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1000만弗 로비'에도 핵심정보 유출 우려…"결국 韓유턴이 답"

中 투자제한 이어 美 무리한 요구…삼성·SK '딜레마'
업계 및 전문가 "韓에 첨단시설 투자가 더 낫다" 분석
문제는 복잡한 인허가·각종 걸림돌…인력 운영 숙제
  • 등록 2023-03-06 오전 6:00:00

    수정 2023-03-06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준기 이다원 김응열 기자] “결국 국내 시설투자를 늘리는 게 해답인 것 같습니다.”

5일 국내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당장 미국 기업들을 제외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딜레마에 빠졌다”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신청 조건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졌음을 시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대응하고자 벌여왔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치열한 물밑작업마저 허사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의 강경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삼성이 지난해에만 대미(對美) 로비자금으로 투입한 금액은 579만달러(약 76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 미국법인·솔리다임 등이 투입한 로비 자금 역시 527만달러(약 6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그룹이 미국에 쏟아 부은 로비 자금만 총 1000만달러가 넘는 셈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오픈시크릿은 “삼성의 미 로비 자금이 지난해 8월 미국 반도체 지원법 발효 직후인 3분기부터 대폭 늘었다”고 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민주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의 입법성과를 강조하며 반도체법을 언급했다. 사진=AP연합뉴스
“韓에 첨단투자 진행해야”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향후 10년간 대중(對中) 신규 투자 및 투자 확대가 막힐 수밖에 없는 데다, 미국이 요구하는 여러 반도체 지급 요건까지 갖추려면 차라리 국내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현 난국을 돌파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실제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미 국내에 시설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결심을 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혹독한 메모리 불황기이긴 하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필수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달 14일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리기도 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CAPEX 규모는 전년(19조원) 대비 50% 이상 줄어든 7조원 수준으로 점쳐지긴 하지만, 대부분 신제품 양산을 위한 필수 투자와 연구개발(R&D), 인프라 투자에 쓰기로 하면서 투자 기조만큼은 버리지 않고 있다. 경기를 타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 특성을 고려, 조만간 상승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다른 관계자는 “아직 업황이 회복하진 않았지만 수요가 늘어나는데 생산할 곳이 부족해진다면 칩 공급 부족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며 “고객 저변 확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엔 우려 요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은 “반도체 기업들이 장기적으로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에서 모든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 해당 시장에 맞는 투자를 하고 우리나라에선 기업의 핵심 기술, 국가의 전략 기술이 될 첨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시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 첨단 반도체 공장을 최대 6개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충북 청주에 5년간 15조원을 투입해 새 반도체 공장 M15X를 2025년까지 건설키로 했다. 경기 용인시에서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각종 인허가 및 규제 ‘즐비’

만약 삼성과 SK가 국내로 눈을 돌린다면 대규모 반도체 팹은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규제 등 해묵은 문제들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만이 공장 한 기를 짓는데 3~4년이 걸린다면 우리나라는 6~7년씩 걸린다”며 “몇 년째 요구하고 있지만 어떤 규제도 풀어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당장 부지 선정부터 난항을 겪을 공산이 크다. 부지를 선정한다고 해도 반도체 팹을 신·증설하기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 절차가 복잡하게 이어진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도 걸림돌이다. 화학물질관리법·산업안전보건법 등 구축·운영을 규제하는 법안은 물론, 중대재해처벌법·노동조합법 등 인력 운영에 ‘빨간불’을 켤 법안까지 말 그대로 ‘지뢰밭’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규복 회장은 “정부 입장에서 유망한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미뤄진 세제 관련 지원책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며 “기업들이 도움을 받아 재투자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생산시설 단지도(충북 청주시 흥덕구 소재). 사진=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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