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아닌 줄 알았던 ATM이라는 별명이 이번에 또 회자됐다. 동학개미들이 코로나19 이후 대거 진입하면서 국내 증시 수급의 주요 축을 형성한 건 사실이다. 이제 한국 증시는 외국인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증시는 외국인의 계속된 펀치에 휘청였다. 8월 한 달간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팔아치운 주식만 6조2000억원에 달했고 월초 3200선대였던 코스피지수는 한때 3060선까지 미끄러졌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던지는 이유로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우려, 달러 강세, 중국 규제 리스크에 따른 아시아 비중 축소 등이 꼽혔다. 딱히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글로벌 공통 변수다. 그런데 유난히 한국에서의 매도공세가 거셌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월 25일까지 4주간 한국 증시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59억달러어치 유출됐다. 같은 기간 대만에서는 8억9000만달러, 베트남에서는 2억4000만달러 빠져나가는데 그쳤다. 인도로는 4억1000만달러 유입됐고 인도네시아 주식도 순매수였다.
외국인들의 공모주 대어 단타도 문제다. 의무보유확약 없이 쉽게 공모주 받아 상장 초기에 팔아치우면서 새내기주 주가뿐 아니라 증시 전체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지난달 10일 상장한 크래프톤은 데뷔 첫날부터 사흘 내리 외국인이 내다 팔면서 3000억원 이상 순매도했고 롯데렌탈과 HK이노엔은 상장 후 나흘 연속 외국인 매물에 시달려야했다. 가뜩이나 줄줄이 대형 IPO가 이어지면서 증시 자금을 빨아들여 수급기반이 약해졌다는 평가인데 외국인 매물까지 쏟아지면서 더 하락을 부추기는 식이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외국인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기도 하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ATM처럼 활용해도 휘청이지 않으려면 국내 수급기반을 좀 더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이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