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강재만이 살길"…차별화 전략으로 고군분투하는 철강업계

■스페셜 리포트-이중고 겪는 철강업계
中·日 공세에 범용 원가경쟁력 확보 ‘한계’
전기차 시대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 집중
포스코, ‘전기차 강판·전기강판’ 시장 선점
현대제철 고급판재·동국제강 컬러강판 승부
  • 등록 2023-10-30 오전 5:30:02

    수정 2023-10-30 오전 5:30:02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중국과 일본 철강사들의 저가 제품 공세에 대응해 국내 철강업계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앞세운 ‘고급 강재’ 개발에 분주하다. 후판이나 철근, 열연강판과 같은 범용제품은 중국과 원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기업들은 전기강판이나 모터, 배터리팩과 같은 전기차 관련 부품이나 자동차 강판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포스코가 5월 25일 중국 현지 가공센터인 POSCO-CSPC 직원이 ‘기가스틸’ 전문 슬리터를 가동하고 있다.(사진=포스코)
25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이달 19일 중국 하북성 당산시에 연산 45만톤(t) 규모의 자동차용 도금강판 공장 1기를 준공했다. 내년 5월 준공하는 공장까지 합치면 총 90만t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이 공장은 주로 자동차용 소재로 사용되는 아연도금강판 생산라인(CGL)이다.

포스코가 현지에 생산시설을 지은 건 중국이 세계 최대 자동차 및 가전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 고급 철강재 수요 시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700만대로 향후에도 전기자동차 성장에 힘입어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 철강사들은 지속적인 설비투자에도 고도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필요한 차강판 분야에서 품질을 높이기 어려워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에 주안점을 두고 선제적으로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차강판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생산 시간당 수익성이 높고 고객인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판매 대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포스코는 자동차용 고급강판인 ‘기가(GIGA)스틸’ 개발에 성공,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포스코의 수십 년 기술력이 집약된 기가스틸은 1기가파스칼(GPa) 이상의 초고강도 강판으로 가볍지만 튼튼해야 하는 전기차에 알맞은 제품이다. 기가스틸은 1㎟당 100㎏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초고강도강으로, 인장강도가 우수하며 성형성도 구비한 차세대 강판으로 평가된다.

기가스틸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경량화가 요구되는 전기차에 필수 소재로 인식된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가 400~450㎏으로 내연기관차보다 총중량이 평균 25% 정도 무겁기 때문에 글로벌 전기차 업체가 모두 경량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가스틸은 경량 소재 중에서도 견딜 수 있는 하중이 크기 때문에 차량 부품의 두께를 줄여 차체를 가볍게 만들 수 있다.

전기차용 구동모터코아 샘플.(사진=포스코)
포스코는 전기차 내부에 들어가는 전기강판 기술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포스코가 개발한 ‘하이퍼 노’(Hyper NO·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는 전기차 핵심부품인 구동모터코아의 중요한 소재다. 하이퍼 노는 일반 전기강판 대비 전기차 구동모터의 에너지 손실을 30% 이상 줄여 전기차 소재 시장의 핵심 먹거리로 꼽힌다.

포스코는 지난해 4월 1조원을 투자해 연 30만t 규모를 생산할 수 있는 하이퍼 노 공장을 착공했고 설비를 확장하는 2단계를 내년 10월 준공할 예정이다. 2단계까지 준공하면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을 합쳐 연간 40만t의 하이퍼 NO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기차 500만대의 구동모터코아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전기강판은 얇을수록 전기차 모터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소음과 열 발생이 적다. 또 강판이 얇아야 전기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하이퍼 노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철강사는 세계적으로 매우 한정돼 있으며, 해당 철강사들은 특허로 생산 기술을 보호하고 있다. 포스코는 향후 최신 설비를 도입해 두께를 최대 0.1mm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하이퍼 NO에 대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2025년부터 구동모터 소재인 친환경차용 무방향성 전기강판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2030년엔 92만7000t의 소재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초고장력 1.0GPa급 저탄소 전기로 판재 시제품.(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전기로를 통한 1.0GPa급 고급 판재 시험생산과 부품 제작에 성공했다. 이 판재는 고로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환원시켜 쇳물을 만들어 내는 대신 전기로에서 직접환원철과 철스크랩(고철)을 사용해 쇳물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전기로로 일부 자동차용 강재를 생산하는 사례는 있었으나 1.0GPa급 이상의 고강도 제품 생산과 부품 제작에 성공한 것은 현대제철이 유일한 사례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기초소재연구센터와 함께 1.8GPa 프리미엄 핫스탬핑강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의 차세대 전기차인 제네시스 일렉트리파이드 G80(G80EV)과 신형 G90에 신규 강종을 공급 중이다.

동국제강과 같은 전기로 기반 회사들은 컬러강판을 앞세워 수출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컬러강판을 생산하기 시작한 동국씨엠은 ‘럭스틸(가전용)·앱스틸(건축용)’ 브랜드를 통해 맞춤형 컬러강판 시대를 개척했으며 단일 공장 기준 글로벌 1위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내수와 수출 비중은 각각 35%, 65%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글로벌 철강사들의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박형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전기차 시장 급성장으로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와 유사하게 향후 전기강판 부족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철강사들의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며 “초기 경량화와 열관리 효율, 강성 확보를 위해 알루미늄 압출재 중심의 시장이 형성된 배터리팩용 소재 분야 철강 롤포밍재 등 유사 성능의 가격경쟁력이 높은 철강 소재로 대응하는 시장 경쟁이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한편 최근 각국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탈탄소 제품’ 역시 철강사들의 경쟁 우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국내 업체들은 유럽, 미국 등 주요 탄소 규제 국가의 기준에 대응해 철강제품에 대한 친환경 인증을 빠르게 확보해 나가고 있다. 포스코가 출시한 탄소 감축량 배분형(매스 밸런스·Mass Balance) 제품이 대표적이다. 저탄소 생산공정 도입·저탄소 철원 사용 등을 통해 감축한 탄소 배출량을 배분받아 기존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 특정 제품을 말한다. 해당 제품을 구매한 고객사는 그에 상당하는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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