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부

송혜수

기자

쩝쩝박사

  • 아버지가 사 오던 옛날통닭… 추억을 남겨두었습니다[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삼우치킨센타’를 직접 방문했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아버지는 월급날만 되면 옛날 통닭을 사 오셨다. 통닭을 신 나게 먹던 아들은 어느새 자라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와 아버지가 된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3대는 이따금 그 통닭을 찾곤 한다. 추억을 물려주기 위해서다.1977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문을 연 ‘삼우치킨센타’는 약 5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2대째 이어진 가게에서는 변함없이 옛날 전기구이 통닭과 프라이드 치킨을 팔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이곳을 ‘오래가게’로 선정했다.오래가게는 ‘오래된, 그리고 오래가길 바라는 가게’란 뜻으로, 서울시가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거나 2대 이상 대를 잇는 곳 또는 명인·장인이 기술과 가치를 이어가는 가게를 선정해 홍보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가게 입구에는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온 50년 전통의 맛’이라는 소개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뉴트로(Newtro·신복고)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삼우치킨센타를 찾은 건 지난 25일 밤 11시께였다. 가게 입구에는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온 50년 전통의 맛’이라는 소개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3층으로 분리된 내부는 오래된 나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한쪽 벽에는 ‘프라이드 치킨은 조각이 큰 다리 3조각 날개 3조각으로 한 마리 반의 양이 제공됩니다. 저희 가게는 직접 만든 수제 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전기구이 통닭. 바삭하고 쫀득한 닭 껍질은 씹을수록 고소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프라이드 치킨 반마리와 전기구이 통닭 반마리, 골뱅이 소면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다. 가격은 3만5500원. 케첩을 듬뿍 뿌린 양배추 샐러드와 무절임이 함께 곁들어진다.먼저 맛본 건 전기구이 통닭이다. 바삭하고 쫀득한 닭 껍질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혀를 감쌌다. 찰기가 가득한 살코기는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냈다. 소금에 찍어 먹어 보라는 직원 추천에 따라 살을 발라 먹어 보니 감칠맛이 배로 느껴졌다.프라이드 치킨. 튀김 옷이 두껍지 않아 느끼하지 않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 프라이드 치킨을 맛봤다. 기름에 튀긴 닭은 반죽을 어떻게 묻히는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곤 하는데, 이곳의 프라이드 치킨은 튀김 옷이 두껍지 않아 느끼하지 않았다. 또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바사삭’하는 소리가 귀를 먼저 간지럽혔다. 고기는 기름지지 않았고 부드럽게 뼈와 살이 분리됐다.마지막으로 골뱅이 소면을 먹었다. 소면은 크게 세 덩이로 나눠 제공됐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골뱅이를 먼저 골라 먹으니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안에서 통통 튀었다. 소면을 양념에 비벼 얇게 썬 오이와 당근, 양파 등을 함께 먹으니 산뜻하게 개운한 맛을 냈다. 골뱅이 소면.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골뱅이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한다. (영상=송혜수 기자)2대 사장 이정재(49)씨는 50년째 이어온 맛의 비결로 닭고기 본연의 맛을 꼽았다. 그는 “통닭집을 하다 보니 프랜차이즈 등에서 새로 출시된 치킨이 나오면 한 번씩 맛을 보는 편”이라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요즘 브랜드 치킨은 유행하는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이씨는 “첫 입은 물론 맛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물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 점에서 우리 집 통닭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게는 닭 본연 그대로의 맛을 담백하게 선사하려고 한다”며 “자체적으로 닭고기에 염지를 해서 간을 내고 맛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사진=송혜수 기자)예전 것을 그대로 유지하며 가게를 지켜온 데 대해 이씨는 “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것을 그대로 전수받아 이어서 장사한 것일 뿐”이라며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낸 장사 철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그는 “아버지는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서 최상의 통닭을 만들겠다는 장사 철학이 있으셨다. 아버지가 장사하셨을 당시 주변 통닭집들은 닭을 최대한 조각내서 겉보기에 양이 많아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다”며 “과감하게 한 마리를 4등분으로만 조각내 팔았다. 4등분으로 나눴을 때 치킨의 맛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가게 내부에 붙어 있는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이씨는 이러한 아버지의 장사 철학이 손님들에게도 통했다고 했다. 장사가 한참 잘 됐을 땐 한 달에 집 한 채 값을 벌기도 했다고. 이에 그는 아버지가 연구해온 것을 그대로 고수하며 같은 방식으로 가게를 지켜왔다. 그는 “닭을 튀기거나 구울 때 쓰는 기계도 아버지 때 쓰던 것을 아직 쓰고 있다”며 “최대한 아버지가 해오던 걸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단골손님들한테는 향수가 될 수도 있다. 포장 봉투 같은 경우는 인사동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예전 것을 계속 유지해오다 보니 어느새 우리 가게의 정체성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50년 세월이 느껴지는 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다행스러운 점은 손님들도 예전 것을 유지하려는 점을 좋아해 주신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가게 내부에 낡은 부분이 많아 대대적으로 수리하려고 했지만 많은 단골손님이 옛날 분위기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수가 꼭 필요한 부분만 수리했다.이씨는 이처럼 가게를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들과 추억도 쌓았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한 부부가 ‘미국에 이민 갔다가 40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가게가 아직도 있는 걸 보고 반가웠다’고 하시더라”라며 “가게는 부부의 데이트 장소였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삼우치킨센타의 포장 봉투는 인사동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또 “한번은 남성 손님이 와서 치킨 3마리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치킨을 포장하면서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됐는데 남성분의 죽마고우가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더라. 지금은 부산에서 지내는데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했다”며 “그분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우리 집 치킨을 먹고 싶어 하셨다더라. 그래서 남성분이 친구를 위해 치킨 3마리를 포장해가셨다”라고 전했다.이씨는 “우리 가게에는 몇십 년 된 단골손님이 많다. 3대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 부분에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자영업자가 똑같이 말하겠지만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참 많다. 가끔은 사람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다”며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아해 주고 찾아주는 손님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이겨낸다”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이씨는 삼우치킨센타는 자신에게 있어서 추억과 그리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실 요즘 치킨에 비해 (우리 가게에) 특별한 건 없다. 우리 가게는 양념 치킨도 없다”며 “특별하진 않지만 추억이라는 맛이 존재한다. 그 옛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먹던 맛, 연인과 데이트하며 먹던 맛 등 단순히 치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각자가 가진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기에 추억과 그리움의 장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끝으로 그는 힘닿는 데까지 삼우치킨센타를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씨는 “대한민국에 50년 이상 된 곳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삼우치킨센타를 지키고 싶다”며 “굳이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께 가게를 넘겨주게 되더라도 가게가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3.01.28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삼우치킨센타’를 직접 방문했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아버지는 월급날만 되면 옛날 통닭을 사 오셨다. 통닭을 신 나게 먹던 아들은 어느새 자라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와 아버지가 된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3대는 이따금 그 통닭을 찾곤 한다. 추억을 물려주기 위해서다.1977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문을 연 ‘삼우치킨센타’는 약 5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2대째 이어진 가게에서는 변함없이 옛날 전기구이 통닭과 프라이드 치킨을 팔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이곳을 ‘오래가게’로 선정했다.오래가게는 ‘오래된, 그리고 오래가길 바라는 가게’란 뜻으로, 서울시가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거나 2대 이상 대를 잇는 곳 또는 명인·장인이 기술과 가치를 이어가는 가게를 선정해 홍보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가게 입구에는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온 50년 전통의 맛’이라는 소개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뉴트로(Newtro·신복고)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삼우치킨센타를 찾은 건 지난 25일 밤 11시께였다. 가게 입구에는 ‘한자리에서 대를 이어온 50년 전통의 맛’이라는 소개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3층으로 분리된 내부는 오래된 나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한쪽 벽에는 ‘프라이드 치킨은 조각이 큰 다리 3조각 날개 3조각으로 한 마리 반의 양이 제공됩니다. 저희 가게는 직접 만든 수제 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전기구이 통닭. 바삭하고 쫀득한 닭 껍질은 씹을수록 고소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프라이드 치킨 반마리와 전기구이 통닭 반마리, 골뱅이 소면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다. 가격은 3만5500원. 케첩을 듬뿍 뿌린 양배추 샐러드와 무절임이 함께 곁들어진다.먼저 맛본 건 전기구이 통닭이다. 바삭하고 쫀득한 닭 껍질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혀를 감쌌다. 찰기가 가득한 살코기는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냈다. 소금에 찍어 먹어 보라는 직원 추천에 따라 살을 발라 먹어 보니 감칠맛이 배로 느껴졌다.프라이드 치킨. 튀김 옷이 두껍지 않아 느끼하지 않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 프라이드 치킨을 맛봤다. 기름에 튀긴 닭은 반죽을 어떻게 묻히는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곤 하는데, 이곳의 프라이드 치킨은 튀김 옷이 두껍지 않아 느끼하지 않았다. 또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바사삭’하는 소리가 귀를 먼저 간지럽혔다. 고기는 기름지지 않았고 부드럽게 뼈와 살이 분리됐다.마지막으로 골뱅이 소면을 먹었다. 소면은 크게 세 덩이로 나눠 제공됐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골뱅이를 먼저 골라 먹으니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안에서 통통 튀었다. 소면을 양념에 비벼 얇게 썬 오이와 당근, 양파 등을 함께 먹으니 산뜻하게 개운한 맛을 냈다. 골뱅이 소면.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골뱅이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한다. (영상=송혜수 기자)2대 사장 이정재(49)씨는 50년째 이어온 맛의 비결로 닭고기 본연의 맛을 꼽았다. 그는 “통닭집을 하다 보니 프랜차이즈 등에서 새로 출시된 치킨이 나오면 한 번씩 맛을 보는 편”이라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요즘 브랜드 치킨은 유행하는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이씨는 “첫 입은 물론 맛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물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 점에서 우리 집 통닭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게는 닭 본연 그대로의 맛을 담백하게 선사하려고 한다”며 “자체적으로 닭고기에 염지를 해서 간을 내고 맛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사진=송혜수 기자)예전 것을 그대로 유지하며 가게를 지켜온 데 대해 이씨는 “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것을 그대로 전수받아 이어서 장사한 것일 뿐”이라며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낸 장사 철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그는 “아버지는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서 최상의 통닭을 만들겠다는 장사 철학이 있으셨다. 아버지가 장사하셨을 당시 주변 통닭집들은 닭을 최대한 조각내서 겉보기에 양이 많아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다”며 “과감하게 한 마리를 4등분으로만 조각내 팔았다. 4등분으로 나눴을 때 치킨의 맛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가게 내부에 붙어 있는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이씨는 이러한 아버지의 장사 철학이 손님들에게도 통했다고 했다. 장사가 한참 잘 됐을 땐 한 달에 집 한 채 값을 벌기도 했다고. 이에 그는 아버지가 연구해온 것을 그대로 고수하며 같은 방식으로 가게를 지켜왔다. 그는 “닭을 튀기거나 구울 때 쓰는 기계도 아버지 때 쓰던 것을 아직 쓰고 있다”며 “최대한 아버지가 해오던 걸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단골손님들한테는 향수가 될 수도 있다. 포장 봉투 같은 경우는 인사동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예전 것을 계속 유지해오다 보니 어느새 우리 가게의 정체성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50년 세월이 느껴지는 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다행스러운 점은 손님들도 예전 것을 유지하려는 점을 좋아해 주신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가게 내부에 낡은 부분이 많아 대대적으로 수리하려고 했지만 많은 단골손님이 옛날 분위기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수가 꼭 필요한 부분만 수리했다.이씨는 이처럼 가게를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들과 추억도 쌓았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한 부부가 ‘미국에 이민 갔다가 40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가게가 아직도 있는 걸 보고 반가웠다’고 하시더라”라며 “가게는 부부의 데이트 장소였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삼우치킨센타의 포장 봉투는 인사동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또 “한번은 남성 손님이 와서 치킨 3마리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치킨을 포장하면서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됐는데 남성분의 죽마고우가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더라. 지금은 부산에서 지내는데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했다”며 “그분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우리 집 치킨을 먹고 싶어 하셨다더라. 그래서 남성분이 친구를 위해 치킨 3마리를 포장해가셨다”라고 전했다.이씨는 “우리 가게에는 몇십 년 된 단골손님이 많다. 3대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 부분에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자영업자가 똑같이 말하겠지만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참 많다. 가끔은 사람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다”며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아해 주고 찾아주는 손님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이겨낸다”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이씨는 삼우치킨센타는 자신에게 있어서 추억과 그리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실 요즘 치킨에 비해 (우리 가게에) 특별한 건 없다. 우리 가게는 양념 치킨도 없다”며 “특별하진 않지만 추억이라는 맛이 존재한다. 그 옛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먹던 맛, 연인과 데이트하며 먹던 맛 등 단순히 치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각자가 가진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기에 추억과 그리움의 장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끝으로 그는 힘닿는 데까지 삼우치킨센타를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씨는 “대한민국에 50년 이상 된 곳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삼우치킨센타를 지키고 싶다”며 “굳이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께 가게를 넘겨주게 되더라도 가게가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만원들고 찾아온 노숙인 “제가 드디어 일을 합니다”[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0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코코카페를 찾았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행복 나눔 세트 있나요?”어느 날 가게에 찾아온 노숙인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 나눔 세트는 정말 배가 고픈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사를 못 하는 이들을 위해 가게 사장이 마련한 무료 브런치 세트 메뉴다. 노숙인은 그렇게 몇 번 더 가게에 방문해 행복 나눔 세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더 이상 가게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노숙인이 다시 가게를 방문했다. 노숙인은 대뜸 만 원 한 장을 꺼내 들며 사장에게 말했다.“제가 드디어 일하게 됐습니다. 저도 이제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날 노숙인은 자신 있게 꺼내 든 만원으로 행복 나눔 세트가 아닌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사장은 당시 환하게 웃던 노숙인의 모습이 선명히 기억난다고 했다.(사진=송혜수 기자)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코코카페’의 이야기다. 이 카페에서는 앞서 소개한 행복 나눔 세트와 함께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한다. 각각 시작한 지는 10여 년, 5년째에 접어들었다. 행복 나눔 행사는 매주 장애인 보육원 등에서 아이들을 가게로 초청해 음식 대접을 한다.우연히 가게의 선행을 접하고 지난 10일 오후 코코카페를 직접 방문했다. 마침 가게에서는 행복 나눔 행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행복 나눔 행사 진행으로 테이크 아웃 및 야외 좌석만 이용 가능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계산대 앞에는 행복 나눔 세트에 관한 안내가 큼지막하게 보였다. 안내문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브런치 나눔 세트 주세요라고 말씀하세요! 다른 어려운 분들을 위해 다시 오셔서 기부해 주세요. 