이나 자연재해로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석유 비축분을 방출해야 한다. 1991년 걸프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민간 비축분만 일부 풀었다. 그런데 지금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국가 비축분도 방출한다는 게 일본 정부 계획이다. 휘발유 가격이 1리터당 185.1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2008년에도 민간 비축분조차 방출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난 10일 일본 휘발유 가격은 1리터당 평균 170엔 정도로 2008년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국가 비축분을 풀겠다는 것이다. 유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잉여 석유 방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7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손녀들과 함께 억만장자 기업가가 소유한 357억원짜리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는 바이든 대통령. 30년만에 최고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사진=AFP)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일본이 50여 년 지켜 온 원칙까지 무력화하는 모습이다. 1가족 2차량이 기본인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휘발유는 생필품이다. 연말 휴가철을 앞두고 고공행진하는 유가에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24일 공영방송 NPR 여론조사에 따르면 42%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잉여 석유를 풀어 유가를 안정화하고 지지율 회복을 노리고 있다.또 이번 비축유 방출 계획이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국제적인 리더십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면 전 세계가 따라온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 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잉여 석유 방출 프로젝트가 남는 장사이지만, 일본에도 과연 그럴지는 미지수다. 원칙을 파기하면서까지 감수할 만큼의 실효성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서다. 미국과 일본 등 6개국이 내놓는 잉여 석유 규모는 7000만배럴로 추산되는데, 영국 최대 석유회사 BP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가 하루에 소비한 석유량이 8847만배럴이다. 원칙까지 깨면서 일본이 국가 비축분을 시장에 풀어도 이틀을 채 못 버틸 미미한 수준이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의 혈맹인 영국도 민간 비축분만 방출하는 정도로 동참하겠다는데 일본은 한 술 더 떠서 국가 비축분까지 풀겠다는 계획이다(사진=AFP)심지어 미국의 맹방인 영국과 방출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일본은 국가 비축유 잉여분 중에서 국내 수요의 1~2일 분량인 420만배럴을 방출하는 반면, 영국은 민간기업에 자발적으로 방출을 맡겨 150만배럴까지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을 향한 과잉충성이 오히려 산유국들을 일본의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렇게 방출된 석유를 시장에 내다 팔 때 낙찰액을 싸게 불러야 유가가 떨어지지만 산유국 눈치를 보느라 과연 싼값으로 낙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일본 일간공업신문에 “산유국과의 관계에서 눈에 거슬리는 구매 방법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본심”이라고 고백했다. 괜히 낙찰가를 싸게 불렀다가 산유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앞으로의 원유 조달 비용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동기화한 기시다 정권을 향한 언론 평가도 박하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조차 석유 국가 비축분 방출을 향해 “가격 인하 효과는 턱도 없다”며 “일본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긴밀하게 외교관계를 구축해온 만큼,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유국에 증산 요구를 해야 한다”며 미국에 동조한 정권을 질책했다. 또 마이니치신문은 “산유국과 협력해 석유에서 친환경 에너지로의 이행기를 극복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미국보다는 산유국들과 대화를 통해 국제유가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미국이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고 일본도 여기 동참했다. (사진=IOC)◇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여부도 미국 입만 바라보는 일본베이징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정상과 정부 사절단은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도 일본은 미국 정부가 결정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40여 년 전에도 미국과 한 몸처럼 움직인 일본이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선수단조차 보내지 않는 전면 보이콧을 실시, 우방국도 동참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스포츠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면 보이콧에 동참하려던 영국 정부는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는 영국올림픽위원회(BOA)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선수단을 개인 자격으로 보냈다. 호주와 프랑스, 이탈리아와 덴마크 선수들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일본은 대체로 미국에 맞서지 않았고,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 유도 영웅 야마시타 야스히로 선수와 레슬링의 타카다 유지 선수가 울면서 올림픽에 나가게 해 달라며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당시 보이콧 동참을 일본 스포츠계의 ‘흑역사’로 기억한다.일본 유도 영웅 야마시타 야스히로(왼쪽)와 레슬링의 타카다 유지(오른쪽) 선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출전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사진=교도통신)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이라면 동참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민주사회로 변모하기를 거부하고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데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강제노동 및 홍콩 민주화운동 탄압 등 중국 정부의 인권유린을 향한 비판의식이 높아진 탓이다. 최근에는 베이징올림픽 유치에 핵심 역할을 한 장가오리 전 부총리가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를 수년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중국은 도쿄올림픽을 지지했다는 점을 들면서 일본에도 베이징올림픽 지지를 촉구하고 있다(사진=AFP)다만 이번에도 일본이 미국 편에 서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도쿄올림픽을 지지했던 중국의 반발이다. 중국 외교부 측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중국은 전력으로 도쿄올림픽 개최를 지지했다. 일본은 기본적인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일본에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베이징올림픽과 (중일) 양국의 정치 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중국은 결사반대다. 중일 양국에는 서로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는 중요한 공통 인식도 있다”고 강조했다.미국 정부 입에 전광석화처럼 반응해 왔던 일본의 외교적 후각이 이번에도 작동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 '투표 안하는 일본인' 충격파 한달째…왜?[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1.22
