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한국과 일본의 동해(凍海), 언제 정말 웃을까

  • 등록 2022-05-20 오전 5:00:00

    수정 2022-05-20 오전 5:00:00

“하지메 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시무니까, 잘 부탁드리겠스무니다”

2020년 여름 서울 대학로의 한 국시집. 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 대학 교수와 기자의 첫 만남에서 일본말과 서툰 한국말 인사가 오고 가자 옆 테이블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중년 부부로 보이는 손님들은 “어디서 일본말을 지껄이느냐”는 듯 식사 중에 힐끗힐끗 째려보기도 했다. 첫인사 이외의 대화는 우리 말로 이어졌지만 불편했다. “일본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나...우리가 분위기 파악을 못 했다는 뜻인가?”

반일 감정이 한창이던 때의 경험 한 토막을 불러낸 것은 한일 관계에 대한 한 조각 생각을 시간대별로 조금 더 소상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갈 데까지 간 두 나라 관계를 왜 다시 들먹이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젠 변화의 빛이 보이기 시작해서다. 많은 석학과 정치인, 베테랑 외교관 등 두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이 아무리 고견을 제시하고 물밑 노력을 펼쳐도 녹지 않았던 한국·일본 사이의 동해(凍海)가 본래의 푸른 바다로 바뀔 희망을 본 게 그 근거다.

변화의 시발점은 양국 지도자의 교체이고, 단적으로 말하면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시절의 한일 관계는 ‘우호’와 아예 거리가 멀었다. 문 전 대통령의 대일 외교 행보와 발언에선 적개심과 분노, 무시의 감정이 수시로 읽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체결한 위안부 합의 파기 후 두 나라 관계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에 이르기까지 건건이 파국을 향해 질주했을 뿐이었다. 징용 근로자 배상을 위한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매각 판결, 종군 위안부 배상 문제 등 곳곳의 지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노기와 죽창가를 등에 엎은 반일 감정은 아베의 오만, 혐한 발언과 맞물리며 언제든 폭풍우를 뿌려댈 기세였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기시다 총리가 아베의 뒤를 이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문 정부의 반일 몰이와 합의 파기, 자산 강제 매각 판결 등에 대한 일본의 불신·불만과 달라지지 않은 사과의 수위가 배경이었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해빙으로 확실히 가닥을 잡았다. 고위급 인사의 왕래가 잦아지고, 두 지도자가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친서를 주고받더니 김포―하네다 하늘길이 곧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비자 면제를 복원시키자는 협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과 정치·외교 마찰로 인해 막혔던 곳은 뚫고, 닫혔던 것은 열어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2년 넘게 애태우며 기다렸던 만큼 두 나라 보통 사람들의 교류와 우호에도 새 지평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나라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선결 과제는 하나둘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압류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그중 가장 인화성이 강한 문제다. 관계 개선의 문을 금세 다시 닫아 버릴 수 있을 만큼 예민할 뿐 아니라 시간도 촉박하다는 게 전직 고위 외교관의 진단이다. 그는 국민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부 대신 초당적 민간 현인회의를 만들어 정치적 부담을 덜어줄 해결 방안을 도출하도록 하자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이 윤 정부에 기대하는 가치의 핵심은 ‘신뢰’와 ‘이해’에 있다. 오락가락 행보와 정치 셈법으로 두 나라 관계를 퇴행시킨 전 정부의 헛발질이 윤 정부를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해와 우정의 용광로 불로 얼어붙은 바다를 녹이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사 사슬에 묶여 주먹만 불끈 쥘 것인가는 윤 대통령의 지혜와 미래지향적 리더십에 달려있다. 지나친 양보와 굴종은 금물이지만 편견과 아집은 현명한 외교의 독이다. 두 나라 보통 사람들의 눈과 귀에 윤 대통령의 머리와 가슴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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