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4년 5월28일 새벽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병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초동 대응이 빨랐던 터에 불은 진화를 시작한 지 수분 만에 진압됐다. 그런데 결과는 28명이 사상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나 또다시 터진 초대형 참사였다.체포된 방화범 김모씨.(사진=연합뉴스)불이 난 병원은 효사랑요양병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질환을 앓는 60~90대 노인이 요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었다. 의료진만 127명에 이르는 정부인증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규모가 있는 요양병원이었다.사건이 발생한 당시 환자 324명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불이 시작된 지점은 병원 별관 2층. 2층에는 환자 34명이, 1층에는 환자 44명이 입원한 상태였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모두가 잠든 새벽에, 거동이 불편하고 상황 판단이 더딘 노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화재에 노출됐다.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했지만 안타까운 희생이 커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결국 이 불로 환자(21명)와 간호조무사 2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화재는 방화였다. 범인은 이 병원에 입원한 80대 남성 김모씨. 발화 지점 별관 다용도실에 김씨가 들어갔다가 나온 직후에 불이 시작된 사실이 CCTV로 드러났다. 범행 한 달 전쯤 입소한 김씨는 주변 환자와 의료진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가족이 강제로 수면제를 먹여 입원시켰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자신은 치매 환자라서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CTV 화면을 보면 범행 당시 간호조무사의 눈을 피하고, 범행 도구인 라이터를 현장에 버리는 모습이 찍혔다.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범행이었다. 1심은 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한 김씨는 항소심 재판 중에 노환으로 사망했다.병원 측은 화를 키운 측면이 있었고, 이후에도 증거를 감추려고 시도했다. 현행법상 갖춰야 하는 소방 시설이 허술했다. 유족은 희생자의 사진을 공개하고 손목과 발목에 결박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정형 행동이나 자해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병원이 편의상 손발을 묶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환자 2명이 결박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피와 구조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잘잘못을 가리려는 수사가 시작되자 주요 증거를 없앴다.병원 이사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하고 수행한 병원 관계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이후 의료시설에 대한 소방 방재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일었다. 그러나 2018년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누전)로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했다. 입원 환자 가운데 요양시설 입소자의 피해가 컸다. 병원에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전재욱 기자2023.05.28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4년 5월28일 새벽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병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초동 대응이 빨랐던 터에 불은 진화를 시작한 지 수분 만에 진압됐다. 그런데 결과는 28명이 사상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나 또다시 터진 초대형 참사였다.체포된 방화범 김모씨.(사진=연합뉴스)불이 난 병원은 효사랑요양병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질환을 앓는 60~90대 노인이 요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었다. 의료진만 127명에 이르는 정부인증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규모가 있는 요양병원이었다.사건이 발생한 당시 환자 324명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불이 시작된 지점은 병원 별관 2층. 2층에는 환자 34명이, 1층에는 환자 44명이 입원한 상태였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모두가 잠든 새벽에, 거동이 불편하고 상황 판단이 더딘 노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화재에 노출됐다.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했지만 안타까운 희생이 커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결국 이 불로 환자(21명)와 간호조무사 2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화재는 방화였다. 범인은 이 병원에 입원한 80대 남성 김모씨. 발화 지점 별관 다용도실에 김씨가 들어갔다가 나온 직후에 불이 시작된 사실이 CCTV로 드러났다. 범행 한 달 전쯤 입소한 김씨는 주변 환자와 의료진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가족이 강제로 수면제를 먹여 입원시켰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자신은 치매 환자라서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CTV 화면을 보면 범행 당시 간호조무사의 눈을 피하고, 범행 도구인 라이터를 현장에 버리는 모습이 찍혔다.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범행이었다. 1심은 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한 김씨는 항소심 재판 중에 노환으로 사망했다.병원 측은 화를 키운 측면이 있었고, 이후에도 증거를 감추려고 시도했다. 현행법상 갖춰야 하는 소방 시설이 허술했다. 유족은 희생자의 사진을 공개하고 손목과 발목에 결박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정형 행동이나 자해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병원이 편의상 손발을 묶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환자 2명이 결박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피와 구조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잘잘못을 가리려는 수사가 시작되자 주요 증거를 없앴다.병원 이사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하고 수행한 병원 관계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이후 의료시설에 대한 소방 방재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일었다. 그러나 2018년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누전)로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했다. 입원 환자 가운데 요양시설 입소자의 피해가 컸다. 병원에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새벽에 찬물을 마시고 잠든 40대 남편이 죽었다. ‘죽음의 독극물’로 불리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아내였다.이미지=픽사베이.2021년 5월 27일 오전 7시 20분께.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A(당시 46세)씨가 갑자기 숨졌다. 하지만 사실 전날부터 A씨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전날인 5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 A씨는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아내 B(37)씨가 건넨 미숫가루를 먹고 출근했다. 그러나 30여 분 뒤 체한 것 같은 가슴 답답함을 느낀 A씨는 회사를 조퇴하고 그날 오후 3시 귀가했다.속이 좋지 않아 이날 내내 골골대던 A씨는 결국 저녁으로 아내가 만들어 준 흰죽을 먹었다. 그러나 A씨는 오히려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이날 오후 10시 38분께 응급실로 실려 갔다.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호전된 A씨는 27일 오전 1시께 귀가했다. 그러고선 아내가 건넨 찬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더이상 깨어나지 못했다.아내 B씨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 남편이 사망했다며 ‘의료 사고’를 주장했다. 