    일본 중의원 선거가 열린 지난달 31일 한 남성이 후보자들 선거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중의원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일본 언론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일본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율이다. 지난달 31일 4년 만에 치러진 제49회 중의원 총선거 투표율은 55.93%로, 역대 3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일본에서 투표율 저조 현상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만 적잖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유권자들이 투표뿐 아니라 선거운동이라든지 거리시위 등 참여 자체를 거부해 ‘공공을 외면하는 일본인’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는 성토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왜 이번 선거 투표율이 낮았는지 의문을 갖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번 선거가 10년 가까이 집권한 자민당을 심판하는 성격을 띤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민당 대응능력의 민낯이 드러나며 1강 체제에도 균열이 일어나는 듯 보였다. 코만 겨우 가리는 ‘아베노마스크’로 조롱받은 당시 총리 아베 신조가 건강상 이유로 총리직을 내려놓으며 스가 요시히데가 후임으로 나섰지만, 그마저도 1년 천하로 끝났다. 전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도쿄올림픽을 강행해 확진자가 하루 2만5000명 넘게 나오면서 지지율이 폭락한 탓이다. 아베 전 총리가 코로나19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는 아베노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사진=AFP)정권교체가 힘을 받나 싶더니 막상 총선 뚜껑을 열어보니 또 자민당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단독 과반을 확보하면서다. 스가 때보다도 낮은 49%의 지지율로 시작한 기시다 내각에 절반 넘는 의석을 몰아준 것이다. 이는 일본 정치에 야당이 있지만 정권교체 선택지에도 들지 못 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투표율은 여전히 저조했고, 자민당 1강 체제는 굳건했으며, 자민당 타도를 기치로 똘똘 뭉친 야당은 오히려 의석을 잃었다. 일본 언론들은 “외국과 비교해도 투표율이 이상하게 낮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와중에 ‘전쟁가능한 일본’을 외치는 극우정당이 오사카에서 약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학습된 무력감에 투표 포기…‘변화’ 실감케 한 일본유신회에는 열광일본 사회의 낮은 투표율 주범으로는 학습된 무력감이 꼽힌다. 일본 사회 전반에 흐르는 냉소주의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의 일본이 싫다면 일본을 떠나라’,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입후보해라’는 등, 변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냉소주의는 저조한 투표율로 이어진다고 아사히신문은 꼬집었다. 사회화 기관인 학교나 직장에서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보다는 ‘공기(분위기)’를 읽으며 대세를 따르는 의사결정 과정도 정치적 자기효능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사진=AFP)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해준 게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일본유신회이다. 후보를 낸 지역구에서 전부 승리를 거두며 지난 선거보다 네 배 가까이 의석을 늘리는 등 약진한 곳인데, 일본에선 극우정당이지만 일은 잘 한다는 이미지로 통한다. 물론 ‘오사카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미지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다. 그만큼의 실적과 시민에의 환원이 뒷받침했기에 이번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더럽기로 악명 높은 오사카 지하철 화장실은 일본유신회가 집권하면서 깨끗해졌고, 중학교 무상급식이 시행되면서 맞벌이 부부는 자녀의 도시락 준비 부담을 덜었다. “일본유신회가 있는 한 우리 생활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이어진 셈이다. ◇유권자 평가 기준은 실효성 아닌 하려는 의지주목할만한 사실은 일본유신회가 이끄는 오사카가 일본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는데도 재신임받았다는 것이다. 4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5월 오사카는 사실상 의료붕괴 상태였으며 코로나19 환자들은 입원도 못 한 채 자택에서 요양하다 사망하기 일쑤였다. 자영업자들에게 휴업을 요청하는 대신 협력금을 주긴 했지만 이마저도 한참 늦어졌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도 상당히 어설펐다. 일본유신회 소속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가 돌연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가글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적이다”라며 근거없는 말을 하자 오사카의 모든 약국에서 구강청결제가 동나는가 하면 코로나19 대책의 하나로 우비 33만장을 기부받기도 했지만 실제로 방역 현장에서 쓰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도 오사카는 일본유신회에 열광했다. 일본 국민 40%가량이 이용하는 ‘국민 SNS’ 트위터에는 일본유신회 소속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가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며 ‘요시무라 자라’는 검색어가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요시무라 지사의 ‘일 하는 척’이 먹혔다는 평가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전 시장부터 현재 요시무라 지사에 걸쳐 일본유신회를 취재하고 있는 요시토미 유지는 “요시무라 지사는 어쨌든 보여지는 모습을 의식하며 움직인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몰라도 오사카 TV에 매일 나와 자신을 어필한다”며 “실패해도 새로운 대책을 세우고 부민들에게 계속 알리는데, 이런 모습은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고 분석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려는 요시무라 지사의 모습이 일본 중년 여성 유권자들에게는 마치 아들처럼 느껴져, 그의 정책이 적잖은 실패를 겪더라도 악의가 없다면 지지하는 데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본유신회가 오사카를 넘어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 건 무리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반대로 말하면 오사카에서는 어지간한 헛발질만 안 하면 콘크리트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만큼 일본유신회가 오사카에서 기반을 잘 닦아놓은 것이다. 지난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개정을 내세운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사진=AFP)◇日우경화에는 방향 잃은 리버럴도 책임 있어일본 내에서도 극우라고 손가락질받는 일본유신회가 오사카를 사로잡은 모습은 생각할 여지를 준다. 우익을 견제하는 리버럴(진보)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게 벌써 10년째다. 리버럴은 동북아 평화를 중시하는만큼 평화헌법 개정을 외치는 보수우파와는 대조적이지만 지향점이 불분명해진 지도 오래다. 일본유신회의 총선 압승을 포퓰리즘으로 헐뜯기만 한다는 지적을 받는 게 현 일본 사회의 리버럴 세력이다.아사히신문은 “일본유신회의 압승을 포퓰리즘으로 폄훼하는 이들은 자민당에 불만이 있는 유권자를 휘어잡을 논리가 없다”며 “어느 정당에 투표하는 것과 정당의 정책을 100% 지지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일본유신회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포퓰리스트라고 비하하기만 해서는 자민당을 싫어하는 유권자의 마음도 못 얻는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리버럴이 일본유신회의 개헌 주장에 반대하려면 적어도 헌법9조를 빛낼 수 있는 야당판 개헌안을 내세울 수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뼈아프다. 지난 2012년 자민당에 정권을 내준 후 9년째 정권교체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일본 정치를 지켜보며 절감하게 되는 것은 의욕 잃은 야당이 얼마나 현상유지에 기여하는지다. 동시에 아무리 해도 안 바뀐다는 환멸에서 일본 유권자가 정치참여 자체를 포기하는 사이에 개헌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은 민생정치를 무기로 지지를 얻었다. 코로나19 대응 헛발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본유신회가 어느 순간 전쟁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며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더라도 이상하지 않게 될 지 모른다.
