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김영환

기자

그해 오늘

  • “이승만 하야하라”…4.19혁명 공로자 처우는? [그해 오늘]
    4.19혁명 기록물 자료(사진=문화재청)[이데일리 김형일 기자]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해 4.19혁명으로 불리는 민주 항쟁을 일으켰다. 4.19혁명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3.15마산의거에 참여했던 김 열사는 실종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전국적인 시위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당시 김 열사와 학생, 시민은 3월 15일 실시된 부정선거를 문제 삼았다. 자유당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함 바꿔치기 등으로 자행했고, 학생과 시민은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열사의 죽음에도 희생은 반복됐다.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에 몰려들었지만, 무력 진압으로 100여명의 사망자와 45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거와 대통령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은 다시 모여들었고, 서울 소재 대학교수 259명은 대통령 등이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국 12년간의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방송을 통해 직접 하야의 뜻을 밝혔으며 다음날 대통령사임서도 국회에 제출했다. 5월 29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국 하와이로 떠났고, 1965년 7월 19일 현지 요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1989년 작고한 김 열사의 모친 권찬주 여사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는 4.19혁명 63년째인 작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특히 국가보훈처는 권 여사가 3.15의거 이후 김 열사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기관의 부당한 행위에 항거해 4.19혁명 확산에 기여했다고 봤다. 김 열사 시신을 발견해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도 작년에서야 3.15의거 참여자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김 열사 시신을 배에 싣고 부두로 인양한 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3년 후인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김 열사 최루탄 제거 수술에 참여한 의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김 열사 시신 상태와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 외곽 시위 상황, 부상자 이송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3.15의거 진상규명에도 참여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정된 4.19혁명 유공자는 작년 기준 1164명이다. 대구 2.28민주운동,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 참여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4·19혁명을 하루 앞둔 18일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형일 기자 2024.04.19
    4.19혁명 기록물 자료(사진=문화재청)[이데일리 김형일 기자]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해 4.19혁명으로 불리는 민주 항쟁을 일으켰다. 4.19혁명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3.15마산의거에 참여했던 김 열사는 실종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전국적인 시위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당시 김 열사와 학생, 시민은 3월 15일 실시된 부정선거를 문제 삼았다. 자유당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함 바꿔치기 등으로 자행했고, 학생과 시민은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열사의 죽음에도 희생은 반복됐다.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에 몰려들었지만, 무력 진압으로 100여명의 사망자와 45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거와 대통령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은 다시 모여들었고, 서울 소재 대학교수 259명은 대통령 등이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국 12년간의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방송을 통해 직접 하야의 뜻을 밝혔으며 다음날 대통령사임서도 국회에 제출했다. 5월 29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국 하와이로 떠났고, 1965년 7월 19일 현지 요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1989년 작고한 김 열사의 모친 권찬주 여사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는 4.19혁명 63년째인 작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특히 국가보훈처는 권 여사가 3.15의거 이후 김 열사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기관의 부당한 행위에 항거해 4.19혁명 확산에 기여했다고 봤다. 김 열사 시신을 발견해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도 작년에서야 3.15의거 참여자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김 열사 시신을 배에 싣고 부두로 인양한 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3년 후인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김 열사 최루탄 제거 수술에 참여한 의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김 열사 시신 상태와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 외곽 시위 상황, 부상자 이송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3.15의거 진상규명에도 참여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정된 4.19혁명 유공자는 작년 기준 1164명이다. 대구 2.28민주운동,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 참여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4·19혁명을 하루 앞둔 18일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에베레스트 최악의 눈사태로 16명 사망…역대 최악의 인명사고[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4년 4월 18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6명이 사망했다. 눈사태는 이날 오전 6시 45분께 정상(8850m)까지 오르는 산행 중 가장 인기 있는 경로의 베이스캠프 바로 위쪽 ‘팝콘필드’로 불리는 해발 5800m 지점에서 일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 사고로 16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모두 내달 초 기상 여건이 좋아져 등반객이 몰릴 성수기에 앞서 등반용 밧줄을 고치러 갔다던 셰르파로 알려졌다.사고 원인은 아이스폴 상부에 있는 ‘세락(serac)’ 붕괴 때문이었다. 세락은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집채보다 크다. 산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세락을 통과하는 것이다.이번 사고는 지난 1996년 눈폭풍으로 8명이 숨진 이후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인명피해로는 최악의 규모다. 사고 지역은 위험지역인 쿰부 얼음폭포로 가는 길목의 ‘팝콘필드’라 불리는 곳으로 에베레스트 등반객들의 단골 등반로에 있다.에베레스트 정상은 5월 15일부터 30일까지가 오르기 가장 좋은 시점이어서 산악인들이 4월부터 에베레스트를 찾아 고도 적응 훈련을 한다. 5월부터 두 달간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받아둔 외국 6 334명이며 400명의 셰르파가 동반 등정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에 의해 처음 고지가 밟힌 뒤 현재까지 3000명 이상이 정상에 올랐고, 약 250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턱에서 희생됐다.