여러분이 드시는 커피 및 식사메뉴의 30%를 자선 음식 기부에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이어 ‘용인 및 수원시 내 보육원 및 중증장애원의 총 200명의 어린이를 매월 음식기부 및 무료 식사 초대해 행복 나눔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행복과 희망을 같이 전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가게 입구에 붙어 있는 ‘행복 나눔 행사’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직원에게 행복 나눔 세트에 대한 구성을 물어보니 보통 버거 혹은 파니니와 함께 음료 한 잔이 제공된다고 했다. 다만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해당 메뉴에 맞춰 행복 나눔 세트를 전해 준다고 알려줬다.이에 기자는 수제버거 한 개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격은 수제버거 8900원, 아메리카노는 2900원. 총 11800원이 나왔다. 수제버거는 싱싱한 양상추와 생토마토, 적양파와 치즈, 그리고 두툼한 고기패티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반을 갈라 살펴보니 각각의 재료들이 층층이 푸짐하게 속을 채웠다. 다진 피클과 겨자 소스 등도 고루 발려져 있었다. 한입에 맛보려 했지만 버거의 두께가 상당해 입안 가득 밀어 넣어도 역부족이었다.신선한 양상추는 아삭 소리를 내며 텁텁하지 않게 빵과 어우러졌다. 생토마토와 적양파, 그리고 치즈는 각각 짭짤하고 달짝지근하게 맛을 냈다. 두툼한 고기패티는 풍부한 육즙을 머금고 있었다. 은은하게 불 향이 느껴졌다. 매력적인 재료들이 합쳐지니 조화로웠다.이날 주문한 수제버거. 가격은 8900원이다 (영상=송혜수 기자)이곳의 사장은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아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사장은 “제게 아픈 아이가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서 2~3년 생활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해 저절로 관심을 두게 됐다”고 운을 뗐다.그는 “처음에는 장애 아이들에 대한 세계를 전혀 모르고 살았다. 장애 아이들은 밖에 나와 가족들과 외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며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의지가 있음에도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더라.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외식의 즐거움, 행복감을 조금이나마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 나눔을 실천하게 됐다”라고 전했다.나눔을 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가게에서 동냥하던 할아버지의 사연을 언급했다. 사장은 “어떤 날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동냥하더라. 할아버지는 ‘배가 고픈데 돈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계산대 앞에 붙어 있는 행복 나눔 세트와 행사에 대한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행복 나눔 세트가 있으니 마음껏 식사하고 가시라고 권했고 할아버지는 햄버거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며 이런 음식이 있었냐고 말했다”며 “행복 나눔 세트를 다 드신 뒤 할아버지는 ‘햄버거라는 게 정말 맛있는 음식이구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수고해요’라고 말하고 가게를 떠났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그는 이 할아버지를 보며 혹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천사가 가게로 찾아와서 행복 나눔 세트를 맛보고 덕담을 나누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사장은 “나눔을 하다 보면 이처럼 되레 감사한 일이 많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지역 중증 장애인과 인지 장애인 보육원 등에서 매주 아이들을 가게로 초청해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감사한 기회고 행복한 일이라고 전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그는 “아이들을 직접 가게로 초청하는 이유는 이들이 외식을 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몸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의 경우엔 휠체어를 밀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항상 동행한다. 이들이 다 같이 오려면 스타렉스 차량으로 여러 번 와야 한다”고 설명했다.사장은 “솔직히 처음 중증 장애인을 봤을 땐 조금 겁도 났다”며 “이들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소리도 지르고 몸도 흔든다. 그런데 몇 번 만나 얼굴을 익히니 가게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떠올렸다.이어 “사회복지사 말로는 이들이 코코카페를 간다고 하면 서로 먼저 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순서가 있어 안 된다고 하면 토라진다고 말해줬다”며 “이제는 가게에 오는 날엔 먼저 아는 척을 하기도 한다.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맛있다는 표현을 해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 이 얼마나 작지만 소중한 일인가’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라고 말했다.가게에서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코코카페 제공)힘든 순간이 있었는지를 묻자 사장은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한참일 때를 짚었다. 그는 “당시 손님도 별로 없어서 매출이 정말 많이 감소했다. 가게 유지가 어려울 정도였다”며 “그런데도 행복 나눔 세트를 찾는 이들과 행복 나눔 행사를 기다리는 이들이 생각나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사장은 “그래서 형편 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결심했다”며 “코로나로 인해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어 매주 50인분의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그렇게 2년 넘게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코로나가 조금씩 완화하면서 다시 가게로 아이들을 초청해 다시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반갑더라”라고 전했다.그러면서 “나눔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정성과 진심을 전하면 그게 다시 내게 돌아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며 “그 생각으로 가게를 지켜내고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라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이러한 일들이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또 자신 말고도 다른 일로도 선행을 실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냐며 자신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바라는 점은 누구나 사실 장애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식이 바뀌려면 다른 자영업자분들도 이와 같은 행사에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면 좋겠다”고 했다.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로 인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라며 “이 아이들은 처음에 마음의 문을 쉽게 못 열더라. 그런데 지속적으로 따뜻한 관심을 전하면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사장은 “그런 작은 관심들이 우리 사회에 소외된 분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행복 나눔 행사 때 준비하는 음식들 (사진=코코카페 제공)그는 “대부분 사람은 행복 나눔 세트 혹은 행복 나눔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아 그래? 복 받겠다’라고 말하고만 만다”라며 “한 번이라도 좋으니 시간 날 때 같이 선행에 동참하면 생각지도 못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나눔이라는 것이 받는 이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전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끝으로 사장은 코코카페가 자신에게 있어서 ‘행복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 아이들에게도 항상 말해왔지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답한다”라며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고 했다.그는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위하고 아끼고 살아가며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정으로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코코카페를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행복을 경험하고 받은 행복을 배로 돌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3.01.14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0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코코카페를 찾았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행복 나눔 세트 있나요?”어느 날 가게에 찾아온 노숙인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 나눔 세트는 정말 배가 고픈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사를 못 하는 이들을 위해 가게 사장이 마련한 무료 브런치 세트 메뉴다. 노숙인은 그렇게 몇 번 더 가게에 방문해 행복 나눔 세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더 이상 가게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노숙인이 다시 가게를 방문했다. 노숙인은 대뜸 만 원 한 장을 꺼내 들며 사장에게 말했다.“제가 드디어 일하게 됐습니다. 저도 이제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날 노숙인은 자신 있게 꺼내 든 만원으로 행복 나눔 세트가 아닌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사장은 당시 환하게 웃던 노숙인의 모습이 선명히 기억난다고 했다.(사진=송혜수 기자)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코코카페’의 이야기다. 이 카페에서는 앞서 소개한 행복 나눔 세트와 함께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한다. 각각 시작한 지는 10여 년, 5년째에 접어들었다. 행복 나눔 행사는 매주 장애인 보육원 등에서 아이들을 가게로 초청해 음식 대접을 한다.우연히 가게의 선행을 접하고 지난 10일 오후 코코카페를 직접 방문했다. 마침 가게에서는 행복 나눔 행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행복 나눔 행사 진행으로 테이크 아웃 및 야외 좌석만 이용 가능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계산대 앞에는 행복 나눔 세트에 관한 안내가 큼지막하게 보였다. 안내문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브런치 나눔 세트 주세요라고 말씀하세요! 다른 어려운 분들을 위해 다시 오셔서 기부해 주세요. 여러분이 드시는 커피 및 식사메뉴의 30%를 자선 음식 기부에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이어 ‘용인 및 수원시 내 보육원 및 중증장애원의 총 200명의 어린이를 매월 음식기부 및 무료 식사 초대해 행복 나눔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행복과 희망을 같이 전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가게 입구에 붙어 있는 ‘행복 나눔 행사’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직원에게 행복 나눔 세트에 대한 구성을 물어보니 보통 버거 혹은 파니니와 함께 음료 한 잔이 제공된다고 했다. 다만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해당 메뉴에 맞춰 행복 나눔 세트를 전해 준다고 알려줬다.이에 기자는 수제버거 한 개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격은 수제버거 8900원, 아메리카노는 2900원. 총 11800원이 나왔다. 수제버거는 싱싱한 양상추와 생토마토, 적양파와 치즈, 그리고 두툼한 고기패티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반을 갈라 살펴보니 각각의 재료들이 층층이 푸짐하게 속을 채웠다. 다진 피클과 겨자 소스 등도 고루 발려져 있었다. 한입에 맛보려 했지만 버거의 두께가 상당해 입안 가득 밀어 넣어도 역부족이었다.신선한 양상추는 아삭 소리를 내며 텁텁하지 않게 빵과 어우러졌다. 생토마토와 적양파, 그리고 치즈는 각각 짭짤하고 달짝지근하게 맛을 냈다. 두툼한 고기패티는 풍부한 육즙을 머금고 있었다. 은은하게 불 향이 느껴졌다. 매력적인 재료들이 합쳐지니 조화로웠다.이날 주문한 수제버거. 가격은 8900원이다 (영상=송혜수 기자)이곳의 사장은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아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사장은 “제게 아픈 아이가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서 2~3년 생활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해 저절로 관심을 두게 됐다”고 운을 뗐다.그는 “처음에는 장애 아이들에 대한 세계를 전혀 모르고 살았다. 장애 아이들은 밖에 나와 가족들과 외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며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의지가 있음에도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더라.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외식의 즐거움, 행복감을 조금이나마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 나눔을 실천하게 됐다”라고 전했다.나눔을 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가게에서 동냥하던 할아버지의 사연을 언급했다. 사장은 “어떤 날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동냥하더라. 할아버지는 ‘배가 고픈데 돈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계산대 앞에 붙어 있는 행복 나눔 세트와 행사에 대한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행복 나눔 세트가 있으니 마음껏 식사하고 가시라고 권했고 할아버지는 햄버거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며 이런 음식이 있었냐고 말했다”며 “행복 나눔 세트를 다 드신 뒤 할아버지는 ‘햄버거라는 게 정말 맛있는 음식이구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수고해요’라고 말하고 가게를 떠났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그는 이 할아버지를 보며 혹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천사가 가게로 찾아와서 행복 나눔 세트를 맛보고 덕담을 나누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사장은 “나눔을 하다 보면 이처럼 되레 감사한 일이 많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지역 중증 장애인과 인지 장애인 보육원 등에서 매주 아이들을 가게로 초청해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감사한 기회고 행복한 일이라고 전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그는 “아이들을 직접 가게로 초청하는 이유는 이들이 외식을 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몸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의 경우엔 휠체어를 밀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항상 동행한다. 이들이 다 같이 오려면 스타렉스 차량으로 여러 번 와야 한다”고 설명했다.사장은 “솔직히 처음 중증 장애인을 봤을 땐 조금 겁도 났다”며 “이들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소리도 지르고 몸도 흔든다. 그런데 몇 번 만나 얼굴을 익히니 가게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떠올렸다.이어 “사회복지사 말로는 이들이 코코카페를 간다고 하면 서로 먼저 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순서가 있어 안 된다고 하면 토라진다고 말해줬다”며 “이제는 가게에 오는 날엔 먼저 아는 척을 하기도 한다.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맛있다는 표현을 해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 이 얼마나 작지만 소중한 일인가’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라고 말했다.가게에서 행복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코코카페 제공)힘든 순간이 있었는지를 묻자 사장은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한참일 때를 짚었다. 그는 “당시 손님도 별로 없어서 매출이 정말 많이 감소했다. 가게 유지가 어려울 정도였다”며 “그런데도 행복 나눔 세트를 찾는 이들과 행복 나눔 행사를 기다리는 이들이 생각나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사장은 “그래서 형편 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결심했다”며 “코로나로 인해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어 매주 50인분의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그렇게 2년 넘게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코로나가 조금씩 완화하면서 다시 가게로 아이들을 초청해 다시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반갑더라”라고 전했다.그러면서 “나눔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정성과 진심을 전하면 그게 다시 내게 돌아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며 “그 생각으로 가게를 지켜내고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라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이러한 일들이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또 자신 말고도 다른 일로도 선행을 실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냐며 자신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바라는 점은 누구나 사실 장애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식이 바뀌려면 다른 자영업자분들도 이와 같은 행사에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면 좋겠다”고 했다.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로 인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라며 “이 아이들은 처음에 마음의 문을 쉽게 못 열더라. 그런데 지속적으로 따뜻한 관심을 전하면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사장은 “그런 작은 관심들이 우리 사회에 소외된 분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행복 나눔 행사 때 준비하는 음식들 (사진=코코카페 제공)그는 “대부분 사람은 행복 나눔 세트 혹은 행복 나눔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아 그래? 복 받겠다’라고 말하고만 만다”라며 “한 번이라도 좋으니 시간 날 때 같이 선행에 동참하면 생각지도 못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나눔이라는 것이 받는 이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전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끝으로 사장은 코코카페가 자신에게 있어서 ‘행복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 아이들에게도 항상 말해왔지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답한다”라며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고 했다.그는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위하고 아끼고 살아가며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정으로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코코카페를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행복을 경험하고 받은 행복을 배로 돌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아아가 뜨아로 바뀌어도…5평 남짓 카페가 특별한 이유[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27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카페 뜨랑슈아를 직접 찾아가 봤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5평 남짓한 공간. 한 건물에서 순댓국집과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장사를 하는 아주 작은 카페가 있다. 사실 순댓국집 안에 카페가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카페 테이블이 순댓국집 안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가게. 조금 독특한 이 카페는 음료를 마시면 자동으로 기부가 되는 비영리 카페다. 이름은 ‘뜨랑슈아’ 함께 커피와 빵을 나누어 먹는 친구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순댓국집 사장님이 가게 일부를 무상 임대하면서 지금의 공간이 마련됐다. 건물 모퉁이에 장식된 뜨랑슈아의 간판 (사진=송혜수 기자)카페 바리스타는 발달장애인이다. 이곳은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생겨났다. 