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외치는 벤처업계 "해외처럼 실효성 있는 정책 기반돼야"

[삐걱대는 정책펀드]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활성화 외치는 업계
글로벌 선진국은 초기 집중 지원 후 민간에 일임
실효성 있는 민간 자금 유입 방침 절실
현 경기에 정책 목적 달성+수익률 제고 어려워
  • 등록 2023-08-14 오전 9:15:26

    수정 2023-08-14 오전 9:15:26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어주는 그림이 되어야 벤처투자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

국내 투자를 위해 최근 내한한 캐나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벤처투자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관계자는 “캐나다를 비롯한 해외 벤처 선진국은 경제 성장의 엔진이 민간에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는 시장을 민간에 맡겨왔다”며 “정권 임기에 따라 정책 방향성이 바뀌지만, 벤처 생태계만큼은 이와 무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국내 벤처 업계 관심이 뜨겁다. 최근 우리 정부가 민간자본이 자생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벤처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실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짙다. 지금과 같이 대내외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책 방향에 따라 한정성이 높은 분야에 대한 투자를 민간에 강요하기보다는 해외 선진국처럼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강화하고, 될성부른 기업 투자 및 성장 지원은 민간에 흘려보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민간이 중심이 되어 펀드가 원활하게 조성되는 해외 벤처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리스크는 정부가, 될성부른 나무는 민간에

글로벌 벤처 선진국으로 거듭난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은 민간 모펀드를 운영하며 민간 자본을 활발히 유입시키고 있다. 민간 모펀드는 펀드 운용 능력과 투자 전문성을 갖춘 대형 벤처캐피털이 운용해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수익성 중심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민간 출자 수요와 투자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 지원하는 만큼, 민간 매칭 매력도도 크게 올라간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스타트업의 모태 국가인 미국에서는 민간 투자가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스케일업을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 국제비교 및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소기업청(SBA)에서 운영하는 SBIR·STTR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초기 스타트업의 연구·개발(R&D)과 상업화를 위한 시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그 이후 단계는 민간에 일임한다.

‘아메리카 시드 펀드’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초기 스타트업 자금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SBIR과 STTR을 통해 미국은 연간 4000개 이상의 기업을 지원하고 4억달러 이상의 과제 수행을 지원한다. 이러한 정부 주도 투자 규모는 미국에서 이뤄지는 민간 투자에 비하면 큰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 정부 주도 벤처 투자액은 미국에서 이뤄진 전체 투자의 4.4%를 차지했다. 상업화 이후에는 민간 기업 투자를 통해 졸업시키는 것을 목표하는 것에 걸맞게 민간 부문 투자가 활성화되어 있는 셈이다.

민간 부문에선 기업투자(CVC)가 특히 활발한 실정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CVC 개념이 대중화됐고, 실제 IBM벤처스와 인텔캐피탈, 퀄컴벤처스 등 다양한 기업이 CVC를 통해 스타트업에 활발히 투자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여기에 힘을 싣고자 ‘적격 중소기업 주식 제도’를 도입하며 총자산 5000만달러 미만의 중소기업 주식 취득 시 연방 세금을 면제해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등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갈등 높은 中도 민간 투자 비중 70%↑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글로벌 유니콘을 배출할 기반이 조성됐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반자본주의 성향으로 최근 몇 년간 민간과의 마찰이 두드러지긴 했으나, 스타트업 생태계 만큼은 ▲정부 주도의 자금 및 세금 지원 ▲대학 내 창업 교육 및 지원 활성화 ▲민간기업의 활발한 투자로 쑥쑥 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기술력을 갖춘 초기 기업에 전폭 지원하고 그 이후 단계는 민간에 일임하고 있다. KDB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국가신흥산업 창업투자 인도기금(400억 위안 규모)을 비롯해 약 2만1452억 위안에 달하는 창업 유도 기금을 조성 및 운영 중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민간 벤처투자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관리보수 추가 지급 및 세제 지원제도 등의 혜택을 부여하며 텐센트와 바이두 등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실제 중국의 벤처 투자 중 CVC 투자 비중은 7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에서의 CVC 투자가 벤처투자의 23%에 그치는 것과는 대비되는 수준이다.

벤처캐피털 및 개인 투자자에 대해 스타트업 투자액의 70%를 공제하며, 과학기술형 중소기업 R&D 비용의 추가 공제 비율을 기존 75%에서 100%로 상향 조정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과학기술 혁신과 혁신 창업 생태계를 정부가 나서 톡톡히 지원하는 셈이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지원으로 벤처 생태계 외연은 커졌으나 민간 자본이 시장에 주도적으로 유입되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벤처투자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특정 산업의 수익률을 제고할 만한 유망한 딜을 발굴하기도, LP를 모집하기도 어려워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투자 구조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책 목적 달성 등 여러 기준을 감안해 투자적합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영향을 받는데, 그러다보니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다른 투자 분야 대비 제한이 있다”며 “민간 주도성과 허용 범위를 더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현재 펀드 결성이 쉽지 않은 점을 들어 출자사업 GP 비중 등에서 여유를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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