    김민정 기자 2024.04.18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4년 4월 18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6명이 사망했다. 눈사태는 이날 오전 6시 45분께 정상(8850m)까지 오르는 산행 중 가장 인기 있는 경로의 베이스캠프 바로 위쪽 ‘팝콘필드’로 불리는 해발 5800m 지점에서 일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 사고로 16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모두 내달 초 기상 여건이 좋아져 등반객이 몰릴 성수기에 앞서 등반용 밧줄을 고치러 갔다던 셰르파로 알려졌다.사고 원인은 아이스폴 상부에 있는 ‘세락(serac)’ 붕괴 때문이었다. 세락은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집채보다 크다. 산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세락을 통과하는 것이다.이번 사고는 지난 1996년 눈폭풍으로 8명이 숨진 이후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인명피해로는 최악의 규모다. 사고 지역은 위험지역인 쿰부 얼음폭포로 가는 길목의 ‘팝콘필드’라 불리는 곳으로 에베레스트 등반객들의 단골 등반로에 있다.에베레스트 정상은 5월 15일부터 30일까지가 오르기 가장 좋은 시점이어서 산악인들이 4월부터 에베레스트를 찾아 고도 적응 훈련을 한다. 5월부터 두 달간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받아둔 외국 6 334명이며 400명의 셰르파가 동반 등정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에 의해 처음 고지가 밟힌 뒤 현재까지 3000명 이상이 정상에 올랐고, 약 250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턱에서 희생됐다.
  •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친구 남친에 강제 키스한 女에 '일침' [그해 오늘]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혀는 입안에 있는 신체 부분으로 통상 내밀지 않으면 절단되기 어렵다”2015년 4월 17일, 대구지법 제3형사부(김형한 부장판사)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한 20대 여성에 한 말이다.해당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박모(당시 23) 씨는 2013년 6월 서울 영등포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일행인 친구의 남자친구가 만취해 쓰러지자 부축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사건 당시 남성이 박 씨의 혀를 깨물었고, 박 씨는 혀 일부가 절단됐다.박 씨는 남성에게 키스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대구지법은 박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남성을 강제추행한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원심과 같은 벌금 300만 원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특히 대구지법은 “특히 물어뜯는 상해 행위는 치아를 사용해 이뤄지는 것임에도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다는 여성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한편, 상대 남성은 박 씨의 혀를 깨물어 일부가 절단되는 중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이 남성은 “강제추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지혜 기자 2024.04.17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혀는 입안에 있는 신체 부분으로 통상 내밀지 않으면 절단되기 어렵다”2015년 4월 17일, 대구지법 제3형사부(김형한 부장판사)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한 20대 여성에 한 말이다.해당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박모(당시 23) 씨는 2013년 6월 서울 영등포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일행인 친구의 남자친구가 만취해 쓰러지자 부축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사건 당시 남성이 박 씨의 혀를 깨물었고, 박 씨는 혀 일부가 절단됐다.박 씨는 남성에게 키스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대구지법은 박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남성을 강제추행한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원심과 같은 벌금 300만 원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특히 대구지법은 “특히 물어뜯는 상해 행위는 치아를 사용해 이뤄지는 것임에도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다는 여성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한편, 상대 남성은 박 씨의 혀를 깨물어 일부가 절단되는 중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이 남성은 “강제추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거짓, 또 거짓말...불륜 발각만 수차례, 결국 총 든 남편 [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13년 4월 16일. 천안의 한 도로에서 40대 남성 A씨가 공기총을 치켜들었다. 그는 30대 남성 B씨를 향해 머리와 등에 총을 쐈고, B씨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숨졌다. A씨는 119에 스스로 신고를 하고 순순히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며 “B씨는 아내의 내연남”이라고 말했다.A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MBN 방송 갈무리)A씨 가정의 비극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A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며 아내 C씨와 자주 다퉜고, C씨는 수영장에서 만난 미혼 남성 B씨를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B씨와 C씨의 내연 관계는 오래지 않아 A씨에게 발각됐다.A씨는 수영장 앞으로 찾아가 B씨에 “불장난이면 여기서 끝내라”며 경고를 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이혼해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B씨는 C씨와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두 사람은 A씨 몰래 잦은 만남을 이어갔다.결국 A씨는 아내와 B씨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아내의 가족에게도 불륜 사실을 알렸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아내 C씨가 “다시는 B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자 어린 자녀가 눈에 밟혀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두 번의 용서에도 두 사람은 또 만났다. 2013년 1월 A씨는 또다시 아내가 B씨를 만난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에 휩싸인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봐줄 만큼 봐줬으면 그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이번에도 A씨는 “정리했다”는 아내의 말을 믿었지만, 그 해 4월에 또 두 사람이 만난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또 빌었고, A씨는 그 약속을 믿었다.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4월 15일에는 A씨가 아내를 미행해 한 모텔에서 차를 주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노한 A씨는 아내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B씨에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전화를 피했고, A씨는 다음날인 4월 16일 새벽 아내의 휴대전화로 B씨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B씨가 받았다.B씨는 아내와 만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가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A씨는 이미 두 사람의 반복된 기만에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A씨는 B씨를 만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만약 B씨가 거절하면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안에 보관하던 공기총을 꺼내 들었다.B씨는 A씨와 만나 순순히 각서를 써 줬다. 이에 A씨는 민형사상 책임을 B씨에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 줬다. 마지막으로 A씨는 B씨에 “내 아내를 만날 것이냐”고 물었는데, B씨는 이를 비꼬는 듯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답했다. 