  • 日 '사망자 제로' 미스터리…실제로는 더 많다?[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1.15
    오사카의 한 파칭코에서 한 시민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0명을 찍은 지난 7일, 일본뿐 아니라 한국 등 전 세계 언론이 일제히 이를 보도했다. 확진자 수를 줄여 발표하는 건 가능하더라도 사망자 수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PCR 검사수를 줄였다, 일시적으로 집단면역이 됐다, 일본에서 델타 변이가 힘을 잃었다 등등 여러 가설이 제기됐지만 전문가들도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사망자 수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코로나19 사망자는 과소평가됐다? 12일 주간지 죠세지신은 통계에 능통한 전직 공무원 쿠와하라 오사무를 인용해 일본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실제로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판단의 지표가 된 건 오사카부다. 맞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일 잘하는 극우정당’이란 후광에 힘입어 오사카를 싹쓸이한 일본유신회가 꽉 잡고 있는 지역이다. 오사카부의 월별 코로나19 사망자 수 (사진=죠세지신)쿠와하라의 설명은 이렇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5월 7500명이던 오사카부 사망자 수는 2021년 5월에는 8901명으로 1400여명 늘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오사카부가 발표한 올 5월 사망자 수는 857명에 불과했다. 2019년에 비해 비해 1400명가량 늘어난 사망자 가운데 나머지 500여명은 코로나19 사망자 또는 코로나19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진, 이른바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라는 것이다. 2년 새에 자연적으로 사망자가 늘어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다고 평가받는 돗토리현이나 시마네현에선 2019년이나 2021년이나 사망자 수가 비슷한 수준이다. 오사카에서만 사망자가 늘어난 현상은 코로나19 대책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결과인 셈이다. 특히 돗토리현은 한국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기도 하다. 돗토리현은 지난 2009년부터 강원도 원주시의사회와 우호교류 협정을 맺고 교류해왔다. 지난해 4월에는 K방역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드라이브스루 검사 가이드라인과 선별진료소 운영방법, 진료 수칙 등등. 돗토리현은 13일과 14일 이틀 연속 감염자 ‘0명’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오사카의 관광명소 도톤보리를 지나는 시민들(사진=AFP)◇실제보다 사망자 적게 집계된 이유는그럼 왜 일본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실제보다 적게 집계되는 것일까. ‘누가 코로나19 사태를 악화시켰는가’의 저자이자 한국에선 원전 전문가로 잘 알려진 마키타 히로시 박사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일본 정부가 PCR 검사 수를 줄여서 양성자 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이 PCR 검사를 인당 2만엔(약 20만원)의 유료로 전환하면서 검사 건수가 줄었고, 이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들이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사망했을 경우 코로나19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마키타 박사의 설명이다. 다음으로 경찰청이 발표한 변사자 가운데 코로나19 환자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전국 변사자 중 최대 627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서 누락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사망 보고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혔다. 신규 감염이 줄어들던 올 9월 이후에도 오사카와 도쿄, 오키나와 등지에서 집계된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증가 추세를 보였는데, 마키타 박사는 이 현상이 사망 보고가 20일에서 40일가량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지표평가연구소(IHME)는 일본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발표된 수치의 24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일본에서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오사카에서 실제로는 사망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오사카는 코로나19 사망자가 약 22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4000명이 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의료진이 음압병실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사진=AFP)◇의료민영화·섣부른 긴급사태 해제가 피해 키워오사카에서 유난히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로는 방역 효과보다는 방역 비용 줄이기에 급급했던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같은 전례 없는 파괴적인 감염병을 국가적으로 다루려면 채산성은 잠시 내려놔야 한다. 한정된 자원을 공공병원에 집중시켜도 모자란 상황에서 후생노동성은 의료비 삭감을 위해 국공립 병원을 통폐합했고 병상을 줄여왔다. 지난 10년 간 일본 전국의 보건소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특히 오사카는 도쿄도에 앞서 공립병원을 민영화하는 등 복지비용 삭감에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오사카 응급의료 시스템은 마비 직전까지 내몰렸고 코로나19 환자 중 10%만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 속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다 목숨을 잃는 환자도 있었다. 이외에도 일본유신회 소속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데도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지난 2월 말 섣부르게 긴급사태를 해제해 비판받기도 했다.전문가들은 오사카 코로나19 대응이 ‘행정 실패’라는데, 유권자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일본유신회는 지난달 31일 중의원 선거에서 오사카 지역에 후보자를 낸 15개 선거구에서는 모두 승리, 전국적으로 41석을 넘어 직전(11)보다 네 배 가까이 의석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유권자 77%가 현재 오사카를 이끌고 있는 일본유신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자’며 개헌을 추진하는 극우정당이지만 일은 잘 한다는 기대에서 표를 몰아준 것이다. 지난해 “가글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요시무라 지사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으로 오사카 약국과 드럭 스토어 등에서 구강청결제 품귀현상이 빚어진 데 이어, 오사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실제로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에도 오사카 유권자들의 선택은 일본유신회였다. 일본에 있어 미스터리는 코로나19 사망자 수 급감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듯하다. 요시무라 지사가 “가글액이 코로나19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말한 뒤 오사카의 한 약국 가글액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도쿄주니치신문)
