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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측 “중복지원 당첨자는 명단서 빼 드려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이모(41)씨는 최근 5세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기 위해 한 사립유치원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유치원 측은 “우리 유치원 외에 다른 곳도 지원했다가 당첨되면 전화를 달라”며 “중복지원이 되지 않도록 교육청에 신고할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해 주겠다. 다른 유치원들과도 얘기가 돼 있다”고 오히려 중복지원을 부추겼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무제한으로 지원하던 기존 방식 대신 유치원을 나눠 추첨일별로 1회씩 4차례만 지원하도록 하는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안을 내놨다. 무차별 중복지원으로 인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명단 제출 자체를 거부하는 유치원도 적지 않다. 강북지역 한 유치원 관계자는 “학부모에게서 개인정보를 교육청에 보내도 된다는 동의를 받지 못해 명단을 제출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학부모 중 일부는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교육청에 보내면 법적으로 따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교육청은 개인정보를 공익을 목적으로 한 행정업무에 사용될 때는 개인 동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며 부모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명단을 제출하라고 유치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마감일인 15일까지 지원자 명단을 교육청에 제출한 유치원은 소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을 취합하고 있는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명단을 낸 유치원이 많지 않다”며 “전화와 문자로 계속 제출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 “정직하게 지원한 사람만 손해 본 셈” 분통
서울교육청은 중복지원한 사실이 확인되면 당첨된 모든 유치원의 등록을 취소한다는 방침이나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 유치원 관계자는 “원아가 줄어들면 그만큼 유치원 운영이 어려워진다”며 “교육청이 합격 취소를 요청해도 이를 그대로 수용할 원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교육청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들이 행정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해 명단을 아직 못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연히 모든 유치원이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관계자는 “교육청이 중복지원을 거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중복지원하면 문제가 될까봐 지원을 포기한 부모들만 결국 피해를 입은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