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의 기자]정부 지원으로 기초 체력을 키운 스타트업들이 계속 생존하려면 추가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지만 국내 지원 여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국내에 연관 모델 도입 논의마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 고금리로 악화된 시장 환경 속에 민간 투자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쓰러지는 스타트업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지점(사진=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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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가 국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 37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가 올해 초기 창업투자 산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이 28.9%(39명),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이 54.1%(73명)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여건이 같을 것이라고 답한 AC는 7.4%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초기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얼어붙은 시장 속에 투자재원 확보 여건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들의 시리즈A 투자 유치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고 불릴 만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고금리 여파로 금융시장 여건이 비우호적인 시기에 민간 투자유치 시장으로 나오면 제 아무리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줄줄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지원책에 기대보기도 쉽지 않다. 사업 시작 단계에 한 번 정부 지원을 받고 나면 후속 지원을 받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평가다. 정부의 초기기업 지원 사업인 ‘팁스(TIPS)’ 이후에 심사를 통해 추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포스트 팁스(POST TIPS)’ 라는 과정이 있지만 수혜 사례가 드물다. 추가 지원을 연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시하는 사업화 성공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창업 2년 내 기업이 달성하기에 문턱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다. △10억 이상 인수합병(M&A)에 성공 △기업공개(IPO) △국내 VC업계 평균 투자금 이상의 투자유치 달성 △신규 고용 20명 이상 △연간 매출액 10억원 또는 수출액 50만불 이상 등의 요건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충족해야 수혜 대상이 될 수있다.
연구개발(R&D)에 성공한 초기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금창구도 마땅치 않다. 미국 벤처금융 전문 은행인 SVB 모델을 국내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해마다 반복됐어도 뚜렷한 결과물은 없는 상태다. 최근 SVB 파산 사태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진행 중이던 한국형 SVB 도입 논의안들 마저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금융당국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의 자금 조달을 전담하는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을 추진 중이었으나 속도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밖에 대전시 등에서 SVB 벤치마킹을 추진하던 사례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