  • 오사카 시민들은 왜 '위안부 옹호'한 극우정당에 환호했나[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1.08
    오사카 도톤보리의 명물 글리코맨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오사카 사람들은 바보.” “유신회의 악행들을 알면서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 것인가?”일본의 극우 성향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오사카에서 집권 자민당을 제치고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 유권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원래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정당이던 일본유신회는 오사카 지역에 후보자를 낸 15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했고, 전국적으로는 41석을 얻어 직전(11석)보다 네 배 가까이 의석을 늘렸다. 이는 중의원에서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필요한 정족수인 21석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다. 단독 법안 발의도 가능해진 것이다.지난달 19일 오사카에서 총선 후보들의 연설을 듣는 시민들의 모습(사진=AFP)여타 야당이 뼈아픈 패배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이은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경제,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의혹 등 자민당을 향한 불만이 날로 거세지던 차에 야당들은 “이번에는 진짜로 정권을 교체하자”며 똘똘 뭉쳤다. 입헌민주당 등 5개 주요 야당은 후보를 단일화해 자민당 타도에 나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오히려 지난 선거보다 의석이 10석 줄었다.극우정당의 약진에 일본 유권자들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오사카 사람은 바보”라는 조롱도 잇따랐다. 특히 오사카와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도쿄에서 이번 결과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도쿄 사람들은 상업이 발달한 오사카 쪽 사람들을 ‘돈만 밝히고 거칠고 제멋대로’라고 삐딱하게 보는 반면, 오사카 사람들은 도쿄 사람들을 ‘깍쟁이 같고 점잖은 척한다’고 폄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유신회가 오사카 지역구를 휩쓴 결과에 대해 도쿄에서는 “오사카 사람들이 반지성적이라 극우정당에 투표했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 (사진=AFP)일본유신회에 투표했다는 이유로 이처럼 격한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유신회가 자민당 뺨치는 우익정당이라서다. 일본유신회 소속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가 지난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것을 두고 격렬히 항의하다 자매결연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 2019년 8월에는 위안부 소녀상을 옹호한 아이치현 지사를 퇴출시키겠다며 주민 43만명 서명을 받았는데, 이들 중 80% 넘는 서명이 가짜로 드러났다. 당시 아이치현 지사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요시무라 지사를 비난했으며 이는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요시무라의 스승도 그에 못지않은 극우 인사다. 일본유신회 전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는 2013년 오사카시장 시절 “일본군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위안부가 필요했다”고 발언해 도마에 올랐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혐오스러운 발언”이라며 하시모토를 규탄했다. “위안부는 일본군 정신안정을 위해 필요했다”고 발언하는 하시모토 토루 (사진=AFP)하지만 일본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오사카에서 일본유신회 돌풍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오사카부의회 의원 선거나 오사카 시의회의원 선거, 지사와 시장 선거에서 일본유신회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유로는 먼저 오사카에서 출발한 정당답게 ‘오사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오사카 정당’이란 인식을 줬다는 점이 꼽힌다. 일본유신회는 지난 2012년 전국 정당으로는 이례적으로 당 본부를 오사카에 두면서 의원 정수를 109석에서 88석으로 삭감하고, 국회의원 세비를 30% 깎기로 했다. 마츠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사진=AFP)내가 낸 세금은 내가 돌려받는다는 인식을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일본유신회 소속 마츠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급식비를 무상화하고 사립고등학교는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자녀가 있는 가정에 피부로 와닿는 정책을 편 끝에 일본유신회는 노인들에게만 과잉복지를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는 자민당을 누르고 오사카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책에 있어서도 일본유신회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ABC텔레비전과 JX통신사가 7~10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0~77%는 일본유신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주민들에게 코로나19 재난 대응을 적극 설명하는 등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이유가 컸다. 실제 미디어 정치에 능한 요시무라 오사카부 지사는 공식 기자회견을 자주 열었고, 마이니치방송과 요미우리텔레비전 등 주요 언론들이 이를 중계했다. 거의 매일 TV에 얼굴을 비춘 결과, 47도도부현의 지사 중 일본인들이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아는 지자체장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와 요시무라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다만 일본유신회가 ‘오사카 안 개구리’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유신회의 도약이 요시무라 지사 개인의 인기에 기댈뿐더러 오사카 지역만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요시노리 마사히로 간사이대 교수는 “일본유신회는 수차례 이합집산을 거쳐 오사카에 특화된 정당이 됐다”며 “유권자들은 일본유신회를 오사카 정당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내다봤다.