이 한 마디로 A씨는 살인을 결심했다.A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자신의 아내와 B씨의 계속된 불륜에 오랜 기간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고자 인내하고 노력했던 점을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지들은 물론 지인들, 학원 학부모들까지 A씨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간곡한 탄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A씨가 이러한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며 “B씨가 각서를 주고받은 후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말투로 무시하자 A씨가 끝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2심에서 A씨는 징역 10년으로 감경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 아내를 만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만남을 계속했고 사건 당일에도 A씨를 자극하는 언행을 계속했다”며 이는 특별 감경 요소가 된다고 봤다. A씨는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김혜선 기자 2024.04.16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13년 4월 16일. 천안의 한 도로에서 40대 남성 A씨가 공기총을 치켜들었다. 그는 30대 남성 B씨를 향해 머리와 등에 총을 쐈고, B씨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숨졌다. A씨는 119에 스스로 신고를 하고 순순히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며 “B씨는 아내의 내연남”이라고 말했다.A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MBN 방송 갈무리)A씨 가정의 비극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A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며 아내 C씨와 자주 다퉜고, C씨는 수영장에서 만난 미혼 남성 B씨를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B씨와 C씨의 내연 관계는 오래지 않아 A씨에게 발각됐다.A씨는 수영장 앞으로 찾아가 B씨에 “불장난이면 여기서 끝내라”며 경고를 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이혼해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B씨는 C씨와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두 사람은 A씨 몰래 잦은 만남을 이어갔다.결국 A씨는 아내와 B씨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아내의 가족에게도 불륜 사실을 알렸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아내 C씨가 “다시는 B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자 어린 자녀가 눈에 밟혀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두 번의 용서에도 두 사람은 또 만났다. 2013년 1월 A씨는 또다시 아내가 B씨를 만난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에 휩싸인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봐줄 만큼 봐줬으면 그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이번에도 A씨는 “정리했다”는 아내의 말을 믿었지만, 그 해 4월에 또 두 사람이 만난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또 빌었고, A씨는 그 약속을 믿었다.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4월 15일에는 A씨가 아내를 미행해 한 모텔에서 차를 주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노한 A씨는 아내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B씨에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전화를 피했고, A씨는 다음날인 4월 16일 새벽 아내의 휴대전화로 B씨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B씨가 받았다.B씨는 아내와 만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가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A씨는 이미 두 사람의 반복된 기만에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A씨는 B씨를 만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만약 B씨가 거절하면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안에 보관하던 공기총을 꺼내 들었다.B씨는 A씨와 만나 순순히 각서를 써 줬다. 이에 A씨는 민형사상 책임을 B씨에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 줬다. 마지막으로 A씨는 B씨에 “내 아내를 만날 것이냐”고 물었는데, B씨는 이를 비꼬는 듯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답했다. 이 한 마디로 A씨는 살인을 결심했다.A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자신의 아내와 B씨의 계속된 불륜에 오랜 기간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고자 인내하고 노력했던 점을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지들은 물론 지인들, 학원 학부모들까지 A씨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간곡한 탄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A씨가 이러한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며 “B씨가 각서를 주고받은 후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말투로 무시하자 A씨가 끝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2심에서 A씨는 징역 10년으로 감경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 아내를 만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만남을 계속했고 사건 당일에도 A씨를 자극하는 언행을 계속했다”며 이는 특별 감경 요소가 된다고 봤다. A씨는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 침대 위 살해된 母子…증거가 가리키는 ‘단 한 사람’ [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1년 4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조모 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도예가인 조 씨는 왜 아내와 아들을 무참히 살해했을까.사건은 2019년 8월 22일에 발생했다. 관악구 재개발 지구 안 빌라에 살던 여성 박 씨(당시 41)와 아들 조모 군(6)이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안 물건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안방의 귀중품도 그대로였다. 피해자들이 불과 30초 만에 다발성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은 범행의 목적이 살인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피해자들이 상당량의 피를 흘렸음에도 혈흔에 남아 있을 법한 범인의 지문과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범행 과정이 치밀하고 깔끔했다. 범인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불까지 끄고 빠져나가는 등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 힘든 여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경찰이 주목한 것은 외부 침입이 없던 것과 사망 추정 시간에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사람은 조 씨라는 점이었다. 사건 50일 만에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지만 조 씨가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더군다나 조 씨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남편이자 아빠”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 씨 측과 경찰의 줄다리기가 이뤄지던 어느 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을 통해 피해자들의 위 속에 남은 음식물로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부검 당시 박 씨와 조 군의 위에서는 다 소화되지 않은 죽 형태의 내용물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식후 완전히 소화(위에서 소장으로 모두 이동)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이내 살해됐을 것”으로 봤다.