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공채 시험 부실관리로 신뢰 잃은 은행

외주업체에 관리 위탁했다가 곳곳서 파열음
미래고객인 응시생들에게 불신 심은 자충수
  • 등록 2018-11-05 오전 6:00:00

    수정 2018-11-05 오전 6:00: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은행은 신뢰가 생명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는 채용시험부터 이렇게 부정행위 심한데 이 은행을 믿어도 되는 지 모르겠네요.”

지난달 27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KEB하나은행 공개 채용 필기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수험생 최모(24·여)씨는 굳은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현장에서 시험이 어땠냐는 질문에 수험생들은 “이렇게 허술한 시험은 처음 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시험을 치룬 정모(25·여)씨는 “이 시험을
위해서 몇 달간을 준비했다”며 “하지만 허술한 시험관리와 부정행위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 필기 전형에서는 부정행위자들을 제재하지 못하고 점수산정방식이나 시간을 잘못 고지하는 등 고사장 감독 소홀 문제가 있었다면 지난달 13일 있었던 KB국민은행 필기 전형에서는 출제 문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국민은행 필기시험 문제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기출 문제집에 포함된 문제가 10여개 출제됐기 때문이다. 이날 시험을 치룬 김모(28)씨는 “100분 동안 120문제를 푸는 시험에서 문제 10여개를 먼저 알고 있는 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특정 누군가에게 유리한 시험이 공정하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채용비리 논란에 휩싸였던 은행들은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필기 전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채용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입한 전형이 도리어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은행의 입장은 간단하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기 전형을 외부에 위탁했고 외주 업체가 고사장 관리와 시험 문제 논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채용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은 은행들은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개입하기를 꺼리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채용 전형을 외주 업체에 맡긴 취지 자체가 채용 비리에 대한 의혹을 근절하기 위해서였다”며 “혹시라도 내부 직원이 필기 문제를 먼저 보는 등 사전에 필기 전형에 개입한다면 또 채용 비리에 대한 의혹이 나올 수 있어서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부실한 필기 전형에서 피해를 보는 건 역시나 수험생들뿐이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문제제기를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은행권 취업준비생 박모(28)씨는 “지난 5월 우리은행 채용 필기시험에서도 시험장 관리 부실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은행 측은 필기 전형을 합격한 사람들에게만 짧은 사과를 하고 지나간 게 고작”이라며 “문제를 제기해도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업자 100만 명 시대. 청년실업자도 37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은행권은 휘몰아친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를 보상이라도 하듯 역대급 대규모 채용을 예고했고 은행 취업을 꿈꾸던 취업준비생들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책임은 지지 않고, 공정하다고 평가는 받고 싶은’ 필기 전형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비웃음거리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취업만큼 공정성에 목말라있다. 그들이 은행 채용 필기 시험에 관해 제보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렇게 말해봤자 제가 구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라도 그리고 이번이 아닌 다음에라도 공정하게 시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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