  • 핼러윈에 치러진 日정치 심판의날…저조한 투표율 어쩌나[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1.01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할로윈을 맞아 시민들이 오징어게임 관리자 복장을 한 모습(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아베 신조부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까지…약 10년간 이어진 자민당 1강 체제가 유권자 심판의 날을 맞았다. 31일 제49회 중의원 선거가 열리면서다. 4년 만에 열린 이번 선거는 젊은 층의 중심 문화로 떠오르고 있는 핼러윈과도 겹쳤다. 젊은 층의 정치 무관심이 일본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만큼, 당국은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변장해도 투표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핼러윈을 즐기면서 투표에도 꼭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은 과연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했을까. 일본 매체 인카운트가 매년 핼러윈 시즌 때마다 수만 명의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일본판 이태원’, 도쿄 시부야에서 코스프레한 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투표했나요?”가운데 남성은 경찰 코스프레를 한 시민이 아니라 실제 경찰이다. 도쿄에서 열린 할로윈 퍼레이드에서 시민들에게 질서 유지를 당부하고 있다(사진=AFP)◇“올해 처음 투표”…코로나 대책·분배정책 등에 관심이날 시부야 센터가에서는 각양각색의 변장을 한 시민들이 발견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입었던 초록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22세 여성은 “사전투표에 다녀왔다”며 “코로나19 대책을 더 제대로 하고 세금의 쓰임새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호복과 가스통 호흡기를 단 22세 자영업자 남성도 “아침에 투표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올해 초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캐릭터들도 보였다.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로 분장한 30세 남성은 자민당의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이 10만엔(약 105만원) 상당의 지원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을 언급하며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투표로 공명당을 찍었다”고 전했다. 탄지로의 동료인 아가츠마 젠이츠 분장을 한 44세 남성은 “나는 가벼운 지적 장애가 있는데, 얼마 전 가두연설에서 기시다 총리의 연설을 듣고 자민당을 투표했다”며 약자 친화적인 정치를 해 줄 것을 호소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직전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열린 마지막 연설에서 “경제를 성장시켜 그 과실을 여러분의 소득으로 분배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귀멸의 칼날 공식 커플인 칸로지 미츠리와 이구로 오바나이 코스프레를 한 커플도 눈에 띄었다. 미츠리로 변신한 28세 여성은 “핼러윈 축제에는 매년 오고 있지만 투표장엔 올해 처음으로 갔다. 관심은 별로 없지만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다고 하니까”라며 “남자친구에게 물어보고 공산당을 찍었다”고 귀띔했다. 스파이더맨 가면을 쓴 55세 남성은 “당연히 (투표하러) 갔다. 지금은 경비원 일이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생활이 힘들다. 다시 한 번 지원금을 받으면 도움이 되니까”라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은 건 자민당뿐이다.일본 도쿄에서 변장한 채 할로윈 퍼레이드에 참석한 시민들(사진=AFP)◇“흥미 없다” “기대할 게 없다”…정치적 무관심도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있었다. 마녀와 가정부 분장을 한 19세 여성 두 명은 “가지 않았다. 흥미가 없다고나 할까…. 10만엔을 또 준다면 투표하고 싶다”며 “화제의 정치인이 있다면 투표하겠지만 정치에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22세 남성 유튜버 4인방은 각각 일본의 인기 만화 ‘뤼팽 3세’,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주술회전’, ‘유희왕’ 캐릭터 복장을 한 채 투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유는 이렇다.“핼러윈에 갈 생각에 투표는 가지 않았지만 세금이 너무 비싸다. 담배에 매기는 세금을 올리려면 흡연소도 늘리면 좋겠다. 정치는 알기 어렵고 누굴 뽑아야 할 지 모르겠다, 좀 더 젊은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가슴을 풀어헤친 팅커벨 차림을 한 36세 남성은 “매번 투표하러 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며 세일러문 코스프레를 한 30세 남성과 함께 사라졌다. 올해 중의원 선거 투표율은 55.79%를 기록했다. 4차례 연속 50%대의 낮은 수준이다(사진=AFP)◇50%대 투표율…콘크리트 지지층 발판 자민당 과반 확보핼러윈에 치러진 일본 정치 심판의 날 투표율은 과연 몇%를 기록했을까. 이날 오후 8시에 종료된 중의원 선거 소선거구 추정 투표율은 55.93% 안팎이다. 역대 두 번째로 낮았던 직전 2017년 중의원 선거(53.68%)보다는 올랐지만, 4회 연속 50%대로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낮은 투표율에 시민들도 실망한 분위기다. 한 유권자는 ‘흥미가 없어서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는 인터뷰 내용에 대해 “이게 본심이다.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거나 투표를 안 한 사람은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남자친구의 권유로 공산당에 투표했다는 인터뷰에는 “투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지지할 정당을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낮은 투표율은 집권 자민당에 유리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투표를 열심히 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자민당 지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 올해 NHK 설문조사에서는 투표하러 갈 것이라 답한 유권자가 85%에 달하면서 이번 선거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투표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261석을 가져갔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이 233석을 얻으면 승리로 간주한다고 밝혔는데, 자민당만으로도 이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일본 유권자들의 선택은 또다시 자민당이었다.
  • "이게 1등이라고?" 허술한 논문으로 상 받는 '공주의 남자'[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0.25
    마코 공주의 일반인 남자친구 고무로 케이(사진=죠세지신)[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스타벅스’가 있기 때문에 ‘스타백스(Star Bags)’라는 비슷한 상호를 쓰면 안 된다.”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콜롬비아 커피’라 속여 팔면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담긴 이 논문은 2021년 뉴욕주 변호사 모임이 주최한 논문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저자는 고무로 케이(30). 왕실 서열 1위 후미히토(55) 왕세제의 장녀 마코 공주의 동갑내기 약혼자다. 일본 주간지 죠세지신은 지난 3월 법률전문지 NY 비즈니스 법률저널에 게재된 고무로의 논문을 입수해 “경악스러운 내용”이라고 24일 보도했다. “공주의 신랑감으로 부적격”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그다. 이전까지 비난의 대상은 그의 어머니였다. 애인에게 빌린 400만엔을 갚지 않아 세금으로 운영되는 왕실에 도움의 손길을 청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비난의 화살이 고무로를 직접 향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르고 뉴욕주 법률 사무소에 취직이 정해지는 등 승승장구한 데에는 실력보다는 ‘공주의 남자’라는 후광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후미히토(文仁) 일본 왕세제(가운데)와 가족들. 왼쪽부터 장녀 마코(眞子) 공주, 장남 히사히토(悠仁) 왕자, 차녀 카코(佳子) 공주, 키코(紀子) 왕세제비(사진=AFP)고무로의 논문이 우승작으로 뽑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마코 공주의 생일 전날인 지난 22일이다. 