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만난 치매노인 役…전무송 "'이 연극은 하고 죽자' 결심"

연극 '더 파더' 주연 배우 전무송
치매 앓는 노인 앙드레 역으로 열연
암수술 받고 회복하던 중 출연 결심
"치매 소재 작품 사명감 가지고 연기"
12월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 등록 2024-11-22 오전 5:30:00

    수정 2024-11-22 오전 5:30:00

연극 ‘더 파더’ 개막을 기념해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배우 전무송(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관록의 배우 전무송(83)이 치매 환자 캐릭터로 분해 연극 무대를 누비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더 파더’(The Father)가 전무송이 연기 투혼을 발휘하는 현장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전무송은 ‘더 파더’를 자신의 대표작 목록에 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작품인 ‘더 파더’는 자신의 시간과 기억으로부터 유리되는 치매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2012년 초연 당시 프랑스 몰리에르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이후 영국 런던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2021년 개봉한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동명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공연에 이어 다시 한번 ‘더 파더’에 합류한 전무송은 치매로 인해 혼란을 겪는 80세 노인 앙드레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전무송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치매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작품”이라며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 ‘더 파더’의 한 장면(사진=스튜디오반)
연극 ‘더 파더’ 개막을 기념해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배우 전무송(사진=방인권 기자)
전무송은 ‘더 파더’ 초연 당시 작품의 대본을 병상에서 처음 만났다.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약물치료를 하면서 건강 회복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를 돌아보며 전무송은 “‘이건 하고 죽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건강을 회복하고 연기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약을 복용하긴 하지만 이 공연을 하면서 몸이 한결 건강해졌다”고 덧붙였다.

‘더 파더’는 치매 환자 앙드레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펼쳐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억을 잃어가는 앙드레를 안타깝게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물인 첫째 딸 안느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실제 전무송의 딸인 전현아라는 점. 부녀 관계인 두 사람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무대에서 특별한 호흡을 펼친다.

전무송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녀 관계이기에 느껴지는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대에 오를 땐 전무송과 전현아가 아닌 극 중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을 보탰다.

연극 ‘더 파더’의 한 장면(사진=스튜디오반)
연극 ‘더 파더’ 개막을 기념해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배우 전무송(사진=방인권 기자)
1962년 연기 활동을 시작해 60년 넘게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전무송은 연극 ‘춘향전’, 영화 ‘만다라’, 드라마 ‘원효대사’, ‘임꺽정’ 등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12월 8일까지 공연하는 ‘더 파더’가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되길 희망하고 있는 전무송은 “개인적으로는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연기 인생에 족적을 남기겠다는 열정적인 자세로 공연 마지막 날까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전무송은 ‘더 파더’에 앞서 지난 6월부터 약 3개월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햄릿’에서 선왕 역으로 열연했다. 최근 스케치 코미디 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례식장’ 편에 깜짝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전무송은 “병상에 있을 때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돈도, 권력도 없는 내가 남길 것은 이 몸 하나와 연기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장기 기증 서약서를 작성했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그는 “이제 남은 것은 살아 있는 동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연기를 펼치는 것뿐”이라면서 “나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힘을 보탤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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