그러나 40여 일 뒤 밝혀진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A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A씨는 사건 발생 수년 전 아내가 임신하자 그때부터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에 불법으로 니코틴 농도를 높인 이른바 ‘닉샷’ 용액을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B씨는 남편의 금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인에게 ‘A씨가 생전에 담배를 피웠다고 수사 기관에 얘기해 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B씨에게 1억여 원의 빚이 있었고 남편 A씨의 사망 보험금이 최대 1억 원 이상이라는 사실도 확인하자 경찰은 같은 해 11월 B씨를 A씨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결과 B씨는 자신의 내연 관계를 남편 A씨에게 들키자 A씨 명의로 가입된 사망 보험금 등을 노리고 A씨에게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흰죽, 찬물을 먹게 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 사망 직후 보험사에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니코틴은 주로 담배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순수한 니코틴은 무색무취의 액체로 물과 알코올에 잘 녹는다. 성인 기준 3.7~5.8mg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흔히 두 방울이 치사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의 재판을 받아 왔다. 그러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 중 미숫가루와 흰죽의 경우 A씨가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B씨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의료진 및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중독이 아닌 식중독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그러나 재판부는 B씨가 남편이 숨지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의 액상 니코틴을 구매한 점, 연초나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는 A씨 몸에서 치사 농도의 니코틴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A씨가 퇴원한 뒤 집에서 니코틴이 포함된 물을 마시고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연호 기자2023.05.27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새벽에 찬물을 마시고 잠든 40대 남편이 죽었다. ‘죽음의 독극물’로 불리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아내였다.이미지=픽사베이.2021년 5월 27일 오전 7시 20분께.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A(당시 46세)씨가 갑자기 숨졌다. 하지만 사실 전날부터 A씨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전날인 5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 A씨는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아내 B(37)씨가 건넨 미숫가루를 먹고 출근했다. 그러나 30여 분 뒤 체한 것 같은 가슴 답답함을 느낀 A씨는 회사를 조퇴하고 그날 오후 3시 귀가했다.속이 좋지 않아 이날 내내 골골대던 A씨는 결국 저녁으로 아내가 만들어 준 흰죽을 먹었다. 그러나 A씨는 오히려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이날 오후 10시 38분께 응급실로 실려 갔다.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호전된 A씨는 27일 오전 1시께 귀가했다. 그러고선 아내가 건넨 찬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더이상 깨어나지 못했다.아내 B씨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 남편이 사망했다며 ‘의료 사고’를 주장했다. 그러나 40여 일 뒤 밝혀진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A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A씨는 사건 발생 수년 전 아내가 임신하자 그때부터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에 불법으로 니코틴 농도를 높인 이른바 ‘닉샷’ 용액을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B씨는 남편의 금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인에게 ‘A씨가 생전에 담배를 피웠다고 수사 기관에 얘기해 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B씨에게 1억여 원의 빚이 있었고 남편 A씨의 사망 보험금이 최대 1억 원 이상이라는 사실도 확인하자 경찰은 같은 해 11월 B씨를 A씨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결과 B씨는 자신의 내연 관계를 남편 A씨에게 들키자 A씨 명의로 가입된 사망 보험금 등을 노리고 A씨에게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흰죽, 찬물을 먹게 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 사망 직후 보험사에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니코틴은 주로 담배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순수한 니코틴은 무색무취의 액체로 물과 알코올에 잘 녹는다. 성인 기준 3.7~5.8mg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흔히 두 방울이 치사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의 재판을 받아 왔다. 그러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 중 미숫가루와 흰죽의 경우 A씨가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B씨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의료진 및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중독이 아닌 식중독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그러나 재판부는 B씨가 남편이 숨지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의 액상 니코틴을 구매한 점, 연초나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는 A씨 몸에서 치사 농도의 니코틴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A씨가 퇴원한 뒤 집에서 니코틴이 포함된 물을 마시고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불이 나 20분 만에 1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철저한 인재(人災)였다.지난 2014년 5월 26일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모습. 사진=뉴스1.2014년 5월 26일 오전 9시 5분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 공간을 임차해 외식 업체들에 다시 내어 주는 푸드 코트(food court) 사업을 위해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불꽃이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A사, B사를 거쳐 개인 사업자에게 하도급돼 진행 중이던 가스 배관 작업 중, 누출된 가스에 용접 불꽃이 튀었다. 이는 곧 천장의 우레탄 폼으로 옮겨 붙었다.유독 가스를 품은 연기는 열기와 함께 급속히 퍼져 나갔지만 소방 장비들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스프링클러 배관의 물을 빼놓았으며 소화기조차 없었다. 연기 확산을 막아줄 방화 셔터도 전원이 차단돼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 자동 연동 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해 둬 화재 경보와 대피 안내 방송도 늦어졌다.유독 가스가 에스컬레이터 빈 공간을 타고 불과 58초 만에 지상 2층까지 불이 번졌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이후 4분 만인 오전 9시 9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130여 명의 소방관과 40여 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20분 만에 진화를 마무리했지만 9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을 입어 총 12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500억 원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사망자의 사인은 모두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이었다. 소방서의 출동과 진화 작업은 신속했으나 큰 인명 피해가 생긴 이유는 안전 불감증이었다. 가스 배관 공사를 용접 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했다. 건물·시설 관리 업체도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스프링클러 퇴수, 방화 셔터 전원 차단, 화재 자동 연동 장치 차단 등을 승인했다.화재로 터미널 건물과 연결돼 있는 수도권 전철 3호선 백석역에도 연기가 일부 유입돼 약 1시간 가량 양방향 모두 무정차 통과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완전 정상화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건물에 입점해 있던 홈플러스 고양터미널점과 메가박스 백석점도 몇 달 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같은 해 9월 17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는 안전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현장 소장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공사 하도급 업체 대표 등 18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장 소장 등 책임자 7명은 지난 2016년 7월 모두 실형이 확정됐다.