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미 대선은 민주당 케네디와 공화당 닉슨의 대결이었다. 케네디는 ‘현직 부통령’인 닉슨과 비교하면 ‘풋내기’에 불과했다. 대반전은 TV토론 이후 일어났다. 당당하고 활기찬 케네디는 에너지가 넘쳤다. 피곤하고 초조한 모습의 닉슨은 점수를 까먹었다. 케네디의 완벽한 승리였다. TV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서막을 알린 분수령이었다. 80년 미 대선 TV토론도 획기적이다. 배우 출신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은 특유의 유머와 여유로 현직 대통령이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압도했다. 2016년 미 대선 TV토론은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세기의 대결’이었다.
한국은 미국보다 40년 가까이 늦었다.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이 공식 도입됐다. 여야 후보들은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TV토론에서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겨뤘다. 최대 수혜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전·현직 정치인 중 ‘가장 박식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전 대통령은 능수능란했다. 대선 슬로건처럼 ‘준비된 대통령’을 과시했다. 또 ‘DJ는 빨갱이’라는 해묵은 색깔론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15대 대선 이후 TV토론은 한국 정치의 필수코스가 됐다.
이상한 건 TV토론의 실종이다. 여야 당내 경선에서의 수많은 TV토론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최근 동학개미들의 바이블인 ‘삼프로TV’에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등 여야 후보가 줄줄이 출연했다. 조회수 합계도 총 800만회를 넘었다. 차기 대통령 적임자를 평가할 좋은 기회였다. TV토론에 목말랐던 유권자들은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 기간 중 대담이나 토론회는 최소 3회 이상 개최’다. TV토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아니라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직전 19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6차례 이뤄졌다. TV토론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자 대선후보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