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고로 정지시 최소 10兆 피해…지자체 탁상행정에 '제조업 불씨' 꺼지나

  • 등록 2019-06-10 오전 6:30:00

    수정 2019-06-10 오전 6:30:00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안전밸브(고로 브리더)를 통해 배출되는 것은 대부분 수증기인데, 수증기 배출이 시작되면서 짧은 시간 동안 고로 내 잔류가스가 밸브를 통해 나온다. 이때 배출되는 잔류가스는 2000㏄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시 10여일간 배출하는 양에 해당된다.” 지난달 말 충청남도가 현대제철(004020) 당진제철소 제2고로에 대해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린 데 대해 한국철강협회가 내놓은 설명 중 일부다.

충남도 향한 ‘탁상행정’ 논란…“10兆 피해 넘어 문닫으란 의미”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을 생산하는 고로(용광로)가 쏘나타 한대가 하루 8시간씩 10여일간 운행시 배출하는 가스로 인해 문을 닫게 생겼다. 고로 중단으로 철강업계가 입을 피해는 수조원. 이에 더해 자동차·조선 등 철강 수요업체가 수급 불안으로 인해 입을 직·간접적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현재 고로 브리더를 통해 배출되는 잔류가스에는 실제 대기오염 물질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조차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 고로 브리더 개폐는 안전 측면에서 불가피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설비로, 현재 전세계에 이를 대체할 기술 및 대기오염방지설비를 부착할 기술은 아직 없다. 다만 이같은 업(業)의 특성에도 충남도는 조업정지 처분을 강행하며 철강업계 뿐 아니라 관련 전방산업까지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 충남도를 향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고강도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관련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마저 충남도의 결정에 물음표를 붙이는 마당이다. 한 산업부 관계자는 “사안이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경북도와 전남도는 의견 수렴을 위해 청문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충남도만 돌연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며 “경북도의 요청에 따라 세계철강협회(WSA)가 전세계 제철소들이 모두 문제없이 고로 브리더를 개폐하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온 것을 충남도도 알고 있을텐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충남도의 조업정지 처분이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 15일 실제 집행될 경우 당장 현대제철이 입을 피해만 1조원에 육박한다. 철강협회는 “실제 조업정지가 될 경우 가령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동 기간동안 약 120만톤(t)의 제품 감산이 발생해 8000여억원의 매출액 손실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다른 고로들 역시 똑같은 법리해석을 적용할 경우 조업정지 처분을 면하기 어렵다. 당장 경상북도와 전라남도는 포스코(005490)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1개 고로에 대해 지난달 조업정지 10일 처분 사전 통보를 내렸으며, 청문절차 결과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충남도 처분은 대기환경보전법 31조에 근거하며, 집행 권한을 가진 각 지자체가 다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며 충남도의 처분에 따라 경북도 및 전남도 역시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이 경우 철강업계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난다. 현재 국내에는 포스코(005490) 포항제철소(4기)와 광양제철소(5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3기) 등에 총 12기의 고로가 운영 중으로, 환경부 및 지자체의 논리대로라면 이들 고로들 역시 모두 조업정지 대상이 된다. 조업정지 단 10일 만으로 이들 고로 12기의 매출액 손실은 최소 9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철강업계는 고로 브리더 개폐 이외 다른 기술적 대안이 없는만큼, 이번 조업정지 처분은 사실상 국내 모든 제철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철강협회는 “고로 안전밸브 개방 관련 조업정지 처분은 이에 따른 감산, 또는 고로 재건설 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조업정지 이후 고로를 재가동한다고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안전밸브를 사용하지 않고 고로를 가동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조업정지 처분은 국내에서 일관제철소 운영 중단이라는 의미와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車·조선·건설 ‘도미노 피해’…“中 수입 늘면 산업 전체 망가진다”

문제는 이번 조업정지 처분이 철강업체들의 피해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로부터 철강제품을 공급 받는 중형 제강사들은 물론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전방산업들까지 ‘도미노 피해’는 예상된 수순이다.

이미 중형 제강사들은 높은 열연 가격으로 실적악화에 직면한 상황으로, 만약 포스코와 현대제철 열연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극악의 경영환경에 처할 수 있다. 가득이나 어려운 경영환경에 놓인 자동차, 조선, 건설산업 역시 자동차강판과 후판, 봉형강 등 철강제품 수급 불안에 따른 원가 부담 상승에 직면할 전망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수급 불안으로 철강제품 수입이 늘어날 경우 국내 철강산업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 국내로 들어오는 수입 철강제품은 일본 또는 중국산이 주를 이뤄왔으며, 이중 중국산은 저가 공세로 공급과잉은 물론 저품질 논란도 빚어왔기 때문.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제품 수입 확대시 배짱영업에 따라 저품질 문제 뿐 아니라 안정적 수급 측면에서도 위험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은 중국산 철강제품 수입을 막기 위한 극단적 통상정책을 펼치는 마당이지만, 우리 정부는 되레 수입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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