시민들의 모금과 한국지역난방공사 용인지사 지원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집기들을 준비했다. 수지장애인복지관의 직업지원팀에서는 전반적인 카페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커피 한 잔에 담긴 관심과 사랑으로 이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걸 모두가 느끼면 좋겠다’는 소개 문구를 우연히 접하고 지난 27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카페 뜨랑슈아를 찾아갔다. 카페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오후 카페에는 기자 외에도 여러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지켜보니 5팀 정도 가게를 다녀갔다. 대부분 테이블을 이용하지 않고 주문한 음료를 챙겨 곧바로 카페를 떠났다. 가게를 지키는 직원은 두 명이었다. 두 사람은 단정하고 밝은 미소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연신 메뉴를 만들어냈다. 기자가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핫도그, 그리고 계란빵이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은 핫도그 세트메뉴가 있다며 세트로 주문하는 게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설명했다.이날 주문한 뉴욕식 핫도그. 각종 소스가 넉넉히 뿌려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발달장애인은 조금 서투르겠지’라는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핫도그와 아메리카노 세트는 4000원, 계란빵은 1500원. 총 5500원이 나왔다. 먼저 맛본 핫도그는 뉴욕식 핫도그로 길이를 재보니 17㎝ 정도였다.반을 갈라 속 재료를 살펴보니 두툼한 소시지에 다진 피클이 들어 있었다. 그 위로 머스타드 등 각종 소스가 넉넉히 뿌려져 있었다. 소시지에는 칼집이 나 있었다. 새콤하고 짭조름한 다진 피클이 소시지와 어우러지니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췄다.당일 한정 판매하는 계란빵. (사진=송혜수 기자)계란빵은 몽글몽글하게 으깨진 삶은 계란이 입안에서 탱탱한 식감을 선사했다.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해 감칠맛이 좋았다. 계란 비린내도 전혀 없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먹으니 든든하게 배가 채워졌다.이곳의 장애인 바리스타와 보조 인력들은 복지관을 통해 시에서 급여가 지원된다고 한다. 원재료비용과 일부 홍보 비용을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장애인 복지관으로 기부되고 있다. 순댓국집 사장은 어쩌다 이 카페에 공간을 무상으로 나눠주게 된 걸까.(사진=송혜수 기자)사장 최양국(46)씨는 벌써 카페가 생긴 지 2년 정도 된 듯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동생이 사회복지 전공을 했는데 그 영향 덕분인지 자체적으로 복지관에 나가 무료 식사를 제공하곤 했다”라며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생이 복지관에서 카페 뜨랑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도움을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공간을 무상으로 내어주게 됐다”라고 밝혔다.최씨는 “처음에는 카페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라며 “주변에 워낙 대형 카페가 많아서 손님이 별로 없었다. 일하러 온 친구들 역시 종일 가만히 있다가 정리하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아시는 분 몇몇이 방문하는 게 전부였는데 입소문이 났는지 손님이 점차 늘어났다”라고 전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어 “재밌는 일도 있었는데 교육생으로 온 친구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사장님 보이면 인사하자’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라며 “아이들이 참 맑고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손이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다 해내는 걸 보면 기특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아이들 덕분에 좋아진 점도 있는데 가게 앞이 늘 깔끔하게 정리 정돈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기왕 커피 한 잔 마시는 거 일종의 기부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뜨랑슈아를 방문하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카페 내부에 붙어 있는 안내 포스터 (사진=송혜수 기자)카페를 운영·관리하는 복지관 직업지원팀 관계자는 “현재 순댓국집에 자리 잡은 곳은 뜨랑슈아의 1호점”이라며 “수지복지센터 1층에 2호점이 있고 느티나무 도서관 지하 1층에 3호점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2호점은 수지 구청에서, 3호점은 도서관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했다.직업지원팀에서는 카페 외에도 경증·중증장애인의 취업을 위해 일자리를 알선하고 직업 훈련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각종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취업 이후에는 잘 적응하는지도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관계자는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다며 장애인은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머리, 즉 센스를 기르는 게 어렵다. 이런 부분은 교육을 통해서 습득해야 하는데 교육자 입장에서 볼 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라고 말했다.이어 “코로나19로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처음 배달 시스템을 접하다 보니 미숙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비장애인들도 하기 어려운 복잡한 일들을 장애인들이 학습해 직접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놀랐다”라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특히 “주문을 받고 포장을 하고 배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 일차적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물론 100%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저희가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민원에는 주문 사항 누락 등이 있다고 했다. 관계자는 “배달 서비스를 받을 때 가끔 누락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럴 때 흔히들 언짢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며 “뜨랑슈아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예를 들어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와 같은 차가운 음료를 주문했는데 뜨거운 아메리카노(뜨아)를 전달한다거나 소스를 요청했는데 누락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뜨랑슈아의 취지를 설명하니 오히려 웃으며 긍정적으로 바뀐 사례도 있었다고.관계자는 “복지관 1층에 있는 뜨랑슈아 2호점에는 아동 치료를 위해 복지관을 방문하는 부모들이 자주 찾는다”라며 “이곳에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를 보며 ‘아 우리 아이도 커서 이렇게 취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또 일할 수 있는 희망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뜨랑슈아는 ‘함께 커피와 빵을 나누어 먹는 친구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에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카페 뜨랑슈아를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저희는 기본적으로 지역 사회 안에서 장애인들이 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라며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구성원으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장애인들은 어떤 무언가를 배우려면 배움의 시간이 정말 길다. 숱한 노력을 통해 학습하고 습득하는 것인데 그런 자세를 바라봐주면 아마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라며 “결실을 맺어갈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2.31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27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카페 뜨랑슈아를 직접 찾아가 봤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5평 남짓한 공간. 한 건물에서 순댓국집과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장사를 하는 아주 작은 카페가 있다. 사실 순댓국집 안에 카페가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카페 테이블이 순댓국집 안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가게. 조금 독특한 이 카페는 음료를 마시면 자동으로 기부가 되는 비영리 카페다. 이름은 ‘뜨랑슈아’ 함께 커피와 빵을 나누어 먹는 친구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순댓국집 사장님이 가게 일부를 무상 임대하면서 지금의 공간이 마련됐다. 건물 모퉁이에 장식된 뜨랑슈아의 간판 (사진=송혜수 기자)카페 바리스타는 발달장애인이다. 이곳은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생겨났다. 시민들의 모금과 한국지역난방공사 용인지사 지원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집기들을 준비했다. 수지장애인복지관의 직업지원팀에서는 전반적인 카페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커피 한 잔에 담긴 관심과 사랑으로 이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걸 모두가 느끼면 좋겠다’는 소개 문구를 우연히 접하고 지난 27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카페 뜨랑슈아를 찾아갔다. 카페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오후 카페에는 기자 외에도 여러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지켜보니 5팀 정도 가게를 다녀갔다. 대부분 테이블을 이용하지 않고 주문한 음료를 챙겨 곧바로 카페를 떠났다. 가게를 지키는 직원은 두 명이었다. 두 사람은 단정하고 밝은 미소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연신 메뉴를 만들어냈다. 기자가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핫도그, 그리고 계란빵이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은 핫도그 세트메뉴가 있다며 세트로 주문하는 게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설명했다.이날 주문한 뉴욕식 핫도그. 각종 소스가 넉넉히 뿌려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발달장애인은 조금 서투르겠지’라는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핫도그와 아메리카노 세트는 4000원, 계란빵은 1500원. 총 5500원이 나왔다. 먼저 맛본 핫도그는 뉴욕식 핫도그로 길이를 재보니 17㎝ 정도였다.반을 갈라 속 재료를 살펴보니 두툼한 소시지에 다진 피클이 들어 있었다. 그 위로 머스타드 등 각종 소스가 넉넉히 뿌려져 있었다. 소시지에는 칼집이 나 있었다. 새콤하고 짭조름한 다진 피클이 소시지와 어우러지니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췄다.당일 한정 판매하는 계란빵. (사진=송혜수 기자)계란빵은 몽글몽글하게 으깨진 삶은 계란이 입안에서 탱탱한 식감을 선사했다.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해 감칠맛이 좋았다. 계란 비린내도 전혀 없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먹으니 든든하게 배가 채워졌다.이곳의 장애인 바리스타와 보조 인력들은 복지관을 통해 시에서 급여가 지원된다고 한다. 원재료비용과 일부 홍보 비용을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장애인 복지관으로 기부되고 있다. 순댓국집 사장은 어쩌다 이 카페에 공간을 무상으로 나눠주게 된 걸까.(사진=송혜수 기자)사장 최양국(46)씨는 벌써 카페가 생긴 지 2년 정도 된 듯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동생이 사회복지 전공을 했는데 그 영향 덕분인지 자체적으로 복지관에 나가 무료 식사를 제공하곤 했다”라며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생이 복지관에서 카페 뜨랑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도움을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공간을 무상으로 내어주게 됐다”라고 밝혔다.최씨는 “처음에는 카페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라며 “주변에 워낙 대형 카페가 많아서 손님이 별로 없었다. 일하러 온 친구들 역시 종일 가만히 있다가 정리하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아시는 분 몇몇이 방문하는 게 전부였는데 입소문이 났는지 손님이 점차 늘어났다”라고 전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어 “재밌는 일도 있었는데 교육생으로 온 친구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사장님 보이면 인사하자’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라며 “아이들이 참 맑고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손이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다 해내는 걸 보면 기특할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아이들 덕분에 좋아진 점도 있는데 가게 앞이 늘 깔끔하게 정리 정돈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기왕 커피 한 잔 마시는 거 일종의 기부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뜨랑슈아를 방문하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카페 내부에 붙어 있는 안내 포스터 (사진=송혜수 기자)카페를 운영·관리하는 복지관 직업지원팀 관계자는 “현재 순댓국집에 자리 잡은 곳은 뜨랑슈아의 1호점”이라며 “수지복지센터 1층에 2호점이 있고 느티나무 도서관 지하 1층에 3호점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2호점은 수지 구청에서, 3호점은 도서관에서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했다.직업지원팀에서는 카페 외에도 경증·중증장애인의 취업을 위해 일자리를 알선하고 직업 훈련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각종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취업 이후에는 잘 적응하는지도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관계자는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다며 장애인은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머리, 즉 센스를 기르는 게 어렵다. 이런 부분은 교육을 통해서 습득해야 하는데 교육자 입장에서 볼 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라고 말했다.이어 “코로나19로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처음 배달 시스템을 접하다 보니 미숙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비장애인들도 하기 어려운 복잡한 일들을 장애인들이 학습해 직접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놀랐다”라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특히 “주문을 받고 포장을 하고 배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 일차적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물론 100%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저희가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민원에는 주문 사항 누락 등이 있다고 했다. 관계자는 “배달 서비스를 받을 때 가끔 누락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럴 때 흔히들 언짢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며 “뜨랑슈아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예를 들어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와 같은 차가운 음료를 주문했는데 뜨거운 아메리카노(뜨아)를 전달한다거나 소스를 요청했는데 누락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뜨랑슈아의 취지를 설명하니 오히려 웃으며 긍정적으로 바뀐 사례도 있었다고.관계자는 “복지관 1층에 있는 뜨랑슈아 2호점에는 아동 치료를 위해 복지관을 방문하는 부모들이 자주 찾는다”라며 “이곳에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를 보며 ‘아 우리 아이도 커서 이렇게 취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또 일할 수 있는 희망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뜨랑슈아는 ‘함께 커피와 빵을 나누어 먹는 친구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에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카페 뜨랑슈아를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저희는 기본적으로 지역 사회 안에서 장애인들이 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라며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구성원으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장애인들은 어떤 무언가를 배우려면 배움의 시간이 정말 길다. 숱한 노력을 통해 학습하고 습득하는 것인데 그런 자세를 바라봐주면 아마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라며 “결실을 맺어갈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사장·직원이 없다…'레미제라블', 그곳에 가면[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위치한 소문난 브런치 카페를 직접 찾아가 봤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그곳엔 조금 특별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사장과 직원은 없고 50명의 봉사자가 돌아가며 가게를 운영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수고비는 없지만, 자원해서 밀가루를 빚어 빵을 만들거나 인도네시아에서 공수해 온 커피를 볶는다.탄천과 맞닿아 있어 마치 비밀의 화원 같은 그곳의 이름은 ‘레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새벽월드교회에서 운영하는 이 카페는 수익금 전액을 캄보디아와 인도의 고아원 등에 기부한다고 한다.카페 ‘레미제라블’ 외관 (사진=레미제라블 제공)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관련 장소를 찾던 중 해당 카페를 발견했다. 지난 2018년 종영한 SBS 드라마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상견례 촬영지로도 한 차례 이름을 알린 바 있으나, 이곳이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는 대게 교인들만 이용하는 일반적인 교회 내 카페와는 분위기와 운영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데 있었다.카페 이용객들의 후기에는 “탄천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좋다” “브런치 카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음식과 커피를 마시면서 좋은 일을 한다니 돈이 안 아깝다”라고 적혀있었다.인기 좌석인 테라스 모습 (사진=레미제라블 제공)지난 9일 특별하기로 입소문 난 카페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점심무렵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다섯 팀 정도 있었는데, 이 중 한 팀을 제외한 네 팀이 전부 가게 테라스에 마련된 좌석을 이용 중이었다. 테라스에는 두 대의 화목난로가 공기를 훈훈하게 데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은 나무가 무성했다. 한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꾸며져 있었다.가게 곳곳에 붙어있는 수익금 기부 관련 사진과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곳곳에는 수익금 기부 관련 사진과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수익금 전액은 캄보디아 OCTO 고아원과 인도 새벽고아원 운영, 그리고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입니다. 카페를 이용하는 여러분은 사역에 동참하시게 됩니다’라고 적혀있었다.또 다른 안내문에는 ‘인도네시아 해발 1500m 고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수작업을 통해 가공된 최상급 원두를 사용합니다. 수익금은 인도네시아 재배지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해 사용합니다’라고 알렸다.이날 주문한 메뉴.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1만3000원)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1만2000원), 마르게리타 피자(1만1000원)를 시켰다. (사진=송혜수 기자)카운터를 지키던 봉사자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안내했다. 추천 메뉴를 묻자 자신 있게 치아바타(이탈리아식 바게트 빵) 샌드위치를 권했다. 그는 “빵을 직접 만들어 부드럽고 맛있다”며 “가장 인기가 좋다”라고 설명했다. 봉사자의 추천에 따라 이날 주문한 메뉴는 총 세 가지다.