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만난 한 자본시장 관계자의 말이다. 세계적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주식·채권의 동반 약세로 글로벌 연기금들의 수익률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캐나다는 크게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한 투자 전략을 토대로 경기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역량을 다져둔 덕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기준 -8.0%의 운용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네덜란드 ABP, 미국 캘퍼스 등 주요 연기금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냈다. 캐나다 연기금 수익률은 -7%로 국민연금보다 선방했다.
워낙 상반기에는 글로벌 증시 급락에 장사 없었던 시기로 대부분 연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했지만, 연기금 내부의 의사결정 체제나 지배구조 면에서 금융시장 변동성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는 점이 캐나다연금의 강점으로 꼽힌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대체투자를 확대하며 세계 주요 연기금 중에서도 크게 선방하고 있는 캐나다 연기금의 투자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짙은 배경이다. 특히 해외·대체투자 확대는 한국을 금융허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전략적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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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금융감독원(OSFI)과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등에 따르면 캐나다 연기금의 순자산은 오는 2040년 1조6830억 캐나다 달러(약 1686조8877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 규모인 5290억 캐나다 달러(약 533조 원, 9월 30일 기준) 대비 3배 이상에 달하는 규모다.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며 앞으로 75년간은 순자산을 꾸준히 늘려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캐나다 연기금의 이러한 투자 비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30년 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재정적자 등 캐나다 경제가 암흑기를 지나고 있을 때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캐나다 연기금이 현재와 같은 투자 전략을 취한다면 앞으로 수십 년 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캐나다는 연방정부와 주(州) 정부로 나뉘어 행정을 해온 만큼, 정치 분열이 두드러져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폴 마틴 재무장관은 ‘지속 가능한 연금’을 목표로 캐나다 10개 주 정부 재무장관들을 한데 불러모아 협의체를 구성한다. 그 시작은 현재의 캐나다 기금 운용 조직인 CPPIB 이름을 딴 국회법 개정이다. 이를 토대로 연금 본부에서 기금운용조직을 별도로 떼어내 독립성을 보장했고, 이사회에 민간 금융 전문가들을 앉혀 전문성을 키우도록 했다.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운영 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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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발표된 CPPIB의 2023년 회계연도 2분기 실적은 캐나다 연기금의 이러한 위상을 뒷받침한다. 주요 글로벌 주식 및 채권 지수가 하락한 가운데 CPPIB는 2분기(7~9월) 0.2%의 순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로써 CPPIB의 순자산은 지난 6월 30일 기준 5230억 캐나다 달러에서 5290억 캐나다 달러로 뛰어올랐다.
CPPIB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보는 요소는 다양하다. 우선 ‘쿼터(quarter)는 3개월이 아니라 1세기의 4분의 1인 25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할 시장과 상품을 들여다본다. 특히 ‘리스크 대비 수익 극대화’를 적시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법에 따라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다. 이와 관련해 CPPIB 한 관계자는 “장기적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한다”며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CPPIB는 기금 규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초과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자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한 국가 혹은 지역에 지나치게 의존해 투자하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투자 전문가를 이사회 멤버로 모시는 등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 현재 CPPIB 이사회는 자산운용사 회장과 명문대학교 전 부총장, 기업 경영인, 벤처캐피탈 대표, 전력공급 회사 대표 등 다양한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반면 한국은 독립성 확보, 대체투자 활성화 측면에서 캐나다만큼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캐나다를 움직일 리더의 리더십과 관계자들의 결단력, 사회적 합의가 모이지 못했다면 독립성 확보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CPPIB가 전문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지배구조(거버넌스)가 정치로부터 완벽히 자유롭기 때문”이라며 “한국과 지리적·문화적 특성이 다른 만큼, 우리나라가 투자 방향성 및 전략은 달리해야겠지만 캐나다는 연금개혁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모범 사례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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