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0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규제개혁

  • 등록 2023-01-13 오전 7:23:35

    수정 2023-01-13 오전 8:35:41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지난해 8월 26일, 여당 지지층의 본산인 대구에서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물결처럼 많은 인파가 당시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그는 “어려울 때도 우리 서문시장과 대구 시민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기운 받고 가겠다”며 오랜 만에 웃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6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장바구니를 들고 상인 및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하지만 당시 윤 대통령과 동행한 규제개혁 업무 담당 공무원들은 ‘대형마트 규제개선은 물 건너 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장 입구에 ‘대형마트 의무 휴무제 폐지는 전통시장의 고통’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기 때문이다. 보수 핵심 지역조차 반대하는 대형마트 규제개선은 대통령에게 정치적 이득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판단할 수 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대형마트 규제개선은 그러나 물밑에서 계속 진행됐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정부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소유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대형마트가 영업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의무휴업일 지정은 지자체와 자율성 강화 방안을 협의키로 했다. 큰 진전이다.

2012년 도입된 대형마트 규제는 규제개혁 우선순위에 자주 거론됐고, 쇼핑의 대세가 온라인으로 바뀌었음에도 누구도 바꾸지 못했다. 정치적 목소리가 센 상인과의 마찰이 부담스러운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수 국민이 이를 기억해 표로 응원하지도 않는다.

윤 대통령이 다선 의원 출신이라면 서문시장에 걸린 현수막이 표로 보여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0선’ 대통령의 정부는 정치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모두를 위한 규제개혁이라는 원칙에 무게를 실어 단단한 대형마트 규제를 바꿀 수 있는 첫발을 디뎠다.

남은 숙제는 많다. 상생안에 담긴 ‘중소유통 업계의 역량강화 지원’이 내실있게 추진돼야 한다. 또 지자체와 협의로 남겨둔 의무휴업일도 잡음을 최소화하며 합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서문시장에는 아직 대형마트 영업제한 폐지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형마트 규제개선이 한쪽의 손해만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되면 남은 규제개선 과제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서문시장 상인이 웃으며 현수막을 내려야 다른 규제도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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