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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는데 사실이었다. 올초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이기흥 회장은 무한연임 의지를 대놓고 드러냈다. 이후 그는 3연임을 위한 걸림돌을 하나씩 치워버렸다. 먼저 5월말 이사회와 7월초 대의원총회에서 그는 연임제한 규정을 모두 삭제했다.
선거판도 점점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먼저 선거인단 구성 방식을 바꿨다. 기존 ‘100% 무작위’ 방식에서 약 10%에 해당하는 선거인단을 지역 체육회에서 지정하는 ‘지정 선거인’으로 변경했다. 또 예비 선거인 절차도 변경했다. 예비선거인 추첨 주체를 각 회원단체에서 대한체육회 선거운영위원회로 이관했다. 현역 회장인 이기흥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인단 구성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선 선거 당일 휴대폰 인증 ‘충성 맹세’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다 못한 정부가 이 회장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이 회장은 최근 국무조정실의 조사 결과 직원 부정 채용 등의 혐의를 받았고, 상급 단체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이 회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반발해 이 회장은 직무정지 취소 소송과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21일에는 직무정지 처분에도 출근해 체육회 현안과 관련한 보고를 받는 등 국가기구의 행정 처분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예견된 결과였다. 이 회장 특별보좌역 출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고 15명의 위원도 이 회장이 임명한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 ‘공정’을 절대 가치로 삼아야 할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공정하지 못한 조직임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대한체육회는 체육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만드는 공적 기관이다. 특정 개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특히 대한체육회의 수장인 회장은 체육인은 물론 국민 일부를 대표하기에 막중한 책임과 권한이 뒤따른다. 한해 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집행하고 셀프 추천을 통해 IOC 위원도 될 수 있는 요직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대통령은 5년 단임하는 임시 계약직이지만 대한체육회 회장은 마음만 먹으면 무한 연임이 가능한 종신 계약직이라고 불릴 정도다. 누구보다도 ‘공정’을 핵심가치로 삼아야 할 대상이 대한체육회 수장인 것이다.
공정은 스포츠의 존재 가치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공정한 경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정직한 경기 운영, 그리고 결과에 대한 겸허한 수용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정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대한체육회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공정을 회복해야 한다. 이기흥 회장의 3연임에 대한 선거는 우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대한체육회의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