(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통상 저녁을 오후 6~7시쯤 먹었다면 범행은 새벽 1시 전에 이뤄졌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조 씨가 집에 머문 시각은 오후 8시 56분부터 오전 1시 35분 사이였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조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그렇다면 조 씨가 사용한 흉기와 살해할 때 혈흔이 묻은 옷가지는 어디로 갔을까.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물건은 주방에 있던 6개의 칼 세트 중 하나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도예가였던 조 씨는 사건 발생 6일 후 기자재 판매 사이트에 자신이 사용한 전기 가마를 매물로 내놓았다. 해당 가마를 구매한 A씨는 “상태가 좋은데 싼 가격에 올라와 바로 구입했다”고 했다.1000도 이상까지는 전기 가마를 이용해 흉기를 없앴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혈액이 묻은 옷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흉기는 녹지 않았다.흉기도,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옷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 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짙어졌다. 그 배경에는 5년의 결혼생활이 있었다.박 씨는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 결혼 전부터 금전 지원을 했으며 결혼 후에는 생활비 및 도예 작업 비용 등으로 매달 2~300만 원을 지원했다. 또 철거를 앞둔 전세 빌라에 지내면서도 남편에게는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 78평형 신식 오피스텔을 매입해 도예 공방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외 공방의 공과금, 차량 할부금, 작업 도구 및 재료 구입비, 모발 이식 수술비용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그러다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박 씨는 금전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조 씨는 분노를 나타내며 이혼을 요구했고 별거에 들어갔다.조 씨의 통장 잔액은 1900원까지 내려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됐다. 아내에 이혼을 철회하며 급변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씨의 생각은 견고했다. 부모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쓰던 조 씨는 경마장을 찾았다가 베팅에 성공하면서 매주 2~3회 경마장을 찾았다. 그러나 카드론 대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마련한 800만 원을 베팅하고 전부 잃는 등 경제적 상황은 악화됐다. 경찰이 조 씨의 노트북을 포렌식 한 결과 보험 사이트에서 아내의 사망 보험금 수령액과 본인이 피보험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이 밝혀졌다. 아내는 5건의 손해보험이 있었고 사망시 보험금 1억 7500만 원을 수령하도록 돼 있었다.이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6개월 후부터 불륜 관계를 이어온 내연녀가 있었던 그는 내연녀와 월 평균 17회의 만남을 가지는 반면 아내와는 월 1회만 만났다. 조 씨의 부모도 이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연녀가 일방적으로 아들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설사 외도라고 해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는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이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에 제 3자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며, 조 씨가 부인과 갈등 관계였다는 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였다는 점 등을 범행 동기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항소심 재판부도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추정 시간 증거는 법의학적 신빙성이 있다”며 “사망 추정 시간과 피고인이 집에 머문 시간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반드시 직접증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그러면서 “사망 시간 추정이나 3자의 살해 가능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살인 동기 등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원심이 판결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강소영 기자 2024.04.15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1년 4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조모 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도예가인 조 씨는 왜 아내와 아들을 무참히 살해했을까.사건은 2019년 8월 22일에 발생했다. 관악구 재개발 지구 안 빌라에 살던 여성 박 씨(당시 41)와 아들 조모 군(6)이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안 물건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안방의 귀중품도 그대로였다. 피해자들이 불과 30초 만에 다발성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은 범행의 목적이 살인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피해자들이 상당량의 피를 흘렸음에도 혈흔에 남아 있을 법한 범인의 지문과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범행 과정이 치밀하고 깔끔했다. 범인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불까지 끄고 빠져나가는 등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 힘든 여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경찰이 주목한 것은 외부 침입이 없던 것과 사망 추정 시간에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사람은 조 씨라는 점이었다. 사건 50일 만에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지만 조 씨가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더군다나 조 씨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남편이자 아빠”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 씨 측과 경찰의 줄다리기가 이뤄지던 어느 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을 통해 피해자들의 위 속에 남은 음식물로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부검 당시 박 씨와 조 군의 위에서는 다 소화되지 않은 죽 형태의 내용물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식후 완전히 소화(위에서 소장으로 모두 이동)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이내 살해됐을 것”으로 봤다.(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통상 저녁을 오후 6~7시쯤 먹었다면 범행은 새벽 1시 전에 이뤄졌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조 씨가 집에 머문 시각은 오후 8시 56분부터 오전 1시 35분 사이였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조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그렇다면 조 씨가 사용한 흉기와 살해할 때 혈흔이 묻은 옷가지는 어디로 갔을까.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물건은 주방에 있던 6개의 칼 세트 중 하나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도예가였던 조 씨는 사건 발생 6일 후 기자재 판매 사이트에 자신이 사용한 전기 가마를 매물로 내놓았다. 해당 가마를 구매한 A씨는 “상태가 좋은데 싼 가격에 올라와 바로 구입했다”고 했다.1000도 이상까지는 전기 가마를 이용해 흉기를 없앴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혈액이 묻은 옷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흉기는 녹지 않았다.흉기도,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옷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 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짙어졌다. 그 배경에는 5년의 결혼생활이 있었다.박 씨는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 결혼 전부터 금전 지원을 했으며 결혼 후에는 생활비 및 도예 작업 비용 등으로 매달 2~300만 원을 지원했다. 