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경쟁률 3.99대1, 일반 공모청약 미달, 상장 첫날 5%대 하락’
국내 첫 토종 인프라펀드 상장으로 이목을 끌었던 KB발해인프라(415640)의 처참한 성적표다. 공모청약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시장 눈높이와는 거리가 먼 몸값 책정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높다.
한편에서는 리츠나 인프라펀드의 상장 제도상 예견됐던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리츠·인프라펀드 등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이 잇달아 조단위 기업가치를 책정해 증시를 노크하고 있지만, 상장 심사를 거치지 않아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수익 전망이 불확실해도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에 대한 상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초 공모를 통해 확보하려던 자금이 1600억원이었지만, 시장 수요가 극히 부진해 825억원(51.60%) 가량을 상장 주관사단인 KB증권과 키움증권, 대신증권이 개별채무로 떠안게 됐다. 이달 중 기관투자자 청약에서 경쟁률 3.99대1의 부진한 수요를 기록한 데다, 개인투자자 대상 일반청약에서 외면 받아 크게 미달이 발생한 영향이다.
수요예측 참패에 이어 상장 이후 주가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상장 이후 입찰한 기관들 중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의무보유 확약을 건 곳이 단 1곳 뿐이어서다. 상장 직후부터 기관 매도 물량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은 한 기관 관계자는 “발해인프라펀드의 향후 사업계획이나 보유 자산군을 봤을때 상승 여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기존 자산군의 미래 통행료 수입 전망을 너무 높게 잡아서 평가한 것으로 보여 들어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무보유 확약을 걸지 않아도 배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장기간 자금이 묶일 가능성이 높으면 투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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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에서 대규모 미달이 날 만큼 시장 수요가 많지 않았던 발해인프라펀드가 상장할 수 있는 이유는 상장 신청 절차가 사실상 신고 수준으로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규정상 인프라펀드는 상장적격 심사 없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효력 발생 후 바로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 이에 발해인프라펀드 역시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받지 않았다. 상장 예비심사는 기업의 계속성과 경영투명성, 사업성 등을 심의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장의 핵심 절차다.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는 기업의 경우 상장 예비심사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
증시에 인프라펀드, 리츠와 같은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이 크게 늘었지만 성적표는 참담하다. 국내 24개 상장 리츠 중 1~2종목을 제외하고는 다 공모가를 밑도는 상태다.
시장 전문가들은 리츠·인프라 펀드 상장 전에 수익성과 미래 사업성 검증을 꼼꼼히 받고, 미진할 경우 보강하도록 상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규제 완화가 시장 불신을 키우고 개인투자자 보호에 허점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한문도 명지대 대학원 실물투자분석과 교수는 “투자판단은 개인투자자의 몫이니 손실에 일부 책임이 있을지라도, 정부가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에 대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규제를 만들지 못한 게 근본적 문제이고, 잘못된 가이드를 주고 있는 것”이라며 “규제를 재정비해서 상장 심사를 제대로 거치도록 하는 것이 맞다. 부동산 사업성 체크를 잘 할 수 있는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고 제대로 검증을 받은 뒤에 증시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리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관련 규정을 관할하는 것은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인데, 정부 규정상 상장심사를 하지 않도록 돼 있는 부분이라, 현재 거래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