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노는 者의 승리..이경규에게 배우다

  • 등록 2016-03-31 오전 7:00:00

    수정 2016-03-31 오전 7:00:00

이경규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이데일리 고규대 연예스포츠부 부장] ‘노는 중’. 한 친구의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의 제목이다. 11세 딸의 방문에 붙인 표시라면 보통 ‘공부 중’ 적어도 ‘휴식 중’이다. 신기하게도 친구의 딸은 놀고 있으니 건들이지 말라고 적어놨다. 페이스북 친구의 댓글도 넘쳐났다. ‘노는 것보다 공부가 쉬웠어요’ ‘아이의 센스가 좋네요’ 등등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댓글은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 분별과 절제를 아는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주말 한 명의 걸출한 방송인이 화제에 올랐다. 개그맨 출신 MC 이경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노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경규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을 선보여 1위를 하더니 이번엔 ‘낚방’(낚시방송)으로 1위를 따냈다. ‘마리텔’은 연예인이나 셀럽이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마리텔’의 대표적 아이템이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춤을 추기도 가면을 만들기도 작곡을 하기도 한다. 이경규는 별다른 재주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편안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경규의 이날 승리 비법은 배워볼만하다. 먼저 어떤 판이 깔리더라도 그 판에 휩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 유리한 분야로 판을 다시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에서 ‘나이 들면 누워서 하는 방송을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힘에 부칠 때마다 바닥에 드러누우며 ‘눕방’을 보이더니 평소 낚시광답게 스튜디오가 아닌 낚시터로 나갔다. “지금 스튜디오는 난리가 났을 거다. 내가 밖에서 뭘 하는지 모르지 않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낚시 베테랑답게 한 번에 두 마리의 붕어를 잡는가 하면 직접 라면을 끓이며 한때 하얀 국물 라면 ‘꼬꼬면’으로 히트를 친 ‘쿡방’ 원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또 다른 비법은 ‘노는’ 게 뭔지 안다는 데 있다. 이경규는 지난 1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예능계를 이끌어 온 대부로 소개됐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도 10년 만이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그가 오래 살아남은 비결은 ‘노는’ 맛을 아는 덕분이다. 많은 스타와 예능인들이 줄줄이 실패를 맛본 ‘마리텔’에서, 그는 그저 놀았을 뿐이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며 무리수를 두려고 하기 보다는 평소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노는 중’.(출처=이석주 페이스북)
잘해내야 한다는, 실패하면 추락한다는 두려움으로 요즘 현대인은 불행하다. 나이 60이 넘은 선배를 만나면 가끔 필자에게 아쉬운 게 많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놀지 못한 아쉬움이다. 논다는 게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는 말은 아니다. 놀다의 첫번째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는 뜻이다. 20대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30대는 젖먹이 아이 키우느라, 40대에는 그 아이 학원비 대느라, 그리고 50대에는 부모 봉양과 자신의 노후 걱정 하느라 바삐 살았다.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일과 삶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고 성공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일을 벗어나 재미있는 일에 잠시 빠지는 게 일, 나아가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이 곧 놀이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 일과 놀이는 병행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강박이었다. 시위 떠난 화살마냥 후회도 소용없다. 놀멘 놀멘 살지 못한 삶을 아쉬워해도 쓸모없다. 11세 소녀처럼 용기 있게 재미난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나는, 당신은 재미난 일을 한 적이 언제인가?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는,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을 어른이 되고 나면 잊고 만다. 이경규처럼 재미에서 일까지 뽑아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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