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1만3000원)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1만2000원), 마르게리타 피자(1만1000원)를 시켰다. 먼저 맛본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는 2인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자랑했다. 속 재료를 살펴보니 치즈와 생토마토 등 사이로 두툼한 고기가 있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 옆에는 샐러드가 양껏 올려졌다. 치아바타 샌드위치. 속 재료가 든든히 채워져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샐러드는 상큼하고 달콤한 드레싱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신선했고 양상추는 아삭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각각의 재료가 어우러져 조화로웠다. 부드러운 치즈와 적당히 간이 배어 있는 고기는 배를 든든히 채웠고 신선한 토마토와 상추 등은 입안을 산뜻하게 했다. 특히 빵이 인상 깊었다. 질기거나 딱딱하지 않았고 푸석푸석하지도 않았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고 고소한 맛이 났다.프렌치토스트 브런치. (영상=송혜수 기자)두 번째로 맛본 음식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다. 프렌치토스트는 우유와 달걀, 설탕 등을 섞어 푼 것에 얇은 식빵 조각을 담갔다가 살짝 구워낸 음식이다. 구성은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동일한 듯 보이는 샐러드를 비롯해 베이컨과 소시지, 반숙 계란프라이, 그리고 프렌치토스트 4조각으로 돼 있다. 여기에 곁들일 수 있는 딸기잼과 케첩이 제공됐다.프렌치토스트는 눅눅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토스트 위에 샐러드와 베이컨 등을 취향껏 올려 먹으니 햄버거를 먹는 듯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일일이 칼집을 낸 소시지는 속까지 고루 따뜻했다. 기름지지도 않았다. 딸기잼과 케첩을 번갈아 발라 먹으니 물리지 않았다.마르게리타 피자 (사진=송혜수 기자)마지막으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봤다. 전통 나폴리 피자 중 하나인 마르게리타 피자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이 들어가는데, 이날 먹은 마르게리타 피자에는 바질 대신 양파가 토핑으로 올라가 있었다. 한 조각 떼어 들어 올리니 묵직한 느낌보다는 가벼운 화덕피자에 가까웠다. 피자의 가장자리는 바삭했고 토핑이 올라간 부분은 달짝지근한 양파가 개운한 맛을 냈다.카페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2002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이승영 원로목사가 캄보디아를 방문해 고아들을 만난 뒤 생겼다고 한다.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교회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카페를 일궈 왔다는 것이다. 가게의 유지비용은 교회 외곽 조직인 사단법인 생명문화회에서 충당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와 인도 고아원 등으로 기부된 수익금은 아이들의 숙식과 학업 등에 쓰인다.터를 잡은 뒤로 이 원로목사는 보육원뿐 아니라 장애인 선교회 등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 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또 청년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에 두 차례 매 학기에 걸쳐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침공으로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의 어려운 주민을 돕기 위해 1억3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카페에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송혜수 기자)이러한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에 대해 조충만 담임목사는 “우리나라가 6·25전쟁 이후 어려울 때 다른 나라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우리가 베풀 차례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나라를 돕는 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카페를 찾는 손님들에 관해 묻자 조 담임목사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이지만 교인뿐 아니라 외부인도 많이 이용한다”라며 “카페가 공원 산책로와 붙어 있어 산책하다 우연히 들어오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미제라블 카페는 교회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며 “봉사자들이 수고비 한 푼 받지 않고 교대로 돌아가며 카페를 관리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조 담임목사는 카페 레미제라블을 ‘사랑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국내외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곳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2.17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위치한 소문난 브런치 카페를 직접 찾아가 봤다. (사진=이데일리 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그곳엔 조금 특별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사장과 직원은 없고 50명의 봉사자가 돌아가며 가게를 운영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수고비는 없지만, 자원해서 밀가루를 빚어 빵을 만들거나 인도네시아에서 공수해 온 커피를 볶는다.탄천과 맞닿아 있어 마치 비밀의 화원 같은 그곳의 이름은 ‘레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새벽월드교회에서 운영하는 이 카페는 수익금 전액을 캄보디아와 인도의 고아원 등에 기부한다고 한다.카페 ‘레미제라블’ 외관 (사진=레미제라블 제공)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관련 장소를 찾던 중 해당 카페를 발견했다. 지난 2018년 종영한 SBS 드라마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상견례 촬영지로도 한 차례 이름을 알린 바 있으나, 이곳이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는 대게 교인들만 이용하는 일반적인 교회 내 카페와는 분위기와 운영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데 있었다.카페 이용객들의 후기에는 “탄천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좋다” “브런치 카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음식과 커피를 마시면서 좋은 일을 한다니 돈이 안 아깝다”라고 적혀있었다.인기 좌석인 테라스 모습 (사진=레미제라블 제공)지난 9일 특별하기로 입소문 난 카페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점심무렵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다섯 팀 정도 있었는데, 이 중 한 팀을 제외한 네 팀이 전부 가게 테라스에 마련된 좌석을 이용 중이었다. 테라스에는 두 대의 화목난로가 공기를 훈훈하게 데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은 나무가 무성했다. 한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꾸며져 있었다.가게 곳곳에 붙어있는 수익금 기부 관련 사진과 안내문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곳곳에는 수익금 기부 관련 사진과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수익금 전액은 캄보디아 OCTO 고아원과 인도 새벽고아원 운영, 그리고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입니다. 카페를 이용하는 여러분은 사역에 동참하시게 됩니다’라고 적혀있었다.또 다른 안내문에는 ‘인도네시아 해발 1500m 고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수작업을 통해 가공된 최상급 원두를 사용합니다. 수익금은 인도네시아 재배지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해 사용합니다’라고 알렸다.이날 주문한 메뉴.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1만3000원)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1만2000원), 마르게리타 피자(1만1000원)를 시켰다. (사진=송혜수 기자)카운터를 지키던 봉사자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안내했다. 추천 메뉴를 묻자 자신 있게 치아바타(이탈리아식 바게트 빵) 샌드위치를 권했다. 그는 “빵을 직접 만들어 부드럽고 맛있다”며 “가장 인기가 좋다”라고 설명했다. 봉사자의 추천에 따라 이날 주문한 메뉴는 총 세 가지다.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1만3000원)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1만2000원), 마르게리타 피자(1만1000원)를 시켰다. 먼저 맛본 멜팅 치즈 비프 치아바타는 2인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자랑했다. 속 재료를 살펴보니 치즈와 생토마토 등 사이로 두툼한 고기가 있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 옆에는 샐러드가 양껏 올려졌다. 치아바타 샌드위치. 속 재료가 든든히 채워져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샐러드는 상큼하고 달콤한 드레싱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신선했고 양상추는 아삭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각각의 재료가 어우러져 조화로웠다. 부드러운 치즈와 적당히 간이 배어 있는 고기는 배를 든든히 채웠고 신선한 토마토와 상추 등은 입안을 산뜻하게 했다. 특히 빵이 인상 깊었다. 질기거나 딱딱하지 않았고 푸석푸석하지도 않았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고 고소한 맛이 났다.프렌치토스트 브런치. (영상=송혜수 기자)두 번째로 맛본 음식은 프렌치토스트 브런치다. 프렌치토스트는 우유와 달걀, 설탕 등을 섞어 푼 것에 얇은 식빵 조각을 담갔다가 살짝 구워낸 음식이다. 구성은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동일한 듯 보이는 샐러드를 비롯해 베이컨과 소시지, 반숙 계란프라이, 그리고 프렌치토스트 4조각으로 돼 있다. 여기에 곁들일 수 있는 딸기잼과 케첩이 제공됐다.프렌치토스트는 눅눅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토스트 위에 샐러드와 베이컨 등을 취향껏 올려 먹으니 햄버거를 먹는 듯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일일이 칼집을 낸 소시지는 속까지 고루 따뜻했다. 기름지지도 않았다. 딸기잼과 케첩을 번갈아 발라 먹으니 물리지 않았다.마르게리타 피자 (사진=송혜수 기자)마지막으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봤다. 전통 나폴리 피자 중 하나인 마르게리타 피자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이 들어가는데, 이날 먹은 마르게리타 피자에는 바질 대신 양파가 토핑으로 올라가 있었다. 한 조각 떼어 들어 올리니 묵직한 느낌보다는 가벼운 화덕피자에 가까웠다. 피자의 가장자리는 바삭했고 토핑이 올라간 부분은 달짝지근한 양파가 개운한 맛을 냈다.카페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2002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이승영 원로목사가 캄보디아를 방문해 고아들을 만난 뒤 생겼다고 한다.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교회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카페를 일궈 왔다는 것이다. 가게의 유지비용은 교회 외곽 조직인 사단법인 생명문화회에서 충당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와 인도 고아원 등으로 기부된 수익금은 아이들의 숙식과 학업 등에 쓰인다.터를 잡은 뒤로 이 원로목사는 보육원뿐 아니라 장애인 선교회 등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 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또 청년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에 두 차례 매 학기에 걸쳐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침공으로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의 어려운 주민을 돕기 위해 1억3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카페에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송혜수 기자)이러한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에 대해 조충만 담임목사는 “우리나라가 6·25전쟁 이후 어려울 때 다른 나라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우리가 베풀 차례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나라를 돕는 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카페를 찾는 손님들에 관해 묻자 조 담임목사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이지만 교인뿐 아니라 외부인도 많이 이용한다”라며 “카페가 공원 산책로와 붙어 있어 산책하다 우연히 들어오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미제라블 카페는 교회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며 “봉사자들이 수고비 한 푼 받지 않고 교대로 돌아가며 카페를 관리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조 담임목사는 카페 레미제라블을 ‘사랑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국내외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곳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애들 팔아 장사하냐는 악플도”… ‘돈쭐’ 난 파스타집 근황[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의 모습. (사진=오 대표 제공)[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밥 한번 편하게 먹자!”서울 마포구의 한 파스타집 사장은 말했다. 가게 입구에는 VIP를 위한 안내문을 붙이고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을 적었다.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5.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이 가게의 VIP는 급식지원카드를 지닌 결식아동들이다. 급식지원카드는 보호자의 식사 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카드다. 일반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식사 단가는 한 끼 당 8000원이다.‘진짜 파스타’의 오인태(37) 대표는 지난 2019년 구청에 들렀다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결식아동 관련 지원비 횡령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주자는 생각이 들어 가게에 VIP 제도를 만들었다.오 대표의 선한 아이디어는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게에는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이른바 ‘돈쭐’ 손님들이 줄을 섰고 오 대표를 따라 VIP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언론에서도 오 대표의 아이디어가 소개됐다.그로부터 2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오 대표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진짜파스타’ 가게 입구. (사진=독자 제공, eco_simplelife_yuri)그는 제일 먼저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관공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라며 “소방공무원분들에게도 테이블 무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다만 “대부분 김영란법 때문에 3만 원 미만 금액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 밖에 일부 연이 닿은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결식아동 돕는 것을 먼저 시작했으니 조금 자리 잡은 이후에 보호 종료 아이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게에 방문했는지를 묻자 오 대표는 “코로나19 전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전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찾아줬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3~4팀 정도 오는 것 같다”라며 “전국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분산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가게 앞에 붙어 있는 VIP 안내문 (사진=독자 제공, heewan93)선한 영향력 가게는 결식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다. 2019년 오 대표 가게를 시작으로 몇몇 가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전국의 3800여 개의 가게가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카페, 안경점, 학원, 세탁소,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이 각기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다.오 대표는 선한 영향력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두고 자신의 가게 첫 VIP 손님들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뜻을 알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아이들이 경기권에서 왔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동생 둘을 데리고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이어 “자신이 괜히 아이들에게 힘든 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날 종일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이후 대전의 한 주점에서 전화가 왔다. 주점 사장은 ‘자신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주류업이라 구청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복지사업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라고 밝혔다.그는 “이때 생각보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더 많은 가게가 함께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멀리 사는 아이들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그렇게 오 대표를 시작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곳곳에 하나둘 생겨났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며 “대전 주점 사장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단어 자체가 마음을 울려서 동참하는 가게를 모아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단체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이 과정에서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가 있다”며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어떤 이는 가게에 전화까지 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했다”며 “하도 시달려서 약까지 먹었다”고 말했다.또 아이들을 돕는 마음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도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음식을 먹고 결식아동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거 있으면 너희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운 뒤 본인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어려울 때 힘이 됐던 것은 가게를 다녀간 아이가 남긴 한 마디였다. 오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친구가 해당 방송 댓글을 공개적으로 남겨줬다. 댓글에는 ‘지난 1년 동안 가게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식사했다.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그걸 보고 나니 남들이 욕하는 것들이 다 상관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를 조금 이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이후 약도 끊었다”고 말했다.가게가 큰 화제가 되면서 돈쭐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감사하게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원래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인지도가 있던 터라 사실상 매출이 크게 오르진 않았다”고 밝혔다.오 대표는 “가게 매출과 관련해서는 코로나 때 타격이 가장 심했는데 매출이 80~90%까지 떨어져 봤다”며 “최악으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일 때도 있었다. 