해당 화재가 인재로 밝혀지면서 민사 소송도 제기됐다. 당시 터미널 1층 전산실에 전산 장비 납품·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던 롯데정보통신은 전산 장비가 훼손되자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하 2층에서 매장을 임차해 영업을 하던 임차인들도 CJ푸드빌 등에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지난해 4월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롯데정보통신이 제기한 소송에서 ‘CJ푸드빌이 롯데정보통신에 2억2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도 당시 지하 2층 매장 임차인들이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당시 화재 진압 때 배우 최우식과 조동혁이 투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일선 소방서에 배치돼 현직 소방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에 출연 중이었던 이들은 대원들과 함께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인명 구조에 직접 참여했다. 최우식은 방송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구부터 시작해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처럼 어두웠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연호 기자2023.05.26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불이 나 20분 만에 1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철저한 인재(人災)였다.지난 2014년 5월 26일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모습. 사진=뉴스1.2014년 5월 26일 오전 9시 5분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 공간을 임차해 외식 업체들에 다시 내어 주는 푸드 코트(food court) 사업을 위해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불꽃이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A사, B사를 거쳐 개인 사업자에게 하도급돼 진행 중이던 가스 배관 작업 중, 누출된 가스에 용접 불꽃이 튀었다. 이는 곧 천장의 우레탄 폼으로 옮겨 붙었다.유독 가스를 품은 연기는 열기와 함께 급속히 퍼져 나갔지만 소방 장비들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스프링클러 배관의 물을 빼놓았으며 소화기조차 없었다. 연기 확산을 막아줄 방화 셔터도 전원이 차단돼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 자동 연동 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해 둬 화재 경보와 대피 안내 방송도 늦어졌다.유독 가스가 에스컬레이터 빈 공간을 타고 불과 58초 만에 지상 2층까지 불이 번졌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이후 4분 만인 오전 9시 9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130여 명의 소방관과 40여 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20분 만에 진화를 마무리했지만 9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을 입어 총 12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500억 원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사망자의 사인은 모두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이었다. 소방서의 출동과 진화 작업은 신속했으나 큰 인명 피해가 생긴 이유는 안전 불감증이었다. 가스 배관 공사를 용접 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했다. 건물·시설 관리 업체도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스프링클러 퇴수, 방화 셔터 전원 차단, 화재 자동 연동 장치 차단 등을 승인했다.화재로 터미널 건물과 연결돼 있는 수도권 전철 3호선 백석역에도 연기가 일부 유입돼 약 1시간 가량 양방향 모두 무정차 통과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완전 정상화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건물에 입점해 있던 홈플러스 고양터미널점과 메가박스 백석점도 몇 달 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같은 해 9월 17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는 안전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현장 소장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공사 하도급 업체 대표 등 18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장 소장 등 책임자 7명은 지난 2016년 7월 모두 실형이 확정됐다.해당 화재가 인재로 밝혀지면서 민사 소송도 제기됐다. 당시 터미널 1층 전산실에 전산 장비 납품·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던 롯데정보통신은 전산 장비가 훼손되자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하 2층에서 매장을 임차해 영업을 하던 임차인들도 CJ푸드빌 등에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지난해 4월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롯데정보통신이 제기한 소송에서 ‘CJ푸드빌이 롯데정보통신에 2억2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도 당시 지하 2층 매장 임차인들이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당시 화재 진압 때 배우 최우식과 조동혁이 투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일선 소방서에 배치돼 현직 소방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에 출연 중이었던 이들은 대원들과 함께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인명 구조에 직접 참여했다. 최우식은 방송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구부터 시작해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처럼 어두웠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이혼 후 소송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은 강모 씨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 씨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록그룹 들국화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개사해 부르며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들과 상봉한 기쁨도 잠시, 그는 곧 아들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지난 2020년 2월 20일 고유정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교도소로 가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제주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고유정, 아이 게임하는 사이 전 남편 살해...범행 도구 등 사며 카드 포인트까지 적립2019년 5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고유정(사건 당시 36세)은 전 남편 강모(36) 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이고 그를 흉기로 살해한다. 6세 아들은 다른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고유정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전 남편 살해를 치밀하게 계획했다. 고유정은 같은 달 9일 법원이 강 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고 5월 25일을 면접기일로 정하자 곧 강 씨 살인 계획 수립에 착수한다.우선 10일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수면 유도제’,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뼈의 무게’,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7일엔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약 20km 떨어진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들어 있는 수면제 일주일 치를 처방 받았다. 톱 등 범행 도구 일부도 차에 실었다.다음 날인 18일엔 자신의 승용차를 여객선에 싣고 제주도에 입도했다. 인터넷을 통해 제주시 조천읍 소재 한 무인 펜션도 이날 예약했다. 범행 사흘 전인 22일, 고유정은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식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숫대야, 청소용 솔 등을 구매했다. 카드로 결제하며 본인의 휴대전화로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까지 적립했다.범행 당일인 25일 오후 5시께 전 남편 및 아들과 함께 예약한 펜션에 입실한 고유정은 이후 강 씨에게 졸피뎀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권유한다. 고유정은 카레를 먹고 잠든 강 씨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고유정은 범행 다음 날인 26일 아들을 제주시의 친정에 가 맡기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어 피해자의 시신 훼손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톱으로 시신을 토막 내다 오른손을 다쳤다.