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는 민간 주도로 투자가 이뤄지도록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맞지만, 고금리로 유동성이 마른데다 경기 상황도 좋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시각이다. 민관 합동이나 민간이 중심이 되는 펀드 조성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충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13일 정부 및 금융권에 따르면 8월 둘째주로 예정됐던 K-바이오백신펀드 위탁 운용사(GP) 선정 공고 계획이 잠정 연기됐다. 기존에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곳 중 한 곳이 중도 포기해 발생한 공석을 신속히 메워야할 상황이지만, 국책은행들과 펀드 조성 개편안 관련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K바이오백신펀드 운용사 모집과 신규 조성이 지연되면서 자금 유입이 절실한 바이오헬스 분야 자금 수혈도 함께 늦춰지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이달 말까지는 최대한 조정안을 결정한 후 GP 모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소 일정 지연이 있어 각 국책은행과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며 “월말까지는 논의안을 결정 짓고 GP 공고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고 설명했다.
K바이오백신펀드는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5000억원 규모의 민관 공동 출자 펀드다. 당초 미래에셋벤처투자(100790)와 유안타인베스트먼트 2개사가 위탁운용사 지위를 맡아 각 2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할 예정이었으나 기한 내 민간 모집 목표액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GP 지위 반납 후 징계 대상이 됐고, 유안타인베스트먼트는 기존 모집액을 기반으로 멀티클로징(기존 펀드 추가 증액) 방식을 허가 받았다. 정부는 모집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장 의견을 수렴해 △펀드 규모 △결성방식 △주목적 투자범위 등을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략적 지원책이 필요한 산업 분야에 민간 자금을 유치하려는 정부의 정책 시도가 주춤하는 사례는 비단 K바이오백신펀드 뿐만이 아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는 2027년까지 농식품 산업에 민간자본 5조원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책·민간 기금 조합으로 1조3000억원, 농협을 필두로한 민간 금융기관에서 여신 자금 4조3000억원을 끌어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책 추진 초기부터 민간 자금 조성을 특정 금융사에게만 기댄 데다 계획안에 실현 가능성이 낮은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는 계획안에 최근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있는 민간모펀드를 활용하는 안을 포함했다. 민간 자금 1000억원을 모아 모펀드를 선 조성한 후 자펀드를 포함해 총 3000억원 규모로 농식품산업 관련 초기 및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민간 출자금을 모집하겠다는 선전과 달리 자금을 댈 금융기관을 사전에 내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책 설정 단계에서부터 잠정적으로 농협금융지주와 산하에 있는 금융계열사들이 1000억원대 출자금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금융권에서는 이처럼 정부가 출자 금융기관을 사전 지정해둔 민간모펀드 조성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간 주도 투자 생태계 조성 취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이같은 방식으로 자금 조성에 나서면 시장 부담이 과도해져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다.
정책 계획에 따른 제약으로 인해 모펀드를 운용할 전문성 있는 운용사 구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3년에 걸쳐 모펀드 자금 1000억원을 배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경우 3년 동안 연간 300억~400억 안팎을 운용하는 셈이 된다. 현실적으로 운용보수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어 유망한 운용사들의 참여유인이 극히 낮다. 전략적 농산업 육성 펀드라 분야 경직성도 큰데다 보수마저 적으니 운용을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책 계획 발표 초기에 일부 운용사가 검토를 진행했으나 무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지금 농식품부의 계획안대로 운용하려면 운용역 인건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며 “모펀드도, 자펀드도 모두 시장에서 운용을 맡거나 자금을 댈 유인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벤처별 민간자금과 정부자금 필요한 단계 구분해야”
한 VC 투자 임원은 “시기와 시장 환경의 문제도 컸지만, GP 입장에서는 이 펀드를 운용할만하냐가 제일 중요하다”며 “투자를 해서 벤처를 키운다고 할 때 정부가 해야할 일과 시장이 해야할 일을 적절히 나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전반적으로 그런 측면이 부족했다. 차라리 정부 주도가 아니라 GP들이 결성 계획을 가져오는 것을 지원해주는 방향이 나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이오백신펀드의 경우 바이오는 어느 정도 시장에서 투자할 단계의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백신은 아직 시장 투자금이 들어갈 단계가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 강화가 더 필요한 단계다. 이렇게 정책육성과 시장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섞어서 내니 시장 반응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VC 대표는 “민간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섹터별 성장 가능성과 수익창출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백신도 그렇지만 농업 분야 벤처기업들도 시장 한정성이 높아 성장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민간이 과감하게 자금을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은 정부가 적극 나서고, 성숙도가 높아졌다 싶을 때 민간 역할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목표를 맞추는 데만 집중해 시장 참여자들이 들어올 유인 설계가 미약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책 성향이 강한 펀드는 통상 시장성이 낮고 분야 경직성으로 인한 리스크가 높은 만큼 운용·출자에 나설 확실한 유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모펀드 제도의 경우에도 그 목적 자체가 신규 자금 물줄기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는데, 아직 벤처투자 출자 경향이 전반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세제 혜택 만으로는 유인이 약하다”며 “아직 국내 벤처투자 시장 내에 자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접근 방식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