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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작년 모 은행에 취업한 김선식(가명·28)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지점에 앞으로 점심은 혼자 먹고 싶다고 선언했다. 김씨는 “은행 창구에서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하는데 그나마 쉴 수 있는 점심시간마저 불편한 상사와 밥을 먹느라 힘들었다”며 “처음엔 따끔한 눈초리를 받기도 했지만 점심을 온전히 쉴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90년대생에게 조직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특히 불합리한 조직에서 강요하는 불필요한 충성만큼 이들을 괴롭게 하는 건 없다. 이에 취업과 동시에 퇴직 계획을 세우거나 자기 적성과 맞지 않다고 여기면 곧바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회사보다 내가 중요해”…퇴사도 마다않는 90년대생
서울 강남구의 한 무역회사에 재직 중인 황모(28)씨는 부서장이 참석하는 회식이나 주말 등산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황씨는 “내가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굳이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회식이나 모임에 참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까지 강요하려고 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90년대생에게 더 이상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전에 없다. 불필요한 충성 등으로 조직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2019년 5월 경제인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부가조사’에 따르면 첫 일자리가 임금근로자인 경우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3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5월보다 0.6개월 줄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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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라는 공무원도…2030은 `이직 의향`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각광받는 공무원을 선택한 90년대생들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2017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나는 기회만 된다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질문에 40대 공무원은 40%, 50대는 50%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20대 공무원은 34%에 그쳤다. 작년부터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29)씨는 “사(私)기업보다 보람 있고 피로는 덜 할 것이라는 생각에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현실은 달랐다”며 “민원인들에게 욕설을 듣는 등 업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후진적인 조직 문화가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최근 정부가 2030공무원 공직문화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이에 따르면 `회사에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가 있다`는 질문에 81%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중 후배직원 실수에 대해 `너 미쳤어` 등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분노조절 장애`가 43%로 가장 많았다. 또 공직문화에서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묻는 질문에 35%는 `과도한 의전`을 들었고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32%) △불필요한 야근(21%) △권위적 표현(7%) 등이 뒤를 이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90년생이 워라밸을 중시하고 퇴직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는 것은 그 세대만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며 “과거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수동적인 이유 보다는 개인의 존엄성이나 인권 의식이 향상되면서 정의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이어 “이런 현상 속에서 조직의 대의와 개인의 대의가 충돌할 때 개인의 대의를 추구하는 경향도 강해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