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GIST) 에너지융합대학원 교수(전 에너지평가원장)는 11일 이데일리에 보낸 기고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업체가 “안전성을 우선할 때”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물론 “국내외 주력 전기차 및 배터리 업체는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써온 건 사실이지만, 경제성 때문에 미뤄온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이어 잇단 화재 사고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는 건 이미 가격과 성능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업체들에 유리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게 임 교수의 진단이다.
|
소비자들은 많게는 1억원대 전기차를 구매하면서도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 제조사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태에 놓여 있다. 1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1일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서 발생한 화재 발생 차량인 메르세데스-벤츠에 탑재된 배터리 셀은 중국 ‘파라시스 에너지’ 제품이다. 해당 제조사가 화재 위험으로 미국·중국 등에서 리콜 사태를 겪은 바 있는 만큼 업계 안팎에서는 배터리 품질 문제에 따라 이번 화재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고가의 글로벌 고급 완성차 브랜드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배터리를 고가 전기차에 채택한 데 대한 실망과 의문을 표하는 이유다.
이를 두고 임 교수는 “완성차 제조사가 치열한 가격 경쟁 속에서 안전성보다 경제성을 우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배터리 가격과 수급을 안전보다 우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배터리 제조사마다 안전 기술 역량이 각각 다르다는 데 있다. 임 교수는 “심지어는 병렬로 연결된 배터리 셀 중 하나가 고장 나 과전류가 흐르면 이를 차단하는 간단한 퓨즈조차도 설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나설 때…전기차 안전규격 손질·배터리 정보 공개해야
임 교수는 “지금 시점은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가장 먼저 정부는 전기차 화재 안전규격을 강화해야 한다.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용이한 구조로 배터리를 만들도록 규격을 정비하자는 얘기다. 더 나아가 임 교수는 정부가 △셀 간 전압을 일치시키는 ‘셀 밸런싱’ 기술 △화재 발생 시 자동소화하는 기술 등 배터리 안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도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배터리 제조사 등 정보 공개도 필요하다.
전기차 전용 화재진압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R&D 지원도 절실하다. 임 교수는 “아직 (전기차 화재 진압) 기술이 부족한 만큼 정부가 예비비를 편성해서라도 이를 지원해 권역별 필수 소방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기차 충전율을 80~90%로 낮추고 지하 주차장 충전을 제한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아울러 차량 화재 전반에 대비해 소방 설비를 정비해야 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주차장은 지하화하면서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전체의 61.8%에 달하는 22만3158대다.
임 교수는 “정부는 지하 주차장 내 전 차량 화재에 우선 대비하고 여기에 전기차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책을 추가해야 한다”며 지하 주차장 진입이 가능한 전용 소방차량을 지역마다 구비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