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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억 넘는 '호박'도 덥석…컬렉터는 왜 쿠사마에 열광하는가

[핫이슈] 54.5억원 팔린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강박증·환각이 낳은 무한 땡땡이
단순한 형상·패턴으로 대중 어필
친근한 호박 소재 맞물려 시너지
전통컬렉터 이어 MZ세대도 저격
  • 등록 2021-11-25 오전 3:30:01

    수정 2021-11-25 오전 7:56:44

‘땡땡이호박’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2010년 대표작 ‘호박’을 변주한 회화·조각작품을 내놓은 한 스튜디오에 나와 앉았다. 쿠사마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옷차림을 즐기는데 이는 때때로 또 다른 전시가 되기도 한다. 쿠사마는 “호박의 야성적이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고 말해왔다(사진=2010@YAYOI KUSAMA).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해가 히가시야마산 위로 떠오르면 나는 호박과 마주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롯이 나의 마음에 집중한다. 달마가 돌벽을 마주하고 십 년을 보냈던 것처럼 나는 호박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낸다.”

누가 이런 말을 했거나 글이라도 썼다면 당장 ‘뭔 소리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누구가 일생을 진짜 ‘호박’과 더불어 살았다면? 쿠사마 야요이(92) 말이다. 그 진가를 먼저 알아본 이가 국내서 가장 비싼 ‘노란 호박’을 땄다. 54억 5000만원짜리다. 미술품 경매장에서 팔려나간 쿠사마의 ‘호박’(Pumpkin·1981)을 말하는 거다. 23일 서울옥션 ‘윈터세일’에서 ‘호박’은 시작가 52억원에 출발해 54억 5000만원을 부른 현장응찰자에게 낙찰됐다. 52억원부터 1억원씩 호가를 올린 작품은 54억원까지 이른 뒤 “1억 말고 5000만원만 올려달라!”고 요청한 응찰자의 의사를 반영했고, 그것이 그대로 낙찰가가 됐다.

이 무지막지한 ‘호박’이 세운 기록이 여럿이다. 국내서 거래된 쿠사마의 작품 중 최고가를 쓴 게 하나. 지금까지는 지난달 서울옥션 ‘제163회 미술품 경매’에서 36억 5000만원에 팔린 ‘골드스카이 네트’(2015)였다. 또 하나의 기록은 올해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모든 작품 중 최고가 낙찰작이 됐다는 것. 이제껏 ‘가장 비싼’의 기록은 지난 5월 케이옥션에서 42억원에 팔린 마르크 샤갈의 ‘생 폴 드방스의 정원’(1973)이 가졌더랬다.

쿠사마 아요이의 1981년 작 ‘호박’(Pumpkin). 50호(16.7×90.3㎝) 크기의 ‘호박’은 23일 서울옥션 ‘윈터세일’에서 54억 5000만원에 팔리며 국내서 거래된 쿠사마 작품을 통틀어 최고가를 쓴 동시에 올해 국내 경매서 팔린 모든 작품 중 가장 비싼 낙찰작이란 기록을 동시에 꿰찼다(사진=서울옥션).


23억원→29억원→36.5억원→54.5억원…무한질주 중

쿠사마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줄기다. ‘인피니트 네트’라 칭하는 무한그물망 작업, ‘펌프킨’으로 명명한 호박 작업이다. 두 갈래 모두 수없이 찍어댄 ‘땡땡이’의 무한반복이 기본이다. 일생에 걸쳐 쿠사마는 그 그물망과 호박을 변화·확장하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호박을 그린 것은 1940년대 중반, 쿠사마가 17∼18세쯤 되던 때다. 당시 도매업을 하던 그이의 집안 창고에는 늘 호박이 굴러다녔다는데, 둥글납작하고 찌그러진 별별 형태에서 묘한 매력을 발견했더란다. 한참 소강국면이던 ‘호박’은, 1957년 떠났던 미국생활을 접고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오며 다시 등장했다. 회화·판화·조각·설치 등에 본격적으로 ‘호박 시리즈’가 나타난 거다. 정점은 83세던 2012년 찍었다. 명품브랜드 루이뷔통과 여성아티스트 최초로 콜래보레이션을 성사시켰고, 그 사옥 외관을 노란 나무와 그물망 패턴으로 도배했다니까.