지난해 이 공모전에서도 고무로가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2년 연속 경사에 여기저기서 축하가 날아들었다. 가부키 배우이자 유튜버인 이치카와 에비조(43)는 자신의 블로그에 “굉장해요! 축하합니다! 훌륭한 결과를 얻어 기쁘네요”라며 수상을 축하했다. 고무로와 마찬가지로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국제변호사 키요하라 히로시(50)도 “그는 이미 슈퍼맨”이라며 고무로가 전 국민의 비난 속 유학길에 올라서 학문적 성과를 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막상 논문 내용이 우승감이었는지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고무로는 논문에서 그가 유학한 포덤대의 이름을 딴 ‘포덤 커피’라는 가상의 커피전문점을 등장시킨 뒤 “포덤 커피의 오리지널 브랜드 원두커피가 에티오피아산인데 ‘콜롬비아 커피’라고 이름 붙이면 원산지를 잘못 표현하는 것이 되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스타백스 커피 클럽(Star Bags Coffee Club)’이라는 이름은 비슷한 이름의 회사(Starbucks)가 존재하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고도 밝혔다. “법을 이해함으로써 사업주는 잠재적인 소송을 피하고 다른 비즈니스와 차별화할 수 있다”고 마무리하는 이 논문에 대한 저널의 평가는 후하다. “기업이 고려해야 할 것을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극찬한 것을 보면 말이다. 고무로의 수상 소식에 일본인들은 “‘원산지 표기를 어기면 문제가 된다’, ‘스타벅스와 비슷한 이름은 붙이지 않는 게 좋다’는 논문이 1위인 공모전 수준이 의심된다”는 반응이다.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을 마친 고무로가 지난달 27일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AFP)고무로를 향한 부적격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가 아닌 법률사무소 직원이었던 그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 뉴욕 포덤대 로스쿨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일본 왕실 예비 부마(왕의 사위)’라는 후광이 작용한 덕분이라는 의혹이다. 이전까지는 반액 장학금을 제공하다 고무로가 유학할 때 돌연 학비를 전액 면제해 주는 등 규모가 커졌다는 점도 의혹을 키웠다. 오는 26일 마코 공주와 고무로는 전 국민의 결사반대에도 불구, 백년가약을 맺는다. 평민인 고무로와 결혼하면서 마코 공주는 ‘고무로 마코’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왕족 지위를 잃는다. 일본에서 최초로 왕실 관계자의 결혼을 반대하는 시위도 이날 열린다. 이 시위를 주최한 유튜버는 “고무로 케이 가족사에 대한 의혹 해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 것”이라며 50여 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가 올 예정이지만 이날만큼은 악천후를 뚫고 시위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오는 26일 고무로와 결혼하며 왕족 지위를 잃는 마코 공주. ‘고무로 마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사진=AFP)
  • 스가 이어 기시다…성역 없는 일본 정치 풍자[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0.18
    기시다 총리로 분장한 하마다 타이치(가운데)가 초보운전 마크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스가로 분장한 야마모토 텐신, 왼쪽은 아베를 맡은 후쿠모토 히데(사진=더뉴스페이퍼)[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로 분장한 한 코미디언이 초보운전 마크를 들고 등장한다. 특징이 없는 점이 특징인 기시다 총리를 나타내기 위해 새로 취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 15일 일본의 정치 풍자 콩트 집단 ‘더뉴스페이퍼’에서 기시다 총리 역할을 맡은 하마다 타이치(57)는 총리로서의 데뷔전을 치르며 “정계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코미디) 소재도 변화시켜야 하기에 기시다의 언행을 계속 관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새로운 총리를 신랄하게 풍자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더뉴스페이퍼는 멤버들이 정치인들 역할을 맡아 정치 패러디를 기본으로 하는 콩트 집단이다. 역할에 따라 배우가 고정되어 있으며 개그 철학은 다음과 같다. 음담패설은 안 한다. 그리고 지난 소재 재탕은 안 한다. 더뉴스페이퍼가 결성된 건 지난 1998년 쇼와 천황이 중병을 앓으면서다. 방송계에 가무 음곡 자제령이 떨어졌고, 연극예술인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코미디언 오디션 프로그램 ‘코미디 스타 탄생!’에 출연하던 3개 그룹이 합쳐 만든 게 지금의 더뉴스페이퍼다. 국내외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모든 이슈를 웃음으로 승화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항상 지금을 사는 사회 풍자 콩트 집단”이라는 소개가 걸맞게 33년째 명맥을 이어가는 더뉴스페이퍼의 장수 비결은 성역 없는 풍자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 후쿠모토 히데(50)는 아베 재임 시절인 지난 2016년 총리공관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아베로 분장한 그의 사진에 아베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비슷하다’며 댓글을 남긴 것이 인연이 됐다. 아베로 분장한 후쿠모토 히데(왼쪽)가 지난 2016년 아키에 여사의 초대로 총리관저를 방문한 모습(사진=후쿠모토 히데 블로그)훈훈한 방문이 이뤄졌지만 풍자는 멈추지 않았다. 후쿠모토가 아베 부부가 연루된 모리토모 학원 문제를 콩트에 언급하면서다. 지난 2017년 12월 아베로 분장한 후쿠모토는 아키에 여사가 벨기에에서 훈장을 받은 것을 두고 “아키에는 열심히 해 왔고 아직도 활약할 수 있다. 그래도 학교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며 아슬아슬한 대사를 치며 풍자를 이어갔다. 아베가 5200억원을 쏟아붓고도 코와 입술만 간신히 가리는 ‘아베마스크’로 곤욕을 치르는 모습도 후쿠모토가 놓칠 리 없었다. 아베가 건강 악화로 사퇴한 뒤에도 더뉴스페이퍼의 풍자는 이어졌다. 지난 1년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역할을 맡은 야마모토 텐신(59)은 정권의 불성실함과 기만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입력한 것 마냥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면서다. 코로나 관련 질문에도, 올림픽 질문에도 야마모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전하고 안심되는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것. 기자회견 때 원고를 보고 읽기만 한다는 비판을 받는 데 대해선 “총리를 그만두고 시간도 있고, 자민당에서도 푸대접받고 있으니 이제 말하기 학원이라도 다니려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나몰라패밀리가 ‘전남 영광 출신 나일론머스크’ 컨셉트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사진=나몰라패밀리 유튜브)한국에서는 정치인 소재로 한 풍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뉴스페이퍼처럼 설 자리를 잃은 코미디언들이 그룹을 결성해 콩트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SBS 출신 개그맨들이 모인 ‘나몰라패밀리’나 KBS와 SBS 출신 개그맨들이 결성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도 비슷하다. 나몰라패밀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한 줄에 테슬라와 암호화폐 주가가 출렁이는 데 따른 투자자들의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했으며, 피식대학은 코로나19 시국에 발맞춘 ‘B대면데이트’ 등으로 웃음을 유발했지만 정치 풍자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모습이다. 스가 분장을 한 채 인터뷰를 하는 야마모토 텐신(사진=서일본신문)1년간의 단명 총리인 스가 역할을 맡은 야마모토는 지난 17일 서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권 출범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번 총재 선거는 이상했다”며 뼈 있는 답변을 내놨다. “후보자가 공약과 정책을 설명하는 대신 의원들 호불호로 리더가 결정됐다. 내가 응원한 고노 다로는 여론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국민의 소리가 의원들에게 묻혀서 되겠는가? 총리를 그만뒀기 때문에 말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상하다.” 33년째 정치 풍자 외길을 걸어온 코미디언의 일침은 대선 후보를 정하는 경선에서 당심과 민심이 심각하게 엇박자를 보이고, 후보자의 정책이나 국가관을 논하기보다는 후보들을 둘러싼 의혹이 난무하는 한국에도 유효한 듯하다.
