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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을 사면 포장을 뜯고 부클릿을 꺼낸 후 뒷장부터 보는 버릇이 있다. 보통 그곳에는 음반에 참여한 이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크레딧 란이다. 음악을 듣는 형태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뀐 후부터 앨범 소개 글에서 ‘더 보기’를 눌러 크레딧이 있는지 확인한다.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훑은 후 이를 바탕으로 내가 듣게 될 음악을 상상하고 음반을 플레이한다. 내가 상상한 게 맞는지, 아닌지. 혹시라도 크레딧을 함께 남기지 않는 음원이 있으면 아쉬운 기분이 든다. 해당 음원을 발매한 기획사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은 후, 곡을 하나하나 클릭해 작사·작곡·편곡자를 확인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머지 스태프의 이름을 확인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내 삶에 대중음악이 긴밀히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을 그때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음반이 발매되는 날마다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 음반을 사고, 친구들과 그가 컴백 무대에서 립싱크했는지 아닌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노래하고 춤추는 퍼포머로도 훌륭했다. 그 전에 자신의 음악을 직접 만들고 콘셉트를 기획하는 프로듀서였다. 그를 따라 벙거지를 사고 회오리 춤을 따라 췄다. 그보다 더 관심 있던 건 프로듀서로서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모든 걸 만들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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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음악을 만드는 이가 궁금해했던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됐을까. 짜잔. 음반을 제작하고 프로듀스하는 인디 레코드 레이블 대표가 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인디 레코드 레이블을 만든 2012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발표됐다. 그게 어떻게 케이팝이라는 게임을 바꿨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케이팝은 유튜브와 SNS를 타고 섬나라와 다를 바 없는 한국을 뛰어넘어 어느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와 동시에 블랙홀처럼 한국 대중음악과 그 주변 산업을 흡수하고 경계를 허물었다. 내가 낮에는 인디 음반을 만들고 밤에는 케이팝 글을 쓰며 ‘케이팝 제너레이션’의 스토리 프로듀서 일을 하게 된 이유다.
그러니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을 다루는 ‘케이팝 제너레이션’ 2화 ‘ZERO TO ONE’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 만드는 이를 동경해 인디 레코드 레이블을 만든 걸로 모자라, 이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에까지 참여한다니. 역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법인가? 언제나 케이팝 뒤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ZERO TO ONE’은 캐스팅과 트레이닝부터 곡 작업, 비주얼 작업 그리고 공연까지 케이팝이 만들어지는 이면에 있는 모든 과정을 담은 화다. 직접 궁금증을 파헤치고 왜 그들이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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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TO ONE’을 다 본 나는 탑승했던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아이 같은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본다. 아이유의 ‘라일락’을 작업한 작곡가 임수호는 인터뷰에서 “음악 혼자 못해요. 같이 해야 해요. 그래야 오래 해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케이팝은 혼자 만들 수 없는 음악이다. 케이팝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혼자 글을 쓰거나, 작은 규모의 인디 비즈니스만 해 온 내게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지금까지 해온 가장 큰 팀 작업이었다. 내가 한 건 아주 작은 일일 뿐인데, 이렇게 멋진 결과물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함께 한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 모쪼록 케이팝을 들을 때, 우리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한 번쯤은 크레딧을 유심히 봐주길 권한다. 장담하건대 분명 즐겁고 입체적인 경험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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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차우진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
②보이그룹은 언제까지 아이돌이야? / 김선형 PD·머쉬룸 컴퍼니 대표
③케이팝 뒤에 사람 있어요 / 하박국 스토리 프로듀서
④상자를 부수는 사람들 / 이예지 머쉬룸 컴퍼니 대표
⑤“케이팝, 왜 하세요?” /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⑥그래서, 케이팝은 어떻게 되나요? / 임홍재 제작 책임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