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겸의 일본in]물이 피보다 진할 수 있다

5월 가족의 달 끝자락, 日 애니가 전한 가족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가 전한 가족의 의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묻는 가족 탄생은
“같이 보낸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는 메시지
  • 등록 2023-05-29 오전 9:39:19

    수정 2023-05-31 오전 7:36:12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30주년이 돼서야 밝혀진 출생의 비밀이라니. 봉미선과 신영식의 아들인 줄 알았던 짱구가 사실은 산부인과 실수로 닌자마을의 제갈진구와 뒤바뀌었다는 것. 지난 4일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짱구는 마음 속 동물을 소환하는 동물소환술을 자꾸 쓰다 보면 동물이 되어 버리는 닌자마을로 납치당한다.

짱구 잠옷을 입고 있는 고릴라에게 신형만은 말한다.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상관 없어. 앞으로도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사진=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웃긴 데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짱구가 고릴라가 되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신영식은 “네가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전부 상관없다. 난 앞으로도 짱구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냥 짱구 잠옷을 입은 고릴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도 글썽이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료타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7년 동안 키워 온 자식이 사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이냐, 시간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동진 평론가는 “가족은 본성이 아니라 역사”라며 “역사가 되려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시간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핏줄이 이어져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란 것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노력해야 의미가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이 엄마가 되어 줄 때도 있다.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에서 마키아가 그랬다. 늙지 않는 요르프족을 메자테 군대가 공격할 때 이를 피해 몸을 숨기다가 숲에서 인간 아기를 줍는다. 마키아는 아기에게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엄마처럼 키운다. 피로 얽힌 사이는 당연히 아니다.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은 마키아도 아리엘처럼 고아라는 사실에 느낀 동질감 하나 때문이다.

B코마치 센터 호시노 아이. 가족을 만들고 싶어 16살에 쌍둥이 엄마가 됐다.(사진=최애의 아이)


혈연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는 건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에서도 드러난다. 중소 기획사 걸그룹 B코마치 센터인 호시노 아이는 “보육원 출신이라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면서 쌍둥이를 갖게 되지만, 작중 아직 등장하지 않은 쌍둥이 아버지가 아이의 죽음에 관여했다. 스토커에게 아이의 집 주소를 노출해 살해 사건으로 이어지면서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루비와 아쿠아를 가족처럼 키운 건 B코마치 소속사인 이치고 기획이다.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보다는 관계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짱구가 지구의 배꼽을 지키기 위해 마음으로 불러낸 동물은 유리처럼 호랑이도, 맹구처럼 트리케라톱스도 아닌 흰둥이가 아니었던가. “흰둥이도 우리 가족이에요. 신흰둥이란 말이에요!”라는 짱구와 “친자식이 아니어도, 고릴라여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짱구 아빠네 가족이 5월 가정의 달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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