  • "납북일본인, 이미 끝난 일"…北논리에 발끈하는 日[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0.10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내각이 출범하자마자 불안불안한 모습이다. 20년만에 꼴찌 수준인 지지율로 출발하는가 하면, 국민에게 국가관을 밝히는 첫 국정연설에선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낙제점을 받았다.“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라고 야심차게 외쳤지만 정작 북한은 “이미 끝난 일을 왜 자꾸 들고오느냐며 첫 단추를 잘 채우라(북한 외무성)” 으름장을 놓고 있다.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 요코타 사키에씨와 부친 요코타 시게루씨(사진=AFP)◇“이미 다 끝난 문제”…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북한 입장은 이렇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방북 때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돌려 보내기까지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일본인 13명이 납치됐으며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은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일본으로 귀국했다. 다만 일본에선 납치 피해자가 이보다 많은 17명이라는 입장이다. 많이 들어본 논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한국에선 정작 당사자가 빠진 합의라며 비판했지만 일본은 “국가 간 합의이니 더는 문제 삼지 말라”며 오히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고집하던 논리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격이 됐다. 사실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한 북한 입장은 한결같다. 지난 2019년 북한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납치자 문제로 말하면 도리어 우리가 일본에 대고 크게 꾸짖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일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국가납치테러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우리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북한은 과거사 해결 없이는 일본과의 대화도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02년, 평양에서 사상 최초로 북일정상회담이 열렸다(사진=AFP)◇한때 좋았던 북한과 일본이 돌아선 이유는북한과 일본 관계가 좋을 때도 있었다. 19년 전인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상 최초로 북일 정상회담에 나서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납치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경제협력이 절실하던 북한이 통 크게 결단을 내리면 일본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김정일의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납치사실 인정은 우익들의 먹잇감이 됐다. 일본은 ‘전범 가해국’에서 ‘납치 피해국’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포지셔닝했으며, 수교 이전에 납치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우익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본 내 한국인 괴롭힘도 심해졌다. 이때 반북 여론에 편승해 반사이익을 얻은 인물이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장관이 2002년 북일정상회담에 동행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AFP)일본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가 대대적으로 떠오른 건 아베의 공이 컸다. 지난 1988년 자민당 간사장인 아베 신타로 의원이 아들이자 비서였던 아베가 “북한으로 납치된 딸을 구해 달라”며 찾아온 한 부모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아베의 관심은 1993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이어졌다. 도쿄대나 게이오대, 와세다대 출신이 대부분인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 세이케이대를 나온 아베를 두고 동료 정치인들이 “공부 못 하는 아베가 경제나 사회는 뒷전이고 정치불명의 납치 문제를 다룬다”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 인정하자 아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북한의 인권침해를 부각하며 우익 중심으로 “수교 이전에 일본인 납북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자 이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적극 이용한 것이다. ‘납치 문제는 아베가 가장 잘 안다’는 여론에 힘입어 아베는 고이즈미를 이어 2006년 일본 총리에 올랐다. ◇반북여론 힘입어 총리 오른 아베, 기시다가 계승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공격함으로써 아베는 리스크가 큰 선택을 했지만 뒷수습이 문제였다. 북한으로 납치된 일본인들을 귀환시키겠다고 주장해 총리에 올랐으니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돌아선 북한은 냉정했다. 지난 2019년 아베는 북일평양선언 당시 서명자인 고이즈미와 김정일 이름 대신 새 시대에 어울리게 서명자를 바꾸자 제안했다. 북한의 반응은 묵묵부답.2019년 미국과 북한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을 열었다(사진=AFP)그리고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북한의 앙금은 깊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중국 등 한반도 관련국과는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은 특수관계니까, 미국은 대면해야 할 정도로 적대관계라서, 중국은 동맹이라는 각각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1차와 2차 집권기를 합해 8년 반이라는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일본과는 현재가지도 미수교 상태다. 기시다가 출범하자마자 북한이 날을 세운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안보관에 있어서는 아베와 차이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 기시다다. 내각 면면만 봐도 그렇다. 일제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 현안을 맡은 주무장관들이 대부분 극우 인사로 채워지면서다. 아베부터 스가, 기시다까지 “김정은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북한 생각은 다르다. “북일 간 현안의 기본은 과거 일본이 조선사람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일본군 성노예생활 강요, 강제납치연행, 대학살과 같은 특대형 반인륜 범죄를 비롯해 우리 민족에게 끼친 헤아릴 수 없는 인적,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북한 외무성 입장에 비춰 볼 때, 북한은 조건 있는 대화를 바라고 있다.