지금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매출에 비하면 50% 정도는 깎여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사진=오 대표 제공)그는 어떤 업종이든 자영업은 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사단법인을 준비 중인 오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용기를 내고 가게를 방문해준 아이들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덕에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겨났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그는 “사단법인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았는데 첫 번째 오해는 ‘정치하려고 한다’였고, 두 번째 오해는 ‘이름 좀 알려서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라며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고 이익을 편취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오 대표는 “국가에서 지정한 사단법인이 되려면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회비 없이 운영하고 싶었지만 2년째 승인이 안 났다”며 “결국 사단법인의 건실성 때문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필요하니 정회원이 되실 분들은 연 10만 원을 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끝으로 오 대표는 진짜 파스타가 ‘인생의 전환점’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사실 처음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였다”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식아동을 돕기까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짜 파스타는 인생의 전환점과 같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10원이든 100원이든 지금 당장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2.03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의 모습. (사진=오 대표 제공)[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밥 한번 편하게 먹자!”서울 마포구의 한 파스타집 사장은 말했다. 가게 입구에는 VIP를 위한 안내문을 붙이고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을 적었다.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5.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이 가게의 VIP는 급식지원카드를 지닌 결식아동들이다. 급식지원카드는 보호자의 식사 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카드다. 일반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식사 단가는 한 끼 당 8000원이다.‘진짜 파스타’의 오인태(37) 대표는 지난 2019년 구청에 들렀다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결식아동 관련 지원비 횡령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주자는 생각이 들어 가게에 VIP 제도를 만들었다.오 대표의 선한 아이디어는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게에는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이른바 ‘돈쭐’ 손님들이 줄을 섰고 오 대표를 따라 VIP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언론에서도 오 대표의 아이디어가 소개됐다.그로부터 2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오 대표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진짜파스타’ 가게 입구. (사진=독자 제공, eco_simplelife_yuri)그는 제일 먼저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관공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라며 “소방공무원분들에게도 테이블 무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다만 “대부분 김영란법 때문에 3만 원 미만 금액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 밖에 일부 연이 닿은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결식아동 돕는 것을 먼저 시작했으니 조금 자리 잡은 이후에 보호 종료 아이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게에 방문했는지를 묻자 오 대표는 “코로나19 전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전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찾아줬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3~4팀 정도 오는 것 같다”라며 “전국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분산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가게 앞에 붙어 있는 VIP 안내문 (사진=독자 제공, heewan93)선한 영향력 가게는 결식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다. 2019년 오 대표 가게를 시작으로 몇몇 가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전국의 3800여 개의 가게가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카페, 안경점, 학원, 세탁소,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이 각기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다.오 대표는 선한 영향력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두고 자신의 가게 첫 VIP 손님들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뜻을 알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아이들이 경기권에서 왔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동생 둘을 데리고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이어 “자신이 괜히 아이들에게 힘든 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날 종일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이후 대전의 한 주점에서 전화가 왔다. 주점 사장은 ‘자신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주류업이라 구청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복지사업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라고 밝혔다.그는 “이때 생각보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더 많은 가게가 함께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멀리 사는 아이들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그렇게 오 대표를 시작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곳곳에 하나둘 생겨났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며 “대전 주점 사장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단어 자체가 마음을 울려서 동참하는 가게를 모아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단체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이 과정에서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가 있다”며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어떤 이는 가게에 전화까지 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했다”며 “하도 시달려서 약까지 먹었다”고 말했다.또 아이들을 돕는 마음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도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음식을 먹고 결식아동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거 있으면 너희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운 뒤 본인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어려울 때 힘이 됐던 것은 가게를 다녀간 아이가 남긴 한 마디였다. 오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친구가 해당 방송 댓글을 공개적으로 남겨줬다. 댓글에는 ‘지난 1년 동안 가게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식사했다.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그걸 보고 나니 남들이 욕하는 것들이 다 상관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를 조금 이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이후 약도 끊었다”고 말했다.가게가 큰 화제가 되면서 돈쭐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감사하게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원래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인지도가 있던 터라 사실상 매출이 크게 오르진 않았다”고 밝혔다.오 대표는 “가게 매출과 관련해서는 코로나 때 타격이 가장 심했는데 매출이 80~90%까지 떨어져 봤다”며 “최악으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일 때도 있었다. 지금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매출에 비하면 50% 정도는 깎여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사진=오 대표 제공)그는 어떤 업종이든 자영업은 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사단법인을 준비 중인 오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용기를 내고 가게를 방문해준 아이들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덕에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겨났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그는 “사단법인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았는데 첫 번째 오해는 ‘정치하려고 한다’였고, 두 번째 오해는 ‘이름 좀 알려서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라며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고 이익을 편취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오 대표는 “국가에서 지정한 사단법인이 되려면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회비 없이 운영하고 싶었지만 2년째 승인이 안 났다”며 “결국 사단법인의 건실성 때문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필요하니 정회원이 되실 분들은 연 10만 원을 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끝으로 오 대표는 진짜 파스타가 ‘인생의 전환점’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사실 처음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였다”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식아동을 돕기까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짜 파스타는 인생의 전환점과 같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10원이든 100원이든 지금 당장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日에 더 많다, 독도는 우리땅인데” 젤라토 사장은 말했다[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한 젤라토 가게를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독도는 우리 땅”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땅,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독도. 이 당연한 사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가장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 젤라토(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gelato) 가게가 있다. 이름은 ‘40240’. 독도의 우편번호를 그대로 가져와 가게 이름으로 지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일상에서 그렇게라도 독도를 떠올리길 바랐다. 이곳에선 독도 커피와 젤라토를 팔고 수익금 일부는 독도사랑운동본부에 후원한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지난달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후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16개 시·도 교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독도의 날을 맞이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앞서 소개한 젤라토 가게를 발견했다. 이곳 사장은 어쩌다 독도 관련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주 메뉴가 젤라토인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가게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오후 방문한 가게에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 ‘오늘의 젤라토’라며 당일 선정한 젤라토 메뉴를 적어놓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 앞에 적힌 ‘오늘의 젤라토’.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다고 강조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카페 곳곳에 깔끔하게 꾸며진 독도 관련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과 배지를 비롯해 책갈피, 스티커 등이 마련돼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종류의 독도 관련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Do you know 40240?’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인 김학재(61)씨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소개했다.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막 4개월이 조금 넘었다는 김씨는 자신 있게 직접 만든 젤라토를 설명했다. 그날그날 메뉴가 바뀐다는 말에 오늘의 추천 메뉴를 묻자 김씨는 맛보기용 작은 스푼으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를 살짝 덜어 건넸다. 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여기에 독도 커피까지 더하니 2만8000원이 나왔다. 젤라토는 한 컵에 한 가지 맛만 담을 땐 5500원이며 한 컵에 두 가지 맛을 함께 담을 땐 6000원이다. 김씨는 주문과 동시에 젤라토를 먹기 좋게 담아 제공했다. 메뉴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꼭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먼저 맛본 젤라토는 김씨가 추천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다. 강릉 초당 순두부의 주재료인 백태콩이 들어간 이 젤라토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걸쭉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맛본 것은 유기농 우유 젤라토다. 먼저 맛본 순두부 백태콩과 비슷하게 고소한 맛이 났지만 식감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젤라토 위에 올라간 작은 아이스크림콘은 손님이 다른 맛도 즐길 수 있도록 살짝 덜어 올려주는 거라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쌀 젤라토다. 겉으로 보기엔 유기농 우유 젤라토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한입 먹어보니 쫀득하게 씹히는 밥알이 먹는 재미를 더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나몬 향은 색다른 감칠맛을 줬다. 네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말차 맛이다. 텁텁하거나 떫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필라델피아 오레오 크림치즈 젤라토를 맛봤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차진 크림치즈에 바삭한 오레오가 더해지니 풍미가 일품이었다. 여섯 번째는 딸기 소르베 젤라토다. 소르베는 우유를 넣지 않은 것을 말한다. 딸기를 조려 얼린 듯 진하고 풍부한 딸기 향이 물씬 났다.마지막으로 백향과 소르베 젤라토를 맛봤다. 흔히 패션프루트라고 불리는 백향과는 백 가지 향을 가진 여신의 과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백향과의 오독오독 씹히는 씨와 새콤달콤한 과육이 소르베 젤라토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상큼하고 시원했다.사장은 제자 2명과 함께 젤라토 가게를 시작했다. 제자들은 젤라토 가게를 하기 전 ‘독도 커피’를 팔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사장 김씨는 제자 2명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 이화여자대에서 푸드 앤 컬처 아카데미(Food & Culture Academy) 산학협력을 운영했다는 김씨는 한국 최초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칼럼니스트 양성 전문 기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제자들은 2016년 먼저 ‘독도 커피’라는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제자들이 독도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역사 교육을 통해서다. 가게 곳곳에는 독도 관련 상품이 마련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학생과 소외된 초중생을 연결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최했는데 제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며 “이때 제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역사 교육을 받으며 독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그는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다케시마 관련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나라는 관련 상품이 얼마 없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며 “이후 제자들이 일상에서 독도를 알릴 방법을 고안하다가 ‘독도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독도 커피’ 판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제자들이 독도 관련 상품을 만들어 독도 후원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 또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처음엔 사무실을 얻어주는 등의 지원을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류해 젤라토 가게를 꾸리게 됐다”고 부연했다.그는 “커피만으로는 매출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에 ‘여름이 오니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결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대량 생산하는 일반 아이스크림은 맛을 차별화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젤라토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젤라토 가게를 준비하게 됐다”고 떠올렸다.(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맥주도 지역 맥주가 있듯이 젤라토 역시 그런 성격이 있다. 젤라토는 어떤 원재료를 어떻게,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가게 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메뉴가 그날그날 달라지는 이유도 우리 가게 만의 특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의 노력이 통한 걸까.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따금 김씨에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해온다고 한다. 김씨는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진정성이 느껴졌나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그는 단순 젤라토 가게인 줄만 알았던 손님들이 가게 내 독도 관련 상품을 보고 여러 질문을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강치 인형 하나만으로도 독도에 대해 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테면 “강치는 식육목 바다사자과의 해양포유류로 주로 한일 양국의 환동해권역에서 서식했다. 독도에 대규모로 군집해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독도 강치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세계 학계에는 일본바다사자, 일본강치로 등록돼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1994년 독도 강치의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멸종의 원인은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확인된 바 있다”며 “이런 이야기만 해도 손님들은 일상에서 일본과 독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영상=송혜수 기자)그는 “젤라토 위에 꽂아주는 장식지(‘40240’이 적혀 있다)에도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독도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예상외로 놀란 점은 많은 이들이 꽤 자세하게 독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김씨는 “전에 방문한 어떤 커플은 사이좋게 젤라토를 먹으면서 독도의 역사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초등생 아이와 함께 가게에 온 엄마는 가게에 있는 강치 인형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설명하더라”라고 전했다. (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김씨는 카페 40240은 자신에게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다음 비전은 많은 이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을 비롯해 경력 단절 주부, 그리고 은퇴한 노인까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젤라토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 기반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그분들 역시 다 같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손님들은 자연주의 철학으로 만든 젤라토를 드시고 즐겁고 건강하셨으면 한다. 