그러나 청소 도구로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을 들고 27일 오전 11시 30분 펜션에서 퇴실했다.◇두 차례 걸쳐 시신 훼손...의붓 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펜션을 나서고 몇 시간 뒤인 27일 오후 5시께는 강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전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성폭행 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의도였다. 고유정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전 남편이 덮치려 해 수박을 썰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한두 차례 휘둘렀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고유정은 펜션을 퇴실한 다음 날인 28일 오후 3시 30분께 범행에 사용한 물품을 샀던 마트를 다시 찾아 범행 후 남은 물건들을 환불했다. 오른손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던 고유정의 이때 모습은 해당 마트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같은 날 오후 6시께 고유정은 제주시 다른 마트에 들러 종량제 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을 샀고 이후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해 강 씨의 시신을 나눠 담았다.오후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탑승한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고유정이 배에 탄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9시 30분경부터 7분에 걸쳐 피해자 시신 일부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 등을 유기하는 모습이 여객선 CCTV에 포착됐다.고유정의 시신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완도에 내린 후 밤새 운전해 29일 오전 4시께 경기도 김포시의 친정아버지 소유 아파트로 갔다. 완도행 선상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했던 목공용 전기톱 등 물품의 배송지였다.고유정은 같은 날 인천의 한 가게로 직접 가서 사다리와 방진복, 커버링, 덧신, 덮개 등도 추가로 구입했다. 2차 시신 훼손 시 혈흔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이후 31일 오전 3시께 고유정은 시신된 훼손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종량제 봉투를 아버지 아파트 내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고유정은 다음 날인 6월 1일 충북 청주시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체포됐고 같은 달 5일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죄와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고유정은 같은 해 11월 5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다만 재혼한 남편의 아들(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에 줄곧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눈물의 호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고유정 사건’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환우 검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참혹하게 살해해야 사형이 선고되는 것이냐.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어 이 검사는 같은 해 6월 17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 강 씨가 어린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며 구형 도중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연호 기자2023.05.25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이혼 후 소송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은 강모 씨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 씨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록그룹 들국화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개사해 부르며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들과 상봉한 기쁨도 잠시, 그는 곧 아들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지난 2020년 2월 20일 고유정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교도소로 가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제주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고유정, 아이 게임하는 사이 전 남편 살해...범행 도구 등 사며 카드 포인트까지 적립2019년 5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고유정(사건 당시 36세)은 전 남편 강모(36) 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이고 그를 흉기로 살해한다. 6세 아들은 다른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고유정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전 남편 살해를 치밀하게 계획했다. 고유정은 같은 달 9일 법원이 강 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고 5월 25일을 면접기일로 정하자 곧 강 씨 살인 계획 수립에 착수한다.우선 10일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수면 유도제’,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뼈의 무게’,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7일엔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약 20km 떨어진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들어 있는 수면제 일주일 치를 처방 받았다. 톱 등 범행 도구 일부도 차에 실었다.다음 날인 18일엔 자신의 승용차를 여객선에 싣고 제주도에 입도했다. 인터넷을 통해 제주시 조천읍 소재 한 무인 펜션도 이날 예약했다. 범행 사흘 전인 22일, 고유정은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식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숫대야, 청소용 솔 등을 구매했다. 카드로 결제하며 본인의 휴대전화로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까지 적립했다.범행 당일인 25일 오후 5시께 전 남편 및 아들과 함께 예약한 펜션에 입실한 고유정은 이후 강 씨에게 졸피뎀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권유한다. 고유정은 카레를 먹고 잠든 강 씨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고유정은 범행 다음 날인 26일 아들을 제주시의 친정에 가 맡기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어 피해자의 시신 훼손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톱으로 시신을 토막 내다 오른손을 다쳤다.그러나 청소 도구로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을 들고 27일 오전 11시 30분 펜션에서 퇴실했다.◇두 차례 걸쳐 시신 훼손...의붓 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펜션을 나서고 몇 시간 뒤인 27일 오후 5시께는 강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전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성폭행 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의도였다. 고유정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전 남편이 덮치려 해 수박을 썰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한두 차례 휘둘렀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고유정은 펜션을 퇴실한 다음 날인 28일 오후 3시 30분께 범행에 사용한 물품을 샀던 마트를 다시 찾아 범행 후 남은 물건들을 환불했다. 오른손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던 고유정의 이때 모습은 해당 마트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같은 날 오후 6시께 고유정은 제주시 다른 마트에 들러 종량제 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을 샀고 이후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해 강 씨의 시신을 나눠 담았다.오후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탑승한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고유정이 배에 탄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9시 30분경부터 7분에 걸쳐 피해자 시신 일부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 등을 유기하는 모습이 여객선 CCTV에 포착됐다.고유정의 시신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완도에 내린 후 밤새 운전해 29일 오전 4시께 경기도 김포시의 친정아버지 소유 아파트로 갔다. 