  • 방역실패 조롱받던 日…한국보다 빠른 위드코로나 배경은[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 2021.10.03
    일본이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첫 주말인 지난 2일 한 가족이 카나가와 해변을 찾은 모습(사진=AFP)[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이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첫 주말을 맞았다. 반년 만에 전국에 내린 긴급사태와 중점조치를 전면 해제하자 일본 곳곳에선 활기가 돌았다. 교토에선 ‘고깃집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한 야키니쿠 가게가 백신 접종소로 지정되면서 2일 하루에만 200여명이 이곳을 찾아 백신을 맞았다. 길어진 긴급사태로 올 들어 14일밖에 정상영업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 음식점 사장은 아사히신문에 “음식점에서 접종을 진행함으로써 식당 이미지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일 교토의 한 야키니쿠 가게에서 직원이 모더나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사진=아사히신문)도쿄 아사쿠사도 활기를 되찾았다. 2008년부터 13년간 도쿄의 명물 인력거를 끌어온 우스이 마사히로(41)는 이날 “지난주보다 손님이 두 배 늘었다. 새로운 스타트를 끊은 느낌”이라며 주말 나들이객을 반겼다.태풍도 코로나19에 지친 일본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다. 제16호 태풍 민들레가 이날 일본으로 향했지만 도쿄 긴자에선 악천후를 뚫고 거리로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오후 7시 기준으로 유동인구는 일주일 전보다 오히려 11% 늘었다.도쿄 인력거꾼 우스이 마사히로 (사진=아사히신문)항공업계도 벌써부터 위드 코로나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1일 태풍 민들레 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 하네다 공항은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가족 5명과 함께 돗토리현을 여행하기 위해 공항을 찾은 한 40대 남성은 “긴급사태 선언 해제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항공에 따르면 9월 초반 5000명대에 머물렀던 국내선 하루 예약건수는 9월 말 5만명까지 10배가량 늘었다. 항공 관계자는 “기쁘다. (여행) 수요가 겨우 회복했다”며 “감염 예방에 힘써서 다시 긴급사태를 선언하는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백신이 없었던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PCR 검사 수 30%로 줄여…위드 코로나 위한 포석?일본이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건 확진자가 크게 줄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 8월 도쿄올림픽 직후 2만5000명을 넘던 신규 확진자 수는 현재 2000명을 밑돌고 있다. 1일 기준으로 일본 신규 확진자는 1817명으로 같은날 2247명이 양성 판정을 받은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불과 두 달만에 확진자가 92% 감소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백신 접종률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일본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전체의 60%를 넘는다. 하지만 폭증하는 확진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유전자증폭(PCR) 검사 수 자체를 줄여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근거를 무리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8월 9일 23만건 넘게 진행됐던 PCR 검사는 현재 하루 10만건도 되지 않는다. 1일 기준 일본 PCR 검사 수는 8만1440건으로 같은날 한국(16만1450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지난달 29일 차기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회장을 축하하고 있다(사진=AFP)◇“위드 코로나, 차기 정권 위한 스가의 퇴임 선물”왜 일본은 PCR 검사를 줄이면서까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것일까.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차기 정권을 향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와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스가 총리가 위드 코로나라는 출구전략을 폈다는 설명이다. 비록 자신은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재선을 단념했을지언정, 다음에 들어서는 정권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해 위드 코로나로의 방역 체계 전환을 꾀했다는 분석이다. 즉 현 시점에서 일본이 위드 코로나를 택한 건 감염이 늘어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규제를 완화해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배경에는 암울한 경제성장률이 자리잡고 있다. 올 3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5%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지난 7월부터 이어진 긴급사태 선언으로 두 달간 발생한 경제손실이 5조7000억엔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음식 및 숙박 등 대면 서비스업에서 최대 6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본 정부가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데에는 차기 정권에서 감염자가 다소 늘더라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개인과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된 긴급사태 선언으로 높아진 국민 피로감도 위드 코로나 전환에 한 몫 했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향한 고객의 폭언과 폭행 등 ‘카스하라(カスタマ+harassment)’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산업별 노동조합인 UA젠센이 작년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6.5%는 “코로나19 이후 카스하라가 늘었다”고 응답했다. “줄었다”고 답한 이들은 3.3%에 그쳤다. 카스하라 피해 경험자 30% 이상이 마스크의 결함이나 가게 안에서의 마스크 착용 거부와 관련해 괴롭힘당했다고 답했다. 장기화한 코로나19 사태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고충은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도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점원과 승무원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백신 접종증 제시 요구를 둘러싼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일본 이자카야 업계에선 위드 코로나로 수요가 늘 것을 대비, 인력 확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사진=AFP)◇위드 코로나 효과 기대하는 日외식업계이처럼 일본은 코로나19로 황폐해진 경제와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위드 코로나를 택했다. 외식 및 서비스 업계에선 위드 코로나로 인해 수요 회복을 기대하며 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본 이자카야 체인업체인 와타미는 고용을 유지하고 순차적으로 영업을 재개하며 올해 안에 인력 1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이자카야 체인 츠카다노조 역시 직원들에게 닭꼬치나 초밥 등 일식 장인들의 연수를 받게 하며 직원 교육에 나섰다. 업계에선 6개월 뒤 위드 코로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를 걸고 있다. 쿠로스 야스히로 로열홀딩스 사장은 “내년 4월쯤 소비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단숨에 소비활동이 활발해지진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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