또 철거를 앞둔 전세 빌라에 지내면서도 남편에게는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 78평형 신식 오피스텔을 매입해 도예 공방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외 공방의 공과금, 차량 할부금, 작업 도구 및 재료 구입비, 모발 이식 수술비용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그러다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박 씨는 금전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조 씨는 분노를 나타내며 이혼을 요구했고 별거에 들어갔다.조 씨의 통장 잔액은 1900원까지 내려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됐다. 아내에 이혼을 철회하며 급변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씨의 생각은 견고했다. 부모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쓰던 조 씨는 경마장을 찾았다가 베팅에 성공하면서 매주 2~3회 경마장을 찾았다. 그러나 카드론 대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마련한 800만 원을 베팅하고 전부 잃는 등 경제적 상황은 악화됐다. 경찰이 조 씨의 노트북을 포렌식 한 결과 보험 사이트에서 아내의 사망 보험금 수령액과 본인이 피보험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이 밝혀졌다. 아내는 5건의 손해보험이 있었고 사망시 보험금 1억 7500만 원을 수령하도록 돼 있었다.이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6개월 후부터 불륜 관계를 이어온 내연녀가 있었던 그는 내연녀와 월 평균 17회의 만남을 가지는 반면 아내와는 월 1회만 만났다. 조 씨의 부모도 이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연녀가 일방적으로 아들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설사 외도라고 해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는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이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에 제 3자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며, 조 씨가 부인과 갈등 관계였다는 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였다는 점 등을 범행 동기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항소심 재판부도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추정 시간 증거는 법의학적 신빙성이 있다”며 “사망 추정 시간과 피고인이 집에 머문 시간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반드시 직접증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그러면서 “사망 시간 추정이나 3자의 살해 가능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살인 동기 등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원심이 판결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 “내가 15년 전 사람을 죽였어” 아내에 유언 남겼다 [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7년 4월 14일, 수원지법 형사11부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교수 부부의 주택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50대 남성 김 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용인 교수 부인 살해 사건’의 용의자 김 씨가 현장 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김 씨는 2001년 벌어진 ‘용인 교수 부인 살해 사건’의 공범 중 한 명이었다. 미제로 남을 뻔했던 해당 사건은 15년 만에 그 진실이 드러났다.사건은 2001년 6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4시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당시 구성면 동백리)에 있는 교수 심 씨의 단독 주택에 2명의 남성이 침입했다. 이들의 침입 후 잠에서 깬 심 씨와 아내 이 씨(당시 54세)에게 흉기를 휘둘러 이 씨를 살해하고 심 씨에 중상을 입혔다.이들 부부는 같은 날 오전 5시쯤 신문배달원에 의해 발견됐다. 아내 이 씨는 허벅지 부위를 흉기로 찔려 과다출혈로 숨졌고 심 씨는 중태에 빠졌으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사건 조사 당시 심 씨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웃집과 다툼이 있었던 점, 괴한 2명이 들어오자마자 금품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이 씨를 살해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원한에 의한 청부살인으로 보이는 듯했다. 경찰은 형사 27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려 사건 시간대 인근 기지국에 통화기록이 남은 사람과 피해자 주변인, 동일 수법 전과자 등 5000여 명을 수사 대상자로 놓고 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미제사건으로 남는 듯했던 어느 날, 14년이 지난 2015년 7월 살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적용 배제 조항인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은 다시 이 사건을 주목했다.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과거 수사 대상자를 일일이 확인하던 중 김 씨의 엇갈린 진술을 주목했다.(사진=YTN 화면 캡처)사건 발생 현장 주변에서 A씨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던 김 씨는 당시 경찰에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는데 A씨가 고객이어서 통화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아닌 “(A씨를) 전혀 모른다”고 말하면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됐다.김 씨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경찰은 김 씨와 A 씨가 1999년 12월부터 1년 2개월간 같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경찰은 이같은 사실로 김 씨를 추궁해 범행을 자백받았으며 “용인 방면 단독주택에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빈집인 줄 알고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 피해자들이 잠에서 깨자 놀라서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경찰에 따르면 감방 동기인 두 사람은 대포차를 타고 다니면서 수원시 이남 지역의 주택가들을 돌며 절도 등 범행을 했다. 이들은 “부자 동네에 가서 범행을 하자”고 모의한 뒤 단독주택 단지에 있던 심 씨의 집을 찾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공범으로 지목된 A씨는 경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한 뒤 2016년 8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B씨는 숨지기 전 아내에 “15년 전 김 씨와 남의 집에 들어가 흉기로 사람을 찔렀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사건을 저지른 지 15년이 훌쩍 넘어서야 단죄를 받게 됐다. 법원은 김 씨에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고 살아남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족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럼에도 수사기관에서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뒤늦게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공범에게 책임을 전가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강소영 기자 2024.04.14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7년 4월 14일, 수원지법 형사11부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교수 부부의 주택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50대 남성 김 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용인 교수 부인 살해 사건’의 용의자 김 씨가 현장 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김 씨는 2001년 벌어진 ‘용인 교수 부인 살해 사건’의 공범 중 한 명이었다. 미제로 남을 뻔했던 해당 사건은 15년 만에 그 진실이 드러났다.사건은 2001년 6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4시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당시 구성면 동백리)에 있는 교수 심 씨의 단독 주택에 2명의 남성이 침입했다. 이들의 침입 후 잠에서 깬 심 씨와 아내 이 씨(당시 54세)에게 흉기를 휘둘러 이 씨를 살해하고 심 씨에 중상을 입혔다.