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력이 한국 턱밑까지 쫓아오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잇달아 유출되면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중국 기업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더구나 중국 기업이 수억원대 연봉을 제시하면서 국내 기술자들을 빼돌리고 있어 이들에게 간첩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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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대검찰청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6년간 산업기술 국외유출 적발 건수는 총 117건으로 집계됐다. 월 1.6개씩 산업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36건으로 전체의 30.7%에 이른다. 이에 기업 연구개발비, 예상 매출액 등을 통해 추산한 기술유출 피해규모는 26조원에 달한다.
이차전지와 전기자, 차세대 반도체와 로봇,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신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기술’로 좌우되는 상황이 도래했고 핵심기술의 경우 공개되는 ‘특허’보다 비공개 되는 ‘영업비밀’과 ‘산업기술’로 보호되는 경향이 강화돼 기술유출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성엽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선도업체와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경쟁사 개발자들을 영입하는 방식이 훨씬 빠른 방법”이라며 “특히 우리나라 기업이 신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 해외에서 우리나라 기업 기술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 연구개발(R&D) 투자만 11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중이 5.21%로 전 세계 2위를 기록, 세계적으로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영향도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으로 기술 확보가 어려워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우리나라의 D램 기술 등을 탈취하고자 적발되는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세계 시장에서 핵심기술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순위가 결정된다”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산업 스파이 활동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선 이 같은 산업 스파이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에선 D램의 경우 기술 격차가 5년까지, 낸드플래시에선 2년까지 줄었다고 본다. 디스플레이 중 한국이 강점을 가진 OLED 격차는 3년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격차가 10년 넘게 벌어진 걸 생각하면 중국의 추격 속도는 놀라울 정도”라며 “순전히 중국 자체적인 노력의 결과로 보기는 힘들고 빼돌린 기술을 적극 이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 최대 D램 제조기업 창신메모리는 지난해 11월 중국 최초로 저전력 DDR5(LPDDR5) 제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는데 업계에선 우리 기업의 기술이 창신메모리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에서도 삼성전자 부장 출신 김모씨와 삼성전자 협력사 전직 팀장 방모씨가 18나노급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창신메모리에 넘긴 것으로 판단, 지난 3일 구속기소했다. 삼성전자와 협력업체가 입은 피해금액만 약 2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232단 낸드 양산에 성공했다고 알린 중국 YMTC에도 한국 근로자들이 다수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30단을 넘긴 낸드 양산은 한국 엔지니어들의 기술 노하우를 활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로써 한국 기업과 중국의 낸드 단수 차이는 불과 4단까지 좁혀졌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국가 경제의 기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 유출이 불러올 위기는 더 심각하다. 두 산업분야 모두 한국의 15대 주요 수출 품목인데 특히 반도체는 지난해 수출 중 14%를 차지한 수출 1등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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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처벌이 약해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10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총 188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심 재판으로 넘어간 사건은 141건이다. 이 가운데 실형 선고는 14건으로 전체의 10%에 그쳤다. 반면 집행유예는 44건으로 31% 수준이며 무죄는 52건으로 37%에 달한다.
조원희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주로 임직원이 퇴사하면서 기술을 빼 가는 경우가 많은데 기술 유출은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또 기술의 사용 여부는 기술 전문가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데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다툼이 많고 역시 증명이 쉽지 않다. 재판까지 가더라도 최종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편에서는 간첩죄에 맞먹는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준선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죄)이 아니더라도 해외 사례와 같이 피해액에 따라 처벌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만과 미국 등은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양형 기준을 피해액에 따라 가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핵심기술 보호에 힘쓰고 있다. 대만의 경우 2022년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경제·산업분야 기술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염호준 태평양 변호사는 “간첩죄의 경우는 구성요건 중 하나로 ‘적국을 위하여’라는 요건을 요구한다”며 “기술유출이 중국 업체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서 중국을 ‘적국’으로 보는 것은 법률 해석상 무리가 있다. 또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쉽사리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