완도행 선상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했던 목공용 전기톱 등 물품의 배송지였다.고유정은 같은 날 인천의 한 가게로 직접 가서 사다리와 방진복, 커버링, 덧신, 덮개 등도 추가로 구입했다. 2차 시신 훼손 시 혈흔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이후 31일 오전 3시께 고유정은 시신된 훼손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종량제 봉투를 아버지 아파트 내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고유정은 다음 날인 6월 1일 충북 청주시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체포됐고 같은 달 5일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죄와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고유정은 같은 해 11월 5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다만 재혼한 남편의 아들(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에 줄곧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눈물의 호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고유정 사건’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환우 검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참혹하게 살해해야 사형이 선고되는 것이냐.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어 이 검사는 같은 해 6월 17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 강 씨가 어린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며 구형 도중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김치가 화근이었다. 지난해 5월 24일 밤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에 사는 A씨(52·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웃집 남성 B씨의 전화였다.이미지=연합뉴스.밤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B씨의 용건은 간단했다. 며칠 전 받은 김치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런데 이를 들은 A씨의 동거남 C씨(58)는 A씨가 전화를 끊은 후 A씨에게 “어떤 놈이냐, 왜 밤중에 남자한테 전화가 오냐”,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냐”며 거친 욕을 내뱉었다. 이 같은 폭언은 2시간 동안 지속됐다.사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C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A씨는 발가락과 갈비뼈, 척추뼈 등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C씨의 상습적인 폭행은 A씨의 지인은 물론 그의 아들까지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112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C씨의 행동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2020년부터는 C씨의 폭행이 줄어들었다.다음 날인 25일 C씨가 출근하자 A씨는 이웃 2명을 집으로 불러 전날 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상의했다. C씨는 퇴근 후 A씨 및 이웃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C씨는 그 자리에서도 “한밤중 남자가 전화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밤중에 전화하겠냐. 뭔가 반응을 보냈으니 했겠지“라며 화를 냈다. C씨가 술에 취해 잠들자 A씨는 지인 2명과 함께 B씨 집을 찾았다. A씨는 B씨에게 “밤에 뭐 하러 전화했느냐. 나 죽일 일 있냐”고 따졌다.집으로 돌아온 A씨. 그때 A씨의 뇌를 엄습한 것은 자신이 B씨에게 김치를 준 사실마저 C씨가 알게 되면 또다시 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A씨는 칼을 꺼내 자고 있던 C씨의 가슴을 찔렀다. 결국 C씨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고 A씨는 같은 해 6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지난해 10월 “살인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은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고,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진료 기록 등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서 오랜 기간 상습적인 폭언·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건 당일에도 폭언을 당했고 또다시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1회 찔렀지만 피해자가 사망해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A씨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하지만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3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서 당했던 가정 폭력이 직접적인 범행 원인이었다기보다 피해자의 당시 언행으로 촉발된 순간적인 분노와 함께 더 깊은 갈등으로 나아갈 경우 피해자의 평소 성행에 비춰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겠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연호 기자2023.05.24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김치가 화근이었다. 지난해 5월 24일 밤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에 사는 A씨(52·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웃집 남성 B씨의 전화였다.이미지=연합뉴스.밤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B씨의 용건은 간단했다. 며칠 전 받은 김치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런데 이를 들은 A씨의 동거남 C씨(58)는 A씨가 전화를 끊은 후 A씨에게 “어떤 놈이냐, 왜 밤중에 남자한테 전화가 오냐”,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냐”며 거친 욕을 내뱉었다. 이 같은 폭언은 2시간 동안 지속됐다.사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C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A씨는 발가락과 갈비뼈, 척추뼈 등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C씨의 상습적인 폭행은 A씨의 지인은 물론 그의 아들까지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112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C씨의 행동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2020년부터는 C씨의 폭행이 줄어들었다.다음 날인 25일 C씨가 출근하자 A씨는 이웃 2명을 집으로 불러 전날 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상의했다. C씨는 퇴근 후 A씨 및 이웃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C씨는 그 자리에서도 “한밤중 남자가 전화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밤중에 전화하겠냐. 뭔가 반응을 보냈으니 했겠지“라며 화를 냈다. C씨가 술에 취해 잠들자 A씨는 지인 2명과 함께 B씨 집을 찾았다. A씨는 B씨에게 “밤에 뭐 하러 전화했느냐. 나 죽일 일 있냐”고 따졌다.집으로 돌아온 A씨. 그때 A씨의 뇌를 엄습한 것은 자신이 B씨에게 김치를 준 사실마저 C씨가 알게 되면 또다시 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A씨는 칼을 꺼내 자고 있던 C씨의 가슴을 찔렀다. 결국 C씨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고 A씨는 같은 해 6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지난해 10월 “살인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은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고,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진료 기록 등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서 오랜 기간 상습적인 폭언·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건 당일에도 폭언을 당했고 또다시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1회 찔렀지만 피해자가 사망해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A씨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하지만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3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서 당했던 가정 폭력이 직접적인 범행 원인이었다기보다 피해자의 당시 언행으로 촉발된 순간적인 분노와 함께 더 깊은 갈등으로 나아갈 경우 피해자의 평소 성행에 비춰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겠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2009년 5월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그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침통한 심정을 억누른 채 차분한 어조로 이 같이 ‘노무현 서거’ 소식을 발표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서둘러 호외를 찍어 서울 도심에 뿌렸다.