이들 부부는 같은 날 오전 5시쯤 신문배달원에 의해 발견됐다. 아내 이 씨는 허벅지 부위를 흉기로 찔려 과다출혈로 숨졌고 심 씨는 중태에 빠졌으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사건 조사 당시 심 씨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웃집과 다툼이 있었던 점, 괴한 2명이 들어오자마자 금품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이 씨를 살해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원한에 의한 청부살인으로 보이는 듯했다. 경찰은 형사 27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려 사건 시간대 인근 기지국에 통화기록이 남은 사람과 피해자 주변인, 동일 수법 전과자 등 5000여 명을 수사 대상자로 놓고 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미제사건으로 남는 듯했던 어느 날, 14년이 지난 2015년 7월 살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적용 배제 조항인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은 다시 이 사건을 주목했다.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과거 수사 대상자를 일일이 확인하던 중 김 씨의 엇갈린 진술을 주목했다.(사진=YTN 화면 캡처)사건 발생 현장 주변에서 A씨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던 김 씨는 당시 경찰에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는데 A씨가 고객이어서 통화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아닌 “(A씨를) 전혀 모른다”고 말하면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됐다.김 씨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경찰은 김 씨와 A 씨가 1999년 12월부터 1년 2개월간 같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경찰은 이같은 사실로 김 씨를 추궁해 범행을 자백받았으며 “용인 방면 단독주택에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빈집인 줄 알고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 피해자들이 잠에서 깨자 놀라서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경찰에 따르면 감방 동기인 두 사람은 대포차를 타고 다니면서 수원시 이남 지역의 주택가들을 돌며 절도 등 범행을 했다. 이들은 “부자 동네에 가서 범행을 하자”고 모의한 뒤 단독주택 단지에 있던 심 씨의 집을 찾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공범으로 지목된 A씨는 경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한 뒤 2016년 8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B씨는 숨지기 전 아내에 “15년 전 김 씨와 남의 집에 들어가 흉기로 사람을 찔렀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사건을 저지른 지 15년이 훌쩍 넘어서야 단죄를 받게 됐다. 법원은 김 씨에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고 살아남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족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럼에도 수사기관에서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뒤늦게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공범에게 책임을 전가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목사로서 자격 있느냐”…선교지서 아내 살해 후 암매장한 60대 [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난해 4월 14일 대전지법은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아내를 살해한 목사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이었다. 그는 왜 40여년간 함께한 아내를 둔기로 폭행하고 시신을 은닉한 것일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내연녀 문제로 말다툼…둔기 살해사건이 발생한 날은 2022년 8월 25일이었다. A씨는 필리핀 거주지에서 아내 B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격분해 둔기를 들고 B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자신의 내연녀 문제로 빈번한 갈등을 겪다 B씨가 “당신이 목사로서 자격이 있느냐”고 말하자 화가 난다며 범행한 것이었다. 남편의 둔기에 맞은 B씨는 두개골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상해를 입고 현장에서 숨졌다.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A씨는 B씨의 시신을 묶은 뒤 미리 파놓은 집 마당에 묻기도 했다. 이후에는 내연녀와 파티에 참석했으며 아내의 안부를 묻는 자녀들의 연락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B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A씨는 곧 범행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수개월간 어머니의 행방이 묘연하고 아버지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긴 자녀들이 통보 없이 필리핀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자녀들이 아내를 찾아 나선 뒤에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자수했다. 아내를 살해한 지 4개월여 만이었다.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10개월 전부터 20대 여성과 내연관계를 시작했으며 자주 집 밖으로 나가거나 늦은 시간에 귀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급기야 A씨는 B씨 연락을 일부러 피하고 집에 장시간 아내를 방치하기도 했다. 이듬해 3월부터는 아내와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며 부부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법정서 공소사실 인정…징역 18년 확정재판에 넘겨진 A씨 측은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한다”며 “피고인이 직접 자수하고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했다. 필리핀 현지 교민들은 A씨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피고인의 자녀 등 피해자의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생명을 박탈한 범죄는 그 행위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A씨가 자수한 것을 두고는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수한 것으로 보이고 범행 이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결심공판 당시 검사는 “피고인은 타국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피해자를 쇠 파이프를 이용해 무참히 살해했지만 범행 동기를 보면 살해할 만한 사유가 아무것도 없다”며 “타국에서 아내의 시신을 유기하고 자녀에게 범행을 발각당하자 자수한 상황”이라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 측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은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자수 역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2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재은 기자 2024.04.14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난해 4월 14일 대전지법은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아내를 살해한 목사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이었다. 그는 왜 40여년간 함께한 아내를 둔기로 폭행하고 시신을 은닉한 것일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내연녀 문제로 말다툼…둔기 살해사건이 발생한 날은 2022년 8월 25일이었다. A씨는 필리핀 거주지에서 아내 B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격분해 둔기를 들고 B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자신의 내연녀 문제로 빈번한 갈등을 겪다 B씨가 “당신이 목사로서 자격이 있느냐”고 말하자 화가 난다며 범행한 것이었다. 남편의 둔기에 맞은 B씨는 두개골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상해를 입고 현장에서 숨졌다.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A씨는 B씨의 시신을 묶은 뒤 미리 파놓은 집 마당에 묻기도 했다. 