이후부턴 ‘가장 비싼’의 순위를 유감없이 갈아치우는 행진을 시작한다. 그중 최고가 낙찰기록은 2019년 4월 소더비홍콩경매에서 6243만 3000홍콩달러(약 95억원)에 팔린 ‘끝없는 그물 4’(1959)가 썼다. 같은 경매에서 역시 노란 ‘호박’(TWPOT·2010)이 5446만홍콩달러(약 82억원)에 낙찰되며 ‘호박’ 중 최고가 기록도 챙겼다.

국내에서도 가히 압도적이다. 미술품 경매에서 매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란 점이 일단 도드라진다. 줄기차게 거래가 된다는 얘기는 그만큼 쿠사마를 탐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뜻이니까. 일단 지난해 성적만 보자. 134점을 출품시켜 111점을 낙찰시키고 낙찰총액 88억 9500만원을 써내며 낙찰총액 2위 작가가 됐다. 김환기(1913∼1974)를 제치고 이우환(85)에 이어서다.

지난달 26일 서울옥션 ‘제163회 미술품 경매’에서 마지막까지 뜨거운 응찰 경쟁을 벌인 끝에 단 하나 남은 1인의 품에 안겼던 쿠사마 야요이의 ‘골드스카이 네트’(2015). 36억 5000만원에 낙찰됐는데, 수학 1타 강사 현우진(34)이 구매했다고 알려지면서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사진=서울옥션).


올해 들어선 국내 미술시장의 거침없는 질주와 맞물려 가속까지 붙였다. 상반기 국내 경매에서 출품한 130점 중 111점이 팔리며 쌓은 낙찰총액만 121억 873만원. 상반기에 큰 공은 지난 3월 서울옥션 ‘스프링 경매’에서 23억원에 팔린 ‘인피니트 네트’(GKSG·2010), 6월 서울옥션 ‘제161회 미술품 경매’에서 29억원에 팔린 ‘실버네트’(BTRUX·2014)가 세웠다. 하반기에는 더 치솟았다. 7월 서울옥션 ‘대구경매’에서 ‘인피니티 네트’(WFTO·2016)가 31억원에 낙찰되더니, 지난달에는 서울옥션 ‘제163회 미술품 경매’에서 ‘골드스카이 네트’(2015)가 36억 5000만원에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다가 결국 노란 ‘호박’이 54억 5000만원이란 대형기록을 만들어낸 거다. 올해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작품값만 이미 330억원에 달한다.

‘친밀한 대중성’으로 동서양 전통·MZ컬렉터까지 팬덤

세계든 한국이든 이토록 쿠사마에 열광하는 이유라면, 가장 먼저 ‘친밀한 대중성’을 꼽을 수 있다. 미술계 한 전문가는 “쿠사마가 인기 없던 적은 없다”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생각은 줄이고 시선은 끄는 모노크롬 화풍에 단순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패턴을 얹은 게 먹혔다는 얘기다. 특히 ‘호박’은, 같은 듯하면서 모두 다른, 광폭할 변주를 일으키며 시장에 녹아들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어디서나 펑퍼짐하게 앉은 후덕한 자태는 동양과 서양, 아이와 어른 가릴 것 없이 호감을 줬던 거다.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호박’(1988). 원화의 인기에 편승해 덩달아 판화가격도 상승 중이다. ‘호박’은 국내 경매서 가장 비싸게 팔린 판화작품이다. 24일 케이옥션 ‘11월 경매’서 1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사진=케이옥션).


세대차를 둘 틈이 없이 고르게 팬덤을 확보했던 것도 시장을 키운 이유가 됐다. 전통컬렉터에 더해 MZ세대의 취향까지 저격했다는 뜻이다. MZ세대인 ‘수학 1타강사’ 현우진(34)은 올해 경매에 출품한 쿠사마 작품을 싹쓸이한 것을 스스로 밝히기도 해 화제의 중심에 섰더랬다. 현씨가 사들인 쿠사마 작품은 3월에 낙찰받은 ‘인피니트 네트’를 시작으로, 6월의 ‘실버네트’, 7월의 ‘인피니트 네트’, 지난달 ‘골드스카이 네트’까지, 총액으로만 119억 5000만원어치에 달한다.

원화와 판화로 자연스럽게 양분된 컬렉션도 시장을 키웠다. 원화가 앞에서 끌고 판화가 받쳐주는 격이랄까. 덩달아 판화가격도 치솟고 있다. 5000만원대를 훌쩍 넘어 1억원 이상을 넘보는 추세. 국내 경매서 가장 비싸게 팔린 쿠사마의 판화는 ‘호박’(1988)으로 24일 케이옥션 ‘11월 경매’서 1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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