또 후원하는 뜻있는 단체들이 잘 돼서 세상을 보다 이롭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1.19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한 젤라토 가게를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독도는 우리 땅”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땅,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독도. 이 당연한 사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가장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 젤라토(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gelato) 가게가 있다. 이름은 ‘40240’. 독도의 우편번호를 그대로 가져와 가게 이름으로 지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일상에서 그렇게라도 독도를 떠올리길 바랐다. 이곳에선 독도 커피와 젤라토를 팔고 수익금 일부는 독도사랑운동본부에 후원한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지난달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후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16개 시·도 교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독도의 날을 맞이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앞서 소개한 젤라토 가게를 발견했다. 이곳 사장은 어쩌다 독도 관련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주 메뉴가 젤라토인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가게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오후 방문한 가게에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 ‘오늘의 젤라토’라며 당일 선정한 젤라토 메뉴를 적어놓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 앞에 적힌 ‘오늘의 젤라토’.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다고 강조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카페 곳곳에 깔끔하게 꾸며진 독도 관련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과 배지를 비롯해 책갈피, 스티커 등이 마련돼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종류의 독도 관련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Do you know 40240?’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인 김학재(61)씨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소개했다.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막 4개월이 조금 넘었다는 김씨는 자신 있게 직접 만든 젤라토를 설명했다. 그날그날 메뉴가 바뀐다는 말에 오늘의 추천 메뉴를 묻자 김씨는 맛보기용 작은 스푼으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를 살짝 덜어 건넸다. 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여기에 독도 커피까지 더하니 2만8000원이 나왔다. 젤라토는 한 컵에 한 가지 맛만 담을 땐 5500원이며 한 컵에 두 가지 맛을 함께 담을 땐 6000원이다. 김씨는 주문과 동시에 젤라토를 먹기 좋게 담아 제공했다. 메뉴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꼭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먼저 맛본 젤라토는 김씨가 추천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다. 강릉 초당 순두부의 주재료인 백태콩이 들어간 이 젤라토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걸쭉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맛본 것은 유기농 우유 젤라토다. 먼저 맛본 순두부 백태콩과 비슷하게 고소한 맛이 났지만 식감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젤라토 위에 올라간 작은 아이스크림콘은 손님이 다른 맛도 즐길 수 있도록 살짝 덜어 올려주는 거라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쌀 젤라토다. 겉으로 보기엔 유기농 우유 젤라토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한입 먹어보니 쫀득하게 씹히는 밥알이 먹는 재미를 더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나몬 향은 색다른 감칠맛을 줬다. 네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말차 맛이다. 텁텁하거나 떫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필라델피아 오레오 크림치즈 젤라토를 맛봤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차진 크림치즈에 바삭한 오레오가 더해지니 풍미가 일품이었다. 여섯 번째는 딸기 소르베 젤라토다. 소르베는 우유를 넣지 않은 것을 말한다. 딸기를 조려 얼린 듯 진하고 풍부한 딸기 향이 물씬 났다.마지막으로 백향과 소르베 젤라토를 맛봤다. 흔히 패션프루트라고 불리는 백향과는 백 가지 향을 가진 여신의 과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백향과의 오독오독 씹히는 씨와 새콤달콤한 과육이 소르베 젤라토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상큼하고 시원했다.사장은 제자 2명과 함께 젤라토 가게를 시작했다. 제자들은 젤라토 가게를 하기 전 ‘독도 커피’를 팔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사장 김씨는 제자 2명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 이화여자대에서 푸드 앤 컬처 아카데미(Food & Culture Academy) 산학협력을 운영했다는 김씨는 한국 최초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칼럼니스트 양성 전문 기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제자들은 2016년 먼저 ‘독도 커피’라는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제자들이 독도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역사 교육을 통해서다. 가게 곳곳에는 독도 관련 상품이 마련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학생과 소외된 초중생을 연결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최했는데 제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며 “이때 제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역사 교육을 받으며 독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그는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다케시마 관련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나라는 관련 상품이 얼마 없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며 “이후 제자들이 일상에서 독도를 알릴 방법을 고안하다가 ‘독도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독도 커피’ 판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제자들이 독도 관련 상품을 만들어 독도 후원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 또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처음엔 사무실을 얻어주는 등의 지원을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류해 젤라토 가게를 꾸리게 됐다”고 부연했다.그는 “커피만으로는 매출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에 ‘여름이 오니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결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대량 생산하는 일반 아이스크림은 맛을 차별화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젤라토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젤라토 가게를 준비하게 됐다”고 떠올렸다.(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맥주도 지역 맥주가 있듯이 젤라토 역시 그런 성격이 있다. 젤라토는 어떤 원재료를 어떻게,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가게 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메뉴가 그날그날 달라지는 이유도 우리 가게 만의 특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의 노력이 통한 걸까.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따금 김씨에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해온다고 한다. 김씨는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진정성이 느껴졌나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그는 단순 젤라토 가게인 줄만 알았던 손님들이 가게 내 독도 관련 상품을 보고 여러 질문을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강치 인형 하나만으로도 독도에 대해 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테면 “강치는 식육목 바다사자과의 해양포유류로 주로 한일 양국의 환동해권역에서 서식했다. 독도에 대규모로 군집해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독도 강치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세계 학계에는 일본바다사자, 일본강치로 등록돼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1994년 독도 강치의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멸종의 원인은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확인된 바 있다”며 “이런 이야기만 해도 손님들은 일상에서 일본과 독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영상=송혜수 기자)그는 “젤라토 위에 꽂아주는 장식지(‘40240’이 적혀 있다)에도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독도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예상외로 놀란 점은 많은 이들이 꽤 자세하게 독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김씨는 “전에 방문한 어떤 커플은 사이좋게 젤라토를 먹으면서 독도의 역사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초등생 아이와 함께 가게에 온 엄마는 가게에 있는 강치 인형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설명하더라”라고 전했다. (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김씨는 카페 40240은 자신에게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다음 비전은 많은 이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을 비롯해 경력 단절 주부, 그리고 은퇴한 노인까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젤라토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 기반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그분들 역시 다 같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손님들은 자연주의 철학으로 만든 젤라토를 드시고 즐겁고 건강하셨으면 한다. 또 후원하는 뜻있는 단체들이 잘 돼서 세상을 보다 이롭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5시간 동안 먹는 손님도”… 그 시절 고기뷔페, 지금은?[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고기 무한리필의 원조 ‘쎌빠’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방문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08년 7월 1일은 한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군 제대 후 10여 년 동안 외식 일을 배운 남성은 이날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뒤집어 부담 없는 가격에 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가게를 꾸몄다. 남성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고기를 주메뉴로 내세운 고기 뷔페는 당시 한식·양식으로 양분돼 있던 뷔페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같은 해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기 뷔페의 성공을 도왔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가게 ‘쎌빠’의 모습. 전국 130여곳에 가맹점 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4곳 뿐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게 경기 부천에 처음 문을 연 남성의 가게 ‘쎌빠’는 전국 130여 곳으로 퍼지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다양한 고기와 음식을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2010년에는 연매출 10억원을 기록하며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생 역전 성공신화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쎌빠를 벤치마킹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차츰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전국 곳곳에 자리했던 가맹점은 하나둘 사라져 현재 4곳만 남았다. 이를 두고 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무리한 시장경쟁이 위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권 부회장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두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해선 가격을 낮추거나 사이드 음식을 더 주는 식으로 경쟁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그는 “먼저 시장을 독점할 때는 원재료 물량도 많이 소화할 수 있었고, 대부분을 혼자 공급받으니 가격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라며 “비슷한 브랜드가 생기게 되면 재료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경쟁이 붙기 때문에 안정적이던 균형이 무너진다”라고 부연했다.이 밖에도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가맹점 계약과 준비되지 않은 프랜차이즈 창업, 영세성과 경영 능력의 부족 등이 시장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는 원인으로 꼽혔다.고기를 종류 별로 담았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쎌빠의 사정은 어떨까.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가 봤다. 부천에 위치한 본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날 점심에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4팀 정도 있었다. 가격은 평일 기준 1인당 1만5900원이었다. 주말·공휴일에는 이보다 1000원을 더 받았고, 중·고등학생은 평일 1만4000원을 받았다.가격표 밑에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 인상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삼겹살 가격은 1만8851원(200g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7% 올랐다.고기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중년의 여성 사장은 자리에 불판과 물 등을 준비해주면서 “2시간의 이용 시간이 있지만, 만석일 때만 적용한다.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설명했다. 음식은 한눈에 봐도 수십 가지가 준비돼 있었다. 고기는 목살, 삼겹살, 갈매기살, 대패 불고기, 우삼겹, 소 토시살, 양념갈비, 매운 갈비, 소불고기 등이 있었다. 곁들여 먹는 쌈 채소의 종류도 다양했다. 먹기 좋게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신선했다.이 외에도 주먹밥, 김치볶음밥, 치킨, 떡볶이, 피자, 각종 튀김류 등이 있었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아이스크림, 푸딩 등도 마련돼 있었다. 다양한 가짓수에 놀라던 찰나 즉석 라면 조리기가 눈에 들어왔다. 부족한 게 없었다.(영상=송혜수 기자)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고기를 먼저 맛봤다. 양념이 안 된 고기는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터져 나왔고 누린내도 없었다. 양념된 고기는 간이 세지 않아 물리지 않았다. 쌈 채소는 신선했다. 상추는 잎이 연하면서도 도톰했다. 배추 역시 무르지 않고 아삭했다. 살짝 느껴지는 단맛은 감칠맛을 더했다. 향긋한 부추무침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 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 밖에 다른 음식들은 사장의 손맛이 느껴졌다. 뷔페를 이용하다 보면 간혹 음식이 차갑게 식거나 딱딱하게 굳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방문한 가게의 음식들은 전부 온기가 가득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가게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 사장은 가게 청결을 관리하며 빈 그릇을 치우는 등 손님들을 살피는 일을 한다.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이러한 부부에게 쎌빠는 ‘버팀목’이라고 했다.무역 관련 일을 하던 남성 사장은 2011년부터 쎌빠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던 그는 자신이 어느덧 11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그간의 순간을 회상했다.(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장사가 한참 잘되더니 서서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식자재 값이 많이 올라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게를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본사와도 연락을 안 하고 있다”며 “고기 등의 음식재료를 구하는 곳도 본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주요 고기의 경우 기존 납품받던 업체 사장과 연이 닿아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고기와 곁들여 먹는 쌈 채소들. 깔끔하고 신선하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최근에는 정육 관련 인터넷 플랫폼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직접 발품 팔아 이것저것 비교해보기도 한다”라며 “가게에서 취급하는 고기의 종류가 많아서 업체마다 비교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하던 지난 2020년도를 짚었다. 사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물류대란 등으로 가격이 폭등해 부르는 게 값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매달 500만~600만원씩 적자가 났다”라며 “정부 지원금으로 임대료를 내면서 가까스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암흑의 1년이 지나가 점차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즉석 라면 조리기도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요즘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주말에는 테이블이 만석이 될 정도”라며 “특정 국적의 사람들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정말 각 나라마다 방문하는 것 같다. 한 외국인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 입소문을 냈는지 어떤 날에는 또 다른 외국인 손님이 ‘맛있다는 소문 듣고 왔다’라고 말해주더라”라고 전했다.남성 사장은 외국인 손님 말고도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 역시 단체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30명씩 단체로 방문하는 날에는 가게에 활기가 가득하다”며 웃어 보였다.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영상=송혜수 기자)‘무한 리필이다 보니 가게를 다녀간 손님 중에 가장 많이 먹은 손님은 얼마나 먹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은 “300분(5시간) 동안 쉼없이 먹는 손님을 봤다”라며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면 그 자체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앞으로도 사장은 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쎌빠는 이제 우리 부부의 일상이고 삶의 전부”라며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참 많았는데 장사하는 동안 숱한 가게가 생겨나고 또 없어졌다. 