이후에는 내연녀와 파티에 참석했으며 아내의 안부를 묻는 자녀들의 연락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B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A씨는 곧 범행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수개월간 어머니의 행방이 묘연하고 아버지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긴 자녀들이 통보 없이 필리핀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A씨는 자녀들이 아내를 찾아 나선 뒤에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자수했다. 아내를 살해한 지 4개월여 만이었다.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10개월 전부터 20대 여성과 내연관계를 시작했으며 자주 집 밖으로 나가거나 늦은 시간에 귀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급기야 A씨는 B씨 연락을 일부러 피하고 집에 장시간 아내를 방치하기도 했다. 이듬해 3월부터는 아내와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며 부부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법정서 공소사실 인정…징역 18년 확정재판에 넘겨진 A씨 측은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한다”며 “피고인이 직접 자수하고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했다. 필리핀 현지 교민들은 A씨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피고인의 자녀 등 피해자의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생명을 박탈한 범죄는 그 행위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A씨가 자수한 것을 두고는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수한 것으로 보이고 범행 이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결심공판 당시 검사는 “피고인은 타국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피해자를 쇠 파이프를 이용해 무참히 살해했지만 범행 동기를 보면 살해할 만한 사유가 아무것도 없다”며 “타국에서 아내의 시신을 유기하고 자녀에게 범행을 발각당하자 자수한 상황”이라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 측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은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자수 역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2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 판사도 “매우 잔혹하다”…70cm ‘막대기 살인’ 사건의 결말 [그해 오늘]
    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어린이 스포츠센터 대표 A씨가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1년 전인 2023년 4월 13일. 막대기로 신체 특정 부위를 찔러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스포츠센터 대표에게 징역 25년이 확정됐다.사건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서대문구에 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40대 남성 A씨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연말 회식을 개최했다.해당 술자리에는 직원 B씨(당시 26세)와 2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이후 이 직원 2명이 자리를 뜬 후 A씨와 B씨만 남아 술을 마셨지만, A씨는 경찰에 “어떤 남자가 와서 누나를 때린다”며 알 수 없는 말로 1차 신고를 했다.경찰이 스포츠 센터로 출동했을 당시 A씨는 “나는 그렇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의 CCTV 확인 요청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때 B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 있었고, 경찰은 B씨의 맥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B씨에 옷을 덮어준 뒤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7시간 뒤 A씨는 다시 한 번 “B씨가 의식이 없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져있었다. B씨에게는 후두부의 상처, 둔기를 막은 양쪽 손등의 방어흔, 신체 후면부에 다량으로 남은 특이한 형태의 상흔들이 포착됐다.‘막대기 살해’ 사건이 벌어진 스포츠센터 내부 전경 모습.긴급체포 당시 경찰은 A씨에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B씨가 직장과 담낭, 간, 심장 등 장기 손상으로 숨졌다”는 1차 소견을 내놓자 A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A씨는 B씨의 몸에 남은 폭행 흔적을 두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스포츠센터의 CCTV에는 지난 밤의 비극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영상에서는 A씨가 B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급기야 A씨는 지름 3cm, 길이 70cm의 막대기를 B씨의 몸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막대기 살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이듬해 열린 1심 재판에서 A씨 측은 “술을 많이 마셨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 구호조치를 했다면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초동조치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경찰을 탓하기 시작했다.사진=채널A 캡처반면 2심에서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A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여건을 물어본 거지 범행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범행이 과도한 음주와 금연 약물 복용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검찰은 A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해 B씨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살해 다음 날 아침에 119에 신고한 점 △처음부터 B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권혜미 기자 2024.04.13
    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어린이 스포츠센터 대표 A씨가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1년 전인 2023년 4월 13일. 막대기로 신체 특정 부위를 찔러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스포츠센터 대표에게 징역 25년이 확정됐다.사건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서대문구에 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40대 남성 A씨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연말 회식을 개최했다.해당 술자리에는 직원 B씨(당시 26세)와 2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이후 이 직원 2명이 자리를 뜬 후 A씨와 B씨만 남아 술을 마셨지만, A씨는 경찰에 “어떤 남자가 와서 누나를 때린다”며 알 수 없는 말로 1차 신고를 했다.경찰이 스포츠 센터로 출동했을 당시 A씨는 “나는 그렇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의 CCTV 확인 요청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때 B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 있었고, 경찰은 B씨의 맥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B씨에 옷을 덮어준 뒤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7시간 뒤 A씨는 다시 한 번 “B씨가 의식이 없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져있었다. B씨에게는 후두부의 상처, 둔기를 막은 양쪽 손등의 방어흔, 신체 후면부에 다량으로 남은 특이한 형태의 상흔들이 포착됐다.‘막대기 살해’ 사건이 벌어진 스포츠센터 내부 전경 모습.긴급체포 당시 경찰은 A씨에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B씨가 직장과 담낭, 간, 심장 등 장기 손상으로 숨졌다”는 1차 소견을 내놓자 A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A씨는 B씨의 몸에 남은 폭행 흔적을 두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스포츠센터의 CCTV에는 지난 밤의 비극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영상에서는 A씨가 B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급기야 A씨는 지름 3cm, 길이 70cm의 막대기를 B씨의 몸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막대기 살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이듬해 열린 1심 재판에서 A씨 측은 “술을 많이 마셨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 구호조치를 했다면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초동조치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경찰을 탓하기 시작했다.사진=채널A 캡처반면 2심에서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A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여건을 물어본 거지 범행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범행이 과도한 음주와 금연 약물 복용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검찰은 A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해 B씨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살해 다음 날 아침에 119에 신고한 점 △처음부터 B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 판사도 “매우 잔혹하다”…70cm ‘막대기 살인’ 사건의 결말 [그해 오늘]
