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자발적 퇴사 4년새 50% 늘어···민관협력 강화가 살길

출연연, 누리호 등 성과 있지만 성장 정체 한계 직면
산업계·학계 등으로 이직 늘어···내외부 변화 요구
전략기술 민관 공동 대응, 실험실·시장까지 협력도
혁신본부장 "공급자 사고 출연연 수요자 의견 들어야"
  • 등록 2023-04-20 오전 5:37:59

    수정 2023-04-20 오전 5:37:59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지난해 대학, 민간기업으로 옮긴 출연연(정부 출연연구소) 연구자가 2018년 이직자 숫자 대비 4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연연 우수 인재들이 삼성종합기술원을 비롯해 고려대, 울산과학기술원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탓에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을 시작으로 1973년 한국표준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우후죽순 들어서며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끈 출연연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 연구개발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풀이된다. 과학기술이 외교·안보 등 국제질서까지 뒤흔드는 전략무기로 활용되면서 기술패권 경쟁시대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국가전략기술 확보와 출연연 혁신을 위한 민관협력 강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기업(국민), 출연연이 개별적으로 일하면서 출연연이 일방적으로 기술을 공급해왔다면 이제는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함께달리기’를 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 철학 중 하나는 임무중심 연구개발이며, 임무는 공급자(출연연)가 아니라 수요자(기업)이 요구하는 사안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며 “출연연 R&D 혁신 방향도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민관협력을 강화해 수요자에 맞춰 실험실부터 사업화까지 수요자 요구사항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내외적 어려움 속 출연연도 직격탄

출연연은 그동안 원전의 ‘두뇌’인 원자로 계통 설계와 핵연료 국산화, 다음 달 발사를 앞둔 국산 로켓 누리호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26조 5791억원)과 비교 시 출연연 총 예산(5조 5079억원)은 20.7% 수준이나 출연연의 기술료 수입 비중은 같은 기간 47.1%에 이를 정도로 산업적 효과도 보여줬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현시점에서 전통적인 연구개발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만한 마땅한 성과도 없고, 연구개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십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민간 기업 연구개발 투자가 늘면서 기업에선 연구개발 성과가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외적인 환경도 좋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경쟁 등에 따라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에 따라 재정 확보가 여의치 않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출연연 인재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25개 출연연을 관리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출연연 연구직의 자발적 이직(전출)은 지난 2018년 128명에서 2022년 189명으로 47.6% 늘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인공지능 분야 인재들이 국내외 기업으로 떠났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태양전지 분야 인재들은 서울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해외 프로젝트를 하던 핵심 연구자가 명지대로 이직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는 창업하는 사례가 2021년 3개 기업에서 2022년 9개 기업으로 3배 가량 늘었다.

표면적인 인재 이탈 이유는 민간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과 대학 대비 자율적이지 못한 연구환경이다. 여기에 연구과제 수주경쟁, 폐쇄적 조직문화,실력 보다 경력 중심 성과 체계 등 복합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은 “최근 우수 인재 이탈이 심해지고 있다”며 “출연연 인기 하락과 경쟁력 약화에 따른 새로운 변화에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실험실부터 수요발굴, 전략기술 공동 대응 등 협력 요구

출연연 인재 이탈은 국가 전체적인 연구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장기 연구나 국가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씨를 뿌릴 연구자들의 역량도 줄어든다는 점은 문제다. 그동안 출연연은 수차례 역할과 책임(R&R)을 정립하고, 자체 혁신 시도를 했지만 실제 효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신용현 연세대 물리학과 특임교수는 “출연연은 기술패권시대에 국가가 보건, 교통, 국방 등을 아우르는 과학기술 전략을 마련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출연연이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해 자신만의 연구만을 고집하거나 기관별 예산 확보 싸움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 방식도 바꾸고, 국민에게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기업 등이 참여하는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를 이달 초부터 가동하고 있다. 출연연, 기업을 연결해 인공지능, 수소, 양자, 바이오 등 분야에서 필요한 기술을 민관협력으로 발굴하고, 이에 따른 정책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이 밖에 삼성전자, 한화솔루션, 포스코 등 164개 기업이 11개 분야에서 참여하는 산업별 민간 R&D 협의체를 운영해 기술 수요를 발굴해 정부 연구개발 로드맵이나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출연연 신진 연구자 등의 의견도 수렴해 디지털 전환, 조직 효율화 등의 내용을 담은 지원책도 곧 마련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출연연 원천기술 개발과 고유 역할이 모호해 국가전략기술, 탄소중립, 디지털전환 등과 맞춰 한정된 재원 속 효율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명확한 목표와 시점을 제시하는 등 현장과 소통해 큰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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