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고독했을 '서정추상'…1세대 추상화가 이세득을 회상하다

서정추상 선구자 이세득 탄생 100주년 기념해
갤러리라온서 '서정추상과 심상의 기록' 열어
추상화면에 '한국적' 녹여낸 평생작업 60여점
  • 등록 2021-06-16 오전 3:30:00

    수정 2021-06-16 오전 7:27:42

이세득 ‘허’(虛 Ⅱ·1982), 캔버스에 오일, 64×52.5㎝(사진=갤러리라온).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세득(1921∼2001). 그 이름 앞에는 ‘한국 1세대 추상화가’란 수식이 붙는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서정추상의 선구자’라고 한다.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수학할 때만 해도 ‘으레 화가라면 그런 줄 알았던’ 구상화를 그렸다. 화풍이 바뀐 건 1958년 파리로 다시 유학을 가면서다.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앵포르멜에 빠지며 추상으로 갈아입었다.

그렇다고 전통을 완전히 등지지도 못했다. 파리를 경험했던 김환기가, 이응노가 그랬듯, 이세득도 추상화면에 ‘한국적’인 것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단청을 들였고 1970년대에는 고구려 고분벽화, 수막새 기와, 오방색 등을 심었다.

특별한 건 그때부터 그만의 ‘독창성’이 보였다는 거다. 부드럽고 여리고 가볍고 따뜻한, ‘한국적 서정추상’이었다. 이후 이세득은 평생 서정추상 화가로 살았다. 파리에서 귀국한 1962년을 기점으로 타계할 때까지 40년이다. 국내 화단에 사실주의가 몰아치고, 모노크롬(단색화)이 휘감아도 말이다.

이세득 ‘심상’(心象 H 84-3·1984), 캔버스에 유채 53.0×65.0㎝(사진=갤러리라온)
그이의 생애를 되돌리는 지점에서 떠올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5년여 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작가가 걸어온 길: 화가와 아카이브’ 전을 열며 공개한 편지글 한 토막이다. “선생님께 제 얘기를 일체 안 해서 그렇지 실은 저를 앞에 두고 직접 호령하는 선배도 있었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그림 집어치우라고 근대미술관 모씨에게 청원을 올린 작가도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 앞에 자랑할만한 작품은 없습니다마는 그렇다고 남도 아닌 자기나라 선배들에게 기 막히는 모욕을 당할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이우환(85) 화백이다. 지금에야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란 타이틀이 붙어다니지만 그에게도 억울하고 서러운 때가 있었다. 1968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에 참가한 뒤 비난과 모욕을 꽤나 받았던 모양이다. 이때의 심경이 적힌 편지를 받아준 이가 그의 선배화가 이세득이었던 거다. 이우환 화백은 “앞으로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힘써 좋은 작품 만들어서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현실이 됐다. 척박했던 시절을 보내야 했던 추상 속의 풍경이다.

‘허’(虛 Ⅱ·1982), ‘심상’(心象 H 84-3·1984), ‘고화’(古話 72-E·1972) 등은 이세득 서정추상의 전성기를 가늠할 만한 작품. 새털 같은 화면에 홀로 떠난 붓길의 고독을 둥둥 띄워놨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갤러리라온에서 연 이세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 ‘서정추상과 심상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유화·수채화·드로잉 60여점을 앞세우고 아카이브 자료 등을 꺼내놨다. 전시는 7월 8일까지.

이세득 ‘고화’(古話 72-E·1972), 캔버스에 유채, 80.0×90.0㎝(사진=갤러리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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