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가업상속은 富 아닌 책임의 대물림

  • 등록 2023-05-29 오전 6:15:00

    수정 2023-05-29 오전 6:15:00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가업상속이라고 하면 흔히 부의 대물림으로 생각한다. 마치 건물이나 땅을 물려주듯이 기업이라는 자산을 후손에게 건네주는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기업상속에는 많은 상속세를 부과한다. 지분을 상속할 때는 20%가 추가로 할증돼 상속세율이 최대 60%까지 치솟는다. 건물 상속보다 기업 상속에 더 과중한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과세특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사후 요건이 까다로워 이용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과세특례 범위와 공제한도를 확대하고 적용요건도 완화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사후관리 기간 5년 동안 고용·지분·자산유지 등의 요건을 준수해야 하는데 하나라도 위반하면 추징금까지 더해져 당초에 상속당시보다 더 많은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감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인상 등과 같이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돌발하는 요즘 상황에서 5년 후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불확실하지만 사후관리 요건에 따라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기업상속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부의 대물림에 대한 편견에 더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기업의 상속을 건물이나 현금의 상속과 동일시하는 것은 기업경영을 알지 못하는 무식의 발로다.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건물을 상속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건물은 명의만 변경하면 되지만 기업은 지분만 넘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건물주와 기업주는 권한과 책임의 차원이 전적으로 다르다.

건물을 상속받으면 재산상 이득은 크고 책임과 의무는 작다. 상속인이 건물을 직접 관리하기 어려우면 전문업체에 위임하면 된다. 그러나 기업을 상속받으면 경영권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크다. 경영자 역할이 어렵고 책임이 버겁다고 이를 남이 대신하도록 맡길 수 없다.

2세 상속인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초보 운전자가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트럭 운전을 배우고 주행연습 좀 했다고 섣불리 트럭을 몰고 나갔다가 사고나기 십상이다. 경험이 풍부한 1세 운전자가 2세 견습생을 옆에 앉히고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도로조건에서 트럭을 능숙하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친 다음에야 운전대를 넘길 수 있다.

1세 기업인은 본인이 창업해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을 자식도 애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경영해 주기를 기대한다. 사업을 크게 키운 기업인일수록 2세 경영자에게 높은 기대를 하고 많은 요구를 한다. 자녀를 자신처럼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키우겠다는 욕심에서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시킨다. 선대 기업인의 많은 요구와 높은 기대는 후대 경영자를 무거운 압박감으로 짓누른다.

세계 최고의 명품 대기업 LVMH 그룹을 경영하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다섯 자녀와 한 달에 한 번 90분 동안 점심을 먹으며 미리 준비한 주제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묻고 토론하며 경영수업을 시킨다고 한다. 그는 자녀들 어린 시절에 본인의 출장과 협상 자리에 데리고 다니며 현장 학습까지 시켰다. ‘캐시미어 입은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아르노 회장은 자녀도 야생의 늑대가 새끼를 키우듯 강하게 단련시켰다. 이런 부친을 자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따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관계가 대부분의 기업인과 후계자 사이에서 나타난다.

부모가 기업을 상속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녀가 경영책임을 부여받는 관계를 사회학은 ‘도구적 관계’라고 한다. 부모는 자녀의 자산 취득 도구, 자녀는 부모의 가업 승계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는 부모-자녀가 ‘가족적 관계’에서 ‘도구적 관계’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이런 변화가 원활하게 긍정적으로 이뤄지느냐 아니면 삐끗거리며 부정적으로 악화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

경영권 승계가 어렵고 험한 난제인데 여기에 제도적으로 장애물까지 설치하니 가업상속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차라리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 책임에 시달리기보다는 기업을 매각해 그 돈으로 건물을 사달라는 요구가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기업주보다 건물주가 더 선호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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