우리 가게 역시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성실히 가게를 운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1.05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고기 무한리필의 원조 ‘쎌빠’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방문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08년 7월 1일은 한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군 제대 후 10여 년 동안 외식 일을 배운 남성은 이날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뒤집어 부담 없는 가격에 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가게를 꾸몄다. 남성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고기를 주메뉴로 내세운 고기 뷔페는 당시 한식·양식으로 양분돼 있던 뷔페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같은 해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기 뷔페의 성공을 도왔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가게 ‘쎌빠’의 모습. 전국 130여곳에 가맹점 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4곳 뿐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게 경기 부천에 처음 문을 연 남성의 가게 ‘쎌빠’는 전국 130여 곳으로 퍼지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다양한 고기와 음식을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2010년에는 연매출 10억원을 기록하며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생 역전 성공신화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쎌빠를 벤치마킹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차츰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전국 곳곳에 자리했던 가맹점은 하나둘 사라져 현재 4곳만 남았다. 이를 두고 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무리한 시장경쟁이 위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권 부회장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두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해선 가격을 낮추거나 사이드 음식을 더 주는 식으로 경쟁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그는 “먼저 시장을 독점할 때는 원재료 물량도 많이 소화할 수 있었고, 대부분을 혼자 공급받으니 가격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라며 “비슷한 브랜드가 생기게 되면 재료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경쟁이 붙기 때문에 안정적이던 균형이 무너진다”라고 부연했다.이 밖에도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가맹점 계약과 준비되지 않은 프랜차이즈 창업, 영세성과 경영 능력의 부족 등이 시장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는 원인으로 꼽혔다.고기를 종류 별로 담았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쎌빠의 사정은 어떨까.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가 봤다. 부천에 위치한 본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날 점심에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4팀 정도 있었다. 가격은 평일 기준 1인당 1만5900원이었다. 주말·공휴일에는 이보다 1000원을 더 받았고, 중·고등학생은 평일 1만4000원을 받았다.가격표 밑에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 인상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삼겹살 가격은 1만8851원(200g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7% 올랐다.고기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중년의 여성 사장은 자리에 불판과 물 등을 준비해주면서 “2시간의 이용 시간이 있지만, 만석일 때만 적용한다.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설명했다. 음식은 한눈에 봐도 수십 가지가 준비돼 있었다. 고기는 목살, 삼겹살, 갈매기살, 대패 불고기, 우삼겹, 소 토시살, 양념갈비, 매운 갈비, 소불고기 등이 있었다. 곁들여 먹는 쌈 채소의 종류도 다양했다. 먹기 좋게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신선했다.이 외에도 주먹밥, 김치볶음밥, 치킨, 떡볶이, 피자, 각종 튀김류 등이 있었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아이스크림, 푸딩 등도 마련돼 있었다. 다양한 가짓수에 놀라던 찰나 즉석 라면 조리기가 눈에 들어왔다. 부족한 게 없었다.(영상=송혜수 기자)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고기를 먼저 맛봤다. 양념이 안 된 고기는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터져 나왔고 누린내도 없었다. 양념된 고기는 간이 세지 않아 물리지 않았다. 쌈 채소는 신선했다. 상추는 잎이 연하면서도 도톰했다. 배추 역시 무르지 않고 아삭했다. 살짝 느껴지는 단맛은 감칠맛을 더했다. 향긋한 부추무침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 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 밖에 다른 음식들은 사장의 손맛이 느껴졌다. 뷔페를 이용하다 보면 간혹 음식이 차갑게 식거나 딱딱하게 굳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방문한 가게의 음식들은 전부 온기가 가득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가게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 사장은 가게 청결을 관리하며 빈 그릇을 치우는 등 손님들을 살피는 일을 한다.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이러한 부부에게 쎌빠는 ‘버팀목’이라고 했다.무역 관련 일을 하던 남성 사장은 2011년부터 쎌빠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던 그는 자신이 어느덧 11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그간의 순간을 회상했다.(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장사가 한참 잘되더니 서서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식자재 값이 많이 올라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게를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본사와도 연락을 안 하고 있다”며 “고기 등의 음식재료를 구하는 곳도 본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주요 고기의 경우 기존 납품받던 업체 사장과 연이 닿아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고기와 곁들여 먹는 쌈 채소들. 깔끔하고 신선하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최근에는 정육 관련 인터넷 플랫폼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직접 발품 팔아 이것저것 비교해보기도 한다”라며 “가게에서 취급하는 고기의 종류가 많아서 업체마다 비교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하던 지난 2020년도를 짚었다. 사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물류대란 등으로 가격이 폭등해 부르는 게 값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매달 500만~600만원씩 적자가 났다”라며 “정부 지원금으로 임대료를 내면서 가까스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암흑의 1년이 지나가 점차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즉석 라면 조리기도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요즘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주말에는 테이블이 만석이 될 정도”라며 “특정 국적의 사람들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정말 각 나라마다 방문하는 것 같다. 한 외국인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 입소문을 냈는지 어떤 날에는 또 다른 외국인 손님이 ‘맛있다는 소문 듣고 왔다’라고 말해주더라”라고 전했다.남성 사장은 외국인 손님 말고도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 역시 단체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30명씩 단체로 방문하는 날에는 가게에 활기가 가득하다”며 웃어 보였다.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영상=송혜수 기자)‘무한 리필이다 보니 가게를 다녀간 손님 중에 가장 많이 먹은 손님은 얼마나 먹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은 “300분(5시간) 동안 쉼없이 먹는 손님을 봤다”라며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면 그 자체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앞으로도 사장은 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쎌빠는 이제 우리 부부의 일상이고 삶의 전부”라며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참 많았는데 장사하는 동안 숱한 가게가 생겨나고 또 없어졌다. 우리 가게 역시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성실히 가게를 운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이게 아직도 있네? 민들레 영토, 들어는 보았는가[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4일 서울에 남아 있는 ‘민들레 영토’를 직접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어머니의 정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모든 손님에게 웰컴 티를 건넸다.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서울 동대문구 인근 민들레 영토 외관. (사진=송혜수 기자)민들레 영토에서는 마시고 싶은 음료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이용하는 요즘 카페와 달리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면 다양한 음료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소정의 장소 사용료를 받고 음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카페가 많이 없었던 당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민들레 영토를 찾는 이는 점차 늘었고 창업 10년 만에 일 평균 고객 1만 명을 기록했다.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가게 입구에 비치된 토끼모양 장식 (사진=송혜수)이에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잡지를 비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서울에선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점만이 유일하게 남았다.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가게 앞에는 이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송혜수)요청대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민들레 영토 경희대점을 직접 찾았다. 가게는 주택을 개조한 듯 카페보다는 가정집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개 글이 보였다.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 사장이 환하게 반겼다. 손님은 5팀 정도 있는 듯했다. 사장은 민들레 영토만의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1인당 이용금액은 5000원. 민토 간식과 음료가 포함된 금액이다.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2008년도 낙서. 사장이 직접 사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 그리고 미니 와플과 컵라면이다. 여기에 치즈 오븐 떡볶이(7000원)을 꼭 먹어보라는 한 방문객의 후기가 떠올라 해당 메뉴도 추가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가게에 두고 간 손님의 편지. (사진=송혜수 기자)또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남긴 한 통의 편지였다. 가게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편지에는 ‘민들레 영토.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 신촌 등 놀러 가는 데마다 보인 카페다. 이름도 예쁘고 외관도 귀여웠다. 그런데 다들 많이 가는 곳이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민토가 안 보인다는 걸 느끼게 됐다.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가게 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다 지난달 생일쯤 민토가 경희대점 하나만 남았다고 해 방문했다’라고 덧붙여 있었다.웰컴티. 일명 민토차라고 불린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웰컴 티였다. 일명 민토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사실 수국차다. 첫맛은 현미 보리차와 같이 고소했고 뒷맛은 깔끔했다. 특유의 천연 단맛과 박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에 향긋하게 남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치즈 오븐 떡볶이.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난다. (영상=송혜수 기자)미니 와플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준말) 그 자체였다. 약간의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어 달콤했다. 이 밖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는 목을 축이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살구 에이드는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던 쥬시쿨과 비슷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는 “테이블마다 사연이 다 있다”라며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가게에 와서 공부하던 한 학생은 어느 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해도 해도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가게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그 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게를 나서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는데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라며 “읽어보니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몰라줬고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자신도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말미엔 늦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사장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꽃 선물을 하고 갔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고 웃는 날이 더 많았다”라며 “그 덕에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라고 말했다.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가게 2층 테라스. (사진=송혜수 기자)물론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게 아직도 있네”다. 사장은 “어떤 분들은 ‘이제 민들레 영토 말고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셔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굳건히 민들레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0.22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4일 서울에 남아 있는 ‘민들레 영토’를 직접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어머니의 정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모든 손님에게 웰컴 티를 건넸다.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서울 동대문구 인근 민들레 영토 외관. (사진=송혜수 기자)민들레 영토에서는 마시고 싶은 음료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이용하는 요즘 카페와 달리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면 다양한 음료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소정의 장소 사용료를 받고 음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카페가 많이 없었던 당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민들레 영토를 찾는 이는 점차 늘었고 창업 10년 만에 일 평균 고객 1만 명을 기록했다.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가게 입구에 비치된 토끼모양 장식 (사진=송혜수)이에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잡지를 비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서울에선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점만이 유일하게 남았다.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가게 앞에는 이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송혜수)요청대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민들레 영토 경희대점을 직접 찾았다. 가게는 주택을 개조한 듯 카페보다는 가정집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개 글이 보였다.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 사장이 환하게 반겼다. 손님은 5팀 정도 있는 듯했다. 사장은 민들레 영토만의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1인당 이용금액은 5000원. 민토 간식과 음료가 포함된 금액이다.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2008년도 낙서. 사장이 직접 사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 그리고 미니 와플과 컵라면이다. 여기에 치즈 오븐 떡볶이(7000원)을 꼭 먹어보라는 한 방문객의 후기가 떠올라 해당 메뉴도 추가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가게에 두고 간 손님의 편지. (사진=송혜수 기자)또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남긴 한 통의 편지였다. 가게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편지에는 ‘민들레 영토.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 신촌 등 놀러 가는 데마다 보인 카페다. 이름도 예쁘고 외관도 귀여웠다. 그런데 다들 많이 가는 곳이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민토가 안 보인다는 걸 느끼게 됐다.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가게 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다 지난달 생일쯤 민토가 경희대점 하나만 남았다고 해 방문했다’라고 덧붙여 있었다.웰컴티. 일명 민토차라고 불린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웰컴 티였다. 일명 민토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사실 수국차다. 첫맛은 현미 보리차와 같이 고소했고 뒷맛은 깔끔했다. 특유의 천연 단맛과 박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에 향긋하게 남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치즈 오븐 떡볶이.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난다. (영상=송혜수 기자)미니 와플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준말) 그 자체였다. 약간의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어 달콤했다. 이 밖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는 목을 축이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살구 에이드는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던 쥬시쿨과 비슷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는 “테이블마다 사연이 다 있다”라며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가게에 와서 공부하던 한 학생은 어느 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해도 해도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가게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그 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게를 나서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는데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라며 “읽어보니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몰라줬고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자신도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말미엔 늦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사장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꽃 선물을 하고 갔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고 웃는 날이 더 많았다”라며 “그 덕에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라고 말했다.