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거행된 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가 끝난 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자연인 노무현은 이날 오전 5시 21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고 아래아 한글 파일로 그것을 저장한다. 그러고선 경호원 이모 씨를 불러 5시 47분께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출발한다.산책길에 마을 주민을 만나 마늘 작황에 대한 주제로 짧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0분께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후 6시 14분께 경호원 이 씨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법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약 3분 후 돌아온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근처 등산로 등을 수색하던 이 씨는 6시 51분께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 사망 판정을 받는다.그는 열다섯 줄짜리 짧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등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풍운아 노무현’,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던 그는 이렇게 향년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그가 투신을 선택한 표면적 원인은 검찰 수사로 인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정관계 로비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로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본인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이런 와중에 ‘논두렁 시계’ 등 망신 주기 식 보도까지 나오자 그의 입장에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결국 이 보도가 나오고 10일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해 안타깝고 애통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수사 기록은 영구히 보존되고 추후 역사적 평가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는데 전국에 총 335곳(지방자치단체 운영 102개, 민간 운영 233개)의 분향소가 설치됐고 국민장 장의위원회 추산 약 500만 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았다.그의 사망은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당 일각에서조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악화됐다.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친노 세력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뜻이 없었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이후 정계에 입문해 결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시민 작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방송된 한 종합편성채널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현실 정치에서 사실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한편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9년 8월 18일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연호 기자2023.05.23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2009년 5월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그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침통한 심정을 억누른 채 차분한 어조로 이 같이 ‘노무현 서거’ 소식을 발표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서둘러 호외를 찍어 서울 도심에 뿌렸다.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거행된 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가 끝난 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자연인 노무현은 이날 오전 5시 21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고 아래아 한글 파일로 그것을 저장한다. 그러고선 경호원 이모 씨를 불러 5시 47분께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출발한다.산책길에 마을 주민을 만나 마늘 작황에 대한 주제로 짧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0분께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후 6시 14분께 경호원 이 씨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법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약 3분 후 돌아온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근처 등산로 등을 수색하던 이 씨는 6시 51분께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 사망 판정을 받는다.그는 열다섯 줄짜리 짧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등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풍운아 노무현’,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던 그는 이렇게 향년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그가 투신을 선택한 표면적 원인은 검찰 수사로 인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정관계 로비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로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본인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이런 와중에 ‘논두렁 시계’ 등 망신 주기 식 보도까지 나오자 그의 입장에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결국 이 보도가 나오고 10일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해 안타깝고 애통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수사 기록은 영구히 보존되고 추후 역사적 평가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는데 전국에 총 335곳(지방자치단체 운영 102개, 민간 운영 233개)의 분향소가 설치됐고 국민장 장의위원회 추산 약 500만 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았다.그의 사망은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당 일각에서조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악화됐다.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친노 세력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뜻이 없었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이후 정계에 입문해 결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시민 작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방송된 한 종합편성채널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현실 정치에서 사실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한편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9년 8월 18일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22년 5월22일 새벽 5시1분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피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여성은 귀가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뒤따라온 30대 남성이 ‘돌려차기’로 여성의 뒤통수(후두부)를 찼다. 정신을 잃은 여성은 남성에게 끌려갔다. CCTV가 잡히지 않은 사각지대였다. 8분 뒤 남성은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8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사건 현장이 담긴 CCTV.(사진=jtbc)여성에게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지인과 약속이 있었고 여느 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16주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머리와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다 병원에 실려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보고서야 연유를 알았다. 