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난,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전장연 혐오 안타깝다”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 펴낸 이지선 교수
이지선|248쪽|문학동네
40여차례 화상 수술 딛고 새 삶
생존자 아닌 '생활인' 여정 담아
사회 전장연 시위 비난 안타까워
인간다움 존중하고 지지했으면
  • 등록 2022-05-18 오전 5:00:00

    수정 2022-05-18 오전 8:43:29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그이는 자신을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스물세 살에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중화상을 입고, 40번 넘는 수술을 이겨낸 뒤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이지선(44)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운명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하며 사는 쪽을 택한 그의 첫 책 ‘지선아 사랑해’(2003년 이레)는 40만 독자에게 읽혔다.

책 ‘지선아 사랑해’로 40만 독자에게 희망을 전한 이지선 한동대 교수가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신간 ‘꽤 괜찮은 해피엔딩’ 출간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최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선 교수는 “교수로 산 지 6년차를 지나고 있다. 여전히 아는 척하는 게 어색하다”면서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웃었다.

지난달 27일 12년 만에 펴낸 신작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은 그가 자주 곱씹는 이 문장을 그대로 옮겨와 제목으로 달았다. 책에는 생존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긍정의 삶과 12년 유학생활 끝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과거 제 상황은 ‘사고를 당했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었겠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당했다’고 말할 때마다 내가 나를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어요. 살아남기 위한 시간을 지나온 나를 피해자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자리, 그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아픈 몸과 마음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사고와 헤어져 왔어요.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힌 일처럼 툭툭 털고, 사고 그다음의 제 시간을 살아 왔습니다.”

글을 쓰면서 당시의 사고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무슨 잘못을 했나, 하느님의 뜻인가라는 식의 타인들의 해석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요.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나면 꼭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싶어하는데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 답니다. 나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회복을 향한 걸음을 뗄 수 있어요.”

이 교수는 2004~2016년 미국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생활 12년 동안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회복지학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이들을 찾아가 권리와 기회를 누리도록 돕고, 약자가 처한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촉구 시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안타까운 이유다.

그는 “우리 사회는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들도 기본적인 인권, 권리를 누려야 하는데 이 사회는 장애인들이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시위를 해야만 얘기를 들어준다”면서 “인간다움을 존중하고 지지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책에서 이 교수는 ‘사회적 지지’를 강조한다. 그가 큰 사고를 겪고도 생활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변의 지지와 도움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과 친구, 지역사회의 존중과 관심, 따뜻한 배려와 응원처럼 인간은 신뢰받을 때 부정적 스트레스를 감당할 힘이 생긴다”며 “부디 혼자 아파하지 말고 계속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라”고 했다.

정치계 입문 기회도 있었지만 고사했다. 유학 시절 한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 선대위 공동위원장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단다. “정치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역량을 갖춘 분들은 따로 있잖아요. 나중에 뭘 하고 살지 장담할 순 없지만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도중에도 이 교수를 알아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저를 과거 화재의 피해자로만 아는 게 아니라 ‘잘 살고 있구나’, ‘굳이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희망의 말들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배신하지 않았구나’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도 꺼냈다. “가족이 없었으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예요. 제가 구멍이 많아요. 꼼꼼하지 못한 나인데 메워주고 채워주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진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홈런 신기록 달성
  • 꼼짝 마
  • 돌발 상황
  • 우승의 짜릿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