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의 이모(82) 할머니는 한국전쟁 중에 피난 오면서 부모 형제와 헤어졌다. 이 할머니는 “부모님은 돌아가셨겠지만 죽기 전에 오빠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애달파 했다.
올해 설을 맞은 이산가족의 상심이 더 큰 이유는 비단 속절없이 한해 더 흘러간 시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연초만 해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남한)니, 최고위급 회담(북한)이니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한껏 기대가 부풀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터였다.
우리 정부는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것을 북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먼저 대화를 제의했고 거듭 조건도 형식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고 했는데도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또 우리 잘못이라고 한다. 신년사를 통해 연초부터 ‘통 큰’ 결단을 내렸으나 남한이 소심하게 대북전단도 5·24조치도 해결 못 하면서 미국과만 친하려고 하니 아예 말을 섞을 수 없다는 식이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남측 이산가족 중 80% 이상이 70세가 넘었고 절반 이상은 80세가 넘는 고령자다. 정부가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강조하는 사이 남북관계는 경색을 넘어 불통(不通)으로 치닫고 있다. 남은 3년 동안 원칙을 살리면서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대북 정책의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