그러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여성의 기억을 날린 범인은 30대 남성 A씨였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A씨는 여성 뒤에서 돌연 나타나 돌려차기로 여성의 머리를 공격했다. 경호업체에서 일하는 건장한 남성의 일격을 받은 여성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쓰러진 여성에게 남성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여성이 정신을 완전히 잃자 남성은 여성을 둘러업고서 사라졌다. 건물 CCTV는 이후로 8분 동안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놓쳤다. 사각지대로 들어간 것이다. 8분이 지나고 남성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모습만 잡혔다.남성은 얼마 가지 않아 붙잡혔다. 유년기부터 강도와 강간, 폭행 등 혐의로 소년원을 드나든 전과 18범이었다. 이번 범행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석 달 만에 저지른 것이다. 붙잡히고서는 피해자가 남성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긴 머리에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헷갈렸다는 것이다.그런데 붙잡힌 남성의 휴대전화를 뒤져보니, ‘강간’을 검색한 기록이 나왔다. 피해자가 쓰러진 채 발견된 당시 모습과 연관이 있었다. 상의가 들린 상태였고, 바지는 벗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미수이다. 남성이 성폭행 혐의는 거부하고, 여성은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CCTV 같은 증거가 부족한데다, 수사 당시 증거를 날려버린 탓이 컸다.1심은 남성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검찰이 20년을 구형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이 타의로 벗겨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항소심 결과는 이달 재판을 마지막으로 이르면 내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피해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죽하면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폭력적인 성향의 A씨가 12년 형을 복역하고 출소하면 40대에 불과한데, 보복이 두렵다는 취지다.
전재욱 기자2023.05.22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22년 5월22일 새벽 5시1분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피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여성은 귀가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뒤따라온 30대 남성이 ‘돌려차기’로 여성의 뒤통수(후두부)를 찼다. 정신을 잃은 여성은 남성에게 끌려갔다. CCTV가 잡히지 않은 사각지대였다. 8분 뒤 남성은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8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사건 현장이 담긴 CCTV.(사진=jtbc)여성에게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지인과 약속이 있었고 여느 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16주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머리와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다 병원에 실려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보고서야 연유를 알았다. 그러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여성의 기억을 날린 범인은 30대 남성 A씨였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A씨는 여성 뒤에서 돌연 나타나 돌려차기로 여성의 머리를 공격했다. 경호업체에서 일하는 건장한 남성의 일격을 받은 여성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쓰러진 여성에게 남성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여성이 정신을 완전히 잃자 남성은 여성을 둘러업고서 사라졌다. 건물 CCTV는 이후로 8분 동안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놓쳤다. 사각지대로 들어간 것이다. 8분이 지나고 남성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모습만 잡혔다.남성은 얼마 가지 않아 붙잡혔다. 유년기부터 강도와 강간, 폭행 등 혐의로 소년원을 드나든 전과 18범이었다. 이번 범행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석 달 만에 저지른 것이다. 붙잡히고서는 피해자가 남성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긴 머리에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헷갈렸다는 것이다.그런데 붙잡힌 남성의 휴대전화를 뒤져보니, ‘강간’을 검색한 기록이 나왔다. 피해자가 쓰러진 채 발견된 당시 모습과 연관이 있었다. 상의가 들린 상태였고, 바지는 벗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미수이다. 남성이 성폭행 혐의는 거부하고, 여성은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CCTV 같은 증거가 부족한데다, 수사 당시 증거를 날려버린 탓이 컸다.1심은 남성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검찰이 20년을 구형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이 타의로 벗겨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항소심 결과는 이달 재판을 마지막으로 이르면 내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피해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죽하면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폭력적인 성향의 A씨가 12년 형을 복역하고 출소하면 40대에 불과한데, 보복이 두렵다는 취지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0년 5월21일. 경기 과천시에 있는 가정집에서 중년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부부의 차남 이은석씨. 존속살해 자체가 패륜이지만, 범행 수법이 가족 사이에 벌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참혹하고 잔혹했다.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까지 한 것이다. 이씨의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은석씨.이씨는 1976년 유복한 가정에서 2남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군장교 출신이었고, 모친도 이화여대를 나온 모두 엘리트였다. 그런데 부부의 양육과 훈육 방식은 엘리트 방식이 아니었다. 이씨의 학습이 더디고 행동이 굼뜰 때마다 어김없이 언어와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다. 학대였다.유치원부터 시작된 학대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대인기피증세를 보였고 학교생활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렸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씨는 뛰어난 학업 능력은 보여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돌아온 건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느냐’는 부부의 냉대였다.대학 생활도 순탄지 못했다. 병역을 마치고자 입대한 군에서도 소극적인 성격으로 고생했다. 부모는 이씨가 복무하는 3년 기간 동안 면회를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무사히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부모의 인격 모독성 폭언은 계속됐다.사건 발생 열흘 전이었다. 이씨는 모친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간 순종했던 이씨가 부모에게 난생 처음으로 맞서는 순간이었다. 가출에 가까운 독립을 선언한 형에게 부부가 아파트를 장만해준 데 대한 서운함에서 시작한 언쟁은 과거 자신에게 행해진 학대로까지 번졌다. 모친은 지난 일을 꺼내드냐면서 뭐라고 했고, 이후 이씨와 모친의 언쟁을 전해들은 부친은 이씨를 나무랐다.부모와 대화로써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한 이씨는 절망에 빠졌다. 그날 이후 방문을 걸어잠그고 두문불출했다. 결국 이씨는 부모를 살해하고 훼손해서 유기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형은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이씨가 다닌 성당의 신자들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형량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확정됐다. 현재 이씨는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이씨는 존속살해 가해자이자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사건이 터지고 사회의 공분은 전자에 집중돼 가혹한 시선을 보냈지만, 이후 후자를 따져보려는 움직임이 뒤따랐다. 심리학자 이훈구 박사(전 연세대 교수)가 이씨를 면담하고 펴낸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책 제목은 이씨가 경찰조사에서 한 진술이었다.
