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살인으로 갚은 노숙인…대법 "권고 이상 중형 선고 정당"

건물관리인으로 옥탑방 살던 60대 어르신
노숙인들에 용돈 주고, 잠자리도 제공했지만
한 노숙인, 자신 무시한다며 무참히 살해
1심 징역 15년→2심·상고심 징역 18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범행…권고 상한 벗어나도 돼"
  • 등록 2020-10-23 오전 6:00:00

    수정 2020-10-23 오전 6:00:00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평소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60대 건물 관리인을, 되레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무참히 폭행·살해한 30대 노숙인에게 통상적인 양형 범위보다 무거운 형을 내려야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이데일리DB)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부산 한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며 해당 건물 옥탑방에서 생활하던 B씨는 평소 노숙인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거처를 제공하는 등 호의를 베풀어왔다. 노숙자인 A씨 역시 2015년 겨울부터 B씨로부터 매일 용돈으로 1만여원을 받고 B씨의 옥탑방에서 잠을 자는 등 B씨와 친하게 지내왔다.

다만 A씨는 B씨에게 건물 관리 일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 당하자, B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A씨는 B씨의 옥탑방에 자주 들리던 다른 노숙인 C씨에게 “B씨가 형님을 다시는 안보고 싶다고 하고 찾아오는 것도 싫다고 하더라”라는 취지의 거짓말을 해 C씨가 B씨의 옥탑방에서 짐을 챙겨 떠나게 한 뒤, B씨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

당시 A씨는 주먹과 발로 B씨를 때리거나 선풍기 전선으로 목을 조르고, 이후 칼로 B씨 손목을 긋는 등 잔혹성을 보였고, 이후 현장에서 3~4시간 동안 머물며 증거를 은폐한 뒤 도주하기도 했다.

1심에서는 A씨의 유죄를 인정,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의 살인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범행동기에 따라 그 유형이 나뉘는 데 △참작동기 살인은 4~6년(가중시 5~8년) △보통동기 살인은 10∼16년(가중시 15년 이상 또는 무기 이상) △비난동기 살인은 15∼20년(가중시 18년 이상 또는 무기 이상) △중대범죄 결합 살인 20년 이상 또는 무기(가중시 25년 이상 또는 무기 이상)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 23년 이상 또는 무기(가중시 무기 이상) 등이다.

이중 보통동기 살인에는 ‘피해자로부터 인간적 무시나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앙심을 품고 살인’이 포함되며, 1심 재판부는 A씨가 이에 따라 보통동기 살인인 것으로 판단해 양형기준상 권고형 범위 내에서 선고를 내린 것.

항소심 역시 A씨의 범행이 보통동기 살인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양형에서는 1심보다 엄중한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이 사건 범행을 ‘보통동기 살인’의 기본영역에 해당한다고 본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면서도 권고형의 상한을 벗어난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B씨는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평소 주위 상인들이나 노숙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호의를 베풀어 왔고, A씨 역시 B씨로부터 용돈과 잠자리를 제공받는 등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A씨는 억지 요구를 거절한 것이 불만이었다거나,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B씨의 생명을 짓밟는 중대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살인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에서 ‘별다른 이유 없는 무작위 살인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를 ‘비난동기 살인’으로 규정해 ‘보통동기 살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는 근거는 피해자가 영문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억울한 결과와 그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황망한 상황을 초래한 위법성과 책임이 더 크다는 고려를 반영한 것”이라며 “A씨의 범행을 ‘비난동기 살인’에 준해 처벌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역시 이같은 항소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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