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8월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을 담은 소식이 최근 하나 눈길을 끌었다. 윤덕민 신임 주일 대사가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털어놓은 소회였다. 그는 “막상 일본 와서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냉랭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그는 게이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일본 연구 전문가다. 현지 사정에 밝은 것은 물론 지인도 많고 일본인들의 감정과 문화, 역사까지 소상히 궤뚫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 그의 입에서 ‘냉랭’이란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사가 절감한 도쿄의 변화는 어디서, 왜 생겨난 것일까. 잘라 말하자면 최근 수년간 꼬이고 막히고, 감정 대결로 치달은 두 나라 외교 관계가 큰 원인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둘러싼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이를 앞세워 진행 중인 일본 기업 자산 압류·매각 작업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윤 대사는 징용피해자 문제를 풀어낼 ‘외교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했지만 이는 지금도 타들어가는 도화선이다. 또한 그의 지적대로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들 사이에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의 폭탄과 연결돼 있다.
윤 대사는 “압류 자산이란 게 브랜드나 특허와 같은 건데 경매에서 충분한 현금화가 되지 않으면 피해 당사자들이 받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맺힌 분노를 담아 응징의 철퇴를 내리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 따를 유·무형의 손실이 너무 막대하다는 고뇌의 현장보고서인 셈이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던 한일 격차는 이제 1인당 GDP(국내총생산)잣대로도 근소한 차로 좁혀졌다. 일본에 대한 패배 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우월감까지 엿보이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현금화를 멈추고 ‘외교의 공간’에서 푸는 것이 과연 민족 정기를 훼손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퇴행시키는 일이 될 것인가. 8월의 폭염은 뜨거워도 정치권과 사법부는 국익에 정말 도움이 될 선택을 위해 이성과 지성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다듬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일의 수많은 기업인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