전재욱 기자2023.05.21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0년 5월21일. 경기 과천시에 있는 가정집에서 중년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부부의 차남 이은석씨. 존속살해 자체가 패륜이지만, 범행 수법이 가족 사이에 벌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참혹하고 잔혹했다.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까지 한 것이다. 이씨의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은석씨.이씨는 1976년 유복한 가정에서 2남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군장교 출신이었고, 모친도 이화여대를 나온 모두 엘리트였다. 그런데 부부의 양육과 훈육 방식은 엘리트 방식이 아니었다. 이씨의 학습이 더디고 행동이 굼뜰 때마다 어김없이 언어와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다. 학대였다.유치원부터 시작된 학대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대인기피증세를 보였고 학교생활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렸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씨는 뛰어난 학업 능력은 보여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돌아온 건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느냐’는 부부의 냉대였다.대학 생활도 순탄지 못했다. 병역을 마치고자 입대한 군에서도 소극적인 성격으로 고생했다. 부모는 이씨가 복무하는 3년 기간 동안 면회를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무사히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부모의 인격 모독성 폭언은 계속됐다.사건 발생 열흘 전이었다. 이씨는 모친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간 순종했던 이씨가 부모에게 난생 처음으로 맞서는 순간이었다. 가출에 가까운 독립을 선언한 형에게 부부가 아파트를 장만해준 데 대한 서운함에서 시작한 언쟁은 과거 자신에게 행해진 학대로까지 번졌다. 모친은 지난 일을 꺼내드냐면서 뭐라고 했고, 이후 이씨와 모친의 언쟁을 전해들은 부친은 이씨를 나무랐다.부모와 대화로써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한 이씨는 절망에 빠졌다. 그날 이후 방문을 걸어잠그고 두문불출했다. 결국 이씨는 부모를 살해하고 훼손해서 유기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형은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이씨가 다닌 성당의 신자들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형량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확정됐다. 현재 이씨는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이씨는 존속살해 가해자이자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사건이 터지고 사회의 공분은 전자에 집중돼 가혹한 시선을 보냈지만, 이후 후자를 따져보려는 움직임이 뒤따랐다. 심리학자 이훈구 박사(전 연세대 교수)가 이씨를 면담하고 펴낸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책 제목은 이씨가 경찰조사에서 한 진술이었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9년 5월20일. 광주 북구에 있는 교회 앞 골목길에서 40대 여성이 흉기로 살해됐다. 예배를 마치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피해자가 혼자일 때를 노린, 밤늦은 9시20분께 벌어진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그대로였다. 원한관계 탓에 발생한 살인이 의심됐다. 그러나 피해자는 의사로 일하던 전문직 여성으로서 주변에 원한 살 일이 딱히 없었다.연행되는 박모씨.(사진=뉴시스)경찰이 그해 7월 범인의 집을 덮쳤을 때, 범인은 옷을 빨고 있었다. 자기 옷에 묻은 피해자의 핏자국을 지우던 중이었다. 경찰은 박씨의 차량과 옷가지에서는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하고 피의자로 입건했다. 여죄를 캐보니 사건 발생 12일 전에 발생한 여성 교인 살해 사건과 동일범이었다.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싫어서”였다.이 사건 범인은 당시 30대 남성 박모씨. 박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탓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어느새 일을 놓고 무직자로 지냈다. 부모의 권유로 2008년 7월 몽골인 여성과 국제결혼했다. 박씨의 부인은 고국에 대한 향수 탓에 한국 생활을 힘겨워했다. 부부는 다투는 날이 잦았다. 2009년 4월 박씨의 부인은 고국으로 돌아갔다.부인을 쫓아 몽골에 간 박씨는 처가에서 면박을 당했다. 처가 식구는 부인이 “성당에 간 이후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찾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박씨의 부인은 성당 신자였다. 그러나 박씨는 같은 종교인이던 처가 식구가 아내를 해친 것으로 오해했다. 종교인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을 품기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한국으로 돌아온 박씨는 종교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교회와 성당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2009년 5월8일 첫 범행을 저질렀다. 광주 한 성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40대 여성이 피해자였다. 박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고는 앞서 교회 앞에서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종교인 가운데 여성만 노린 ‘묻지마 살인’에 종교계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들썩였다. 법원은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수법이 잔인하고, 범행을 꾸미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울러 범행도구를 저수지에 버려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피묻은 옷을 빨래하다가 붙잡힌 것으로 고려해도 죄질이 좋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박씨의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불허’를 권고 의견으로 달았다. 박씨가 수형생활을 거치면서 가석방되지 않도록 법원 입장을 확실히 해둔 것이다.
전재욱 기자2023.05.2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9년 5월20일. 광주 북구에 있는 교회 앞 골목길에서 40대 여성이 흉기로 살해됐다. 예배를 마치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피해자가 혼자일 때를 노린, 밤늦은 9시20분께 벌어진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는 그대로였다. 원한관계 탓에 발생한 살인이 의심됐다. 그러나 피해자는 의사로 일하던 전문직 여성으로서 주변에 원한 살 일이 딱히 없었다.연행되는 박모씨.(사진=뉴시스)경찰이 그해 7월 범인의 집을 덮쳤을 때, 범인은 옷을 빨고 있었다. 자기 옷에 묻은 피해자의 핏자국을 지우던 중이었다. 경찰은 박씨의 차량과 옷가지에서는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하고 피의자로 입건했다. 여죄를 캐보니 사건 발생 12일 전에 발생한 여성 교인 살해 사건과 동일범이었다.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싫어서”였다.이 사건 범인은 당시 30대 남성 박모씨. 박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탓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어느새 일을 놓고 무직자로 지냈다. 부모의 권유로 2008년 7월 몽골인 여성과 국제결혼했다. 박씨의 부인은 고국에 대한 향수 탓에 한국 생활을 힘겨워했다. 부부는 다투는 날이 잦았다. 2009년 4월 박씨의 부인은 고국으로 돌아갔다.부인을 쫓아 몽골에 간 박씨는 처가에서 면박을 당했다. 처가 식구는 부인이 “성당에 간 이후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찾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박씨의 부인은 성당 신자였다. 그러나 박씨는 같은 종교인이던 처가 식구가 아내를 해친 것으로 오해했다. 종교인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을 품기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한국으로 돌아온 박씨는 종교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교회와 성당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2009년 5월8일 첫 범행을 저질렀다. 광주 한 성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40대 여성이 피해자였다. 박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고는 앞서 교회 앞에서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종교인 가운데 여성만 노린 ‘묻지마 살인’에 종교계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들썩였다. 법원은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수법이 잔인하고, 범행을 꾸미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울러 범행도구를 저수지에 버려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피묻은 옷을 빨래하다가 붙잡힌 것으로 고려해도 죄질이 좋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박씨의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불허’를 권고 의견으로 달았다. 박씨가 수형생활을 거치면서 가석방되지 않도록 법원 입장을 확실히 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