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가게 2층 테라스. (사진=송혜수 기자)물론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게 아직도 있네”다. 사장은 “어떤 분들은 ‘이제 민들레 영토 말고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셔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굳건히 민들레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달 28일 경기도 부천에 남아 있는 캔모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그네 의자와 무한 리필 생크림 토스트. 200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아마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 ‘캔모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캔모아는 단순 카페를 넘어 많은 이들의 동네 아지트였고 만남의 장소였다. 특히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와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그리고 생과일이 잔뜩 들어간 눈꽃빙수·파르페 등은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캔모아는 1998년 1호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500여 개의 가맹점을 내며 전성기를 맞았다.부천점 캔모아의 내부 모습.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여전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다. 캔모아 본사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9곳뿐이다. 그마저도 서울에는 한 곳도 남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캔모아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두고 무한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캔모아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디저트 업계가 커피를 주력 메뉴로 삼는 업종 위주로 재편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부천점 캔모아에서 주문한 빙수와 파르페. (사진=송혜수 기자)실제로 세계적인 시장조사 전문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2007년 6억 달러에서 2018년 약 43억 달러로 급증했다. 2007년까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원두나 믹스커피를 구매해 커피를 소비하는 성향이 강했지만 2018년부터 커피 소비가 대부분 카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이후 캔모아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자 스파게티, 떡볶이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추가했지만 손님들을 잡지 못했다. 여기에는 점차 카페를 작업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수요가 늘어났던 점도 한몫했다.가게 테이블에 남아 있는 낙서.(사진=송혜수 기자)20년이 흐른 지금 캔모아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예전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방문했다.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게 내부는 공주풍으로 꾸며진 장식들과 꽃무늬 의자 등이 있었고 지난날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님들의 낙서도 곳곳 보였다.대부분 ‘우리 사랑 영원히’ ‘꿈 이루게 해주세요’ ‘멋쟁이들만 앉아’ ‘OO이 다녀감’ 등의 내용이었는데, 그중 ‘추억 찾아 사랑 찾아 부천까지 왔습니다’라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사진=송혜수 기자)가게에는 손님이 한 팀 있었다. 인기 좌석인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을 보며 기자도 서둘러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시리얼 빙수와 생과일 빙수, 그리고 생과일 파르페다. 가격은 각각 5500원. 저렴한 가격에 기자가 학창 시절 자주 먹던 메뉴였다.홀로 가게를 지키던 중년의 여성 사장은 캔모아의 시그니처인 생크림 토스트와 함께 주문한 메뉴를 정갈히 담아 제공했다. 각각의 디저트에는 한눈에 봐도 재료를 아끼지 않은 듯 생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듬뿍 올라가 있었다. 기본 제공 생크림 토스트. 곁들여 발라 먹는 생크림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본으로 나오는 생크림 토스트는 식빵 3장을 반으로 잘라 총 6조각으로 제공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식빵은 바삭하고 쫄깃했다. 곁들여 발라먹는 생크림은 우유 향이 진하게 났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각종 시리얼이 들어간 시리얼 빙수는 생크림과 초코 아이스크림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화려한 초코 드리즐이 인상적이었다. 맛은 변함없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에 바삭한 시리얼은 고소함을 더했다.생과일 빙수는 상큼했다. 바나나와 복숭아, 파인애플, 배 등 각종 생과일이 먹기 좋은 크기로 한가득 들어가 있었다. 이 밖에 딸기 아이스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고 시리얼과 딸기 시럽 등으로 맛을 더했다. 생과일 파르페 역시 신선한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층층이 예쁘게 담긴 과일은 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복숭아와 배는 아삭아삭했고 파인애플과 멜론은 촉촉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줄줄 흘렀다. 파르페 역시 딸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다.시리얼 빙수. 화려한 초코드리즐이 인상적이다 (사진=송혜수 기자)2007년도에 캔모아 가맹점 350번째로 장사를 시작해 15년간 굳건히 가게를 지켜온 사장은 이곳이 자신의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가게를 시작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사장의 자녀는 어느새 서른이 됐고 초등학생이던 단골손님은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사장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캔모아 유행 끝 무렵에 기차를 타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라며 “가게는 학생들의 아지트로 불리며 초반에 번창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서서히 잊혀졌다”라고 설명했다. 사장에 따르면 시험 기간 캔모아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다. 그러나 중저가 카페가 생긴 뒤로 학생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생과일 빙수. 신선한 생과일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힘든 시기에도 사장은 자신의 가게였기에 버텨냈다. 그는 “돈을 떠나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가게’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가게를 하면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역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장이 언급한 ‘소중한 인연’은 바로 가게의 주 손님이던 아이들이다. 사장은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며 “가게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 역시 초반에는 전부 지웠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가게에서 아이들과 자주 소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애정이 깊어졌다고 했다.생과일 파르페. 층층이 생과일이 예쁘게 담겨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가게 곳곳에 낙서하도록 놔뒀다고 한다. 사장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추억을 간직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라며 “훌쩍 커버린 꼬마 손님들이 20대, 30대가 되어 자신의 낙서를 찾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이들 중에는 학창 시절 사귀던 이성과 와서 이름을 남겼다가 헤어지고 찾아와 이름을 지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과거에 남긴 낙서를 찾아 그 밑에 새로 작성하기도 했다고. 가게에 남아 있는 낙서. ‘우리 사랑 영원히’ 라고 적혀 있지만 하트에는 금이 갔다. (사진=송혜수 기자)낙서 말고도 사장은 초등학생이던 한 단골손님이 결혼하고 다시 찾아와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가게를 닫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캔모아는 단순 디저트 가게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던 것이다.이에 사장은 가격과 맛 모두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점의 캔모아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만 리필 시 1000원을 더 받는다. 그 외의 가격은 변동하지 않았다는 게 사장 설명이다.그는 “솔직히 가격을 올리고 싶다”라며 “예전에는 열대과일이 저렴했다. 바나나 한 송이도 2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이제 와서 선뜻 가성비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을 차리기에는 메리트가 없는 게 분명하다”라고 밝혔다.(영상=송혜수 기자)하지만 사장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그는 “부담이 없어야지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 들린다”라며 “요즘 가게들은 전부 1인 1메뉴를 고수하지만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다. 돈 없는 학생들도 다 같이 빙수 한 그릇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바로 5000원의 행복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사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장사를 이어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다행히 주말에는 식구들이 도와줘서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라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추억을 지켜내겠다”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0.08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달 28일 경기도 부천에 남아 있는 캔모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그네 의자와 무한 리필 생크림 토스트. 200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아마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 ‘캔모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캔모아는 단순 카페를 넘어 많은 이들의 동네 아지트였고 만남의 장소였다. 특히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와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그리고 생과일이 잔뜩 들어간 눈꽃빙수·파르페 등은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캔모아는 1998년 1호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500여 개의 가맹점을 내며 전성기를 맞았다.부천점 캔모아의 내부 모습.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여전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다. 캔모아 본사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9곳뿐이다. 그마저도 서울에는 한 곳도 남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캔모아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두고 무한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캔모아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디저트 업계가 커피를 주력 메뉴로 삼는 업종 위주로 재편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부천점 캔모아에서 주문한 빙수와 파르페. (사진=송혜수 기자)실제로 세계적인 시장조사 전문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2007년 6억 달러에서 2018년 약 43억 달러로 급증했다. 2007년까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원두나 믹스커피를 구매해 커피를 소비하는 성향이 강했지만 2018년부터 커피 소비가 대부분 카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이후 캔모아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자 스파게티, 떡볶이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추가했지만 손님들을 잡지 못했다. 여기에는 점차 카페를 작업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수요가 늘어났던 점도 한몫했다.가게 테이블에 남아 있는 낙서.(사진=송혜수 기자)20년이 흐른 지금 캔모아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예전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방문했다.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게 내부는 공주풍으로 꾸며진 장식들과 꽃무늬 의자 등이 있었고 지난날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님들의 낙서도 곳곳 보였다.대부분 ‘우리 사랑 영원히’ ‘꿈 이루게 해주세요’ ‘멋쟁이들만 앉아’ ‘OO이 다녀감’ 등의 내용이었는데, 그중 ‘추억 찾아 사랑 찾아 부천까지 왔습니다’라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사진=송혜수 기자)가게에는 손님이 한 팀 있었다. 인기 좌석인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을 보며 기자도 서둘러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시리얼 빙수와 생과일 빙수, 그리고 생과일 파르페다. 가격은 각각 5500원. 저렴한 가격에 기자가 학창 시절 자주 먹던 메뉴였다.홀로 가게를 지키던 중년의 여성 사장은 캔모아의 시그니처인 생크림 토스트와 함께 주문한 메뉴를 정갈히 담아 제공했다. 각각의 디저트에는 한눈에 봐도 재료를 아끼지 않은 듯 생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듬뿍 올라가 있었다. 기본 제공 생크림 토스트. 곁들여 발라 먹는 생크림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본으로 나오는 생크림 토스트는 식빵 3장을 반으로 잘라 총 6조각으로 제공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식빵은 바삭하고 쫄깃했다. 곁들여 발라먹는 생크림은 우유 향이 진하게 났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각종 시리얼이 들어간 시리얼 빙수는 생크림과 초코 아이스크림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화려한 초코 드리즐이 인상적이었다. 맛은 변함없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에 바삭한 시리얼은 고소함을 더했다.생과일 빙수는 상큼했다. 바나나와 복숭아, 파인애플, 배 등 각종 생과일이 먹기 좋은 크기로 한가득 들어가 있었다. 이 밖에 딸기 아이스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고 시리얼과 딸기 시럽 등으로 맛을 더했다. 생과일 파르페 역시 신선한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층층이 예쁘게 담긴 과일은 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복숭아와 배는 아삭아삭했고 파인애플과 멜론은 촉촉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줄줄 흘렀다. 파르페 역시 딸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다.시리얼 빙수. 화려한 초코드리즐이 인상적이다 (사진=송혜수 기자)2007년도에 캔모아 가맹점 350번째로 장사를 시작해 15년간 굳건히 가게를 지켜온 사장은 이곳이 자신의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가게를 시작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사장의 자녀는 어느새 서른이 됐고 초등학생이던 단골손님은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사장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캔모아 유행 끝 무렵에 기차를 타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라며 “가게는 학생들의 아지트로 불리며 초반에 번창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서서히 잊혀졌다”라고 설명했다. 사장에 따르면 시험 기간 캔모아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다. 그러나 중저가 카페가 생긴 뒤로 학생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생과일 빙수. 신선한 생과일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힘든 시기에도 사장은 자신의 가게였기에 버텨냈다. 그는 “돈을 떠나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가게’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가게를 하면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역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장이 언급한 ‘소중한 인연’은 바로 가게의 주 손님이던 아이들이다. 사장은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며 “가게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 역시 초반에는 전부 지웠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가게에서 아이들과 자주 소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애정이 깊어졌다고 했다.생과일 파르페. 층층이 생과일이 예쁘게 담겨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가게 곳곳에 낙서하도록 놔뒀다고 한다. 사장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추억을 간직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라며 “훌쩍 커버린 꼬마 손님들이 20대, 30대가 되어 자신의 낙서를 찾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이들 중에는 학창 시절 사귀던 이성과 와서 이름을 남겼다가 헤어지고 찾아와 이름을 지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과거에 남긴 낙서를 찾아 그 밑에 새로 작성하기도 했다고. 가게에 남아 있는 낙서. ‘우리 사랑 영원히’ 라고 적혀 있지만 하트에는 금이 갔다. (사진=송혜수 기자)낙서 말고도 사장은 초등학생이던 한 단골손님이 결혼하고 다시 찾아와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가게를 닫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캔모아는 단순 디저트 가게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던 것이다.이에 사장은 가격과 맛 모두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점의 캔모아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만 리필 시 1000원을 더 받는다. 그 외의 가격은 변동하지 않았다는 게 사장 설명이다.그는 “솔직히 가격을 올리고 싶다”라며 “예전에는 열대과일이 저렴했다. 바나나 한 송이도 2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이제 와서 선뜻 가성비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을 차리기에는 메리트가 없는 게 분명하다”라고 밝혔다.(영상=송혜수 기자)하지만 사장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그는 “부담이 없어야지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 들린다”라며 “요즘 가게들은 전부 1인 1메뉴를 고수하지만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다. 돈 없는 학생들도 다 같이 빙수 한 그릇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바로 5000원의 행복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사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장사를 이어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다행히 주말에는 식구들이 도와줘서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라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추억을 지켜내겠다”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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