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정치권에선 이런 파행은 다반사인 것 같다. 도무지 국민들은 구경꾼 취급도 못 받는다. 최소한의 관객 서비스조차 외면한 것 같아 민주주의의 민 낯이 드러나는 듯 하다. 제발 ‘슬기로운 정치’의 밝은 면을 보고 싶다. 윤석열 정부의 화려한 등장이 대선 이후 국민이 기대하는 순리 아닌가? 이제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제각기 숙고해야 할 때이다.
인사청문회법 6조 2항에 따르면 임명권자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20일 안에 청문절차를 마쳐야 한다.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제기되는 각종 의혹과 자료제출 공방에 청문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5월로 연기됐다. 지난 7일 임명동의안이 제출됐기 때문에 27일엔 청문회를 끝냈어야 하지만 날짜를 지키지 못하면서 국회는 자신들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긴 모양새를 연출했다.
5월 2일과 3일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 인사청문회가 동시에 진행되면 국무총리 청문위원이 소관 상임위 청문회장을 오가며 메뚜기 같이 질의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진지하고 밀도 있게 진행돼야 할 청문회에 이런 불필요한 번잡스러움을 야기한 국회의 책임을 언젠가는 꼭 물어야 한다.
새 정권 출범은 국가적 차원의 중대사다. 단순히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나 여야의 경쟁구도로 바라볼 차원이 아니다. 나라의 운영을 책임질 주체가 바뀌는 문제이므로 정권 인수과정은 헌법적 권위를 보장해야 한다. 헌법에 예산안 처리 시한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이전으로 못박아 놓은 것처럼 새로운 대통령의 첫 내각은 적어도 취임 20일 또는 30일 전에 국회 동의절차가 완료되어야 한다는 법률적 강행규정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 전에 후보자 흠집내기, 대통령 발목잡기 식으로 흐르는 우리의 청문회 문화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이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고 가장 힘 있을 때 핵심 국정과제를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도록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려면 적어도 1기 내각 구성원들은 큰 무리 없이 임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후보는 최대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물들로 예비내각을 구성하고 야당은 대승적으로 이들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처리해주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수동적, 사후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에서 능동적, 선제적으로 명령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권자가 되고 있다. 바쁜 생업 현장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청와대와 국회와 세종정부청사의 돌아가는 흐름을 훤히 들여다보는게 지금 우리 국민들이다. 자격미달의 인물을 대통령 인사권으로 무리하게 임명하면 정권과 국민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취임 후 자신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누구를 앉힐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국민 앞에 공개해 검증받도록 해야 한다. 섀도 캐비넷을 구성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대통령으로서의 인사역량을 시험해 볼 중요한 가늠자가 될 뿐 아니라 검증 과정을 거쳐 임명된 후보자들에겐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더 큰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이 모두의 전제는 각각의 철저한 공인의식이다. 공직은 봉사의 자리요 영광된 자리일진데 리더라면 공정과 상식이 내재돼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 없다.
국회의 권능은 찬반과 절충에 있지 그들의 일방적인 보이콧은 곧 국민에 대한 보이콧이다. 새 정부의 영광스러운 출발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이며 아름다운 등장과 멋진 퇴장은 우리가 가야할 정치 문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