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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기업을 넘어선 국가 간 반도체 주도권 싸움으로 관심을 끌었던 일본 도시바 반도체부문 인수전이 사실상 ‘미일 (반도체) 동맹’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이 결과가 현 삼성전자(005930) 독주 체제에 변화를 불어 일으킬지 여부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자금난 끝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추진 중이던 도시바는 지난 23일 이달 중 본계약을 맺는다는 목표로 미국 협력사 웨스턴디지털(WD)과 막판 합의중이라고 밝혔다. 24일엔 이사회 승인까지 거쳤으며 1조9000억엔(약 19조원) 전후에서 매각액을 협상 중이라고 전해졌다. 여기에 공동 매각 주체이자 사실상 매각 대상을 결정할 수 있는 일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일본 정부측 자본도 사실상 WD의 손을 들었다.
도시바는 지난 6월 SK하이닉스(000660)를 포함한 한미일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세부안 협상을 진행했으나 WD에 발목이 잡혔다. WD는 도시바와 50대 50 합작법인을 설립해 일본 내 요카이치(四日)시 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었고 이를 이유로 본인의 동의 없는 매각은 불법이라고 막아섰다. 은행 채권단의 독촉, 시간에 쫓겨 온 도시바는 진퇴양난에 빠졌고 결국 우선협상 주체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양사가 힘을 합친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독주 속에 각 회사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다. 재작년 미국 샌디스크가 도시바와 손잡고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키로 한 것도, WD가 지난해 다시 샌디스크를 인수하며 도시바와 손잡게 된 것도 애초에 삼성전자를 견제한 행보였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도시바와 WD가 원점으로 돌아가 부활을 모색한다면 점유율 면에서 삼성에 근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IHS마르키트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7%, 도시바가 17.2%, WD가 15.5%로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가 도시바의 점유율 감소분을 그대로 가져간 모양새다. SK하이닉스(11.4%), 마이크론(11.1%), 인텔(7.4%) 등 뒤따르는 기업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한편 도시바와 WD는 구체적인 M&A 내용에 대해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WD가 전환사채(CB) 등 의결권이 없는 형태로 1500엔(약 1조5000억원)을 출자키로 했다고 전했다. 나머지는 WD가 손잡은 미 헤지펀드 KKR와 일본 정부 자본과 기업 등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