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2년 전 14억7000만원 전세를 끼고 25억7000만원에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1채를 매입한 A씨는 최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A씨는 “내년 3월 만기가 도래하는데 최근 전셋값이 3억원 정도 떨어졌다”며 “계약갱신을 하더라도 시세에 맞춰서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금리도 큰 폭으로 올랐고 앞으로 전셋값이 더 떨어질까 봐 걱정이다”고 말했다.거래절벽에도 ‘집값 불패’를 자랑하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도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부동산 시장 경기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서초구 반포는 그간 서울 강남권에서 유일하게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지 않아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가 몰리며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졌는데 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거래절벽으로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역전세 부메랑’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셋값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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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 전세 매물이 13억원까지 하락했다. 지난달 25일 15억2250만원에 계약 갱신을 했던 전세보증금보다 2억원 넘게 낮다. 심지어 지난 6월 22억원(17층)에 최고가 거래한 것과 비교하면 4개월 새 9억원이나 하락했다.
반포동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해당 매물은 12월 중순까지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금리가 올라 전셋값도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인근 반포써밋 전용 84㎡도 전세 매물이 11억원부터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9억원에 전세계약을 했던 매물이다. 반포리체 전용 84㎡는 가장 저렴한 전세 매물이 12억원에 나와 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20억원에 거래됐다. 올해 6월 중순 서울 전 지역이 약보합세로 돌아선 이후에도 서초구는 ‘나 홀로 오름세’를 나타냈던 곳이다. 인근 강남구 대치동, 삼성동, 청담동, 압구정동 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6개월 내에 실입주해야 하고 2년간 실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갭투자가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8월 계속되는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거래 절벽으로 서초구마저 하락세로 돌아섰고 이후 전셋값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동향에 따르면 지난주 서초구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대비 0.36% 하락했다. 전주대비 0.1%포인트 낙폭을 확대했다. 그동안 집값 하락을 방어해줬던 갭투자가 오히려 집주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심지어 2019년 12월16일 이후 매수계약을 한 1주택자들은 15억원 초과 주택일 경우 전세퇴거대출도 금지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보증금을 대폭 낮추면서까지 서둘러 세입자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한 시민이 부동산 매물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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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 현상은 반포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매거래 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전세로 돌리는 매물이 늘어나는 추세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8278건으로 3개월 전(3만2145건)보다 50.1% 증가했다. 금리 인상으로 월세 선호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도 전셋값을 끌어내리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된 송파구도 최근 전셋값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역전세가 심각한 상황이다.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84㎡ 전세 호가가 8억4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 6월 15억8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은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이다. 지난 2월 17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서를 썼던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도 전세 매물이 9억원부터 나와 있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급급매가 아니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세로 매물을 돌리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 매물 자체가 늘어난 반면 금리 인상 영향으로 전세 수요는 줄고 있다”며 “대단지 아파트는 전세 매물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면서 낙폭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