    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어린이 스포츠센터 대표 A씨가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1년 전인 2023년 4월 13일. 막대기로 신체 특정 부위를 찔러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스포츠센터 대표에게 징역 25년이 확정됐다.사건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서대문구에 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40대 남성 A씨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연말 회식을 개최했다.해당 술자리에는 직원 B씨(당시 26세)와 2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이후 이 직원 2명이 자리를 뜬 후 A씨와 B씨만 남아 술을 마셨지만, A씨는 경찰에 “어떤 남자가 와서 누나를 때린다”며 알 수 없는 말로 1차 신고를 했다.경찰이 스포츠 센터로 출동했을 당시 A씨는 “나는 그렇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의 CCTV 확인 요청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때 B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 있었고, 경찰은 B씨의 맥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B씨에 옷을 덮어준 뒤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7시간 뒤 A씨는 다시 한 번 “B씨가 의식이 없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져있었다. B씨에게는 후두부의 상처, 둔기를 막은 양쪽 손등의 방어흔, 신체 후면부에 다량으로 남은 특이한 형태의 상흔들이 포착됐다.‘막대기 살해’ 사건이 벌어진 스포츠센터 내부 전경 모습.긴급체포 당시 경찰은 A씨에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B씨가 직장과 담낭, 간, 심장 등 장기 손상으로 숨졌다”는 1차 소견을 내놓자 A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A씨는 B씨의 몸에 남은 폭행 흔적을 두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스포츠센터의 CCTV에는 지난 밤의 비극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영상에서는 A씨가 B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급기야 A씨는 지름 3cm, 길이 70cm의 막대기를 B씨의 몸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막대기 살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이듬해 열린 1심 재판에서 A씨 측은 “술을 많이 마셨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 구호조치를 했다면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초동조치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경찰을 탓하기 시작했다.사진=채널A 캡처반면 2심에서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A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여건을 물어본 거지 범행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범행이 과도한 음주와 금연 약물 복용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검찰은 A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해 B씨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살해 다음 날 아침에 119에 신고한 점 △처음부터 B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권혜미 기자 2024.04.13
    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어린이 스포츠센터 대표 A씨가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1년 전인 2023년 4월 13일. 막대기로 신체 특정 부위를 찔러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스포츠센터 대표에게 징역 25년이 확정됐다.사건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서대문구에 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던 40대 남성 A씨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연말 회식을 개최했다.해당 술자리에는 직원 B씨(당시 26세)와 2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이후 이 직원 2명이 자리를 뜬 후 A씨와 B씨만 남아 술을 마셨지만, A씨는 경찰에 “어떤 남자가 와서 누나를 때린다”며 알 수 없는 말로 1차 신고를 했다.경찰이 스포츠 센터로 출동했을 당시 A씨는 “나는 그렇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의 CCTV 확인 요청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때 B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 있었고, 경찰은 B씨의 맥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B씨에 옷을 덮어준 뒤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7시간 뒤 A씨는 다시 한 번 “B씨가 의식이 없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B씨는 이미 숨져있었다. B씨에게는 후두부의 상처, 둔기를 막은 양쪽 손등의 방어흔, 신체 후면부에 다량으로 남은 특이한 형태의 상흔들이 포착됐다.‘막대기 살해’ 사건이 벌어진 스포츠센터 내부 전경 모습.긴급체포 당시 경찰은 A씨에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B씨가 직장과 담낭, 간, 심장 등 장기 손상으로 숨졌다”는 1차 소견을 내놓자 A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A씨는 B씨의 몸에 남은 폭행 흔적을 두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스포츠센터의 CCTV에는 지난 밤의 비극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영상에서는 A씨가 B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급기야 A씨는 지름 3cm, 길이 70cm의 막대기를 B씨의 몸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막대기 살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이듬해 열린 1심 재판에서 A씨 측은 “술을 많이 마셨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 구호조치를 했다면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초동조치가 상당히 미흡했다”고 경찰을 탓하기 시작했다.사진=채널A 캡처반면 2심에서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A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여건을 물어본 거지 범행을 부인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범행이 과도한 음주와 금연 약물 복용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검찰은 A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해 B씨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살해 다음 날 아침에 119에 신고한 점 △처음부터 B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할 목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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